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9 회)

 

제 10 장

38

 

송악산에서 철수해온 경비대가 림시로 자리잡은 골짜기는 후더운 열기와 떠들썩한 분위기에 젖어있었다. 송악산이 자리잡은 장풍군 소릉리에서는 물론 린접한 금천군에서까지 인민들이 떨쳐나 원호물자들을 마련해가지고 찾아왔던것이다. 전사들에게 대접할 아침식사준비를 하느라고 골짜기가 좁다하게 곳곳에서 연기가 피여오르고있었다.

아늑한 풀밭 여기저기에서 군대와 인민이 어울려앉아 벌써부터 허리부러지는듯 한 깔깔소리와 속이 활 트이는듯 한 와와소리를 피여올리고있었다.

송악산을 내준것때문에 잔뜩 어깨가 처져 내려왔던 강태무와 변익수도 어느덧 기분이 흥그러워져 자기들을 데리러 온 중발머리, 외태머리 처녀들에게 기꺼이 이끌려갔다.

고지에서 내려올 때부터 병사들의 머리우를 떠날줄 모르고 배회하던 음울한 분위기는 로인들과 녀인들과 처녀들, 총체적으로 인민이라고 부르는 이 귀중한 사람들이 안고온 혈육의 정에 말끔히 용해되여버렸다.

처녀들을 따라 아침식사가 차례진 어느 한 천막으로 안내되던 강태무와 변익수는 닭알이 든 광주리를 안고 천막밖으로 나오던 머리희슥한 로인과 부딪칠번 했다. 그 순간 변익수와 로인은 전기에 감전된듯 흠칠 놀라는것이였다.

로인은 하마트면 닭알광주리를 떨굴번 하다가 으깨여지도록 가슴에 꾹 부둥켜안았다.

《익수, 자네가… 왔구만.》

변익수는 아무 말도 못했다. 말을 하고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그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몰랐기때문이다. 이전처럼 아버님이라고 불러야 할지 아니면 그보다 더 이전처럼 그저 아바이라고 불러야 할지 순간에 결심을 내리기가 어려웠던것이다.

석고명도 그것을 리해하는지 닭알광주리를 지나가던 한 아낙네에게 맡기면서 《이 닭알을 삶지 말고 국에다 생것으루 그냥 풀어넣게.》하고 이르고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적삼주머니에서 퇴색한 담배대통을 꺼내들었다. 그 손이 어찌나 떨리는지 쌈지에서 꺼낸 담배잎이 저절로 부스러져 대통안에 흘러드는듯 했다.

그것을 본 변익수는 웃주머니, 아래주머니를 부지런히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모자갈피에 밀어넣었던 성냥곽을 찾아냈다.

석고명은 변익수가 불 붙여준 담배를 한모금만 빨아보고는 대통을 인차 발치에 비벼털었다.

《나도 왔네. 이 사람… 늦게나마 내 집, 내 재산보다 내 나라가 중하단걸 알고 스스로 왔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난 해방이 돼서 제땅이 생기고 살림살이가 점점 늘어나면서 어느덧 저밖에 모르는 리기주의자로 둔갑해버렸댔네. 늘어나는 살림살이와 인생살이의 기쁨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것처럼 생각하며 예수에게 기도를 드려왔단 말일세.》

석고명은 떨리는 손으로 변익수의 손을 부여잡고 자기가 지난달 평양에서 진행된 조국전선결성대회에 참가했던 소식을 들려주었다.

《글쎄 이번에 결성된 조국전선의 초대서기국장으로 우리가 다 잘 아는 김창준목사가 선거되지 않았겠나. 그래, 목사란 말일세. 장군님의 품은 교인이든 자산가이든 과거의 죄인까지도 다 포섭해주고 돌봐주고 믿음을 주시는 정말 크고 넓은 품이였네. 장군님이시야말로 내가 한생을 의탁하고 믿고 따르고 지켜야 할 하느님이시라는것을 나는 너무도 때늦게 깨달았단 말일세.》

흐느끼듯 울리던 석고명의 어조가 격해졌다.

