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3 장  한성에 나타난 시골의원

4

 

그동안 허모는 허준을 귀양보낼수 있는 문서장들을 빈틈없이 하나하나 갖추어나갔다.

이제 한 둬달동안 허준이를 옥살이 시키면서 그에게 죄목을 하나라도 더 붙이기 위해 머리를 짜내고있었다.

문서들을 갖추어나가면서 허모는 한편으로는 대사헌 박근원에게 도간도간 그 안건을 내비쳤다.

《대감어른, 한성부에서 의원이랍시구 협잡행위를 하던 죄인 한놈을 옥에 처넣었소이다.》

《어떤 놈이게?》

《한성부놈은 아니구 시골에서 올라온 놈인데 의원간판을 내걸구 숱한 금전을 받아먹었소이다. 지금까지 알아본데 의하면 그 량이 엄청나게 많소이다. 그리고 의술이 변변치 못하다보니 병자들을 치료한다는것이 오히려 위급하게 해서 많은 사람들이 죽을번 했소이다.》

《저런 고약한 놈 봤나.》

《그래서 좀더 죄를 따져보고 죄가 심하면 귀양을 보낼가 하오이다.》

《음, 그 문젠 감찰이 알아서 처리하도록 하라.》

박근원에게는 그런 시시한 일 말고도 그보다 더한 중죄건이 얼마든지 있었다. 한갖 의원따위의 죄나 따지는 일은 감찰인 허모에게나 적합한 일이였다.

허준을 귀양보내려면 최종적으로 문서에 대사헌의 날장(도장을 찍는것)을 받아야 하는것이다. 그 날장을 무난히 받기 위해 미리부터 박근원에게 침을 놓는 허모였다.

허준은 벌써 석달째 옥살이를 하고있었다.

그의 얼굴은 마치 곽란을 앓는 병자처럼 훌쭉해지고 수염도 더부룩하였다.

설유와 기동이, 달래와 칠성이가 번갈아가며 음식과 물건들을 차입해주지 않았더라면 아마 허준의 몰골은 곽란을 앓는 병자보다 더 처참했을것이였다. 감방과 잇닿은 옥리방에서는 지금 한창 두 옥리가 서로 수작질을 하고있었다.

《저 의원이란 놈이 진짜의원이 맞긴 맞수?》

나이가 더 우인 텁석부리가 대답했다.

《내 가만히 보니 의원은 의원인것 같네. 그놈한테서 치료를 받았다면서 숱한 놈들이 음식가지들을 들고 찾아오는걸 보면 그런것 같기두 해. 그것두 명의래. 한성부의원들두 못 고치는 병을 저놈은 땅땅 고쳐낸다나.》

《명의요? 아, 진짜명의라면 거 우리 참군나리한테 한번 붙여보지 않겠수?》

《참군나린 왜?》

《아, 지금 참군나리가 근 열흘째 애역(딸꾹질을 일으키는 병)에 걸려 연신 딸꾹질을 해대고있질 않수. 그래서 한다하는 한성부의원들이 다 다녀갔는데 아직 여전하지. 이젠 눕지도 못하고 이불을 그러안고 앉은채로 밤낮으루 딸국질을 해댄다고 하우.

한성부의원들도 못 고치는 병을 고치는 놈이라면 그 병도 고칠게 아니유.》

《음, 그 말도 비슷해. 저놈의 의술도 시험쳐볼겸 한번 말해볼가. 만약 가짜의원이란게 들장나는 날에는 영낙없이 평생 옥살이신세를 면할수 없지. 내 한번 참군나리한테 여쭈어보지.》

원체 급해맞은 병자는 나중에는 지푸래기라도 잡을판이다.

옥리의 말을 전해들은 참군은 머리를 기우뚱했으나 한번 병을 보이기로 작정하였다. 허준은 석달만에 처음으로 훈훈한 방에 들어서게 되였다. 참군의 집은 으리으리한 고래등같은 기와집이라고 말할수 없으나 꽤 요란하게 꾸려져있었다.

참군이 그리 시답지 않은 표정으로 허준을 바라보며 물었다.

