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3 장

6

 

토끼작업반의 먹이포전 한 귀퉁이에는 그리 크지 않은 석회로가 일떠섰다. 그앞의 넓은 공지에는 블로크로 가득찼다. 파손된것이 하나도 없이 품을 들이고 정성을 다한것이 알렸다.

반원들과 함께 판자로 만든 질통에 블로크장을 지고 날라들이는 경심의 동그란 얼굴은 빨갛게 익었다. 컴컴하게 흐려오는 하늘이 불안하기만 했다. 밤중에 폭우라도 쏟아지면 큰일이였다. 일기예보에서도 밤부터 비가 온다고 했었다. 그래서 경심은 반원들을 모두 블로크나르기에 동원시켰다. 블로크만 호동안에 끌어들이면 아무리 비가 와도 실내에서 능히 작업을 할수 있었다.

얼굴에서 흐르는 땀이 목으로 굴러내렸다. 좀 휴식을 하고싶었으나 그럴 겨를이 없었다. 처녀들이 몹시 힘들어하는게 알렸으나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렇게 놀것을 다 놀고 잘것을 다 자고서야 어떻게 염소반을 따라잡을수 있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니 전혀 힘들지 않았다.

며칠전 순미네 건설현장을 돌아본 경심은 저도 모르게 혀를 깨물었다. 염소반은 건설속도도 빠르고 해놓은 일들도 많았다. 이제 머지않아 그 넓은 방목덕은 현대적인 염소생산기지로 전변될것이였다. 두 작업반의 전경도를 농장초급일군들앞에 내보이던 때를 생각했다. 그때 경심은 무조건 순미보다 앞서리라 마음을 먹었었다. 하지만 지금 염소반에 비하면 공사속도가 더디게만 생각되였다. 그렇다고 손맥을 놓을수 없었다. 더 분발해야 했다.

남자는 배짱과 담이 커야 하고 녀자는 응당 야심과 이악이 있어야 하는것이다. 남보다 잘해보겠다는 야심은 클수록 좋은것이다.

경심은 마음속으로 자신에게 늘 채찍을 안기며 살고있었다. 작업반에서는 토끼우리들의 외부형태를 층층다락식으로 짓고 내부구조를 굴식과 상자식 두가지를 배합하여 건설하고있었다. 벌써 세개로 이루어진 ㄷ자형호동중에서 한개 건물의 외부미장을 끝내고 내부구조꾸리기를 하고있다. 그 호동의 토끼들을 다른 호동들에 옮기다나니 몹시 비좁고 불편했다. 하루빨리 호동을 완성하고 토끼들에게 궁전같은 보금자리를 안겨주어야 했다.

박승완의 먹이분조는 석회로를 운영하고 블로크를 비롯한 자재보장을 하면서도 매일 토끼먹이확보에도 낯을 돌리고있다.

그는 바쁜 속에서도 염소작업반 정찰을 정상적으로 할뿐아니라 건설에서도 기둥적인 역할을 하고있었다.

경심이가 염소작업반에 다녀온 다음날 이른새벽 작업반에 나오니 박승완이가 미리 나와있었다.

그는 책상우에 책들을 가득 펴놓고 부산스레 이 책, 저 책 뒤적이다가 경심이가 나타나자 저녁부터 당장 과학기술학습을 조직하자고 했다.

《염소작업반에선 콤퓨터조종기술학습까지 진행하고있소.》

《그건 언제 정찰자료인가요?》

《아, 새벽에… 새벽에 우연히 알아냈소.》

그는 말을 얼버무렸다.

《속도가 매우 빠르군요. 난 찬성이예요.》

경심은 속으로 기뻐했다. 그도 박승완이와 과학기술학습문제를 토론하려고 했던것이였다.

그날부터 토끼작업반은 저녁시간은 물론 건설의 여가시간에도 기술학습을 진지하게 진행해나갔다. 원래 머리가 좋고 아는것이 많기로 유명한 박승완은 짬짬이 연구를 해가지고 어려운 과학기술문제들도 알기 쉽게 해설하였다.

경심은 날이 갈수록 그가 돋보이고 돋보일수록 대하기가 어려워졌다.

요즘 토끼반은 군경영위원회 축산과의 지시에 따라 새로 지은 토끼우리에 대한 군적인 보여주기준비를 하고있었다. 며칠전 관리위원장과 함께 나타난 축산과장은 새형의 토끼우리가 볼만 하다고 칭찬하면서 그런 의견을 내놓았던것이다.

처음은 그 말이 달갑지 않았다. 완전무결하게 꾸려진 토끼작업반을 놓고 보여주기를 한다면 몰라도 한개 호동을 놓고 보여주기라는건 좀 부끄러운 일이라고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 축산과장은 토끼작업반 앞마당에 세워놓은 전경도를 보면서 사실 이 전경도만 군안의 토끼반장들한테 보여주어도 대단하다는것이였다. 축산과장이 거듭 권고해서야 한개 호동에서만이라도 보여주기를 해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렇게 하는것이 이모저모로 좋을것이기때문이였다. 그러느라면 풍덕땅의 토끼작업반이 크게 소문이 날것이고 일한 보람도 있을것이였다. 그런데 뜻밖에도 박승완이 반기를 들줄이야…

축산과장이 돌아간 다음 박승완은 반원들 모르게 경심을 불러냈다.

《경심동문 지금 마음이 편안하오?》

선뜻 대답을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뜻밖이였다.

여느때는 항상 반장동무라고 불러주던 그였다.

갑자기 왜 그럴가? 영문을 알수 없어 망치를 집어들고 석회돌을 깨기 시작했다.