《그리고 절감했네. 아니, 그저 느낀것이 아니라 고통스럽게 체험했네. 우릴 품어주시고 지켜주시는 장군님께서 분렬된 나라의 아픔을 안고계신다는것을 통감했단 말일세. 그 아픔을 덜어드릴수만 있다면 난 이제라도 임자와 같이 싸움마당에 같이 들어서서 탄알쌈지라도 섬겨주고싶네. 이건 진정이야. 우리 장군님을 지키기 위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싸우는 자네들을 위해서라면 내 목숨까지도 바치고싶단 말일세.》

《아버님…》

마침내 익수가 그를 불렀다. 《아버님》이라고 불러놓고는 군모를 벗고 허리를 굽혔다.

《절… 용서해주십시오. 제가 무정한 놈이였습니다. 남자가… 사내가 아니였습니다.》

《왜 이러나, 이 사람…》

석고명은 큰일이나 난것처럼 숙여드는 익수의 가슴을 두손밀어 떠올리고 제가 잘못했노라며 눈굽을 훔쳤다.

한참동안 두사람은 서로가 서로에게 잘못을 빌기도 하고 용서를 구하기도 하고 상한데가 없는가 저마끔 어루쓸기도 하다가 풀밭에 나란히 앉았다.

강태무는 그 류다른 상봉에 잔뜩 흥미가 뻗쳤지만 혈육과도 같은 정이 흐르는 그들의 분위기에 방해가 될가봐 말없이 자리를 피해주었다.

변익수는 그때 석고명이 다시 꺼내든 대통에 두번째로 불을 붙여주고있었다. 이번에는 석고명이 말 한마디 없이 담배를 마지막까지 다 피웠다.

《이보라구, 익수…》

석고명은 익수의 이름을 불러놓고는 그가 아니라 먼산을 바라보며 한마디한마디를 가슴속 깊은 곳에서 힘겹게 드레박질해냈다.

《반월이한테서… 편지가 왔네.》

석고명은 저고리안섶에서 주글주글해진 한장의 편지를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황황히 펼쳐보는 익수의 귀전을 석고명의 한숨소리가 휩쓸었다.

《그 애 동무가 죽었다더군. 어려서부터 친하게 지냈는데 은파산아래마을에 시집을 갔댔지. 한달전에 귀축같은 놈들이 거기에 달려들어 불질을 했는데 온 일가가 다 잘못되였다더군. 해산달을 앞둔 생때같은 목숨이였는데…》

석고명은 반월의 편지에서 알게 된 그날의 참경을 치를 떨며 꺼이꺼이 끄집어내여 이야기했다.

익수는 그 이야기를 묵묵히 다 듣고나서 깊은 한숨을 내쉬였다. 고지를 내놓고 물러선 자신에 대한 환멸이 새삼스럽게 치솟아올라 얼굴을 들수가 없었다.

《그래서… 반월인 그후 어디로 갔다는겁니까?》

《모르겠네. 그건 정말 나두 몰라. 독한 년이 무슨 맘을 먹었는지 편지만 보내오군 저는 종무소식이야.》

익수는 바닥에 돋아있던 이름모를 풀 한줌을 뿌리채로 와락 뜯어내였다가 아무렇게나 내동댕이쳤다.

《전투가 끝나면… 제가 찾아보겠습니다. 찾아서 데려오겠습니다.》

《아니… 이 사람아…》

《와야 합니다.》

익수의 어조는 꼬리 하나 없이 단호했고 이전처럼 느리지도 않았다.

《난 그가 남의 사람이 되는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 사람! 그렇게 기분주의적으루 쉽게 말하지 말게.》

《아니요. 난 반월일 사랑합니다. 영원히 믿고 사랑할것입니다. 이제 그가 또 날 배척하고 별의별 험담으로 쫓아버리려 해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애당초 내가 그날 자기 체면만 생각하면서 반월이 가란다고해서 물러났던게 후회됩니다.》

변익수는 전호에서 적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던 억센 손으로 자기의 심장을 쾅쾅 두드려댔다.

