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7(2018)년 4월 17일
 

태양의 품에서 삶을 빛내인 미술가 정창모

 

《좋은 종자도 비옥한 토양에 뿌리를 내리고 태양의 열과 빛을 받아야 알찬 열매를 맺는다. 내가 미술가로서 성공했다면 특별히 재능이 있어서보다 공화국의 품에 안겨 우리 민족의 위대한분을 스승으로 모시였기때문이다.》

이것은 조선화화가의 한사람이였던 정창모가 생의 말년에 남긴 말이다.

남조선의 평범한 로동자가정에서 태여난 그가 명망높은 화가로 명성을 떨치며 인생의 값높은 삶을 누려올수 있은것은 그의 미술적재능을 꽃피워주고 내세워주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은혜로운 사랑과 은정이 있었기때문이다.

고향이 전라북도 전주인 정창모는 공화국의 품에 안겨서야 어린시절부터 품어온 꿈을 실현하고 자기의 미술적재능을 마음껏 꽃피웠다.

그는 사망하기 전까지 근 40년간 수많은 미술작품들을 창작하였으며 그 나날 김일성상계관인, 인민예술가, 예술학박사로 성장하였다.

정창모는 수령형상작품을 조선화로 훌륭히 형상해낸 이름난 미술가들중의 한사람이다.

196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수령형상작품은 유화로만 형상할수 있는것으로 인정되여왔으며 산수나 화조를 위주로 한 종래의 조선화화법으로는 엄두도 낼수 없는것으로 인식되여왔다.

벅찬 우리 시대, 자주시대를 향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을 형상하자면 종전의 고루한 형상방법을 대담하게 극복하고 새로운 조선화화법을 창조해내야 하였다.

그는 학창시절에 사색과 탐구의 고비를 넘으면서 연구한 조선화의 전통적인 화법인 몰골법을 기본으로 하고 산 인간의격과 내면세계, 현대적미감을 다 표현할수 있는 새로운 조선화화법을 창작실천에 구현할 결심으로 대담하게 창작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마침내 우리 시대 인간들의 미감에도 맞고 작품의 주제사상에도 부합되는 새로운 인물화법을 창조해냈으며 그 화법으로 수령님의 영상을 훌륭하게 형상하였다.

그의 처녀작인 졸업작품 조선화 《배머리에 오신 수령님》은 바로 이렇게 창작완성되였다.

졸업작품의 창작으로 미술창작의 첫 출발을 장식한 정창모는 1966년에 조선화 《북만의 봄》을 세상에 내놓아 또다시 미술계를 뒤흔들어놓았다.

늦어서 미술의 길에 들어선 그가 조선화의 명화가로 자라날수 있은것은 그 어떤 특출한 재능보다도 혈혈단신으로 공화국북반부에 들어온 자기를 따뜻이 품어 공부시켜 어엿한 미술가로 키워주신 수령님의 하해같은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이 누구보다도 강렬하였기때문이다. 절세위인에 대한 뜨거운 보답의 마음을 지니였기에 그는 첫 졸업작품으로 수령님의 영상을 모신 조선화를 창작해냈고 항일혁명투사들을 주제로 한 작품도 성공적으로 형상할수 있었다.

정창모의 미술적재능은 위대한 장군님의 세심한 지도와 손길아래 더 활짝 꽃펴났다.

위대한 장군님의 지도밑에 그는 조선화 《남반부인민들과 담화하시는 어버이수령 김일성동지》, 《농민들의 영농사업을 지도하시는 존경하는 김정숙동지》를 비롯한 백두산위인들의 불멸의 영상작품들과 함께 《금강산계곡》, 《백두산》, 《동해의 아침》, 《용광로가 보이는 바다가》 등 주옥같은 풍경화들을 련이어 창작하였다.

그가 조선화 《흰구름피는 창성땅》을 창작하였을 때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 작품을 보아주시면서 그림이 지나치게 연하며 중심에 있는 양몰이처녀가 말을 타고 채찍을 쥐고있는데 이것은 우리 식이 아니라고, 우리 인민의 감정에 맞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현실에 철저히 발을 붙이고 미술작품을 창작하여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스승의 가르치심을 받으며 정창모는 우리 혁명실천에 복무하는 미술이란 어떤것인가를 똑똑히 알게 되였고 《흰구름피는 창성땅》을 명작으로 훌륭히 창작완성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창모가 창작활동에서 거둔 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여 1976년에 그에게 어버이수령님의 존함이 모셔진 시계를 표창하도록 하여주시였으며 그 이듬해 2월에는 공훈예술가의 명예칭호도 안겨주시였다.

그 사랑, 그 믿음에 보답하고저 정창모는 창작활동을 줄기차게 벌려나갔다.

풍요한 대지에 뿌려진 씨앗은 태양의 빛발아래서 락락장송으로 자랐다.

그가 창작한 수많은 미술작품들은 국보적가치를 가지는 명작으로서 국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으며 이전 쏘련과 중국, 일본을 비롯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서 열린 국제미술전람회에서 절찬을 받았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정창모의 예술적재능과 미술작품창작에서 이룩한 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여 1989년 그에게 인민예술가칭호를 수여하도록 해주시였다.

이렇듯 절세위인의 손길아래 정창모는 조선화의 권위있는 대가로 자라나게 되였다.

공화국의 품에서 인생의 영광과 행복을 한껏 누려온 정창모에게 있어서 단 한가지 이루지 못한 원이 있었다면 그것은 조국이 통일되여 고향에 있는 형제들과 만나는것이였다.

그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통일된 조국이 간직되여있었다.

언제인가 흩어진 가족, 친척방문단 성원으로 남조선에 갔을 때 그는 가슴속에 차넘치는 통일열망을 담아 누이동생들에게 《통일조국 만세!》라는 글발을 써주었다고 한다.

통일을 그처럼 갈망하는 그였기에 외세에 의해 분렬된 조국을 두고 가슴아파하며 자기의 심정을 화폭들에 그대로 담군 하였다.

고마운 공화국의 품속에서 인생의 값높은 삶을 빛내였고 그 누구보다 통일을 갈망했던 화가 정창모.



그가 바라던 조국통일은 또 한분의 절세의 애국자이신 경애하는 원수님께서 계시여 반드시 이룩되게 될것이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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