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장 노비출신 장영실

9

 

《형님, 계시옵니까?》

김을지는 장영실을 따라왔던 라장도 돌아가고 모여왔던 동네아낙네들도 돌아가고 사람들의 발길이 그치자 영아의 집을 찾았다.

부엌에서 들려오던 칼도마소리가 뚝 그치더니 《네―에》 하는 소리가 나며 영아가 행주치마에 손을 닦으면서 나왔다.

《영아!―》

《아니, 을지오빠!―》

두사람은 다같이 자신들을 잊은듯 바위와 같이 선채로 서로서로 바라보기만 하였다.

만약 이 순간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다 해도 그들은 그것을 느끼지 못하였을것이다.

그러나 누가 먼저 발걸음을 떼였는지 그들사이는 한발자국, 두발자국 가까와졌다.

김을지는 영아의 두눈에 맑은 눈물이 그렁그렁 차오르다가 급기야 볼을 타고 주르르 흘러내리는것을 보았다.

영아는 눈굽에 손을 가져가며 등을 돌려대고 소리없이 눈물을 쏟았다.

그의 등에 흘러내린 탐스러운 머리태엔 꽃가지에 날아든 나비와 같이 붉은 갑사댕기가 날아갈듯말듯 흔들리고흔들렸다.

지난봄에 영아와 작별하면서 자기가 직접 달아준 그 빨간 댕기였다. 봄도 가고 여름도 가서 봄꽃, 가을꽃도 다 떨어졌지만 그 댕기만은 그대로 처녀의 머리태에 남아있는것이다.

《밖에 누가 왔나?》

장영실이 방문을 열고 나왔다.

그는 마을돌이를 할 때 입었던 관복대신에 수수한 무명바지저고리를 입고있었다. 망건을 쓴 머리우에 외자상투가 솟아있는것이 유표히 보였다.

《형님, 이 을지가 형님을 뒤따라왔소이다.》

김을지가 넙적 허리를 꺾으며 절을 하는데 장영실이 맨 버선발로 달려나와 반갑게 맞았다.

《왔구만, 왔어. … 내 그럴줄 알았다니까. 얼마나 고생했나. 어서 방에 들어가세.》

체소한 장영실이 김을지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그리고 영아에게 세면물도 떠오고 밥도 햇밥을 더 지으라고 티없이 웃었다.

영아는 그제야 언제 울었더냐싶게 방긋이 웃으며 수집은듯 속살거리였다.

《아이참, 이 정신봐. … 내 왜 이러고 섰담.》

영아가 보리와 발깃발깃한 수수쌀을 섞어 정성껏 지은 밥에 빨간 고추를 넣고 담근 갓무우김치, 된장찌개를 쪼각상에 챙겨가지고 올라왔을 때는 장영실이 이미 김을지가 웅거지에서 나와 여기를 찾아올수밖에 없었던 이야기를 다 듣고 앞으로 해야 할 일을 의논하려던 참이였다.

《저녁이 늦어졌어요. 어서 밥을 잡수세요.》

영아는 밥상을 두사람앞으로 내려놓으며 김을지의 모습을 정차게 더듬었다.

아무데 내세워도 누구와 짝지지 않을 을지오빠이다. 쩍 벌어진 어깨와 담벽같은 가슴, 기둥과 같은 목, 해빛과 바람에 얼굴은 거멓게 탔으나 굵은 눈섭밑에 이글이글 타는듯한 큰 눈이 볼수록 미더웠다.

나때문에 장가도 아니가고 로총각으로 기다리는 사람, 영아는 자기가 노비신분을 면하였으니 김을지와 혼례를 치를수 있다고 작은 가슴을 설레였다.

《영아야, 이 사람의 얼굴에 구멍이 뚫어지겠다. 인젠 이 사람을 그만 보아라. 하하… 어제 고을호방이 가져온 술단지를 가져오너라. 이 좋은 날에 너희들의 혼사를 아예 치르자꾸나, 응? 그리하자.》

장영실은 더없이 기뻐서 온 얼굴에 웃음이 넘쳐났다.

그는 영아와 을지사이에 이미 생사를 함께 할 약속이 있었다는것을 알고있은지 오랬다.

단지 그동안 영아가 노비여서 혼례를 치를수 없었다.

두사람의 피타는 사정을 누구보다도 안타깝게 여긴것은 장영실이였다.

자기도 사랑하는 사람이 노비여서 혼례를 치르지 못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을지와 영아의 처지는 달라졌다. 혼례를 치르어줘야 할 때가 온것이다.