장군님께서 나에게 가르쳐주시였습니다. 믿음이란 어떤것인지, 사랑이란 어떤것인지… 이젠 반월이가 가라고 해도 내가 그를 놓치고싶지 않습니다. 놓지 않으렵니다.》

《익수!…》

석고명은 더는 참지 못하고 늙은이답지 않게 손을 들어 얼굴을 싸쥐고 오열을 터뜨렸다.

(저밖에 모르던 이 속물을 정말 용서해달라구. ) 하고 석고명은 변익수뿐만아니라 피흘리며 싸우다 전장에서 돌아온 모든 경비대원들에게 뼈저리게 용서를 빌고 마음속으로 절을 올리고있었다.

식사가 끝난 뒤 강태무는 변익수와 담배를 나누어 피우며 그동안 익수의 신상에서 있었던 사랑의 곡절을 들을수 있었다. 무슨 마음을 먹었는지 익수가 먼저 말꼭지를 떼고 강태무로서는 혹 비밀일가보아 알고싶으면서도 묻지도 않은 말을 죄다 해주었다. 아마도 어제는 강태무가 그닥 미더워보이지 않았으나 전투과정에 겁쟁이가 아니라는 평가를 내리고서야 속을 터놓을수 있는 동지로 인정하기 시작했던것 같았다.

어쨌든 강태무는 배불리 먹은데다가 이 무던하면서도 용감한 소대장의 인정을 받았다는것으로 하여 안팎으로 흐뭇하였다.

담배는 석고명이 제가 가꾼것이라면서 떨구어두고 간것이였다. 향기롭고 씁쓸한 담배맛도 좋지만 변익수가 하는 이야기는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전설이나 같은것이였다.

황해도에 오셨던 장군님께서 사랑은 그렇게 하는것이 아니라시며 진정으로 노하여 익수를 추궁하시였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감동이 너무 커서 눈물이 그렁해지기까지 했다.

변익수는 그때로부터 수십일이 지나도록 아직도 그 처녀를 제사람으로 만들지 못하고있는것이 장군님앞에 두번다시 죄를 짓는것이라며 땅이 꺼지도록 한숨을 내쉬였지만 강태무는 비로소 전쟁과 어울리지 않는 서정시에 빠져있다고만 생각해온 변익수가 리해되였고 동정하게도 되였다.

친부모도 대신해줄수 없는 사생활에까지 장군님의 손길이 미쳐있는 변익수가 부럽기도 했다. 그런 사연이 사람마다 깃들게 되고 그런 사연을 안고있는 지휘관이 전투를 지휘하는 한 그 전쟁은 구령과 웨침이 아니라 가슴쩌릿한 서정시를 떠올리는 하나의 아름다운 화폭을 그려내게 될것이다.

불현듯 남쪽에 두고온 안해 생각이 났다. 한 평범한 경비대소대장의 사랑의 곡절을 놓고 한 나라의 령도자가 심혈을 기울이고계시는 이런 따뜻한 품속에 안해와 함께 안기여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이런 나라, 이런 인민, 이런 령수는 그 어떤 원쑤와 싸워도 절대로 패하지 않을것이다. 강태무는 이제 더 거세차게 타번질 송악산의 불길이 자신의 이 확신을 반드시 증명해주리라는것을 믿어의심치 않았다.

3일이 지난 뒤 강태무와 변익수, 송악산에서 일시적으로 물러섰던 경비대원들전체는 증강된 보충부대와 인민군정규무력의 력량까지 합쳐 송악산에 대한 탈환작전에 들어갔다.

7월 29일, 장군님의 명령을 받들고 송악산일대에 긴급진출한 인민군곡사포들이 일제히 불을 뿜기 시작했을 때부터 최현은 전투장에서 맛보게 되는 짜릿한 긴장감과 동반된 쾌감과 희열에 취해있었다. 아군의 강력한 포병준비타격은 약 30분동안 계속되였다.

경비대원들이 공격전투에 진입하기 전에 최현은 변익수가 석고명에게서 받아보았다는 애인의 편지를 전부대앞에서 공개독보하도록 하였다.

