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6

 

오백룡이 이끄는 소부대는 그날 이른새벽 하마툰지구를 떠나 험한 산길을 헤치며 걸음을 다그쳐 해질녘에 상촌집단부락이 멀리에 바라보이는 산등성이에 이르렀다.

오백룡은 땀으로 미역을 감으며 강행군한 대원들을 수풀속에서 쉬도록 하고 리철금의 뒤를 따라 릉선을 내려가다가 세월의 비바람에 고삭은 산전막옆에서 림수산과 한명찬을 만났다.

《오느라고 수고했소!》

참모장은 이렇게 담담하게 인사말만 할뿐 다른 소리는 없이 이제 행군을 더 계속하여 15리쯤 올라가서 매바위밑 큰길가의 수풀속에 대원들을 매복시키라고 지시하였다.

《10시 정각이면 상촌지하조직에서 식량과 지원물자들을 싣고 올라올거요. 거기서 넘겨받아 운반해가야 하겠소.》

오백룡은 가슴이 한껏 부풀어올랐다.

《옛, 알겠습니다!》

다시 행군이 시작되였다.

참모장과 오백룡은 행군종대의 뒤에서 따라갔다. 성미가 드세고 괄괄하면서도 어린 아이처럼 호기심이 많은 오백룡은 그사이에 여기, 상촌에서 있은 일들을 낱낱이 알고싶어 그 조국광복회 특수회원이란 어떤 사람이며 지하조직은 어떻게 그리 깊이 숨어있었는가, 리철금의 외삼촌이라는 사람은 직접 만났는가 등등 꼬치꼬치 캐여물었으나 참모장은 건숭으로 한두마디 대답을 하거나 그저 흠, 흠… 하고 속으로 웃을뿐이였다. 그럴수록 오백룡중대장한테는 그가 듣던 소리보다 더 웅심깊고 말이 적고 입이 무거운 사람으로 돋보이는것이였다. 오백룡은 이전부터 그의 비상한 조직력에 대하여 들은바가 있었지만 같이 일해보니 과연 그렇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중대장동무. 이번에 우리가 정 하는수없어 상촌조직선을 리용하는데 앞으로는 절대 다치지 말아야 하오. 깊이 묻어두어야 하오.》

《예… 알았습니다.》

《음… 앞으로 더 요긴하게 써야 하니까…》

그리고 참모장은 유람이라도 하며 산천경개를 탄상하는 기분인지 매바위에 대한 전설까지 이야기하였다.

《매바위란 깎아지른듯 한 선바위우에 묘하게 얹혀있는 바위돌이 창공을 나는 매처럼 보여서 생긴 이름이요. 내 이 지방에 와서 공작할 때 들은 소린데… 옛날옛적에 금나라 어느 후왕비가 제 새끼를 룡상에 앉히려고 대역죄인하구 매일밤 그 재미를 보면서 공모한것이 드러나 참을 당했다오… 하늘의 옥황상제가 대노하여 천당으로 기여오른 년의 령혼을 발로 걷어찼는데 그게 글쎄 하늘에서 날아떨어지며 돌로 굳어져 저 선바위에 내려앉았다는거요. 허허… 황당한 소리지…》

그 매바위밑으로 대마록구쪽으로 통하는 자동차길이 지나갔다.

그날밤 오백룡은 참모장이 지시하는대로 그 길바닥이 발밑에 굽어보이는 산기슭에 대원들을 매복시켰다.

그리고 참모장과 오백룡은 대원들이 매복한데로부터 10여메터 뒤에 떨어진 후미진곳의 수풀속에 자리를 잡았다. 한시도 참모장곁을 떠나지 않는 한명찬이 그들곁에 엎드렸다.

약속된 시간이 다가오자 참모장과 한명찬은 물론이고 오백룡을 비롯한 모든 대원들이 아래쪽으로부터 달구지들이 굴러오는 소리가 들려오지 않는가 귀를 강구었다.

참모장과 오백룡은 번갈아 야광시계를 들여다보았다.

