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6 장  《보감》

6

 

곤도가 헐떡거리며 방안에 들어섰다.

《무슨 일이예요?》

《어의댁이 비였소이다.》

락태한 고양이상을 하고 구들목에 앉아있던 후유꼬가 발딱 일어났다.

《그게 사실이예요?》

《예, 제가 어의댁 주변에 사는 고물장사군에게 부탁하였는데 며칠전에 어의댁 부인이 집을 나간 뒤로부터 다시 들어오지 않았다고 하오이다.》

《그럼 정배지에?》

《아마 그런가 봅니다.》

후유꼬가 두눈을 깜박거렸다.

《그럼 오늘밤에 해치우자요!》

으슥한 어둠이 깃들무렵 후유꼬와 곤도는 도적고양이마냥 허준의 집 담장을 넘었다. 한동안 담너머에 앉아 동정을 살피니 쥐죽은듯이 고요하였다. 한식경정도 앉아 기미를 보던 후유꼬가 곤도를 돌아보았다.

《어서 시작하자요.》

먼저 뒤울로 살금살금 걸어갔다. 곤도가 박달나무방망이로 땅바닥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궁글은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집옆과 앞마당 역시 같았다.

허탕을 친 후유꼬가 악에 받쳐 입술을 옥물었다.

《대체 어디에 숨겨놨어?》

표독스러워지는 후유꼬의 눈치를 살피며 곤도가 가만히 귀띔하였다.

《혹시 다른 곳에 감추지 않았을가요?》

《딴곳에?!》

십분 그럴만도 하였다. 두번씩이나 기습당한 허준이가 자기 집이 과녁이라는것을 알고 다른 곳으로 빼돌릴수 있었다. 허탕을 치고 집으로 온 후유꼬는 곤도와 밤새 이마를 맞대고 의서가 어디에 있겠는가 머리를 짜냈다.

갑자기 후유꼬가 곤도의 무릎을 때렸다.

《가만 있자, 어의댁과 가까운 놈들이 있지 않아요?》

곤도가 세모눈을 쪼프리며 어정쩡하게 대답하였다.

《고물장사군의 말에 이하면 기동이라는 의원이 이 집 출입이 잦다고 하였소이다. 집이 남산골 어디라던지

후유꼬의 눈에 생기가 돌았다.

《래일 그 장사군을 만나 자상히 알아보고 그 기동이라는 놈의 집을 찾아내세요!》

그 다음날 곤도가 후유꼬에게 말하였다.

《어의댁과 제일 친하게 지내는 놈은 남산골 기동이라는 의원이라 하오이다. 그리고 형조에 다닌다는 박응규라는 아전과 부부간인 달래라는 계집이 있고 칠성이라는 젊은 놈이 또 있다고 하오이다.》

《그렇단 말이지

한동안 생각에 잠겨있던 후유꼬가 확신성있게 말하였다.

《의서는 남산골 의원댁에 감춘게 틀림없어요. 허준의 녀편네가 정배지에 갔다는건 그 집에 의서를 보관하지 않았다는걸 말해요. 우리한테 그렇게 혼나고도 집을 그렇게 비울수가 없어요. 분명 기동이란 의원네 집 어딘가에 보관하고있을거예요.》

《그럼 어떻게 하오리까?》

《설쳤다가는 그놈들을 놀래울수 있으니 좀 생각해보자요. 우선 곤도상이 기동이라는 의원놈의 집을 감시하세요. 혹 무슨 단서를 잡을지 알겠어요?》

《알겠소이다.》

 

기동이가 곡도로 떠난 후 칠성이네는 기동이네 집으로 아예 거처를 옮겼다

칠성은 응규와 밤이면 교대로 원고주위를 감시하였다.

어느날 칠성이가 달래와 응규에게 머리를 기웃거리며 말하였다.

《암만 생각해두 난 원고가 들어있는 저 단지가 미타하게 생각돼요.》

응규의 눈이 커졌다.