《아버지, 이렇게 내 동무 수영이는 그처럼 꿈많던 생활을 누리지 못하고 원쑤들의 포탄에 생죽음을 당했어요. 행복속에 함뿍 잠겨 지나가는 이 세월을 그처럼 아끼고 귀중히 여기던 그가, 얼마전까지만 해도 저와 나란히 누워 이제 태여나게 될 아기의 이름을 두고 즐겁게 속삭이던 그가… 태여나서 한번도 나쁜짓을 해본적이 없는 웃음많고 쾌활했던 그가 자기를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던 시집식구들과 함께 한날 한시에 생을 마쳤어요. 나는 불타버린 마을너머 은파산마루를 향해 미친것처럼 소리쳤어요. 우리 군대는 어디 있고 우리 경비대는 어디 있는가,

내 동무 수영이를, 그렇게 얼굴곱고 마음고운 수영이를 지켜주지 못하고 어디 갔는가! 그러나 다음순간 얼굴을 들수 없었어요. 그들을 위해

아무것도 한것이 없는 제가 신상에 불상사가 생겨서야 그들을 소리쳐부르며 살려달라고 애원하기가 부끄러웠어요. 하지만 아버지, 익수동무를 만나면 이 렴치없는 녀자의 부탁을 꼭 전해주세요. 무고한 녀인들과 로인들, 새로 태여날 아기의 생명까지 짓밟아가는 이 야수의 무리들을 반드시, 반드시 복수해달라고 말이예요. 나는…》

익수는 더 읽지 못했다. 대원들도 그 이상 더 읽을것을 바라지 않았다. 읽은것만으로도, 들은것만으로도 그들의 증오는 송악산전체를 짓태우고도 남을것이였다. 전부대가 끓어올랐다. 설레이고 뒤번지다가 벌떡벌떡 용솟음쳤다.

《동무들! 원쑤를 물리치고 부모형제들이 흘린 귀중한 피값을 받아내자! 복수를 맹세하자!》

《복수하자!》

《복수하자!》

증오와 함께 눈물이 끓어오르고있었다. 눈물과 함께 억척의 힘이 솟음치고있었다.

위력한 포사격으로 적들을 전률시킨 포연이 안개발처럼 흩날리는 488. 2고지의 비탈면을 따라 맨 처음 변익수의 소대가 만세를 높이 부르며 치달아올랐다. 그뒤를 따라 산개대형을 짓고 무서운 고함소리를 내지르며 달려올라가는 경비대원들의 서리발돋친 총창이 최현의 쌍안경으로 확대되여 들어왔다.

분노와 복수의 파도, 사람인척 하며 떠도는 온갖 허접쓰레기들을 지구밖으로 내밀듯이 밀려오는 불가항력의 해일을 련상시키는 무서운 공격이였다. 고지를 타고앉았던 적들은 정신이 미쳐날 정도로 들부어진 포화에 얼얼해진데다가 달려올라오는 경비대원들의 대형에서 총알보다먼저 날아오는 울부짖음소리를 듣고 몸서리를 쳤다.

전설에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분노의 신이 무리를 지어 공격해오는듯 했다. 변변히 저항도 해보지 못한 적들은 화력이 아니라 기세에 눌리워 고지를 내주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장교놈들도 사병들을 내몰 생각은 까맣게 잊고 앞장에서 뺑소니를 치기 시작했다.

《잘한다, 잘해. 단숨에 점령해라. … 그렇지… 그렇게 달려야지.

장군님 혁명군대가 어떤 인간들인가를 알게 해라. 피에 주린 야수들앞에 어떤 무서운 맹수가 있는가를 똑똑히 알게 해주라!》

쌍안경을 들고 최현은 감시구의 턱을 두드리며 공격전에 내닫는 전사들이 자기 말을 다 듣고있기라도 한듯 연신 중얼거리였다.

《변익수… 잘해! 잘한다. … 송악산호랑이의 본때를 보여주라!》

마침내 488. 2고지의 정점에서 고지점령을 알리는 신호탄이 올랐다.

최현은 지휘소에서 뛰쳐나왔다. 련락병을 불러 그와 함께 고지로 오르기 시작했다. 참모장도 그의 뒤를 따랐고 최현의 명령으로 참모부에 떨어졌던 강태무도 군말없이 고지로 올랐다. 억대우같은 최현의 부관만이 체통에 어울리지 않는 사정조로 아직은 고지에 오르는것이 위험하다고 했다가 최현의 된추궁을 받았다.