10시가 되여도 달구지행렬이 나타나지 않았다.

10시반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다.

11시가 지나도…

참모장은 속이 달아올라 수풀속에서 일어나서 두손을 허리에 올리고 아래쪽만 지켜보았다. 한명찬은 안절부절 못하고 길을 내려다보는가 하면 참모장과 오백룡을 번갈아 돌아보았다.

오백룡은 지금 참모장이 얼마나 속이 타들며 립장이 딱할것인가 하는 생각에 그쪽에는 얼굴도 돌리지 못하고 길아래쪽만 지켜보았다.

한데 그사이에 박주호가 두번이나 한명찬소대장한테로 뛰여와 수군거렸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약속을 제대로 했는가, 상촌지하조직이 움직이다가 발각이 된게 아닌가, 밀고자가 생겨 적들이 선손을 쓴게 아닌가… 오백룡이한테도 그 소리들이 방정맞게 들렸다. 눈결에 참모장이 그들쪽을 돌아보는것이 언뜻 보였다. 차거운 눈빛이였다.

오백룡은 박주호쪽에 대고 제 자리로 돌아가라고 손을 홱 저었다. 박주호는 허리를 구부정하고 자기 소대쪽으로 뛰여내려갔다.

참모장이 한명찬에게로 다가갔다.

《나를 따라오오! 대원 다섯명만 데리고…》

《예?…》

《상촌에 내려가봐야겠소. 무슨 일이 생겼소!》

《계십시오. 제가 대원들을 데리구…》

《내가 가야 되오!》

오백룡이 그들한테로 몸을 날렸다.

《챠 이거 왜 이럽니까… 거기서 숱한 식량을 빼내온다는게 헐하겠소?》

바로 그때였다.

달구지행렬이 나타나야 할 저 아래쪽 어둠속으로부터 자동차소리들이 들려왔다.

(《토벌대》다!)

오백룡은 수풀속의 대원들을 둘러보며 나직이 소리쳤다.

《적이다… 사격준비!》

질풍같이 달려오는 자동차들의 전조등불빛이 산기슭을 훑었다.

림수산은 그 불빛이 눈을 아프게 찔러 한팔을 꺾어들어 얼굴을 가리웠다.

달려오던 자동차들이 급정거하는지 제동기들의 아츠러운 마찰음… 그는 수풀속에 몸을 던지며 싸창의 안전장치를 풀었다.

확 풍겨오는 화기와 휘발유냄새… 뭉게치는 흙먼지구름속에 서있는 석대의 화물자동차 운전칸과 적재함에서 여러 그림자들이 뛰여내려 앞차쪽으로 몰려가며 왁작 떠들었다. 중국말이였다.

앞차 운전수가 기관실뚜껑을 열어보더니 비명을 올렸다.

《아- 야-》

한 작자가 저쪽에 대고 오줌을 갈기며 태평스럽게 지껄여댔다.

《이 아근에서는 예로부터 끔찍스러운 일만 생겼대. 저기 저 매처럼 생긴 매바위가 화근이라나. 저 흉물을 폭파하든지 어떻게 해야지, 퉤-》

잡관목덤불속에 숨을 죽이고 엎드려 길쪽을 노려보는 오백룡의 눈에 불이 황황 일었다.

적재함들에는 사람들만 타고있는것이 아니였다. 무슨 궤짝이며 허연 밀가루포대같은것도 어렴풋이 보였다.

(이게 무슨 횡재야!…)

밀영으로 오고있는 지치고 굶주린 대오가 눈앞에 번개쳤다.

뒤차들의 전조등불빛이 대낮처럼 밝히는 길로 《위만경찰》 두놈이 달려와 앞차 운전수한테 욕설을 퍼붓고 주먹을 안겼다.

