주체106(2017)년 3월 20일
 

소금생산유적과 관련하여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대답 (3)

 

최근 공화국에서 조선후국의 소금생산유적을 발굴한 소식이 보도된 이후 해외의 많은 동포들이 이와 관련하여 문의를 해오고있다.

본사편집국 기자는 동포들속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해답을 주기 위하여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부학부장 백용남, 연구사 교수 박사 남일룡, 강좌장 박사 부교수 리광희선생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기자: 일본의 소금고고학에 의하면 10세기경에 《대륙》으로부터 선진적인 소금생산기술이 들어와 20세기중엽까지 리용되였다고 한다.

이번 유적의 발굴로 그 《대륙》이 다름아닌 우리 조선이라는것이 확증되였다고 하는데 그 근거는 무엇인가?

리광희: 당시 일본에서는 바다물을 질그릇에 담아 끓여서 결정화하는 방법으로 소금을 만들어 리용하였는데 그 시작시기는 대체로 우리 선조들이 일본렬도에 많이 건너가던 야요이문화시기(B.C.3세기~A.D.4세기중엽)로 보거나 고분시대(4~7세기)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이다.

기자선생도 이야기하였지만 일본의 소금고고학의 성과를 요약해보면 바다마름을 리용한 바다물농축방법은 대체로 6세기부터 시작되였으며 농축한 소금물을 평가마에 넣고 끓이는 방법은 《대륙》에서 10세기경에 넘어와 20세기중엽까지 계속 사용되였다고 한다.

이번에 유적에서 발굴된 가마시설의 내경과 외경으로 보아 여기서 리용된 가마는 직경이 160cm정도 되는 둥근 평가마로 확증되였다.

가마안에서 농축된 바다물은 농도가 25%정도 되면 소금결정이 생기게 되는데 물이 계속 졸아들면서 그 량이 늘어나 일정한 정도에 이른 다음에는 소금을 건져낸다. 발굴된 농축용물웅뎅이의 용적이 1. 8㎥정도 되는것을 보면 이것은 소금물을 끓이던 가마용적의 3배이므로 하루에 소금물을 졸이는 공정이 3차정도 진행된것으로 추측하게 한다.

당시까지 중국에서는 식물을 리용하여 바다물을 농축하는 방법이 리용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의 유적발굴로 우리 선조들이 이러한 소금생산기술을 이미 1~2세기경에 소유하고있었으므로 일본에 이러한 소금생산기술을 10세기경에 전파한 《대륙》이 다름아닌 우리 나라라는것이 확증되게 되였다.

기자: 지금까지 해외동포들로부터 제기된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명확한 해명을 해주어 감사하다.

이번에 발굴된 소금생산유적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슬기로움에 대하여 더 잘 알게 되였다.

아마 해외동포들의 마음도 같을것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연구사선생들이 력사유적, 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 고증하여 온 겨레에게 슬기롭고 지혜로운 조선민족의 한 성원이 된 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기 바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련재기사
이름:   직업:   주소:  내용:   보안문자:보안문자        

홈페지봉사에 관한 문의

Copyright© 2014 - 2017 《평양모란봉편집사》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