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제 7 장

 

2

 

리윤재가 서울에 이사한 후 제집이라고 가져보지 못하고 남의 집을 세내여 살다나니 집고생이 몸에 걸친 헌옷처럼 노상 붙어다니는것이였다.

식구가 자꾸 불어나고 아이들이 커가면서 집이 좁아 옹색한것은 더 말할것도 없었지만 요즘 경제의 불황으로 땅값과 집값이 다락같이 올라 집주인이 집을 몇해전에 눅은 값으로 전세를 주고 묵여놓는것이 행해서 그런지 전세계약기간이 지난것을 구실로 집을 아예 사거나 그러지 않겠으면 당장 비워달라고 독촉이 성화같았다.

리윤재로서는 이왕 집을 살바에야 쓸모없고 옹색한 이런 집을 살 생각은 없었고 그렇다고 온전한 집을 살 돈은 없었다. 전세로 낸 돈을 도로 찾는다 해도 그 돈으로 이제는 이만한 집도 세내지 못할것이다. 하여간 이 집은 곧 비워줘야 하겠으니 어지간해서 마음이 동하는 일이 없는 그도 집근심으로 안절부절을 못했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안국동네거리를 지나 재동으로 가다가 골목길 한구석에 《복덕방》(집이나 땅을 사고 팔거나 빌려쓰도록 소개해주는 곳.)이라고 한자로 쓴 천휘장을 드리운 방을 보고 무심코 들려보았다.

한칸 남짓한 좁은 방에 50대의 중늙은이가 심심풀이로인지 인찰지(세로 줄칸을 친 얇고 질긴 종이의 한가지)로 끈을 꼬으며 앉아있고 그의 옆에는 손때가 묻고 보풀이 인 《고문진보》(중국의 옛 문인들의 작품을 모은 책)가 한권 놓여있었다. 《고문진보》같은 한서를 읽는것으로 보아 방임자가 어지간히 식자가 있는 사람같았다. 그는 인사하는 상대자를 피끗 거들떠보고는 제 할일을 계속하며 퉁명스럽게 물었다.

《어떻게 오셨소?》

《집 하나 구해볼가 해서 왔는데요.》하고 리윤재가 대답했다.

《사자는거요?》

《값이 적당한것만 있으면.》

《집값이 잔뜩 오를 때 집을 판다면 몰라도 구할건 뭐요.》

그의 말본새는 조금도 집거간군다운데가 없다.

리윤재는 더 이야기할 맛이 없어 무료한 나머지 《고문진보》를 끄당겨 책장을 넘기다가 문득 도연명(중국 진나라말 송나라초의 시인)의 《귀거래사》(고향으로 돌아간다는뜻으로서 도연명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지은 글제목)가 펼쳐졌다. 띠염띠염 읽어보는데 복덕방주인이 불쑥 물었다.

《그 글이 마음에 드시오?》

《마음에 안 듭니다.》

《그건 왜? 천하의 명문인데.》

《좋은 문장에 훌륭한 사상이 담겨야 그게 정말 명문이지요. 그런데 이 <귀거래사>에는 세상을 외면하는 은둔자의 넉두리밖에 더 있나요.》

《란세에서는 그것도 하나의 사는 길이 아니겠소.》

《그렇다고 도피할수야 없지요. 나쁘면 바로잡으려고 하는게 사람의 본성인데 그걸 누르고 <귀거래해여(돌아가리라)!> 하고 탄식이나 하는건 완전한 굴복이지요.》

《하긴 그래, 사람이란 나쁜 세상에도 곧 익숙되거던. 외면하는건 잠간이야. 500원 하던 집값이 천원으로 껑충 뛰여오를 땐 눈이 휘둥그래져서 그게 남의 일처럼 보이다가도 또 2천원으로 뛰여오르면 천원이였던것이 당연한것으로 여겨지고 어느덧 익숙해지거던.》

《사람만큼 환경에 잘 익숙되는게 없지요. 그러니 사람이 상상도 못해보던 감옥살이에도 익숙해지는게 아닙니까.》

《로형은 감옥살이를 해보셨소?》

《한 3년 살았지요.》

《무슨 일로?》

《3. 1운동에 관계했다가.》

《그래요?》

복덕방주인의 태도가 순간에 달라졌다. 그는 몸가짐을 바로하고 두손을 방바닥에 짚으며 정식으로 통성을 청했다.

《나는 김한규라고 하오. 본관은 전주고 경기도 광주태생이요.》

리윤재도 맞절을 하며 자기 소개를 했다.