《그건 왜?》

《혹 우리가 깊이 잠든 사이에 단지를 들어가면 야단이 아니우?》

응규의 얼굴이 심중해졌다.

《듣고보니 그렇구만. 헌데 신통한 방법이 없지 않나?》

달래가 얼른 말참녜를 하며 끼워들었다.

《아유, 거 뭐 힘들게 생각할게 있어요? 아예 집안으로 들여오면 되지 않나요?》

칠성이가 눈을 부라렸다.

《녀자들이란 참, 머리칼은 긴데 생각은 짧거든. 그게 정신있는 소리요? 전번에 의원님의 집에서 일어났던 일을 벌써 다 잊었소? 그때 의서를 훔치러 들어왔던 놈이 어떻게 했댔소? 온 집안을 샅샅이 뒤져 온통 수라장으로 만들지 않았댔소? 도적놈들한테 제일먼저 눈이 가는곳이 집안이요. 그래서 집안에 귀물들을 건사하는건 그만큼 더 위험하단 말이요. 더구나 우리 셋이 낮에는 늘쌍 이렇게 집에 붙어있는것도 아니질 않소? 그때 만일 집을 들이치면 어떻게 하겠소?》

칠성이한테서 퉁을 맞은 달래가 처음엔 발끈하더니 그의 말이 맞는 소리인지라 입술만 감빨았다.

응규가 자기 생각을 비쳤다.

《그럼 산속깊이에 간수하면 어떨가?》

칠성이가 손을 휙 저었다.

《그것도 맘을 놓을수 있는 일은 못되우. 그렇게 귀한걸 허허벌판과 같은 산중에 내버려둔단 말이요?》

《하긴 그렇구나. 무슨 방책이 없을가?》

《응규형님, 내가 좀 깊이 생각해보겠수.》

이튿날이였다.

칠성이가 여러가지 쟁기들과 함께 열자는 실히 넘을 기다란 참대관을 들고 나타났다.

달래가 물었다.

《그건 뭘 하는거냐?》

칠성이가 대답을 하지 않고 히쭉벌쭉 웃기만 하였다.

《아니, 사람이 물어보는데 넌 왜 대답은 하지 않고 장가드는 벙어리처럼 혼자서 웃기만 하니?》

달래가 칠성이앞에 주먹을 흔들었다.

《누이, 내가 뭘 생각했는지 아시우? 아마 들으면 이런 동생을 둔걸 자랑스럽게 여길거요.》

제법 으시대는 칠성을 보고 달래가 픽- 하고 입을 삐죽거렸다.

빙그레 웃음을 띠우고 두사람을 바라보던 응규가 나섰다.

《아, 됐어! 당신은 칠성이만 보면 트집을 거누만. 그래, 동생 아니, 처남! 무슨 기막힌 생각을 해냈나?》

칠성은 씩 소웃음을 짓더니 땅바닥에 금을 그어가며 설명하기 시작하였다. 그의 말이 끝나자 달래가 손벽을 찰싹 치며 칠성이를 쳐다보았다.

《정말 내 동생이 다르구나. 진짜 기막힌 생각을 했어!》

응규도 감탄하며 칠성이의 잔등을 두드렸다.

《응규형님, 낮에 준비를 빈틈없이 해놓았다가 어두워지면 제꺽 해제끼자요!》

《좋아!》

칠성이는 먼저 자기가 가져온 항아리의 밑에다가 갖풀로 기다란 삼실의 끝을 붙이였다. 그리고 그 삼실을 참대관속에 밀어넣었다.