《네가… 꺽!- 옥리가 말한… 꺽!- 의원인가?》

《네, 그렇소이다.》

《음, 한번 좀… 꺽!- 봐다고…꺽!-》

허준은 참군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신기가 과민하고 예민한 표정이 그의 안모에 잔뜩 실려있었다. 대번에 신명(정신)이 과도한 체질이라는것을 간파할수 있었다.

다음 허준은 딸꾹질소리에 가만히 귀기울였다. 그 소리가 이전에 듣던 애역병자들의 소리보다 퍽 약했다. 실증인 애역병자는 그 딸꾹질소리도 힘있고 련속적이며 얼굴도 벌개지지만 참군의 얼굴은 해쓱했고 손발은 싸늘하였다. 틀림없이 신기가 과도한 체질에다가 허증성 애역이였다.

《그래… 꺽!- 네가 꽤… 꺽!-고, 고칠만… 하냐? 꺽!-》

어찌나 딸꾹질에 시달렸는지 참군은 말도 제대로 번지지 못했다. 옆에 있던 그의 하인이 허준에게 설명했다.

《침과 약은 맞을대로 다 맞고 먹어도 보았소이다. 이젠 침이라 하면 나리께선 아예 질색이오이다. 낫지도 않으면서 괜히 아프게 살만 찌른다고 말이오이다.》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허준은 하인을 돌아보며 한마디 했다.

《뜨끈한 물 한홉에다가 약누룩 한숟갈을 풀어오시우.》

하인이 허준의 말대로 약누룩을 푼 뜨끈한 물을 들여오자 허준은 그 고뿌를 탁자우에 올려놓았다. 그리고는 참군을 돌아보며 말하였다.

《여기 나 앉으시오이다.》

참군은 허준의 말대로 탁자앞에 나앉았다.

《이젠 두손을 뒤로 모두어 잡으시오이다.》

《어떻게… 꺽!- 말인가? 꺽!-》

《거 있지 않소이까? 죄인들을 오라로 포박할 때처럼 말이오이다.》

《뭐 죄인?… 꺽!-》

허나 급한 병자는 그가 아무리 높은 세도가라고 해도 저를 고쳐주는 의원의 말을 듣기마련이다. 참군은 허준의 요구대로 두손을 등뒤로 모아쥐였다.

《이젠 고뿌안의 뜨끈한 물을 훌훌 불어가며 한모금씩 마시오이다.》

참군이 마치 죄인처럼 등뒤로 손을 모두어 잡고 허리를 굽혀 고뿌의 물을 훌훌 불어가며 한모금씩 들이키기 시작했다.

잠시후 그렇게도 사람들의 귀를 자극하던 참군의 딸꾹질이 뚝 멎어버렸다. 물을 한모금씩 들이키던 참군이 고개를 버쩍 들고 놀라서 소리쳤다.

《아니? 이거 정말 딸꾹질이 멎었네그려!》

허준은 머리를 저었다.

《아니오이다. 좀더 계속 하시오이다.》

참군이 한고뿌의 물을 다 들이켰다. 그리고는 긴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 이젠 살것 같구나. 딸꾹질이 정말 멎어버렸어. 거참 신통한데.》

참군이 놀라운 눈길로 허준을 바라보았다.

《이자 보니 자넨 참말 용한 의원일세!》

허나 공교롭게도 한식경이 지나자 참군의 딸꾹질이 다시금 터졌다.

허나 참군은 기대감을 가지고 허준을 쳐다보았다. 그래도 한성부의원들은 숱한 침으로 자기 몸을 찌르면서도 전혀 멈추지 못한 딸꾹질을 이 의원은 침 한대 놓지 않고서도 한식경이나 멈추질 않았는가.

하인이 물었다.

《의원님, 어찌하오리까?》

옥리도 한껏 기대어린 눈으로 허준을 바라보며 말했다.

《의원님, 다시한번 손을 써주사이다.》

방금전까지만 하여도 이놈, 저놈 하던 옥리의 입에서도 드디여 의원님이라는 부름이 터져나왔다.

한동안 깊은 생각에 잠겨있던 허준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옥리와 하인이 황황히 말했다.