벼락치는듯한 총성… 오백룡은 쓰러져 딩구는 《위만경찰》을 눈결에 보고 위협적인 함성을 지르며 몸을 날려 아래로 뛰여내려갔다. 뒤따라 사태처럼 밀려내려가는 대원들…

오백룡의 앞으로 시꺼먼 그림자가 휙 날아지나갔다. 살아남은 《위만경찰》이 분명했다. 그는 뒤쪽 어둠속으로 내빼는 놈을 뒤쫓아가다가 쏘고 또 쏘았다. 놈은 짐승멱따는 소리를 지르며 몸을 비틀었다.

적재함의 사람들이 기겁하여 아우성치며 길바닥으로 뛰여내려 손들을 번쩍번쩍 쳐드는가 하면 대원들앞으로 우르르 밀려들어 울음섞인 목소리로 자기들은 거지나 다름없이 살다가 대마구채벌장으로 끌려가는 중국로동자들이라고 하며 살려달라고 입을 모아 부르짖었다.

앞차의 적재함우에서 누구인가 희누런 쌀포대같은것을 머리우로 번쩍 쳐들며 목청껏 부르짖었다.

《야- 쌀이다- 옥- 백- 미다-》 박주호의 목소리였다. 그것은 환성이라기보다 목메인 웨침소리였다.

적재함우에는 쌀 스무포대와 물고기궤짝 다섯짝이 쌓여있었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것은 대마구목재소의 산림경찰대로 실어가는것이였다.

림수산참모장이 중국채벌로동자들을 향하여 싸창을 높이 쳐들어 흔들며 류창한 중국말로 웨치였다.

《형제들- 겁을 먹지 마시오- 우리는 당신들과 같은- 무산자들의 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조선인민혁명군입니다-》

환호성이 터졌다.

오백룡이 환호하는 중국로동자들을 바라보며 벙글거리는데 한 대원이 숨이 턱에 닿아 헐떡거리며 달려와 보고했다.

《중대장동지, 저기 이상한 종자들이 숨어있습니다.》

오백룡은 의아해서 소리쳤다.

《뭐?-》

《코가 크구 키가 구척같은게 양놈들이 아닌지 모르겠수다.》

《야, 뭐라구? 똑똑히 말해!》

《양놈들이 아닌지…》

《서양이 여기서 어딘데 그 종자들이 여기로 왔겠나…》

오백룡은 대원을 따라 마지막 차에로 달려가보았다.

적재함뒤에 숨을 죽이고 웅크그리고 앉아있던 세 그림자가 화닥 놀라며 일어섰다.

전지불을 비쳐보니 누런 머리칼에 눈알이 새파란 작자들이였다.

《헝, 이것 봐라…》

오백룡은 저 내륙의 치치하르나 할빈 등지에 백계로씨야 망명자들이 많이 살고있다는 소리를 들은적 있어 이자들이 그 후예들일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그는 경계심도 컸지만 피부색이 하얀 이민족에 대한 어린애같은 호기심이 발작하였다.

《야, 로쓰께야 로쓰께야, 이리 나와, 나왓! 우린 빨찌산이다. 빨찌산… 빨찌산을 몰라?》

백계로씨야청년들은 공포와 적의가 번뜩이는 눈으로 그를 노려볼뿐 길가로 나서지 못하였다.

오백룡은 일부러 눈을 부릅뜨고 발을 탕 구르며 중국말로 너희들은 도대체 누구들인데 어디로 가는 놈들이냐고 소리쳤다.

세 작자중에 그중 담대해보이는 녀석이 서툰 중국말로 할빈에 사는 로씨야거류민인데 대마구목재소에 돈벌이하러 가는 운전수들이라고 대답하였다.

《아하- 백파로구나, 백파… 백파지?》

키가 제일 꺽두룩하고 강마른 녀석이 부들부들 떨며 울부짖었다.

《아니요! 우리는 백파가 아니요- 우리 할아버지들은 백파- 우리는 여기 만주에서 나서자랐소. 백파가 아니요!》

그때 상촌에서 올라오는 달구지행렬이 도착하여 길바닥에서 떠들썩한 상봉이 벌어졌다.

리철금이 달려나와 담차게 생긴 외삼촌을 부둥켜안고 돌아갔다.

