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1월 12일
 

누리에 붙는 불이 되시여​

 

1월 12일은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의 서거 82돐이 되는 날이다.

이날에 즈음하여 우리 군대와 인민은 김형권동지의 혁명에 대한 신념과 배짱, 불굴의 혁명정신에서 만경대가문의 숭고한 애국가풍을 다시금 깊이 되새겨보고있다.

주체19(1930)년 7월 안도를 떠나 국내진출의 길에 나서신 김형권동지께서는 장백일대에서 정치군사활동을 벌리시면서 국내진출을 위한 만단의 준비를 갖추신 다음 8월 무장소조를 인솔하시고 압록강을 건너 삼수, 풍서를 거쳐 풍산에 나오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그때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정치군사활동을 벌리며 국내진출을 단행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업을 받고 무장소조와 함께 조국으로 진군하시다가 한 말몰이군으로부터 파발리의 형편과 그곳 경찰관주재소 순사부장놈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시였다.

포악무도하기로 소문난 순사부장놈에 대한 이곳 인민들의 원한은 가슴에 사무쳤다.

어느날 김형권동지일행이 주재소앞을 지날 때였다.

《오빠시》라고 불리우는 그 순사부장놈이 다짜고짜 일행을 주재소로 불러들이는것이였다.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것을 간파하신 김형권동지께서는 주재소에 들어가자마자 몸을 뒤지려고 달려드는 순사놈을 한팔로 밀어제끼시고 이놈아! 조사하겠으면 해라, 내 몸에는 이것밖에 없다고 하시며 권총을 빼드시고는 우리는 네놈들에게 빼앗긴 내 나라를 찾기 위해 싸우는 조선혁명군이다라고 엄하게 말씀하시였다.

뜻밖의 정황에 기겁한 《오빠시》놈은 부들부들 떨면서 제발 목숨만 살려달라고 애걸하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네놈은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니 용서할수 없다, 조선혁명군의 이름으로 너를 처단한다고 준절히 단죄하시고는 그놈의 가슴팍에 복수의 총탄을 안기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그후 총소리를 듣고 모여온 사람들에게 우리는 일제놈들과 싸우는 조선혁명군이라고 하시면서 망국노의 처지에서 신음하는 우리 민족을 구원하기 위하여 나라를 사랑하는 남녀청년들은 손에 무장을 들고 일떠서서 일제를 때려부시자고 열렬히 호소하시였다.

파발리의 총성, 그것은 정녕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께서 계시여 조국해방은 반드시 이룩된다는 투철한 혁명적신념과 의지를 지니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 김형권동지의 드센 배짱의 발현이였다.

김형권동지께서 인솔하시는 무장소조일행은 그후 리원과 북청일대에서 과감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리였다.

무장소조의 대담무쌍한 활동에 일제놈들은 대경실색하여 허둥지둥거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무장투쟁로선을 심장깊이 새기시고 총대로 원쑤놈들에게 불벼락을 안기시며 국내를 들썩하게 만드김형권동지께서 변절자의 밀고로 놈들에게 체포되시여 감옥에서 벌리신 옥중투쟁은 또 얼마나 영웅적이였던가.

일제교형리들은 김형권동지에게 악착한 고문과 위협공갈을 들이대면서 그이를 굴복시켜보려고 갖은 발악을 다하였다.

그러나 적들은 그 어떤 수단으로도 김형권동지의 혁명적지조를 꺾을수 없었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체포된 후 얼마동안 홍원경찰서에서 옥살이를 하시다가 그후 함흥감옥에 이송되여 거기에서 또다시 중세기적인 고문을 받으시였다. 하지만 김형권동지께서는 혁명적신념을 변치 않으시고 옥중에서도 줄기찬 투쟁을 벌리시였다.

그이께서는 함흥지방법원의 법정에서 일제의 죄상을 추상같이 단죄하시며 무장한 강도들과는 무장으로 싸워야 한다고 소리높이 웨치시였다. 김형권동지와 전우들은 재판장에서 혁명가요를 우렁차게 불렀고 노래가 끝나면 혁명적인 구호를 목청껏 불러 놈들을 전률케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에서 《삼촌이 이처럼 법정에서 당당하게 처신할수 있었던 힘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것은 혁명에 대한 신념과 충실성이였다고 생각한다. 삼촌이 죽음보다 더 두려워한것이 있었다면 그것은 인간을 정의롭고 용감하게 만들며 이 세상에서 가장 존엄있는 존재로 되게 하는 신념에 대한 배신이였을것이다.》라고 쓰시였다.