《아니 의원님, 가시려 하오이까?》

《아니오이다. 이제 내가 시키는대로 하시오이다. 우선 참군어른은 일어서서 허리를 굽히고 두손을 방바닥에 대소이다.》

이제 와서 참군은 허준이 방바닥을 핥으라 해도 핥을판이다.

《응, 손바닥을… 꺽! 방바닥에… 꺽!-》

참군이 두손을 방바닥에 붙인채로 엉치를 하늘중천으로 높이 쳐들었다. 허준은 옥리와 하인을 돌아보았다.

《이젠 사정을 보지 말고 참군어른의 발목을 각각 잡고 두다리를 버쩍 추켜올리시오이다.》

《아니, 그렇게야 어떻게…》

《옥리나리, 참군어른의 병을 고치시겠소이까, 안 고치시겠소이까?》

《그야 물론 고쳐야지.》

《그럼 내가 시키는대로 하시오이다.》

참군도 머리를 수그린채 끄덕끄덕 하였다.

《음, 그렇게 하세.》

옥리와 하인이 《윽!-》 하는 소리를 내지르며 참군의 다리를 버쩍 추켜올렸다. 참군이 두팔을 바닥에 뻗치여대고 방벽에 의지한채로 완전히 거꾸로 세워졌다.

잠시후 옥리의 입에서 환성이 터져올랐다.

《아, 딸꾹질이 멎었소이다!》

《조금만 더 있소이다!》

일각이 지난 후에 허준은 거꾸로 선 참군을 바로 내리웠다. 참군이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어- 살것 같다. 헌데 이제 또다시 발작하면 어떡하지?》

허준은 확신에 넘쳐 말하였다.

《이젠 일없을것이오이다.》

아닌게아니라 한식경이 퍽 지났어도 딸꾹질은 없었다. 참군이 놀란 눈길로 허준을 바라보았다.

《임잔 참말로 명의일세. 헌데 어떻게 침 한대 놓지 않고 이렇게 딸꾹질을 딱 멈추었나? 그리고 날 거꾸로 세울 생각은 또 어떻게 하구? 내 별의별 치료를 다 받아보았지만 이런 치료는 생전 처음일세.》

《참군어른, 그것도 다 의술의 리치지요. 딸꾹질은 대체로 위기가 상역(거꾸로 올라가는것)해서 생기는데 어른은 신기가 매우 예민한 편이오이다. 아마 잠도 충분히 못 드실거구요.》

《옳네. 잠자리에 누우면 계속 생각이 꼬리를 물군 하네.》

《네, 원체 비위가 약한데다가 신기가 예민해지면 위기가 상역하기가 쉽소이다. 침과 약으로 딸꾹질을 멈출수 없을 때에는 이자처럼 그렇게 거꾸로 세워야 하오이다.》

《그건 대체 무슨 리치인가?》

《네, 애역에 걸린 병자를 그렇게 거꾸로 세워놓으면 가슴안의 장기들이 아래로 쏠리면서 우로 올리뻗치는 상역된 위기를 누릅니다. (정확히는 간대성경련을 일으키는 횡격막을 내리누른다.) 그러면 이렇게 완고한 딸꾹질도 딱 멎게 되는겁니다.》

《하- 그참 그럴듯해.》

눈을 껌벅이던 참군이 머리를 기우뚱거렸다.

《헌데 자네같은 명의를 대체 뉘가 옥에 처넣었나?》

옥리가 눈이 휘둥그래서 참군을 쳐다보며 외마디소리를 내였다.

《네? 뉘가 처넣다니요?》

옥리의 놀란 눈길을 보자 참군의 머리속에는 문득 사헌부 감찰 허모의 얼굴이 불쑥 떠올랐다. 서윤이 말하기를 사헌부 허감찰이 이 의원을 취급한다고 하였다. 참군이 옥리를 돌아보며 지시를 주었다.

《오늘부터 이 의원을 감방에 넣지 말고 너희들이 거처하는 방을 하나 내여 거기서 숙식시키도록 해라.》

《알겠소이다.》

옥리와 허준이 물러간 뒤 참군은 머리를 짜냈다.

(이 일을 어떻게 한담?)

자기를 위해서도 이와 같은 명의를 놓치고싶지 않았다. 허나 그건 제맘대로 되는 일이 아니였다.

