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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관찰사 김극검이 재령고을 객관에서 김막동이네에 의해 곤경을 치른 소식이 성종의 귀에까지 가닿은것은 그로부터 두달후인 기유년(1489년) 11월 을해일(21일)이였다.

김극검은 자기의 죄상이 드러날가봐 속으로 바재이며 말을 안하고 벙어리 랭가슴앓듯 혼자서 꿍져두고 끙끙거렸다.

그러나 발없는 말이 천리가고 자루속의 송곳을 감출수 없듯이 그것을 제아무리 꿍져놓았다 하더라도 송곳에 찔린 쌀자루에서 솔곰솔곰 쌀이 새여나듯 흘러나와 한달전에 황해도체찰사로 다시 파견된 리철견의 귀에까지 흘러들어갔던것이다.

4월 스무닷새날 임금의 초청을 받고 경회루에서 가슴이 버그러지게 상까지 받아안고 돌아온 리철견의 마음은 개운치 않았다.

어쩐지 임금이 자기를 쳐다보는 눈길과 얼굴에 비낀 미소가 께름했던것이다.

그래서 이리저리 가슴을 태우면서 몇달을 지내던 리철견은 가을에 들어서자 더는 견디여내지 못하고 자기를 다시 황해도체찰사로 파견해줄것을 임금에게 상주하였다.

리철견은 상주서에서 자기가 황해도체찰사로 다시 파견해달라는 리유를 두가지로 말했다.

하나는 재령전탄수공사가 끝난 이래 처음으로 농사를 지었으니 올해형편을 알아보고 대책을 세우는것이요, 다음으로는 황해도의 해묵은 도적 김막동무리를 소탕하는것이라고 하였다.

리철견의 충정어린 상주문을 읽어본 임금은 그자리에서 쾌히 승낙을 하였다. 하여 리철견은 일전에 데리고다니던 홍자하를 종사관으로 데리고 황해도땅에 다시 나왔던것이다.

그가 황해도체찰사로 다시 부임되여나가서 처음으로 들은것이 관찰사 김극검이 재령관가의 객관에서 김막동이네한테 곤경을 당했다는 소식이였다.

원래 리철견은 능구렝이같은 김극검을 그닥 좋아하지 않는터라 그사이 김극검의 죄행을 낱낱이 까밝혀보고 홍자하를 시켜 임금에게 상주하게 하였다.

《성종강정대왕실록》 제234권 성종20년(1489년)기유년 11월 을해일(21일)조에는 다음과 같은 기록이 있다.

《…체찰사 리철견이 종사관 홍자하를 보내여 보고하였다.

〈황해도의 도적 김일동(막동) 등이 6~7명의 패거리를 데리고 마을을 돌아다니며 략탈하다가 전달에 재령에 머문것을 관찰사 김극검 등이 군사를 데리고 포위했더니 일동 등이 도망쳤습니다. 그래서 그의 어미와 처를 잡아다가 해주에 가두고 도적질한 물건은 재령에 두었습니다.

어느날 극검이 재령에서 묵는데 일동 등이 밤에 갑옷을 입고 활을 버티여들고 동헌담장밖에 달려들어서는 큰소리로 관찰사를 부르면서 동헌의 창문에다 활을 쏘았습니다.

한편 역리들을 불러 너희들이 관찰사에게 들어가서 우리 물건을 다 돌려달라고 하라, 그렇지 않으면 모조리 쳐죽이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동헌으로 쳐들어오려고 하는것을 극검과 군관 1명이 활을 쏘아 맞히자 적이 조금 물러갔습니다.

극검이 부엌구석에 숨고 향리들이 물건을 도적에게 다 돌려주면서 무릎을 꿇고 물러가달라고 빌어서야 적이 물러갔습니다. …〉》

근정전에서 신하들과 함께 홍자하가 가지고 온 체찰사 리철견의 상주문을 들은 성종은 한동안 말없이 앉아있었다.

숱진 그의 눈섭이 꿈틀거렸다.

임금의 얼굴을 쳐다보고 선 신하들은 속이 한줌만 해져서 서성거렸다.

평시에도 말이 적고 자기의 내심을 잘 나타내지 않아 임금을 대하는 신하들은 몹시 꺼려하였다.

다만 임금이 성이 났을 때는 숱진 눈섭이 꿈틀거리고 기뻐할 때는 한쪽입을 실룩거리는 버릇이 있다는것을 알고 그에 비위를 맞추군 하였다.