《외삼촌!… 외삼촌!…》

《철금아! 핫하하…》

《외삼촌, 나는 못오는줄 알구 속이 다 탔소!》

《야, 기장쌀 다섯가마니를 더 모아가지구 오느라구 좀 늦었다-》

길바닥에서는 유격대원들과 상촌인민들이 서로 손들을 붙잡고 얼싸안고 돌아갔다. 오가는 뜨거운 인사말들, 웃음소리, 웨침소리… 여기로 림수산참모장이 활개를 크게 저으며 다가오다가 주먹을 쳐들어 흔들었다.

《상촌의 동지들, 수고했습니다!》

그날밤 소부대는 중국인 채벌로동자들과 로씨야운전수들한테 짐을 지워가지고 산릉선을 따라 화라즈밀영쪽으로 향하였다.

유격대원들도 짐을 지였다.

림수산참모장은 식량공작이 뜻밖에 잘되였다고 대만족이였다.

그는 흐뭇한 미소를 머금고 오백룡중대장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군량이 저만큼 마련됐으니 이젠 마음이 좀 놓이오. 정말 수고했소. 중대장동무 배심과 그 과단성이 은을 냈거든…》

오백룡은 식량공작과정에 그한테 전혀 의견이 없은것은 아니였지만 성과를 크게 거두고나니 더욱 대범해지고 인심이 후해졌다.

《배심이라구요? 허- 참, 참모장동지가 곁에 있으니 그렇게 됐지오다…》

오백룡은 결코 용렬한 사나이가 아니였다.

쌀가마니들이며 궤짝들을 등에 진 행군서렬은 힘든줄도 모르고 수림속을 누벼나갔다.

어딘가 가까이에서 부엉이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백계로씨야인들은 등짐이 무거워 가까스로 따라가며 자주 주춤거리였다. 그때마다 박주호는 세놈한테 총구를 돌려대거나 빨리 걸으라고 발을 굴렀다. 오백룡중대장이 그한테 세놈을 맡겼던것이다.

림수산과 오백룡은 그들 뒤를 바투 따라가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중대장동무, 이제 이 작자들, … 이 흰둥이들을 어떻게 한다?》

《…》

《백계로씨야인치고 왜놈들한테 붙어먹지 않는자가 별로 없소. 왜놈들의 특수기관, 헌병대 하수인노릇도 하고… 할빈에서는 그놈들의 밀고로 지하당조직 여러개가 들장이 났소. 남자들은 밀정노릇을 하고 계집들은 매음을 하고 … 더러운것들이요. 우리가 놓아주면 이제 곧장 〈위만경찰〉이나 〈토벌대〉에 찾아갈게요. 래일이나 모래면 〈토벌대〉가 군견을 앞세우고 우리 밀영으로 달려오게 되오. 그저 없애치우면 편안한데… 이것들을 어쩔가?… 응?…》

《…》 오백룡은 가슴이 섬찟해져서 잠자코 있었다. 그 족속들의 동향때문이 아니라 조선말을 모른다고 당자들이 듣는데서 그런 소리를 흔연하게 하는 사람이 놀라와서였다.

《놓아주면 어떤 후환이 생길지 모르오. 과단성을 내보지 않겠소?》

《이제 이렇게 할것이다… 이런 짐작만 가지구 어떻게 사람을 죽입니까. 잘 교양해보지 않겠습니까?》

《언제? 그렇게 할 경황도 없고… 이 식량들을 고스란히 보관하자면… 없애치워야 하겠소.》

오백룡은 가슴속에서 뜨거운것이 슬그머니 치밀어오르고 귀안에서 잉- 하는 소리가 울렸다.

새벽녘 식량을 중간지점까지 운반해놓은 다음 백계로씨야인 세명만 남겨놓고 중국인 채벌로동자들은 다 돌려보냈다.

강대나무밑에 앉아있는 백계로씨야인들은 자기들만 남겨놓자 지레 겁을 먹고 부들부들 떠는가 하면 적의가 번뜩이는 눈으로 곁에 서있는 박주호며 오가는 대원들을 흘끔흘끔 돌아보았다.