그러자 김한규가 신상이야기를 시작했다. 령락한 량반집에서 태여난 그는 청소년시절을 한문공부와 과거보기에 다 탕진했고 겨우 과거 소과에는 급제했으나 벼슬에 오를 길이 나지지 않아 그저 생원이란 명칭 하나만 벌고 살았으며 시골에서 서당훈장으로 생계를 유지했다. 일제의 강압과 날조로 《한일합병》후 초기에는 왜놈들이 한문과 유교경전이나 가르치는 서당이 저희들의 식민지통치에 리롭다고 생각하여 서당을 장려했는데 그것을 기화로 뜻있는 사람들이 서당을 반일애국사상을 고취하는데 리용했다. 그러자 왜적은 3. 1인민봉기 전해 2월에 《서당규칙》을 공포하고 반일적인 서당들을 무데기로 페쇄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0년전에 서당을 페쇄당한 김한규는 설상가상으로 안해까지 병사하자 고향에서 더 살기가 괴로와 외아들을 데리고 서울로 올라왔다. 서당물이나 좀 먹다가만 아들은 장돌맹이로 굴러다니는 사이에 막된 인간으로 되여버렸고 장가를 들자 며느리는 가정분쟁의 씨앗을 뿌렸고 아들은 애비에게 남처럼 되고말았다. 외아들에 효자 없다는 옛말이 그르지 않다. 아들이 한밑천 장만하여 남대문시장에 점방을 하나 차리고 앉아 부자간은 남남처럼 딴살림을 시작했다. 애비의 《봉건도덕》이 가치관도 도덕관도 물질화된 자식세대에게 절대로 통할리 없었다. 모든것을 다 잃어버린 김한규에게는 남은것이 집 한채뿐이였다. 길로 향한 방문에 《복덕방》이라고 써붙이고 김생원이 집거간군으로 되고말았다.

《다 타락한 시속의 탓이지요.》 하고 김한규가 한숨을 쉬였다.

《백의민족의 미풍량속까지 다 마사버린 섬오랑캐의 탓이지요.》하고 리윤재가 한마디 덧붙였다.

김한규는 머리를 끄덕이며 리윤재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그제서야 생각난듯 말했다.

《보아하니 로형은 돈이 넉넉한것 같지 않은데 값이 눅고 쓸만 한 집은 구하기가 조련치 않아요. 하여간 나도 좀 더듬어보겠으니 며칠후에 한번 더 와보시오.》

이렇게 이날은 둘이 한담으로 서로의 리해만 두터이 하고 헤여졌다. 사흘후에 리윤재가 복덕방에 다시 찾아갔더니 김한규가 쓸만 한 집이 있으니 한번 같이 가보자고 했다.

둘이 한 10분쯤 걸어서 간 곳은 화동이였다. 화동에서 계동으로 가는 행길에서 벗어나 기다란 골목으로 들어가니 막다른 집에 《화동 129번지》라는 문패가 붙어있다. 김한규가 주인을 만나서 이미 이야기가 있은듯 집을 보러 왔다고만 말하고 집안으로 리윤재를 안내했다.

집은 초가집인데 웃채와 아래채가 부엌을 사이에 두고 ㄷ자형으로 서있다. 웃채에는 안방과 건너방이 마루를 끼고있고 안방뒤에는 조그만 골방이 하나 더 붙어있다. 아래채에는 부엌에 잇닿아서 방 둘이 있는데 대문에 가까운 방은 사랑방처럼 되여있다. 이상하게도 이 집은 앞마당은 비교적 좁은데 뒤뜨락은 엄청나게 넓다. 이전에는 여기에도 집 한채가 들어서있었던것 같은데 이제는 집은 헐어버린듯 없고 넓다란 뒤뜨락에 장독대 하나가 오도마니 서있다. 그뒤는 인가가 없고 제1고보의 뒤마당과 잇닿아있다. 집은 비록 초가집이지만 제법 쓸모도 있고 뜨락이 넓어서 시원해보였다.

《집이 마음에 드시오?》 하고 김한규가 물었다.

《집은 이만하면 괜찮은데 값이 어떨는지.》

《값은 천팔백을 부르는데 살 생각만 있으면 흥정해봐야지요.》

천팔백원이라는 말에 리윤재는 억이 막혀 아무말도 못했다. 김한규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만 한 값어치는 가지요. 나는 집보다도 이 고장이 대단히 마음에 들어요. 지금도 꽃화자로 불리우는 이 동네가 예전에는 홍현이라 불리워 붉은 꽃이 많은 고장이였음을 말하지요. 이 집뒤가 지금은 제1고보지만 그전에는 바로 여기에 갑신정변의 김옥균의 저택이 있었다오. 사람도 멸족하고 집도 흔적없이 없애버렸지만 그 어른의 넋이야 어디 가겠소. 저 앞쪽에는 보다싶이 유명한 안동별궁이 있고 오른쪽에는 사륙신의 하나인 성삼문의 옛 집터가 있지요. 살아서는 불우했지만 사후에는 이름을 떨친 명사들의 한복판에서 사는셈이 아니겠소.》