《다 점령한 우리 고진데 뭐가 위험해! 무서우면 후방에나 가있어라!》

가는 길에 최현은 신속히 고지와 지휘부간의 전화선을 늘이라고 통신병들을 다그어댔다. 그리하여 전화선퉁구리를 안은 통신병들이 최현과 거의 동시에 고지정점에 올랐다. 전호에서는 경비대원들이 우리의 포격에 무너져내린 진지들을 한창 보수하고있었다.

최현은 참호에서 단단한 상체를 내밀고 쌍안경의 대물렌즈속에 패주하는 적들의 모양을 담았다. 적들은 아군의 사격권이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르러서도 아직 혼란을 수습하지 못하고 저마다 악청을 돋구며 왝왝 고아대고있었다.

《전화수! 포련대를 찾으라! 중대장은 진지보수작업을 중지시키라!》

강태무는 돌아보지도 않고 짤막하게 지시하는 최현의 거동을 반한듯이 지켜보았다. 군사지휘관다운 결패와 담력, 날카로운 분석력이 물질적인 그 무엇으로 배여나와 장령의 견장을 단 최현의 량어깨에 나래를 달아주는듯싶었다.

도대체 어쩌자는건가? 전투는 승리적으로 결속되였는데 포련대는 뭐고 진지보수중단은 또 뭔가?

《려단장동지! 포련대가 나왔습니다.》

최현은 송수화기를 틀어쥐였다.

《나 최현이요. 내 명령을 듣소. 이제 일체 화력으로 내가 지정해주는 좌표를 때리시오. 송악산앞계선 지도좌표 ㄴ에… 뭐라구?! 38선이남이라는건 나도 알고있소. … 뭐이?!》

인민군 포병지휘관이 저쪽에서 무어라고 반발하는지 최현의 노성이 터졌다.

《걷어치우시오. 동무들은 보위성에 소속된 정규군이지만 지금은 내 지휘권안에 있단 말이요. 명령대로 하시오. 사격은 즉시 개시하시오.》

송수화기를 떨구듯이 전화통에 내려놓고난 최현은 가까운데 눈에 띄우는 경비대원들에게 불길이 이글거리는 눈길을 휘둘렀다.

《자, 송악산호랑이들! 먹이가 냠냠하지 않나? 진지보수는 후에 하기로 하고 오늘은 놈들에게 혼뜨검을 내주자! 적들이 지금 반정신이 나간 기회에 답새기자는거야, 어때?》

병사들속에서 시뻘건 주먹들이 불쑥불쑥 치솟아올랐다.

《좋습니다.》

《밀고내려갑시다.》

《이 기세로 다도해까지 갑시다.》

《좋아! 우리 병사들이 배짱이 맞아. 그럼 전체 내 명령을 들으라!

중기는 분해하여 앞계선에 진출시킬것! 중대, 소대구분이 없이 모든 보총수들과 기관총수들은 내 구령에 따라 일제히 돌격할것! 38선을 넘어 개성으로 진격할것! 참모장은 시급히 송악산을 차지한 모든 구분대들에 일제히 공격으로 넘어간다는것을 알릴것!》

그다음 사색이 된 참모장이 무슨 말을 하려는것을 밀막으며 손가락을 곧추 펴서 남쪽을 가리켰다.

《나가자구. 공병들이 지뢰탐색을 하느라 수고할 필요도 없소. 적들의 퇴각로를 따라 그대로 밀고들어가면 되니까. 기회가 얼마나 좋은가 보오.》

《려단장동지, 이건 모험입니다. 그러다 전쟁이 일어납니다.》

《전쟁이 무서운가?》

최현은 곱지 않게 참모장에게 눈을 흘겼다. 눈치가 이쯤되면 최현의 기분이 극저온으로 떨어졌다는것을 의미했다. 그것을 모를리 없는 참모장이였지만 후과에 대하여서도 모르는척 할수 없었다. 자기네 려단장이 군사재판을 받고 철직되는것을 그는 바라지 않았다.