그런데 지금 임금이 룡상에 앉아 홍자하의 보고를 듣고 눈섭을 꿈틀거리고있으니 이제 무슨 변고가 날지 가늠하기가 힘들었다.

방안에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자기앞에 모여선 신하들을 말없이 둘러보던 성종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짐이 선왕들의 뜻을 이어 이 나라에 태평세월이 흐르도록 하려고 전념하건만 경들은 어찌하여 짐의 이 마음을 몰라주는가. 실로 유감스럽다. 황해도에서 김막동패거리가 창궐하여 량반들을 야료하고 백성들을 못살게 군다는 말을 짐이 들은지도 여러해째 되는데 아직까지도 다스리지 못하고 그냥 내버려둔다니 참으로 한심하다. 도대체 도관찰사요, 군수요 하는것들은 국록을 타먹으면서 뭘하고있는 놈들이냐? 생각할수록 괘씸하도다.》

낮으면서도 우렁우렁한 성종의 목소리는 근정전안을 꽉 채웠다.

신하들은 모두 머리를 숙인채 숨을 죽이고있었다.

근간에 들어와 임금이 이렇게 성을 내는것을 처음 보았기때문이다.

숱진 눈섭을 꿈틀거리던 성종은 곁에 서있는 내시를 바라보며 물었다.

《전 황해도관찰사가 누구냐?》

두손을 맞잡고 서있던 내시가 성종의 갑작스러운 물음에 대답을 못하고 눈만 껌뻑거렸다.

앞에 서있던 늙은 리조판서가 대신 답변을 했다.

《지금 중추부동지로 있는 리계동임을 아뢰오.》

《리계동?》

《그렇소이다. 상감마마.》

성종은 채수염을 길게 드리운 리조판서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리계동을 금제사(도적잡는 관리)로 임명하여 즉시 황해도에 보내야 하겠다. 그를 당장 불러라.》

《예-잇.》 하더니 리계동을 찾으러 내시가 달려나갔다.

리계동을 데리러 내시를 보내고난 성종은 앞에 쭈그리고 서있는 종사관 홍자하를 쳐다보았다.

《경은 종사관으로 황해도에 나가있으니 그곳 형편을 잘 알테니 그래 어찌했으면 좋겠느냐?》

성종의 좀 누그러진 목소리를 들은 홍자하는 두손을 마주잡고 말했다.

《김일동(김막동)이 도적질을 하는지 지금 7년째이옵니다. 본도의 사람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지 않는것이 아니라 폭행이 두려워 자기에게 해가 미칠가봐 감히 고발하지 못하고있소이다. 이제라도 상을 후하게 주어 고발하게 하는것이 어떠하리오이까?》

그 말을 들은 성종은 머리를 끄덕거렸다.

《그렇단 말이지. 짐이 몇달전에 리철견을 만났을 때 그놈의 목에 무명 백필을 걸어놓으라고 했댔는데 그래 그것이 아직 시행되지 않았느냐?》

《예, 시행하기는 하지만 아직은…》

《좋다. 그럼 그 도적우두머리의 목에 무명 150필을 걸어서라도 잡아들이도록 해라.》

《알겠소이다.》

그때 내시가 들어와 성종에게 아뢰였다.

《중추부동지 리계동을 모셔왔소이다.》

《어서 이리 오라고 해라.》

《예-잇, 중추부동지 리계동 들어오랍신다. -》

급창들의 쟁쟁한 목소리가 찌렁찌렁 울리였다.

그러자 문무관료들이 량옆에 늘어선 한복판으로 관복차림을 한 리계동이 빠른 걸음으로 임금의 앞에 와서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상감마마의 어명을 받고 소신 리계동 대령하였소이다.》 성종은 리계동을 이윽히 내려다보았다.

《경은 짐의 말을 들으라. 경을 황해도 도적을 잡는 금제사로 임명하려 하는데 다른 생각이 없는고.》

《황송하오이다.》

《그럼 좋다. 짐이 이제 경에게 만호인 박산을 종사관으로 붙여주고 군관 10명도 붙여줄테니 그들을 데리고 나가서 황해도의 군사를 총출동시켜 도적을 잡도록 하라.》

《알겠소이다.》

이윽고 성종은 내시들이 들고온 전통을 받아 리계동의 앞으로 내밀었다.