날이 어둡자 이들은 곧 일을 시작했다. 먼저 의서를 보관한 항아리가 있는쪽에서부터 집안벽에까지 마치 도랑을 파듯 홈을 내고는 삼실을 늘인 참대관을 묻었다. 그리고는 원래 있던 항아리를 들어내고 밑면에 삼실이 들어있는 항아리를 조심히 밀어넣은 다음 원래의 항아리에서 의서들을 꺼내 새 항아리에 정히 넣었다. 집벽쪽에 붙어있는 참대관속에서 나온 실은 벽에 구멍을 뚫은 다음 집안으로 끌어들였다.

일은 순식간에 끝났다.

칠성이가 방안으로 들어와 집안으로 끌어들인 삼실의 끝에 방울을 달아놓았다. 그다음 아직도 밖에서 뒤마무리를 하고있는 박응규에게 소리쳤다.

《응규형님! 항아리를 한번 들어보시우!》

응규가 항아리를 약 한뽐정도 들어내자 참대관속에 있는 삼실이 당기여지면서 집안에 있는 방울이 짤랑짤랑- 요란한 소리를 내였다.

달래가 환성을 질렀다.

《아유, 거참 신통하네. 이젠 도적놈들이 꼼짝 못하게 되였네!》

박응규도 칠성이의 생각이 하도 신통하여 벙글벙글 웃었다.

《칠성이가 정말 신통한 생각을 해냈구나. 이렇게 해놓으니 한결 마음이 놓이는구나.》

이어 응규와 칠성이는 마당으로 나가 다시금 흔적을 말끔히 지워버렸다.

일은 그 누구도 모르게 감쪽같이 진행되였다.

이 시각 후유꼬와 곤도는 저들이 기회만 엿보고있을 때 칠성이네들이 먼저 선손을 써서 방비책을 세웠다는것을 꿈에도 모르고있었다. 며칠동안 기동의 집주변을 맴돌면서 동정을 살피던 곤도가 후유꼬에게 보고하였다.

《별다른 동정이 없소이다.》

후유꼬는 다시금 이번 행동에서 미흡한 점들이 없는가를 곰곰히 따져보기 시작하였다. 의서를 훔치러 허준의 집에 뛰여들었을 때처럼 랑패를 보면 절대로 안되는것이다.

후유꼬는 어쩐지 이번에는 꼭 성사되리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번에는 절대로 허탕치면 안된다! 반드시 의서를 빼내야 한다!)

몇번이나 따져본 다음 후유꼬는 입술을 깨물며 내뱉았다.

《오늘밤에 행동하자요!》

《?》

《그것들이 제일 깊이 곯아떨어질 시각인 사경(새벽 2~4시)에 움직이자요!》

야밤삼경부터 후유꼬와 곤도는 기동의 집 근처에 엎드려 집안동정을 살피기 시작했다. 집안은 물론 온 동리가 쥐죽은듯 고요하였다. 삼라만상도 잠들었는지 이날따라 날씨는 찌뿌둥하게 흐려있어 사위는 괴괴하기 그지없었다.

이들은 먼저 뒤울을 훑기 시작했다. 역시 궁글은 땅은 하나도 없었다. 옆울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앞마당으로 다가갔다. 후유꼬의 심장은 다소 활랑거리기 시작했다.

(이 앞마당에도 없으면 끝장이다!)

앞마당에는 틀림없이 뭔가 있어야 했다. 후유꼬는 곤도에게 눈짓을 했다. 곤도가 마당 맨끝에서부터 두드리기 시작했다. 후유꼬가 갑자기 손을 들어 곤도를 제지시켰다. 그리고는 집안의 동정에 한동안 귀를 기울였다. 전혀 인기척이 없었다.

후유꼬가 머리를 끄덕이자 다시금 땅바닥을 두드리는 가벼운 박달나무방망이소리가 울렸다. 도적질을 하는 놈들이라 후유꼬와 곤도에게는 그 소리가 우뢰우는듯 하였다. 서로가 긴장하게 한치한치 앞마당을 훑어나갔다.