《이건 정말 모험입니다. 상부에서 알면 아마…》

참모장은 말끝을 맺지 못하고 이 자리에서 유일한 상급기관사람인 강태무의 눈치를 흘깃 살폈다.

《아마? 그래 아마 어찌될것이라는건가? 음?!》하고 따지던 최현도 참모장의 눈길을 쫓아 강태무에게 시선을 박았다.

강태무는 은근히 악이 치받쳤다. 참모장이 자기를 비겁한 투항주의의 계렬에 슬며시 잡아넣는것 같아 기운껏 소리쳤다.

《참모장동지, 난 저 남쪽에 안해를 두고온 사람입니다.》하고 일단 참모장의 《공모》를 바라는 눈길에서 벗어나고는 최현을 돌아보았다.

이 순간 강태무의 눈앞에는 밤마다 자기의 팔을 베고 품을 파고들던 안해의 모습이 떠오르고있었다. 헤여지던 그날 항변 한마디 않고 눈물마저 눈안에서만 보글보글 끓이던 안해, 그가 지금 어디서 헤매이고 어떻게 지내고있는지, 벌써 원쑤놈들의 마수에 걸려들어 백척간두에 놓인것은 아닌지… 김일성장군님의 품에서 잃었던 사랑을 되찾은 변익수를 알게 되기까지 했으니 안해의 운명에 대한 끓어오르는 애달픔을 참아내기가 어려웠다.

가자, 나가자! 내 사랑하는 안해가 있는 저 남쪽으로 한시바삐 한걸음이라도 더 달려나가자.

《려단장동지, 밀고나갑시다. 놈들을 죽탕쳐버리고 조국을 통일합시다. 전 려단장동지의 결심을 지지합니다.》

《좋소.》

최현의 묵직한 손이 강태무의 어깨를 철썩 갈겼다. 갈기는 그 힘이 여느때없이 세찼다. 그것은 믿음이 그만큼 강해졌다는것이다.

《좋아, 강태무.》하고 최현은 반복하여 말했다.

뒤계선에서 쿵쿵 포성이 울리기 시작했다. 최현의 지시를 받은 인민군곡사포들이 송악산전방의 적들을 갈겨대는 소리였다.

《내밀기요. 그 잘난 김석원이 하나쯤은 요정내도 좋고 못해도 좋지만 우리 장군님의 사상과 의지를 거부해나서고 무엄하게 총칼로 도전해나서려는자들은 꿈쩍 못하게 기를 눌러놓아야겠어. 참모장도 이 려단장이 장군님 사상과 의지를 거부하는자들과는 끝장을 보고야마는 성미라는걸 알아두는게 좋아.》

참모장에게 묵직한 저음으로 오금을 박듯 말하고난 최현은 꽁무니에서 권총을 빼들고 참호밖에 나섰다.

《즉시 전화로 나의 결심을 아니, 나의 행동을 본부에 보고하시오.》

《저도 같이 가겠습니다.》

참모장은 최현이 그렇다고 자기를 떼버리고 진격해나가겠다는 소린줄 알고 대번에 울상이 되였다.

강태무는 그가 말할 때와는 달리 마음은 여린 축이라고 생각했다.

《애들처럼 왜 이래?… 아, 누가 혼자 가겠다오? 전화를 걸고 뒤따라오란 말이요. 자, 경비대원들! 날 따라 돌격 앞으로!》

최현의 마지막말은 벌써 참호밖을 벗어나서 날아오는 소리였다. 최현의 구령과 동시에 송악산 여기저기에서 함성이 터지며 경비대원들이 뛰쳐일어나 아래로 내달렸다.

《조국을 통일하자!》

《미제를 몰아내자!》

구호는 누가 시키지 않았어도 그들스스로가 부르고있었다. 강태무는 무기를 든 팔에 넘쳐나는 무한한 힘의 용솟음을 느끼며 그 힘의 파력에 밀려 앞으로, 아래로, 남으로 내달렸다.