리윤재는 새삼스럽게 그를 바라보았다. 이것은 단순히 집을 사고팔게 하자는 거간군의 말이 아니였다. 더우기 일부 력사가들까지도 김옥균올 친일파로 보고있는 조건에서 갑신정변이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가지는 의의를 옳게 인식하지 않고서는 김옥균을 정당하게 평가할수 없다. 그런데 력사가도 아닌 김한규가 그를 깊이 리해하고 동정하고있지 않는가. 이것은 그의 식견과 됨됨을 말해주는것이라고 리윤재는 생각했다.

그후 김한규가 집주인과 직접 흥정해서 집값을 3백원이나 깎았다. 리윤재는 그 집을 기어이 사기로 결심하고 돈마련에 분주했다. 한성도서주식회사에서 자기의 저서 《문예독본》상권 인세(발행자가 저자나 필자에게 책의 발행부수와 정가에 기초하여 치르는 돈)도 받고 전세돈도 찾고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보았지만 도저히 집값이 차지 않았다. 마침 김해로 내려가지 않고있던 정성택이 집사는데 보태라고 5백원을 선뜻 내놓았다.

그러나 남에게서 신세지기를 죽기보다 싫어하는 리윤재는 그 돈을 거저 가질 생각은 없었다. 그러니 사방에 빛이 상당한 액수에 달했다.

하여간 간고하게나마 집을 사고 그달안으로 이사를 했다. 리윤재가 서울에 올라온지 7년만에 처음으로 제집을 쓰고살게 된것이다.

가난한 이사짐에서 책짐이 절반이상을 차지했으니 새 집에서 짐을 정리하는데서도 책짐을 정돈하는것이 가장 성가신 일이였다. 다행히도 안방에 붙은 골방이 있어 거기에 옛 신문잡지와 일부 책들을 넣고나니 안방의 서가들이 상당히 정돈되였다.

큰 가족의 이사짐을 방마다 제자리에 놓고 장독대에도 크고작은 독과 항아리들을 가쯘히 놓아 새 집의 살림살이가 어지간히 안착된 어느날 김한규가 성냥을 사들고 찾아왔다.

이 집을 사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을뿐아니라 돈을 받는것조차 거절한 김한규는 이 집 녀인들에게서 은인처럼 떠받들렸고 더우기 그의 례절바르고 점잖은 거동은 김해댁의 각별한 호의를 샀다.

그런데 그후에도 김한규가 이 집에 발걸음을 자주 하게 된것은 리윤재와의 친교가 두터워진데도 원인이 있지만 그의 장서가 마음을 끌었기때문이다. 두칸짜리 안방의 두벽을 꽉 채운 장서가 그의 호기심을 끌었고 특히 큰 책장 아래당반에 차곡차곡 쌓아놓은 한서들을 보고 그는 군침을 삼키였다.

《이 책들을 좀 빌려봐도 일없겠소?》

《나는 시간과 책에는 좀 린색한 사람이지만 김생원에게만은 례외로 하리다.》

그는 리윤재가 베이징에서 올 때 가져온 《시경》을 빌려다보더니 그후에는 리윤재의 가장 애독하는 박연암의 《열하일기》, 《충무공전서》같은 책을 빌려다보기 시작했다.

어느덧 김한규는 이 집에 무상출입하는 사람으로 되였고 그후 그가 자주 찾아온다고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의 내색하지 않는 마음속을 제일먼저 읽은것은 정씨였다.

어느날 그가 시어머니에게 조용히 말했다.

《어머니, 요새 김생원의 눈치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뭐가?》

《시누이에게 마음을 두고있으면서도 꿀먹은 벙어리처럼 구는것 같애요.》

《글쎄.》

《어머니가 한번 떠보세요.》

《그거야 어렵겠냐. 사람이야 점잖고 나무랄데 없지.》

범도 제 소리를 하면 온다더니 마침 김생원이 활개짓을 하며 집안에 들어섰다. 이제는 그가 집주인을 찾고 들어오는 법도 없어졌다.

《어, 벌써 이리 더운가.》하며 그가 손부채질을 하며 김해댁에게 랭수 한그릇을 청했다.

《들어오기 바쁘게 랭수부터 찾는걸 보니 어디서 잘 자신 모양이군.》하고 김해댁이 부엌에 대고 소리쳤다.