앞마당 중간부위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던 곤도가 갑자기 굳어졌다. 후유꼬가 곤도를 돌아보았다. 곤도가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며 《쉬!》 하더니 다시금 방망이로 두드렸다. 궁글은 소리가 울렸다.

《여기가 틀림없소이다.》

후유꼬가 얼른 박달나무방망이를 넘겨받아 다시금 조심스럽게 땅바닥을 두드려보았다. 옆의 땅바닥과는 확연하게 구별되는 궁글은 소리였다.

(아, 끝내 찾아냈구나!)

큰소리로 웨치고싶은 욕망을 애써 누르며 후유꼬는 분명하다는 의미로 곤도를 향해 고개를 까닥거렸다.

곤도가 어떻게 하자고 묻는듯 후유꼬를 응시하였다. 이제 땅을 파고 훔쳐갈것인가, 아니면 다음날에? 후유꼬는 가만히 집안의 동정을 살펴보았다. 아직은 다른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할가? 이제 꺼내도 일없을가?)

이 순간 후유꼬는 허모의 손바닥문서에서 본 놈팽이들의 이름이 떠올랐다. 만약을 타산해서 그들을 리용해야 한다. 자기는 마지막까지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이 피뜩 갈마들었다.

후유꼬는 짤막하게 내뱉았다.

《래일 와서 해치우자요!》

그 위치를 재삼 확인한 다음 년놈들은 토담을 넘어 어둠속으로 바람같이 사라졌다.

곤도의 집으로 돌아온 후유꼬는 허모의 문서에 적혀있던 놈팽이들을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의서은닉장소가 확증되였으니 이제 남은것은 그걸 무사히 빼내오는것이다. 허나 몇번씩이나 봉변을 당한 허준이네가 저렇게 땅속에 파묻고 마음을 놓을리가 없다. 분명 무슨 방비책을 세워놓았을것이다. 듣자니 응규라는 녀석은 무술에 능하다고 하지 않는가. 또 칠성이며 달래라는 년도 허준이라면 목숨도 불사할 그런 작자들이다. 결코 쉽게 될것 같지는 않았다.

그렇다면 만약의 경우를 타산하여 예비선을 쳐야 한다. 후유꼬는 허모의 문서에 적혀있던 이자들을 리용하기로 생각하였다. 곤도와 이자들을 들여보내고 자기는 뒤에서 보다가 일이 여차하면 뛰여들 생각을 하였다.

래일 이 시간에 행동하기로 작정한 후유꼬는 다음날 허모의 부하들과 완칠이를 곤도의 집으로 끌어들였다. 만약의 경우를 타산하여 자기는 전면에 나서지 않기로 결심하고 곤도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주었다.

곤도가 놈팽이들에게 금전을 듬뿍 안겨주며 이번 일만 잘 성사되면 더 많은 돈을 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말라꽹이와 주독코는 입이 헤벌쭉해서 좋아하는데 완칠이는 그닥 시답지 않아하는 인상이였다. 완칠이는 사촌형의 친구인 허모가 뒤에서 돌봐주어 살아가는 사람이다. 내의원의 의관이라지만 의술보다는 대신들의 눈에 들어 한자리 해보려고 애쓰지만 왜 그런지 그에겐 행운이 차례지지 않았다.

의술이 없다나니 대신들의 병을 치료할수 없고 그러다나니 그들과 면식을 가질수가 없었다. 그런 완칠이기에 명의술로 어의까지 된 허준이가 눈에 든 가시처럼 여겨지고 그러다나니 허모와 배꼽이 맞아돌아간것이다.

허모에게 허준에 대한 소식을 전해주고 양례수며 함치우네들의 귀에 허준에 대한 악담을 퍼부은것이 다름아닌 완칠이였다.

사람이 실력이 없으면 남이 잘되는것을 배아파하고 그러다나면 이런 어망처망한 일에까지 끌려드는것이였다.