그들로부터 저만치 떨어진 바위곁에서 참모장과 오백룡이 마주서서 수군수군 의논하는데 한놈이 후닥닥 뛰여일어나 아래쪽으로 내리뛰다가 무엇엔가 걸채여 딩굴었다. 서라고 소리소리 지르며 쫓아내려간 주호가 놈을 덜미를 거머쥐고 강대나무쪽으로 끌고왔다. 키가 꺽두룩하고 강마른 작자였다. 그놈은 강대나무곁에까지 끌려와서 단말마적으로 몸부림치며 박주호를 뿌리치고 참모장과 오백룡의 앞으로 뛰여왔다.

그놈은 제정신이 아닌듯 가슴앞을 와락 열어제끼고 미친듯이 소리쳤다.

《쓰뜨레랴- 이! 쓰뜨레랴- 이!》 (쏘라! 쏘라!)

싸창을 꼬나들었던 참모장도 그 갑작스러운 발광에 아연해진듯 방아쇠를 당기지 못하는데 그 작자는 앞으로 푹 꼬꾸라지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강대나무밑에서 다른자가 이쪽으로 뛰여오려는것을 주호가 덜미를 잡아 뒤로 끌었다.

오백룡이 주호에게 놓아주라고 손짓했다.

담대한데가 있어보이는 그 로씨야청년은 참모장앞으로 달려왔다.

그 작자는 총구밑에 꿇어앉아 머리를 조아리며 비통하게 부르짖었다. 류창하지 못한 중국말이였다.

《내 말 들으시오- 이 사람… 예고르 좋은 사람… 아버지 절반 좋은 사람, 절반 나쁜 사람…》

림수산은 그가 하는 서툰 중국말을 조선말로 옮겨가며 그 뜻을 해득하려고 이마살을 찌프리며 신경을 날카롭게 세웠다.

그가 하는 소리는 대체로 이러한 뜻이였다 …이 사람 예고르의 할아버지 공산당원, 아버지 공산당원, 붉은군대 군의인데 공민전쟁때 백위군에 포로, 원동에서 붉은 빨찌산을 많이 죽인 쎄묘노브장군지휘하에서 또 군의로 복무했다. 공민전쟁이 끝난 후 체까에서 잡아다가 쎄묘노브장군한테 붉은 빨찌산 비밀을 넘겨주지 않았는가 심문했다. 근거없어 내놓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증오, 배척… 살수 없어 할빈으로 망명했다. 말년까지 자기를 후회, 반성하며 고국이 몹시 그리워 술과 눈물로 날을 보냈다. 림종전에 세월이 흐르면 유골이라도 고향땅에 옮겨가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작년에 예고르, 이 사람은 아버지의 유골함을 안고 흑룡강을 몰래 건너갔다가 국경경비대한테 잡혔다. 그들을 아편밀매업자로 몰아 유골함을 열어보더니 덴겁스레 놀랐다. 솔직히 사연을 말하고 금반지 두개를 찔러주었다. 그 볼쉐비크장교는 금반지만 가지고 로씨야땅이 아무리 넓어도 반역자의 뼈다귀가 묻힐 자리는 없다, 가라… 하고 이 사람을 쫓아버렸다. 이 사람은 밀선을 타고 흑룡강을 도로 건너오다가 유골을 강물에 뿌려던졌다. 떠내려가다가 고국땅 기슭에 붙으라고…

강마른 청년, 예고르는 이마를 풀속에 박은채 꺽꺽 흐느껴 울었다.

그의 변호인은 악에 받쳐 방자하게 소리쳤다.

《그들과 당신들이 사상이 비슷하다는걸 안다. 안다! 신도 믿지 않아 자비심이란 꼬물만치도 없는 유물론자들이란걸 나는 안다. 자손들까지 복수하고 싶으면 쏘라. 죽이라! 우리모두를 다 죽이라!… 이 사람도 우리도 조선빨찌산에 죄지은게 없다. 먹고 살자고 일본놈들한테 고용돼서 일했다!》

그리고는 별안간 울음을 삼키면서 만약 살려준다면 은혜를 길이 잊지 않고 일본인들한테 절대 복무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였다.