혁명승리에 대한 견결한 신념, 이것은 김형권동지의 전생애에 관통되여있는 억년 드놀지 않는 혁명적신조였다.

혁명적신념이 확고한 사람에게는 그 어떤 절해고도에 있다 해도 혁명의 승리가 보이지만 신념이 없는 인간들, 신념이 박약한자들은 인간의 도덕의리마저 헌신짝처럼 집어던지고 혁명의 배신자로 굴러떨어지는 법이다.

함흥재판에서 쓴맛을 본 일제는 그후 서울에서 한명의 방청자도 없는 비밀재판을 벌리고 김형권동지를 10년이상의 장기수들만을 가두어두는 서울의 마포형무소로 이송하였다.

이 감옥에서도 김형권동지께서는 투쟁을 멈추지 않으시였다. 놈들이 중형을 받은 《정치범》들을 전향시키려고 책동할 때 김형권동지는 수많은 수감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사상전향을 반대하는 연설을 하여 군중을 격동시키시였고 수감자들에 대한 대우개선투쟁때에도 앞장에서 물불을 가리지 않고 놈들과 견결히 싸우시였다.

놈들이 전쟁준비를 다그치면서 탄알상자를 만드는 작업에 수인들을 내몰아 살인적인 로동을 강요할 때 김형권동지께서는 그를 반대하는 옥내공장수인들의 파업을 지도하시였다.

놈들은 김형권동지의 영향력을 어떻게 하든지 막아보려고 캄캄한 독감방에 가두어두는것만으로도 모자라 팔목과 발목에 고랑쇠를 채워 조금만 움직여도 그 고랑쇠가 살을 파고들게 하였고 식사도 하루에 아이들주먹만 한 콩밥덩어리 한개만 들이밀었다.

김형권동지께서 그처럼 엄혹한 처지에서도 투쟁을 계속하시였기에 놈들은 비명을 질렀으며 그럴수록 고문은 더욱 악랄해졌다.

김형권동지가 사경에 처했다는 소식을 듣고 형무소로 달려간 일가분들은 너무도 기가 막혀 자기 눈을 의심하였다.

놈들의 끈질긴 악형과 고문으로 김형권동지의 얼굴을 제대로 알아볼수가 없었던것이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일가분들에게 나는 뜻을 이루지 못하고 가지만 왜놈들은 꼭 망한다고 웃으며 말씀하시였다.

김형권동지께서는 최후의 순간까지 놈들과 싸우시며 수감자들에게 참된 혁명가의 고결한 모범을 보여주시였다.

그이께서는 생의 마지막시각에 《김일성 내 조카이다. 그는 지금 만주에서 큰 혁명부대를 이끌고 왜놈들을 족치고있다. 부대가 국내에 쳐들어 날은 멀지 않았다. 그들을 맞이하기 위해 무장으로 싸우라. 무장을 들고 싸워야 왜놈들을 쫓아내고 나라를 해방할수 있다.》고 절절히 말씀하시며 수감자들에게 혁명승리에 대한 신념을 굳게 심어주시였다.

참으로 김형권동지의 한생은 끝없는 헌신성과 희생성으로 령도자를 충정다해 받들어모신 참다운 혁명전사의 빛나는 한생이였으며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는 투쟁정신으로 혁명가의 신념과 지조를 끝까지 지키신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의 고결한 한생이였다.

이토록 한생을 누리에 붙는 불로 빛내이신 김형권동지께서는 주체25(1936)년 1월 12일 31살을 일기로 감옥에서 영웅적생애를 마치시였다.

그이의 한생은 너무도 짧았다.

하지만 생의 순간순간 위대한 수령을 모신 크나큰 긍지와 자부심을 간직하고 총대를 억세게 틀어잡고 싸울 때 반드시 승리한다는 진리를 실천적모범으로 보여주신것으로 하여 그이의 한생은 우리 조국력사와 더불어 길이 빛나고있다.

본사기자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관련물

누리에 붙는 불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