시누런 금색이 도는 전통안에는 스무대의 화살이 꽂혀있었다.

《경은 이것을 받으라.》

리계동은 황급히 허리를 굽히고 성종이 앉아있는 단우에 올라와 전통을 받았다.

원래 임금이 신하에게 내리는 화살은 주로 외래침략자들이 나라에 쳐들어올 때 나라를 지키러 나가는 령을 받은 신하들에게 신임의 표시로 주는것이 일반적인 상례였다.

임금이 그런 신임의 증표인 화살을 특별히 하사하는것을 봐서 이번 일을 보통 중대한 일로 여기지 않는다는것을 알수 있었다.

이것을 잘 알고있는 리계동은 전통을 꼭 껴안은채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하늘같은 성은을 받들어 이 한몸을 바치겠소이다.》

성종은 흐뭇하게 리계동을 바라보았다.

《경은 짐의 말을 명심하라. 이 화살로는 적을 쏘아 잡을만 하다. 그 도적놈을 사로잡으면 가장 좋고 그렇지 못하면 죽여도 좋다.》

《뼈에 새겨안겠소이다.》 하며 리계동은 머리를 조아렸다.

성종은 다시 종사관 홍자하에게 말했다.

《경은 체찰사 리철견에게 짐의 뜻을 전하라. 리철견은 평안도에 가서 백성들을 이주시키는 일을 끝낼것이다. 도적들이 만일 평안도로 도망쳐 들어가면 그 도의 관찰사, 병마절도사와 함께 의논하여 사로잡을것이다.》

《알겠소이다.》 하고 홍자하가 답변을 하였다.

성종은 곁에 서있는 신하에게 말했다.

《경기관찰사 박숭겸, 강원도관찰사 조익정, 영안도(함경도)관찰사 허종, 평안도관찰사 리극돈에게 도적을 잡으러 가는 관리 리계동이 혹시 도망치는 도적을 추격하여 경내에 들어가면 경들이 협의하여 사로잡도록 하라는 글을 내려보내라.》

《알겠소이다.》

성종은 신하들을 둘러보면서 물었다.

《그래 황해도 도적을 잡는데 더 미흡한 점들이 없느냐?》

앞줄에 서있던 대사간 리평이 조심스레 말했다.

《황해도관찰사 김극검은 도적에게 몰리워 으슥한 곳에 숨어있다가 겨우 목숨을 건졌고 지어 그놈들에게서 회수했던 물건을 전부 다시 돌려주었소이다. 이 도적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점점 기승을 부리며 돌아치고 무리를 지어 다니고있소이다. 만일 군사들을 합치고 관하 고을들에 주의를 주어 기세를 떨치면서 도적을 잡아 기어이 처단했다면 이렇게까지 되겠소이까. 김극검은 한개 도를 다스릴수 없사오니 벼슬을 파면시켜 임금의 지시를 저버린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생각하오이다.》

성종은 그의 말에 수긍했다.

《경의 말이 옳다. 도적들이 량민들을 살해하는데도 온 도가 팔짱을 끼고앉아 감히 누구도 어쩌지 못하고있다. 극검은 백성들을 고통스럽게 할뿐 이런데까지 생각을 돌리지 않았던 결과로 좀도적에게 욕을 보았다. 교체시키는것이 좋겠다.》

성종의 말이 떨어지자 모여섰던 신하들이 서로 수군거렸다.

대사간 리평은 성종에게 다시 제기했다.

《상감마마, 황해도 도적들이 관찰사의 처소를 들이쳐 한참이나 에워싸고있었고 관찰사가 몸을 피할 곳이 없어서 부엌아궁에 숨지 않으면 안되게 된것은 유사이래 처음 보는 비상사태이오이다. 그런데 재령군수 리지는 마땅히 아전들과 백성들을 모으고 군사를 앞세우고 그 무리를 추격해야 하겠으나 도리여 겁을 잔뜩 먹고 들어박혀 벌벌 떨었다고 하오이다. 리지를 파직시켜 잡아들여 나라가 치욕을 당하게 한 죄를 다스리게 하여야 하오이다.》

리평의 말을 들은 신하들은 저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어쩌면 군수라는게 그렇게 할수 있나.》

《원래 리지는 비겁쟁이야.》

《그놈이 꼴좋게 됐어.》

성종은 술렁거리는 신하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조용들 해라. 대사간의 말이 옳다. 재령군수 리지도 당장 파면시켜 압송해다 죄를 다스리게 하라.》

성종의 엄한 령이 내리자 장내는 물뿌린듯 조용했다.