그는 래일이면 서울로 떠나야 할 몸이였다. 기왕이면 이렇게 서로 만났을 때 혼례를 치르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기회가 있을것 같지 않았다.

《아이참, 오라버님은 급작스럽게…》

영아는 얼굴을 활딱 붉히면서 부엌으로 얼른 내려갔다.

《을지, 자네만 좋으면 이 저녁으로 일을 끝맺자구.》

장영실은 김을지의 손을 잡아쥐고 그의 의향을 물었다.

을지는 바라던 날이 이렇게 갑자기 와서 가슴에 상사말이 뛰놀듯 심장이 쿵쿵 고동치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목이 꺽 메여 무엇이라 대답하지 못하였다.

다만 움쭉 일어나 장영실앞에 무릎을 꿇고 절을 하였다.

《형님, 고맙소이다.》

이렇게 겨우 한마디 하고 그대로 엎드린채 일어날줄 몰랐다.

부엌에서도 행복에 흐느끼는 영아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어느덧 장영실의 눈에도 눈물이 저절로 솟았다.

남녀가 서로 뜨겁게 사랑하면서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였던 지난날의 처지가 너무나 통분해왔고 그럴수록 오늘의 이 기쁜 날을 마련해준 임금의 덕화가 새삼스럽게 파도쳐왔다.

《이애 영아야, 술과 술잔을 가지고 어서 들어오너라.》

장영실이 갈려드는 목소리로 말하였다.

이윽고 영아는 조용히 옷매무시를 바로 잡고 들어와 술단지와 술잔을 상우에 올려놓고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원래 혼례식을 제 식대로 할라치면 방안에든 마당에든 초례청을 잘 꾸려놓아야 할것이다.

그런 다음 칠보단장을 곱게 한 색시를 사모쓰고 관대한 신랑앞에 마주세워놓고서 얼굴을 가리운 꽃부채를 떠내리고 신랑에게 절을 하게 하고… 신랑이 답절을 하면 청실홍실 드리운 교배잔을 전하게 하고… 그것이 끝나면 동네 나이많은 할머니가 나서서 검은 머리 파뿌리가 되도록 아들딸 주런이 낳으며 백년해로하라는 덕담을 하고… 이렇게 초례를 끝내면 신랑, 신부가 함께 부모님들과 웃어른들에게 술을 부어드리는 례식을 마치게 한 다음 흥치는 안팎잔치를 벌려야 할것이였다.

이런 혼례식은 비록 가난한 집이라도 한생에 한번밖에 없는 일이라 하여 누구나 기를 쓰고 하려고 한다.

그러나 김을지나 장영아에게 초례청이 어디 당할 일인가.

김을지의 머리우에 사모나 장영아의 머리에 칠보족도리를 어이 얹으랴. 연지곤지 찍은 얼굴을 가리울 꽃부채가 어디 있으며 또 아들딸 낳고 백년해로하라는 덕담할미와 신랑신부가 부어드리는 술잔을 받아줄 부모들도 없다.

김을지는 눈물을 머금었다. 그는 빈 술잔을 받아들고 영아는 거기에 술을 붓고 그다음에는 남실남실 차오른 첫 잔을 장영실앞에 받들어올리였다.

《형님, 저의 부모님들도 아니계시고 영아의 부모님도 안계시옵니다. 형님이 량켠 부모님들을 대신하여 우리 두사람의 첫 잔을 받아주옵소서―》

량집 부모들이 다 살아있었다면 이다지도 마음괴롭지 않을것이다. 그러나 두 집 부모들은 다 비명에 돌아갔다.

김을지의 굵은 눈물방울이 술잔우에 떨어지고 그것을 받아든 장영실의 손이 후들후들 떨리여 넘쳐나는 술이 손등을 적시였다.

《오라버님, 어서 드시옵소―》

영아의 울음섞인 목소리가 끝나기 바쁘게 문밖에서 《나리님 계시오이까?》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장영실은 얼른 눈물을 닦고 《게 누구시오?》 하면서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마당가에 고을의 병방과 륙모방망이를 든 사령 두셋이 서있었다. 그들은 장영실을 보자 배허벅에 손을 모아붙이고 절을 하였다.

《나리님, 문안드리오. 고을사또께서 나리님께 긴히 연통할것이 있다하옵기에 왔나이다.》

《으음, 그래?! 어서 아뢰여라.》

장영실이 문턱을 넘어 토방에 내려서며 뒤로 문을 닫았다.