괴뢰1보사의 진지는 아비규환의 수라장이 되고말았다. 방금 송악산에서 쫓겨내려왔던 놈들은 고지에서 보았던 지옥의 사자들이 자기들을 덮치러 내려오는것을 계속하여 보게 된것이다. 공화국경비대가 38도선을 넘어오리라고는 꿈에도 생각 못했던 놈들은 파도에 밀려나는 검부레기들처럼 밀리고 흩어져 개성시로 퇴각해들어갔다.

송악산에서 개성시 중심부까지는 약 시오리정도 되였다. 짧다면 짧고 멀다면 끝없이 먼 공간지대를 거침없이 돌파해나오는 경비대의 산병선을 포대경으로 지켜보던 김석원은 《사이껜! 사이껜!》하고는 진저리를 쳤다. 저희들의 진지가 물먹은 담벽처럼 허물어지고 벌써 경비대의 선두부대는 시가입구로 육박해오고있었다.

(이것은 전쟁이다, 이것은 내탓이 아니다. 미련한 로버트와 빠꾸샤 같은 채병덕이탓이다. 저 사이껜은 그저 물러가지 않을것이다.)

김석원은 사단장지휘소에 명령을 접수하러 련이어 뛰여들어오는 장교들의 눈빛에서 하나같이 퇴각명령을 바라는 간절한 기대를 읽을수 있었다.

《형세는 이미 기울어졌소. 개성시내는 일단 내주어야 할것 같소.》

명령도 아닌 김석원의 정황분석을 명령으로 재빨리 가공하여 들은 장교들은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벌써 지휘소밖으로 뛰여나갔다. 사방에서 퇴각을 엄호하는 총소리와 부릉거리는 자동차발동소리가 째지게 터져나왔다.

김석원은 지휘소의 콩크리트벽체에 경비대의 보총탄알이 날아와 박히는 소리를 들었다.

(더는 지체할수 없다. 나부터 피해야 한다. )

밖에 나오니 눈치빠른 운전사는 벌써 발동을 걸고 대기상태에 있었다.

《부관!》

김석원은 참모부건물밖으로 얼핏 나왔다가 경비대의 총탄세례에 머리도 못 들고 엎드리는 자기 부관에게 상관다운 아량을 베풀어 자기 차를 가리켰다.

부관이 죽기내기로 달려 차의 뒤좌석에 뛰여오르자마자 바퀴가 요란하게 헛바퀴질을 몇번 하더니 인차 앞으로 쑥 밀려나갔다.

《사단장님, 어떻습니까? 전쟁인가요?》

부관이 귀바투 불어대는 입김이 볼편을 스치자 김석원은 와뜰 놀라 동문서답을 했다.

《아니야, 아니야! 난 명령을 수행했을뿐이야. 일이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을 못했지. 생각은 저 로버트가 했어야 하는건데 그는 머리만 있고 뇌수는 없는 얼간이야.》

계속되는 폭음과 연기, 총소리에 진저리가 난 김석원은 마음내키는 대로 마구 욕을 하고 신경질을 부렸다.

《정말 전쟁입니까?》

《자넨 이 형세를 보면서도 그러나? 북조선측에서 돌아서지 않는 이상 전쟁은 이미 시작된걸세.》

그들이 탄 승용차는 무너진 어느 벽돌집의 잔해를 넘느라고 껑충 기울어졌다가 물속에 곤두박히듯 급기야 뚝 떨어져내렸다. 기관실쪽에서 무엇인가 부러지고 빠져달아나는듯 한 소리가 들렸지만 그럭저럭 멈추지 않고 잘 달렸다. 녹이 쓴 철탑과 전선대와 유리창이 산산이 깨여진 어느 건물을 지나고 옛날 정몽주가 철퇴에 맞아죽었다는 선죽교를 가까이 바라보며 험한 길에 뒤치고 부대끼며 부지런히 꼬리를 사리였다.

김석원은 운전사에게 선죽교를 멀리 에돌아가자고 일렀다. 미신때문에 그런것은 아니지만 어쩐지 그 다리를 가까이하다가는 자기도 정몽주처럼 철퇴에 맞아죽을것 같아 소름이 끼쳤던것이다.

그 시각 변익수의 지휘를 받는 선두대오는 개성시입구에 들어서서 단말마적발악으로 자기들의 퇴로를 엄호하는 적들과 치렬한 총격전을 벌리고있었다.