성종은 룡상에서 몸을 일으키고 서서 앞에 서있는 리계동에게 말했다.

《경이 내려갈 때 포도청의 포도부장과 포졸들을 함께 데리고가서 관찰사 김극검, 재령군수 리지를 한양으로 압송하라. 그리구 도적을 잡는 일에서 나서는 모든 일거리들은 경이 직접 처리하라. 짐은 경을 믿는다.》

리계동은 허리를 굽신거렸다.

《알겠소이다. 소신이 그놈을 꼭 잡아오겠소이다.》

성종은 리계동을 미덥게 바라보았다.

《그럼 오늘모임은 이만하자.》

성종은 곤룡포자락을 추어올리고 천천히 내전쪽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그때 내시 한명이 성종에게 다가와서 무엇이라고 여쭈었다.

그러자 성종은 약간 반색을 하였다.

《그래, 어서 이리 오라고 해라.》

내시를 도로 밖으로 내보낸 성종은 그때까지도 머리를 굽히고 서서 임금이 나가기를 기다리고있는 신하들과 리계동을 굽어보면서 말했다.

《가만, 황해도금제사는 김막동이란 놈의 얼굴을 아는가.》

그 물음에 리계동은 애매한 태도를 보였다.

《저… 이름은 들었사오나 얼굴은 잘 모르오이다, 상감마마.》

《그럴테지. 그놈이 보통 날랜 놈이 아니라는데 얼굴을 알수가 없지. 내 그놈의 얼굴을 아는 관리를 한명 알선해줄터이니 함께 데리고 가라.》

《고맙소이다. 상감마마.》

그때 내시가 관복차림을 한 관리 한명을 데리고 들어왔다.

《상감마마, 데려왔소이다.》

성종은 내시가 데려온 관리를 쳐다보았다.

관리는 허리를 굽혀 성종에게 인사를 하였다.

《상감마마, 내금위 금군령 리현손 문안드리오이다.》

《오냐, 경은 어떻게 황해도 도적괴수 김막동을 아는가?》

내금위 리현손은 허리를 굽석거렸다.

《예, 소신이 수안 쇠부리터에서 아전노릇을 할 때 그놈의 얼굴을 직접 보았소이다. 그리구 신의 아들이 수안방아역 역리노릇을 했는데 그놈한테 그만 목숨을 잃었소이다.》

《그래? 그러니 그놈한테 아들을 잃었단 말인가.》

《그렇소이다.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하고는 리현손은 관복자락으로 눈굽을 꾹꾹 찔렀다.

성종은 리현손의 잔등을 가볍게 두드렸다.

《그런 천하에 못된놈이 창궐하게 놔두다니… 경은 이제부터 이 금제사 리계동과 함께 그 못된놈을 잡는데 적극 협력하라. 그래서 아들의 원쑤를 갚아야 할게 아닌가.》

《명심하겠소이다. 상감마마.》

《그래서 황해도 도적괴수를 잡겠다고 이렇게 제발로 찾아왔단 말이지. 참으로 나라를 위한 그 마음 갸륵하다. 경들은 모두 이 내금위 금군령 리현손처럼 나라를 위한 일에 힘껏 나서야 하겠다.》

성종의 말 한마디에 이름도 없던 리현손이 일약 나라의 공신처럼 떠받들리게 되였다.

리현손은 방아역 역리인 리악의 애비이다. 원래 아첨과 처세술에 능한 리현손은 한양으로 올라올 때 내금위의 서리라는 심부름군으로 왔댔는데 그사이 종8품벼슬인 금군령의 자리에까지 게바라올라갔다.

리현손은 머리를 조아리며 목메여 말하였다.

《상감마마, 황공무지로소이다.》

성종은 리계동과 리현손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짐은 경들을 믿는다. 나라를 위해 큰 공을 세우길 바란다.》

《알겠소이다.》

《명심하겠소이다.》

허리를 연신 굽석거리는 두 신하들을 바라보고난 성종은 내시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였다.

모여섰던 신하들은 성종이 문밖으로 사라질 때까지 허리를 굽힌채 서있었다.

기유년(1489년) 11월 무인일(24일) 성종은 가선대부 리세좌를 김극검대신 황해도관찰사로 임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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