박승완의 묵직한 손이 처녀의 손에서 망치를 빼앗았다.

《갑자기 왜 그래요? 성난 곰처럼…》

《난 동무한테 마음이 편한가고 물었소. 왜 대답을 못하오?》

경심은 그제야 짐작되는것이 있었다. 보나마나 보여주기때문일것이다.

《뭐 에둘러 물을게 있어요? 동무성격대로 직방 말하지요.》

박승완은 허허 웃고나서 한결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그래도 반장동무가 염소반 못지 않게 우리 작업반을 현대화하자고 호소했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모르오. 그런데 이제 보니 그뒤에는 다른것이 있었단 말이요.》

《그건 오해예요.》

《아니, 오해가 아니요. 동무가 하자는 보여주기가 도대체 무엇을 위한거요? 작업반을 다 꾸리지도 못하고 토끼우리보여주기만 진행한다는게 말이 되는가 말이요, 왜 강하게 주장하지 못했소?》

경심은 대뜸 반발심이 솟구쳤다.

이 사람이 도대체 토끼반사람이 옳긴 옳은가. 마치 남의 일 대하듯 한다니까.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다.

《군안의 반장들한테 자극을 주고 분발시키는게 좋으면 좋았지 나쁠건 뭐예요?》

경심은 앵돌아져서 작업장으로 가버렸다. 반원들이 어느새 저녁식사를 하러 간 뒤여서 작업장은 조용했다.

그는 굴식우리 간막이쪽에서 일손을 잡았다. 석회를 두고 이긴 몰탈을 놓고 블로크를 한돌기, 두돌기 올려쌓다가 그만 블로크장우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러니 저 동문 내가 리기심이 있어 그런다는거겠지?… 자기 이름을 날려보려는… 흥, 자기 작업반을 자랑하고싶어하는게 뭐가 잘못됐다고, 물론 다 꾸린 다음에 하면 더 좋지. 그렇지만 군의 사정도 생각해야 하지 않는가. 오죽하면 과장동지가 그런 제의를 했을가. 그쯤한걸 가지고 옴니암니 따지면서…

박승완은 여전히 석회돌을 까고있었다.

《저녁식사나 하고 하시지요.》

목소리가 곱게 나가지 않았다.

《나야 작업반의 기둥이 아니요.》

자못 빈정거리는 투다. 싱글벙글 웃는 모양이 꼭 녀동생을 놀려주는 오빠의 모습이였다.

《반장동무, 이 박승완이가 정찰병노릇을 계속해야 되겠소?》

《왜, 이젠 싫증이 났는가요?》

《아니, 할 필요가 없을것 같아서 그러오.》

《그건 도대체 무슨 소리예요?》

경심은 점점 더 약이 올라 맵짜게 소리쳤다.

《정찰자료야 우리가 염소작업반을 따라배우기 위해 필요한것인데 우리야 훨씬 앞장서 나가고있지 않소? 그것도 모범적으로… 군적인 보여주기까지 하는 수준이니까.》

《동문 갑자기 왜 그래요? 이 반장의 사업에 무슨 의견이 있어요? 꼬집어 말하지 않고 빙빙 에돌기만 하면서. 무슨 남자가 그래요? 난 이미 결심했어요. 보여주기는 꼭 해야 해요. 그리고 정찰임무는 계속 수행하세요.》

박승완은 여전히 싱글벙글 웃었다. 경심은 그 눈빛이 어리무던하고 좋기만 한 눈빛이 아님을 깨달았다.

저도 모르게 호― 하고 한숨소리가 새여나갔다.

이 동무도 언젠가는 내 마음을 알게 될거야. …

블로크장을 토끼우리호동에 다 날라들였을 때에야 경심은 《작업 그만!》 하고 챙챙한 소리를 질렀다. 그때 마침 토끼먹이를 채취하러 나갔던 박승완이 먹이분조청년들과 함께 먹이달구지를 끌고 작업반마당으로 들어섰다. 달구지우에는 뜻밖에도 그 무슨 기계같은것이 실려있었다.

《이건 뭔가요?》

경심이 놀라서 물었다.

《블로크찍는기계요.》

《?!…》

《염소반에 들렸댔는데 순미동무가 우리더러 며칠 쓰라더구만. 자기넨 그새 찍은 블로크가 많아서 당분간은 일없다오.》

박승완이 마치 변명이나 하듯 서둘러 말했다.

《분조장동무, 잘한 일 같지 않군요. 정찰임무를 수행하라고 했더니 이젠 전투기술기재까지 가져올 정도로 발전했군요. 난 반장으로서 찬성할수 없어요.》

《반장동무, 강도높은 블로크를 찍어야 콤퓨터조종실과 먹이가공실을 든든하게 지을수 있지 않겠소.》

《질좋은 블로크는 우리 힘으로 얼마든지 찍어낼수 있어요. 우리가 염소반보다 못한게 뭐가 있어요. 블로크찍는기계를 가져온다는게 말이 돼요? 당장 가져다 주세요.》

경심은 단호하게 말했다.

박승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손을 획 내리긋더니 달구지를 돌려세웠다.

순미야, 너의 성의는 고맙지만 받아들이고싶지 않구나. 네가 자체의 힘으로 작업반일을 내밀듯이 나 역시 그 누구의 도움과 방조없이 오직 우리 힘으로 토끼반일을 해내겠어. 우리 일은 걱정하지 말어. 난 오히려 우리 일을 빨리 끝내고 너희 염소반을 돕고싶구나.

경심은 입을 꼭 옥물고 흐릿한 하늘을 근심스레 쳐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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