강태무는 진격해오는 동안 어느새 또 이 변익수의 소대와 휩쓸리게 되였다. 그는 죽어넘어진 적병놈의 시체에서 카빈총을 벗겨내여 그것을 들고 결사전에 내달았다. 시가에 진입했을 때 끊어진 철조망곁에서 엠식소총을 들고 변익수를 조준하던 놈을 단방에 쏘아맞혔다.

익수는 그것도 모르고 돌포장이 된 시가의 중심도로를 타고 대원들의 선두에서 내달리며 따발총을 휘두르고있었다. 백화점인듯 한 묵직한 건물앞에 쌓아놓았던 포대에서 적병 두놈이 비명을 지르며 너부러졌다.

《엣다, 받아라. 은파산에서 죽은 우리 친구들과 인민들의 복수다.》

변익수의 따바리에서는 죽음의 불줄기가 멈춤없이 터져나왔다.

상전들에게서 후위를 맡으라는 죽음의 명령을 받은 적들은 이래도 죽고 저래도 죽을바엔 싸우다 죽자는 본새로 건물 하나를 놓고도 맹렬하게 저항했다. 그들이 보기에는 성난 맹수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이 지옥의 사자들에게서 포로로서의 대우를 바란다는것은 제 손으로 제 이마빡에 총구를 들이대는것보다도 못한 어리석은짓이였던것이다.

강태무는 몇걸음앞에서 뛰여가던 변익수의 다리에서 피가 튀여나며 시허연 복사뼈같은것이 뭉청 날아나는것을 보았다. 그와 동시에 변익수는 다리를 푹 꺾으며 주저앉았다.

《익수!》

강태무가 달려와 붙안았을 때 익수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다리만이 아니라 옆구리에서도 피가 콸콸 쏟아져나오고있었다. 그래도 미적지근 하게나마 숨이 붙어있는것이 반가왔다. 위생병이 달려와 익수를 인계받았다.

강태무는 카빈총을 버리고 익수가 들었던 따바리를 휘둘러댔다. 안해의 수배령이 내린 남조선의 석간신문이 느닷없이 또 떠올랐다. 이제 개성을 점령하고 련이어 동쪽으로 방향을 돌려 홍천으로 공격하자! 나를 믿고 따라온 부하들의 고향이 있고 내 사랑하는 안해가 어딘가에 숨어서 빛도 못 보고 살고있을 그곳으로 진격하자! 그다음은 련이어 서울을, 부산을, 제주도를… 그래서 나의 아름다운 희망과도 같은 인주도, 인주와 같은 불행한 남조선민중모두도 사랑과 정으로 충만되고 너나없이 장군님의 축복속에 사는 이 나라에서 마음껏 생활을 누리게 하자. 그것을 위해 나는 생명의 마지막순간까지 총을 놓지 않고 진격할것이다. 한생을 장군님의 총쥔 병사로 살것이다.

강태무는 격전장을 휩쓰는 경비대원들에게 이미 수십번도 더 웨친 구호를 반복하여 부르짖었다.

《병사들! 미제를 몰아내고 조국을 통일하자! 원쑤를 천백배로 복수하자!》

광란하는 불의 파도가 개성시의 중심부로 몰려들고있었다. 돌진하는 경비대원들의 화약내 밴 얼굴들과 더불어 시가해방의 희열과 승리자의 환희가 시가를 메우며 들어찼다. 백화점지붕우에서는 벌써부터 누구인가 올리띄운 람홍색공화국기가 휘날리고있었다.

총소리와 포소리에 움츠러들었던 개성시민들이 하나, 둘 영문을 알아보려고 밖으로 나오고있었다. 시가를 점령한 경비대원들은 몇시간사이에 포연에 그슬린 적동빛이 된 얼굴에 하나같은 미소를 그리고 하나같이 꼭같은것을 생각하고있었다.

(이제는 어디를?…)

그들은 전쟁은 이미 시작되였다고 생각하고있었다. 강태무도 역시 생각은 그와 다를바 없었다. 다만 그는 지금 최현려단장이 무엇을 생각하고있겠는지가 몹시 궁금할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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