완칠이는 허모가 보낸 사람이라고 하며 찾아온 곤도앞에서 찍소리 한마디 못 지르고 여기로 끌려왔지만 그런 형의 인간추물들이 항용 그러하듯이 벌써부터 겁에 질려 다리가 후들거렸다.

허나 일단 발을 들이밀기는 쉬웠으나 그속에서 발을 뽑기는 한생도 모자라는 법이다.

오후 반나절동안 실컷 배두드리며 포식한 뒤 놈들은 사경을 가까이할 무렵에 집을 나섰다. 순라군들의 눈을 피해 이미 눈에 익힌 길을 따라 기동의 집에 이른 그들은 날쌔게 담을 넘어섰다. 곤도는 허리에 활등처럼 휘여진 장검을 띠처럼 차고 놈팽이들을 지휘했다. 남복차림을 하고 자그마한 비수 세개를 몸에 착용한 후유꼬가 그들의 뒤를 따른다는것을 곤도는 물론 다른 놈들도 전혀 알리 없었다.

곤도는 부들부들 떠는 완칠이를 아니꼽게 쏘아보더니 그더러 담장우에 엎드려 망을 보게 하고는 두 녀석들과 함께 전날에 보아둔 단지가 묻혀있는 곳으로 살금살금 다가갔다.

곤도는 방망이로 단지가 묻혀있는 곳을 다시 확인한 다음 담장밑에 엎드려 한참이나 집안의 동정을 주시하였다. 어제와 다름없이 사위는 쥐죽은듯 조용하였다.

곤도가 두 녀석에게 손짓하자 담장에 붙어있던 그림자들이 단지가 묻힌 곳으로 슬금슬금 다가섰다. 단지가 묻힌 곳으로 다가간 곤도는 두 녀석더러 조심해서 땅을 파라고 눈짓하였다.

석자정도 파니 정교하게 맞물린 두개의 판자가 드러났다. 그것을 제끼니 몇겹의 유지로 단단히 싼 단지의 웃뚜껑이 시야에 안겨들었다. 염독이 오른 소 우물을 들여다보듯 하던 곤도가 그들의 손을 제지시키며 나직이 소리쳤다.

《바로 이것이다!》

《아, 맞소이다. 여기에 무슨 단지가 있소이다.》

주독코가 맞장구를 쳤다.

《어서 빨리 꺼내야지 그러다간 들켜!》

곤도의 그 말에 주독코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리가 나지 않게 빨리 꺼내!》 ·

주독코가 두손으로 항아리를 그러잡고 조심스럽게 들어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곤도가 입술을 감빨면서 긴장하게 바라보다가 제가 직접 넘겨받아 들어올리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약 한뽐정도는 실히 올라왔다.

이무렵 달래는 칠성이와 응규를 대신하여 단지와 련결된 끈에 매달아놓은 방울을 지키고있었다.

매일 밤을 패는 칠성이와 응규의 눈에 피발이 선것을 보고 제가 지키겠으니 눈을 좀 붙이라고 강짜로 떠민 달래였다.

달래는 정신없이 코를 골며 자고있는 칠성이와 남편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짓고있었다.

언제봐야 자기를 누나라고 따르는 칠성이가 밉지 않았다. 만나기만 하면 싱갱이질을 하는 칠성이건만 달래에게는 친혈붙이처럼 느껴졌다. 아직도 장가를 가지 않고있다. 왜 장가를 가지 않는가고 물었더니 《사모님같은 처녀가 아니면 장가를 안갈래! 글쎄 누나라면 제꺽 장가를 들었겠는데 응규형님한테 그만 떼웠단 말이우.》 하는것이였다.

그 말이 롱질인가 했더니 속에 있는 소리였다. 나이가 아래인데 달래를 은근히 생각했다는것이 믿어지지 않았다. 어쨌든 친동생처럼 별스럽게 사랑이 가는 칠성이였다.