허모가 사헌부의 지시라고 내리먹여 한 일이였다. 비록 허모가 정6품밖에 안되는 감찰이라지만 듣자니 대사헌 박근원대감과 여간 막역한 사이가 아니라고 한다.

그러니 까딱 잘못 처신했다가는 사헌부의 눈밖에 날수 있었고 그렇게 되면 조정도 안중에 없이 범인들을 눈감아주고 그들의 주머니를 털어낸 자기의 죄행을 들추어낼지도 모른다.

하여튼 허모란 놈이 만만치 않은것만은 사실이였다. 그우로 숱한 상급이 있는데도 대사헌을 끼고도는것을 보면 여간 권모술수에 능한 놈이 아니였다.

(헌데 모를 일이로다. 저런 명의를 감찰이 왜 옥에 처넣으라고 했을가?)

참군은 여기에는 분명 무슨 쪼간이 있을거라고 생각하였으나 더 깊이 파고들려고는 하지 않았다. 이즈음의 세월에 이러한 일들이 어찌 한두건인가.

법과 죄목들이 권세가들의 기분에 따라 적용되는 세월이였다.

괜히 그이상 더 깊이 알려고 했다가는 오히려 제 목이 위태로와질수 있었다.

허나 참군은 앞으로 제몸의 보신을 위해서 한성부의원들속에서도 찾기 힘든 명의인 허준을 놓치고싶지 않았다.

불쑥 참군은 신통한 생각이 떠올라 무릎을 철썩 쳤다.

그의 눈앞에 한 대감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대감이란 임금의 총애를 한가득 몸에 지니고있는 사헌부의 이전 대사헌 류희춘이였다.

류희춘의 형수가 참군의 사촌고모여서 여러번 만난적이 있었다.

(그렇지. 류희춘대감에게 말해보자. 오래동안 류배살이를 하시다가 다시 벼슬길에 들어선 대감이 늘 앓고있는데 이번 기회에 허준이라는 의원을 붙여 병도 치료하고 그러느라면 그 의원의 문제도 비칠수 있을게 아닌가. 그리고 류대감이 나선다면야 제아무리 박근원대사헌이라고 해도 들어줄수 있어. 그러면 대사헌의 말이라면 엄동설한에 산에 가서 딸기라도 따올 허감찰이 고양이앞의 쥐마냥 꼼짝 못할거구… 그래, 그게 제일 적절한 수란 말이야. 그러면 나도 좋구 류대감도 좋을거구…)

또다시 허준을 찾아 면회를 온 설유와 기동이, 달래와 칠성이는 며칠사이에 신수가 멀끔해진 허준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 잡아먹을것처럼 사납게 굴던 옥리들도 여간 곰살스럽지 않았다. 설유의 눈에 의아함이 어렸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세요?》

허준은 별치 않다는듯 시틋이 대답하였다.

《속담에 범의 굴에 잡혀가도 정신만 똑똑하면 살아난다고 하지 않았소.》

허준의 그 말에 달래가 두손을 찰싹 마주치며 환성을 질렀다.

《아유, 그러니 의원님의 명의술의 덕이군요. 그렇지요?》

기동과 칠성이도 기뻐하며 싱글벙글거렸다. 기뻐하는 그들을 일별하며 허준이 낮으나 심중한 어조로 말하였다.

《좋아하긴 이르오. 이들의 속심이야 뻔하지. 현재는 내 의술이 당장 필요하니 어울리지 않는 이런 대접을 하는게지. 량반들이야 앞에서는 좋다구 하고 돌아서서는 닭 잡아먹구 오리발 내놓는 위인들이 아니요. 그러니 그 속내를 어찌 알겠소.》

설유가 그 말에 수긍하였다.

《하긴 그래요. 아무런 죄도 없는 생사람을 잡아 옥살이를 시키는 그들인데 방심할수가 없지요.》

《…》

허준은 가볍게 머리를 끄덕이였다.

설유일행은 무거운 마음으로 옥문을 나섰다.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떼는 그들의 뒤모습을 바라보는 허준의 눈에선 어두운 그늘이 사라질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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