림수산참모장이 랭소를 머금고 오백룡을 돌아보며 의미있게 눈짓했다.

《?…》

《저 아래쪽에 가서 갈겨버리오! 군량을 지켜내자면 별수 없소. 값싼 동정심은 버리오!… 혁명의 리익을 생각해서…》

《젠- 장!》

오백룡은 결김에 침을 탁 뱉아버리고는 돌아섰다. 그는 박주호와 함께 그자들을 끌고 아래쪽으로 내려갔다.

동녘하늘이 푸름푸름 밝아왔다.

참모장은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담배를 피우며 그들이 사라진쪽만 바라보았다. 총소리가 울리지 않았다. 무엇으로 머리를 깐것인지… 아니면 찔렀는지…

이윽고 오백룡이와 박주호가 헐썩거리며 올라왔다. 거멓게 질린 얼굴들이였다.

《수고했소.》하고 참모장이 돌아서는데 오백룡이 다가서며 반죽이 좋게 웃어보였다.

《살려보냈수다.》

《뭐요?!》

《사람의 량심으로 어떻게 그런짓을… 죄없는 애숭이들을 죽입니까?》

《여보, 이 사람들이, 정신이 있는가?! 저것들때문에 〈토벌〉을 맞으면 어떻게 하는가? 이건 달짝지근한 누구 량심문제가 아니라 주력부대를 굶겨죽이는가, 먹여살리는가 하는 문제란 말이요!》

《참모장동지!》하고 박주호가 끼여들었다.

《우리 혁명군 위신을 생각하니 쏠수 없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면서 은혜를 잊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듣기 싫소. 〈토벌〉을 당해 식량을 다 빼앗기면 동무가 책임지겠나?》

《그렇게 되면 절 쏘십시오!》

《주제넘게… 책임은 어떤 경우에나 내가 지는거요. 동무들문제는 앞으로 당지부에서 따로 보도록 하겠소.》

그날 아침부터 오백룡중대장은 만약의 경우를 생각하여 백계로씨야청년들을 놓아준 중간지점근처에 매복을 조직하였다.

림수산참모장은 그 사실을 알면서도 마음을 놓지 못하고 긴장속에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하루, 이틀, 사흘, 나흘이 지나도 아무런 일도 없었다. 그는 비로소 마음을 놓고 발편잠을 자게 되였다.

닷새째 되는 날 림수산은 낮잠을 달게 자다가 신기한 꿈을 꾸었다… 기슭이 보이지 않는 드넓은 강물, 굼니는 물결에 휘말리며 누군가의 허연 유골함이 떠내려가고있었다. 저게 누구의것일가 하고 여겨보는데 강물이 벌겋게 물들여지다가 흘연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불바다로 번지여 어디론가 소리없이 흘러가고있었다…

그는 도대체 누가 혈육의 유골을 저런데 버렸는가 하고 의문을 느끼다가 잠에서 깨여났다.

꿈이였다. 포로했던 백계로씨야인한테서 들은 이야기때문에 그런 꿈을 꾸었다는 생각이 인차 들었다.

림수산은 자신과 아무런 인연도 없는 그들의 운명을 두고 이렇게 생각하였다.

(조국을 배반했으니까 그런 징벌을 받아 싸지 싸… 그건 말하자면 자업자득이거든…)

그리고는 가볍지도 않고 무겁지도 않는 마음으로 담배를 피웠다.

문득 무슨 련상작용이 일었는지 권영벽이 생각났다.

(이제는 몸도 퍽 쇠약해졌겠는데… 이겨내야 할텐데… 이겨내지 못하면 자손들한테까지 루가 미쳐… 저 백계로씨야청년들을 보라.…)

가슴이 몹시 쓰려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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