《방금 조정에서 파발이 내려왔소이다. 가지고온 공문인즉 을묘일에 충청도접경 막고개에서 죄인함거를 멈춰세우고 잡아가던 죄인을 빼앗아죽인 사건이 일어났다고 하옵니다.

그 죄인은 양지현감이고 그를 죽인자는 양지현 백성 김을지라는 놈인데 여간 드센 놈이 아니라고 하옵니다. 그놈을 보거든 잡아들이라는 령이나이다.》

병방은 숨도 쉬지 않고 얼음판에 박밀듯 거침없이 말을 여쭈고나서 상호군 장영실앞이라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채 약간 눈을 치떠 상대를 한번 얼핏 훔쳐보고는 다시 눈을 내리깔고 다음말을 이었다.

《사또님께서는 나리님이 막고개를 넘어오던 때가 바로 그때쯤이라고 짐작하시와 혹시 그런 놈들을 보지 못했는가고 긴히 물어보라고 분부하셨나이다.》

《오냐, 그런 끔찍한 일이 있었고나. 그러면 내 오면서 본것이 그것이였나?》

장영실의 말은 높은 벼슬량반의 지체에 어울리게 점잖았으나 그 목소리는 놀라와하듯 좀 크게 울리였다.

사실 죽은 양지현감과 김을지라는 말이 나왔을 때 가슴이 섬찍하였다.

바로 그 김을지가 자기 집 방안에 있고 지금은 영아와 혼례를 치르고있었다.

끝내 사달을 일으켰구나. 이놈들이 무슨 낌새를 느끼고 찾아오지 않았는가싶었다. 하지만 사람이 그렇게 맥없이 오라를 질수는 없다.

장영실은 김을지에게 방안에서 자기의 말을 듣고 미리부터 마음을 굳히게 하며 방비를 단단히 하라고 예고하듯이 좀더 크게 목소리를 높이였다.

《내 이 눈으로 익히 본것은 막고개가 아니라 범산령고개를 오르다가 의금부도사일행을 만났니라. 죄인함거에 죽은 양지현감을 싣고가길래 목을 따가지고 가는줄 알았지 무지한 놈들이 죽인줄은 몰랐고나. 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고― 병방은 너의 사또에게 내 말을 그대로 전해라. 흠, 그런 일이 있었고나―》

장영실은 속으로 좀 긴장하였으나 겉으로는 흔연히 량반행세를 장히 하였다.

이런 놈들에게는 이렇게 대해주어야 가재처럼 뒤걸음을 치지 그렇지 않으면 오히려 논밭의 돌피처럼 머리를 꼿꼿이 쳐드는것이다.

김을지는 밖에서 병방이 하는 말을 듣고도 태연히 앉아있었다.

그는 다만 장영실이 그럴듯하게 놈들을 구슬려 넘기는것이 신기하게 생각될뿐이였다.

고지식하고 순박한 사람이 저렇게도 림기응변으로 멋진 수를 쓰는것이다.

량반의 물을 먹은탓인가. 아니다. 형님은 이 김을지와 영아를 위해 속에 없는 말을 하는것이다.

뿐만아니라 량반놈들이 칼을 내대면 칼로 맞서야 하고 사기와 협잡, 권세를 내대면 그것을 이기는 지혜와 슬기를 내대야 하였기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백성들이 살아나갈수 없는 세상이 아니냐.

김을지는 마음이 든든해서 끄떡없는 바위처럼 그대로 앉아있었다.

영아는 나무가지에 둥지를 튼 새가 폭풍을 머금은 하늘을 불안하게 바라보듯이 밖의 동정을 살피였다.

병방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를 어쩐단 말이냐.

방금 노비의 멍에를 벗고 일일천추로 바라던 소원이 풀리였는데 그것이 허무하게 사라지고 천길나락이 앞에 놓인단 말인가.

영아는 온몸이 얼어든듯이 가슴이 한줌만 해져서 파들파들 떨었다.

《걱정말게, 아마 김을지란 사람이 나 말고도 또 있는게지.》

김을지는 가만히 영아의 손을 꼭 감싸쥐고 빙그레 웃었다. 그때에야 영아는 안심이 된듯 《호―》 하고 한숨을 나직이 내그었다.

장영실은 병방과 사령들을 흔연히 돌려보내고 방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별일이 없은듯 혼례식을 치르었다.

혼례식이래야 례장을 주고받는것도 없고 입고있는 옷차림그대로 신부가 신랑에게 술 한잔 드리고 신랑과 신부가 맞절을 한 다음 그자리에서 셋이 조촐한 음식을 드는것으로 끝났다.