달래는 그옆에 큰 대자로 팔다리를 쭉 펴고 드렁드렁 코를 고는 남편의 모습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허우대가 큰 반면에 얼마나 어져빠졌는지 짜증날 때가 드문히 있군 하였다. 아무리 달래가 바가지를 긁고 쨍쨍거려도 소처럼 씩 웃으면 그만인 무던한 남편이였다. 어쩐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부부를 이룬지 몇년이 퍽 지났건만 그에게 아들은 고사하고 계집애 하나 낳아주지 못한 달래였다. 언젠가 사모님이 조용히 물었다.

《달래는 왜 아직 아이가 없나? 아이가 있어야 부처간에 금술이 좋다구 했어요.》

그 말을 남편에게 했더니 그저 씩 웃으며 당신만 내곁에 있으면 된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날밤 자다가 무심결에 깨나보니 남편이 토방에 걸터앉아 하염없이 달만 쳐다보고있었다. 가만히 다가갔더니 남편이 달래의 손을 꼭 잡고 선생님한테 가서 병을 보이고 치료를 받자고 하는것이였다. 며칠후에 선생님과 사모님을 찾아가 치료했더니 인츰 태기가 알리는것이였다. 벌써 석달이 잡혀오는 달래였다.

달래는 몇달후엔 자기가 어머니가 된다는 기쁨과 남편에게 미안스러웠던 일이 해결된다는 안도감으로 하여 입가에 연한 웃음을 지었다.

별안간 짤랑짤랑- 하는 방울소리가 달래의 달콤한 생각을 뺏아갔다.

《아니?!》

다시 방울소리가 울렸다.

달래는 발딱 일어나며 밖에 대고 소리쳤다.

《누구야?》

칠성이와 응규를 깨울 생각을 미처 할새도 없이 달래는 무작정 밖으로 뛰쳐나갔다. 정신없이 뛰쳐나가는 달래의 눈에 방구석에 세워놓은 몽둥이가 피뜩 띄였다. 달래는 그 경황속에서도 몽둥이를 쥐고 문을 박차고 달려나갔다. 단지를 묻은 곳에 쭈그리고앉아있는 세 형체가 있었다.

《이놈들아! 당장 그걸 놓지 못하겠어?》

달려나가던 그 기세로 엉거주춤 단지를 안고 일어서는 놈의 머리를 향해 몽둥이를 휘둘렀다.

《아이쿠!》

비명소리와 함께 그놈이 손에 들었던 단지를 놓고 두손으로 머리를 싸쥐고 주저앉았다.

재차 달래가 그 옆놈에게 달려들었다. 사내녀석이라는게 얼마나 말랐는지 사람이 아니라 장작개비를 세워놓은것 같았다. 그놈은 제 얼굴에 날아오는 몽둥이를 날쌔게 피하더니 다리를 휙 돌리면서 달래의 복부를 걷어찼다.

《아야, 배야-》

달래는 순간적인 동통으로 밸이 막 끊어지는것 같았다.

(이놈들이 배속의 애를 죽이자구 잡도릴 했구나, 뒈질 놈들, 어디라구 감히)

몽둥이를 지팽이삼아 땅에 박은 달래는 가까스로 허리를 펴고 부르짖었다.

《안된다, 이놈들! 그 의서가 어떤거라구 감히 훔치려 한단 말이냐?》

몽둥이를 쳐들어 다시 그놈을 때리려는데 옆에 쓰러졌던 놈이 어느새 일어났는지 주먹으로 달래의 목을 들이쳤다. 쓰러지는 달래의 눈가에 그놈의 험상궂은 낯짝에 달려있는 왕사마귀가 안겨왔다.

달래가 쓰러지자 곤도가 놈팽이들에게 독촉하였다.

《빨리 하라!》

놓았던 단지를 구뎅이안에서 다시 꺼내는데 별안간 《야, 이놈들아!》 하는 벽력같은 목소리가 들렸다.

