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08(2019)년 1월 13일
 

우리 민족의 자랑 조선씨름​

 

최근 유네스코가 우리의 전통적인 민족경기인 씨름을 세계비물질문화유산으로 등록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씨름은 근면한 우리 인민의 로동과정에서 발생한 체육경기종목으로서 시대에 따라 그 내용과 형식이 발전해왔으며 그 이름도 여러가지로 불리워왔습니다.

씨름은 두 사람이 서로 샅바를 마주잡고 힘과 기교를 써서 상대방을 넘어뜨리는 우리 나라의 고유한 민족경기이다.

《씨름》이란 말은 우리 인민의 오랜 언어생활속에서 전하여오는 싱갱이질을 나타내는 《힐흠》에서 유래되였다.

이 《힐흠》이란 말이 점차 《실흠》, 《실음》, 《시름》으로 발음이 변하여 《씨름》으로 고착되였다.

조선씨름은 매우 오랜 전통을 가지고있다. 먼 옛날 원시인들은 생존을 위하여 달아나는 짐승을 잡거나 황무지개간을 위하여 나무를 찍고 그 뿌리를 뽑아내는 등 힘쓰는 일을 많이 하는 과정에 서로 힘을 겨루어보거나 둘러메치는 동작들을 익히게 되였다. 이러한 동작이 오랜 세월 반복되면서 일정한 규칙이 생기고 승부겨루기로 되면서 씨름이라는 경기가 생겨나게 되였다.

씨름은 고구려때에 여러가지 수법과 규칙에 기초한 우수한 민족체육으로 발전하였다.

고구려의 씨름무덤과 장천1호무덤의 벽화에는 고구려씨름의 경기장면이 생동하게 그려져있다. 벽화들에서 맨몸에 짧은 바지를 입은 두 씨름군은 서로가 상대방의 샅바를 단단히 틀어잡고 힘을 겨루고있다.



씨름무덤벽화에는 백발의 한 늙은이가 지팽이를 짚고 서서 경기과정을 주시하면서 심판을 서고있는 모습도 그려져있다. 이 그림을 통하여 당시에 벌써 씨름이 엄격한 경기규칙과 규정에 따라 질서있게 진행된 민족체육경기로서의 면모를 갖추었다는것을 알수 있다. 특히 주목되는것은 무덤벽화에 그려져있는 용을 쓰는 씨름군의 형상인데 여기서 씨름군이 상대방의 두다리짬사이에 다리를 끼워넣고 넘어뜨리기를 시도하고있는 수법은 오늘의 씨름에서 말하는 안걸이수법이다.

벽화의 씨름장면 하나만 놓고보아도 고구려시기에는 안걸이, 배지기, 둘러메치기, 어깨밀기 등 공격과 방어, 반공격의 기술수법들이 원만하게 개발도입되고있었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

씨름은 고려와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널리 보급되였는데 이 시기의 씨름군을 《용사》(고려시기), 《력사》(조선봉건왕조시기), 《힘장사》(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라고 불렀다. 씨름은 군인들은 물론 각계층 인민들속에서도 생산활동의 여가와 민속명절들을 계기로 자주 진행되였다. 특히 평양에서는 한가위를 비롯한 명절날들에 모란봉의 영명사뜰과 외성남문밖에서 씨름경기가 대성황을 이루고 진행되군 하였다.

씨름에 대한 가장 흥미있는 자료는 18세기 화가 김홍도가 그린 조선화 《씨름》이다. 그림의 중심에는 상대방을 번쩍 들어 힘껏 메치려는 공격수의 씩씩한 모습과 이 위기에서 벗어나보려고 안깐힘을 쓰는 방어수의 모습이 실감있게 형상되여있다. 그리고 씨름판의 두리에는 많은 구경군들이 둘러앉아있는데 갓을 벗어놓고 점잖게 앉아 구경하는 사람, 몸을 뒤로 제끼고 너털웃음을 웃는 사람, 웅크리고앉아 긴장해서 씨름판을 주시하는 사람, 부채로 얼굴을 가리우고 숨을 죽여가며 넘겨다보는 사람 등 구경군들의 개성적인 모습들은 고조된 씨름판의 분위기와 당시 우리 인민들의 건전하고 락천적인 생활기풍을 실감있게 보여준다. 우리 인민들의 씩씩하고 용감한 기상이 반영된 씨름의 이러한 매력으로 하여 씨름경기는 온 나라 그 어디서나 성황리에 진행되였다.

씨름은 그 수법이 매우 다양한데 크게 손수, 다리수, 몸통수로 나눈다.

손수는 주로 손과 팔을 써서 상대편을 넘어뜨리는 수법으로 여기에는 무릎치기, 팔걸이, 다리당기기 등이 속한다.

다리수는 다리와 발을 리용하여 상대편을 넘어뜨리는 수법이다. 이 수법에는 안걸이, 빗장걸이, 호미걸이, 덧걸이, 무릎걸이, 안발치기 등이 있다. 몸통수는 주로 허리와 팔힘을 리용하여 상대를 넘어뜨리는 수법으로서 씨름에서 가장 많이 쓰인다. 씨름의 특기라고 하는 배지기도 여기에 속하며 이밖에도 우의 수들을 두가지이상 결합한 수법들도 있다.

조선씨름은 벽화와 기록자료들을 통하여 볼 때 동방씨름의 시초를 이루었다고 할수 있다. 중국에서는 조선씨름을 받아들여 고려기, 료교라고 하였으며 일본씨름도 삼국시기 고구려의 영향으로 시작된것이였다.

20세기초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우리 민족의 지혜와 슬기가 담겨져있는 씨름을 인민의 애국적감정과 단결력을 고취시킨다고 하면서 온갖 술책을 다하여 탄압하였다. 일제는 《무허가집회》라는 구실밑에 전통적인 씨름경기를 금지시키고 《관제씨름대회》라는것을 열고 일본씨름 《스모》를 하도록 강요하였다.

오늘 공화국에서 씨름은 조선로동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에 의하여 민족의 슬기와 위용을 떨치는 민족체육으로 더욱 개화발전하고있다.


본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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