장영실은 기쁜김에 술 한사발을 다 마시고 이내 취하였다.

그래서 영아가 가져다주는 목침을 베고 《오늘 낮은 내 날이였고 오늘 밤은 너희들의 날이로다!―》 하고는 잠이 들었다.

을지와 영아는 음식상을 치우고 달빛이 가득한 밖으로 나왔다.

두사람은 서로 어깨를 맞대이고 나란히 토방에 앉았다.

그들은 서로의 지나온 이야기, 앞으로 살아갈 이야기를 오손도손 나누었다.

영아는 을지의 이야기속에 시부모들이 불쌍하게 돌아간 대목에 가서 흐느껴울었고 세종의 행차를 멈춰세웠던 이야기와 그때 임금이 내린 은총에는 그것이 고마와 더더욱 목메여 흐느껴울었다.

그러나 피치 못할 사정으로 숨어살지 않으면 안되였고 양지현감을 원쑤갚지 않으면 안되였던 이야기를 듣고서는 소스라쳐 놀라 을지를 낯선 사람처럼 쳐다보았다.

《그럼 아까는―》

영아는 무서워 말꼬리를 잇지 못하였다.

《아까는 영아를 안심시키려고 그랬네.》

영아는 빙그레 웃는 을지의 어진 눈과 대바르고 억센 모습을 바라보고는 그가 리해되고 믿음이 가서 그의 품에 쓰러져 눈물을 뿌리였다.

상전을 죽인 《화적》과 가정을 뭇고 어찌 뻐젓이 살수 있을가. 지금은 고을 병방, 사령들을 거짓말로 쫓아버렸지만 앞으로 일이 탄로나지 않는다고 장담할수 없는것이다.

그렇다고 한평생 숨어살수도 없다.

두사람은 불안한 앞날을 다같이 걱정하였지만 또한 다같이 서로의 곁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는 한가지 생각으로 무한히 행복하였다.

장영실은 문득 잠을 깼다.

방구석에 놓인 방등대에서 팥알만한 피마주등잔불이 아직까지 가물거리고있는것을 보니 삼경이 못된것 같았다.

그는 누운채로 희끄무레 보여오는 천정을 올려다보며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하듯이 꼼짝하지 않았다.

사실 그는 김을지를 어떻게 한성까지 데려가고 또 어떻게 영아와 함께 한집에서 살수 있게 하겠는가를 궁리하였다.

창호지 한겹 방문밖에서는 영아와 을지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두런두런 들려왔다.

장영실은 천천히 잠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가볍게 기침을 두어번 하고 밖을 향해 나직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밤을 새울 모양인가부구나. 둘이 함께 방에 들어오게. 너희들과 의논할게 있다.》

《예.》

김을지와 영아는 잠들었던 오빠가 웬일인가싶어 서로 마주보며 웃고는 얼른 방안에 들어갔다.

《내가 의논하자는건… 아니, 의논이고 뭐고 할것없이 너희들은 내 말대로 해야겠다. 이제부터 을지는 나의 반당으로 행세해야 하겠다.

상호군의 반당이면 그 베잠뱅이옷차림으로는 안된다.

서울을 나올 때 장공인들이 마련하여 고맙게도 나에게 로자로 쓰라고 주었던 무명 서너필중에 아직 쓰지 않은 한필이 남아있네.

영아는 그것으로 너의 랑군님께 옷 한벌을 지어주어야 하겠다. 그리구 을지, 임자는 그 늙은 총각의 머리태를 자르고 상투를 틀어올려야지. 인젠 장가도 들었거니와 또 그보다는 본래모색을 변모시켜야 하거든. 이밤으로 일들을 끝내자. 내가 상의원별좌로 있을 때 옷마름질도 어지간히 익히였으니 걱정할것 없네.

영아도 바느질손이 여물었으니깐 래일 아침엔 새옷을 입을수 있게 되리라. 그리고 또 한가지, 자네의 이름도 나라에서 눈밝혀 찾는 이름이여서 고쳐야 하겠다.

내 생각에는 이 사람이 체격도 거쿨지고 행동거지도 듬직하니 거기에 어울리게 대산이라고 부르는것이 좋겠다. 큰 산이란 뜻이다.

성씨도 고쳐서 박대산이라고 하자. 너희들은 어떻느냐?》

장영실은 누가 엿들을세라 낯빛을 중히 하고 귀속말처럼 나직나직이 말하였다.

김을지와 영아는 막혔던 길이 활짝 열리는것 같아 불시에 밝아지는 얼굴들을 들고 서로 뒤질세라 《알겠소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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