잠에 취해 처음의 방울소리에 깨나지 못했던 칠성이와 응규가 두번째 방울소리에 이게 뭐야 하고 후닥닥 잠자리에서 일어나 뛰쳐나왔던것이다.

칠성의 뒤로 창을 든 응규가 뛰쳐나갔다. 그들은 단지를 묻어놓은 곳으로 질풍같이 달려갔다.

너무도 당황한 주독코가 엉겁결에 들었던 항아리를 떨구었다.

세모눈을 번뜩이며 벌떡 일어난 곤도가 앞에서 달려오는 칠성이를 노려보았다.

《이 도적놈들아!》

노호같은 고함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칠성이가 거의 가까이 이르렀을 때 곤도가 허리에 띠처럼 차고있던 장검을 쭉 뽑아 휘둘렀다. 달빛을 받아 번뜩이는 칼날이 무서운 기상으로 달려오는 칠성이의 어깨를 사선으로 가로질러갔다.

《윽!-》

칠성이가 어깨를 부여안고 비칠거렸다. 재차 곤도가 이번에는 칠성의 가슴팍을 향해 칼을 휘둘렀다. 다시한번 세차게 칠성이가 비칠거렸다. 허나 그속에서도 비칠거리며 다가와 주독코가 떨어뜨린 단지우에 몸을 던져 가슴에 꽉 그러안았다.

주독코가 칠성이의 몸을 뒤번져 단지를 꺼내려는데 뒤에서 따라오던 응규의 창이 그놈의 잔등에 사정없이 박혔다.

《야, 이 도적놈들아!》

주독코가 그자리에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말라꽹이가 엉거주춤거리는데 응규의 창이 어느새 그놈의 가슴팍을 꿰질렀다. 곤도가 칼을 빼들고 다가섰다.

《빠가야로!》

응규는 왕사마귀가 달린 놈의 입에서 왜말이 튀여나오자 사슴처럼 순박한 눈에 홰불을 켜들고 장창을 앞으로 내밀었다.

《이자 보니 왜놈종자였구나!》

마당에 장창을 든 응규와 칼을 빼든 곤도가 마주섰다. 두손으로 긴 칼을 잡아쥔 곤도가 먼저 달려들었다.

휙휙 칼부림소리, 챙챙 창과 칼이 부딪치는 소리가 허공을 가르며 울렸다. 한참이나 서로가 공방전을 벌렸다.

응규가 창으로 곤도의 칼날을 날쌔게 막아치우다가 몸을 한바퀴 돌리면서 앉은자세로 곤도의 다리를 향해 창을 내밀었다.

곤도가 잽싸게 피했으나 빠른 속도로 날아오는 창날이 곤도의 허벅지를 사정없이 쿡 찔렀다.

곤도가 비칠거리는 사이에 몸을 추켜세운 응규가 곤도의 가슴에 창을 들이박았다.

비칠거리던 곤도가 간신히 피했으나 응규의 창이 그놈의 왼쪽 어깨죽지를 찔렀다.

《윽- 쿠사이나!-》

곤도가 어깨를 부여잡고 피를 토하며 그자리에 쓰러졌다. 곤도가 쓰러지자 응규는 달래에게로 뛰여갔다.

《여보, 달래! 정신차리오.》

달래가 곧 정신을 차리고 몸을 일으켰다.

《일없소?》

달래가 머리를 끄덕였다.

《놈들은?》

《응, 왜놈들이였소. 세놈 다 황천객이 됐소.》

《칠성이는?》

그 말에 응규가 달래에게서 물러나 칠성이한테로 다가갔다. 칠성의 몸을 번져놓았으나 꽉 그러쥔 단지만은 손에서 놓지 않았다.

《칠성이! 이 어찌된 일이냐? 어서 눈을 뜨렴!》

달래가 벌렁벌렁 칠성이쪽으로 기여왔다. 칠성이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고 태를 쳤다.

《칠성아! 네가 가다니? 이 누나를 두고 그렇게 간단 말이냐?! 어서 한번만이라도 눈을 뜨고 이 누나를 쳐다보렴, 칠성아!》

잠시후 간신히 눈을 뜬 칠성이는 피가 가득 내배인 입을 힘겹게 벌리며 물었다.

《의서는? 의… 선?》

《안전해! 이렇게 네앞에 있지 않니.》

달래가 의서가 들어있는 단지를 쳐들었다. 칠성이의 눈가에 안도의 빛이 흘렀다.

《누… 나! 매부! 날 용서해… 요. 버릇… 없이… 그리구… 선생님과… 사모님… 기동형… 》

이윽고 그의 목이 맥없이 옆으로 나떨어졌다.

《칠성아!-》

너무도 억이 막혀 달래는 소리도 못 지르고 흐느끼기만 하였다. 박응규도 주먹으로 눈물을 씻으며 두눈을 슴벅거렸다. 갑자기 달래가 배를 그러쥐였다. 밸이 끊어질것 같은 아픔으로 달래가 신음소리를 내였다.

《왜 그러오?》

허리를 굽히며 응규가 달래를 부축하려고 다가섰다.  배를 그러안고 신음소리를 내던 달래가 가까스로 허리를 펴다가 《여보!-》 소리를 치면서 날쌔게 응규를 앞으로 밀쳤다. 응규가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찰나 담장우에서 후유꼬가 던진 비수가 달래의 가슴에 그대로 날아와 박혔다. 뜻밖의 일이였다.

몰래 그들의 뒤를 따라온 후유꼬는 담안에서 일어나는 소요에 정신을 도사렸다. 헌데 담우에서 망을 보던 완칠이가 뛰여내려와 달아나는것이 아닌가.

후유꼬는 담에서 뚝 떨어져 엉덩방아를 찧고 벌렁벌렁 네발걸음으로 달아나는 완칠이를 향해 비수를 날렸다.

《윽!-》

외마디비명을 지르며 완칠이는 목에 비수를 받자 땅바닥에 코를 박았다.

후유꼬는 날쌔게 담우에 올라섰다. 보니 상황이 그 판이였다. 창을 들고 맹호처럼 날뛰는 사내만 없으면 의서단지를 제가 가로챌수도 있었다. 하여 후유꼬는 응규를 향해 비수를 날렸고 그것을 띄여본 달래가 찰나에 제 몸으로 응규를 막아선것이다.

달래가 쓰러지는것을 본 응규가 벌떡 일어서며 담우에 서있는 후유꼬를 향해 돌진해왔다.

후유꼬는 담우에서 몸을 날려 밖으로 뛰여내렸다. 맹호같이 날뛰는 사내를 감당할 자신이 없었다. 그 사내의 무술솜씨가 련무장에서 다년간 익힌 높은 무술임을 어렵지 않게 간파한 후유꼬였다. 후유꼬는 어둠속으로 사라져버렸다.

응규가 달려가던 기세로 창을 지지점으로 순간에 휭 담우에 올라섰다.

《어느 놈이냐? 당장 나서라!》

담밖은 쥐죽은듯 하였다. 어데론가 꼬리를 사리는 침범자의 발자욱소리가 점점 멀어지는것 같았다.

응규는 한참이나 그 어둠속을 노려보다가 마당에 내려서 다급히 달래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달래를 부둥켜안았다.

《달래! 여보!》

무겁게 눈을 뜬 달래가 모지름을 쓰며 무엇인가를 중얼거리는데 그 말이 입속에서만 맴돌고있었다. 허나 응규는 그 말을 가려들을수 있었다.

《여보! 미안…해요. 아들…을 낳아주자 했는데… 내 목숨은… 의원님이 살려준것인데… 의서를 지켜냈으니… 다행이예요.》

응규의 손을 꼭 잡고있던 달래의 손이 스르륵 미끄러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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