《얘, 랭수 한그릇 떠오너라.》

마침 부엌에서 동자질을 하고있던 금옥이 물대접을 들고와서 김한규에게 공손히 주었다. 그것을 천천히 받으며 금옥을 지그시 바라보는 그의 눈초리를 김해댁이 예리하게 포착했다. (옳거니!) 하고 생각한 김해댁이 빙그레 웃었다.

《왜 장승처럼 서만 계시오. 애아범이 이제 오겠는데 우선 여기 좀 앉아서 땀을 들이시구려.》하고 김해댁이 마루를 가리켰다.

김한규가 모시두루마기자락을 홱 뒤로 제끼며 마루에 걸터앉았다. 잠시 뜸을 들이던 김해댁이 넌지시 말을 꺼냈다.

《김생원은 언제까지 그리도 구차스런 홀애비생활을 하시려우?》

《그거 다 팔자소관이지요.》

《팔자는 무슨 팔자, 팔자를 고치게 내가 좋은데 소개하라우?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는데.》

《에이, 관두시오. 남걱정 말고 댁의 따님이나 치우시지요.》

《그럼 그 애 소개나 좀 하시지.》

《정말인가요? 어머니생각이 정 그렇다면 내 한번 나서보리다.》

《그래여, 김생원은 내가 소개하고, 우리 집 금옥이는 김생원이 소개하고 … 그러면 만사가 형통이지.》

김해댁이 웃고 김한규도 따라웃었다. 그가 한참 앉았다가 돌아가자 김해댁이 금옥을 불러 물어보았다.

《네 생각엔 어떻냐? 김생원이 너를 마음에 두고있는것 같은데.》

《아유, 저보다 몇살이나 우고 갈지자걸음을 하는 그런 령감태기가 무슨 뚱딴지같은 생각을 다 해요.》하고 금옥이 피식 웃었다.

《얘, 공연한 소리 말아. 네 나이도 벌써 마흔이다. 녀자가 마흔이면 남자 쉰나이에 비길바가 아니다. 그래, 한생을 이렇게 청승맞게 살겠느냐.》

나이 마흔에 오래비에게 얹혀사니 누가 뭐라지 않아도 청승맞지 않을수 없다. 그래서 속이 꼬부라지고 쩍하면 노염을 타서 집에서 뛰쳐나가지만 벌어먹을 일이란 남의 집 부엌데기노릇밖에는 할 일이 없다. 그런것을 두번이나 오레미가 찾아가서 빌다싶이 하여 데려왔지만 가나오나 마음 편치않기는 매일반이였다. 그러니 어디 적당한 자리에 재가나 해볼가 하는 생각도 없지 않았으나 입에 맞는 떡이 그리 흔할리 없었다. 그는 아직 아이 한번 낳지 않은 청상과부라 마흔이지만 녀자로서 몸이 처녀처럼 꼿꼿한채로 있고 미인축엔 안 들지만 눈이 크고 억실억실하여 보기 좋은편이다. 김생원이 금옥을 탐냈다면 이런 점도 보았겠지만 그보다도 존경하는 친구 리윤재의 누이동생이라는 점이 더 중요했을것이다.

금옥이 더는 말이 없자 김해댁은 이 일을 기어이 성사시키리라고 마음속으로 작정했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민족의 얼 제71회 민족의 얼 제70회 민족의 얼 제69회 민족의 얼 제68회 민족의 얼 제67회 민족의 얼 제66회 민족의 얼 제65회 민족의 얼 제64회 민족의 얼 제63회 민족의 얼 제62회 민족의 얼 제61회 민족의 얼 제60회 민족의 얼 제59회 민족의 얼 제58회 민족의 얼 제50회 민족의 얼 제57회 민족의 얼 제56회 민족의 얼 제55회 민족의 얼 제54회 민족의 얼 제53회 민족의 얼 제52회 민족의 얼 제51회 민족의 얼 제49회 민족의 얼 제48회 민족의 얼 제47회 민족의 얼 제46회 민족의 얼 제45회 민족의 얼 제44회 민족의 얼 제43회 민족의 얼 제42회 민족의 얼 제41회 민족의 얼 제40회 민족의 얼 제39회 민족의 얼 제38회 민족의 얼 제37회 민족의 얼 제36회 민족의 얼 제35회 민족의 얼 제34회 민족의 얼 제33회 민족의 얼 제32회 민족의 얼 제31회 민족의 얼 제30회 민족의 얼 제29회 민족의 얼 제28회 민족의 얼 제27회 민족의 얼 제26회 민족의 얼 제25회 민족의 얼 제24회 민족의 얼 제23회 민족의 얼 제22회 민족의 얼 제21회 민족의 얼 제20회 민족의 얼 제19회 민족의 얼 제18회 민족의 얼 제17회 민족의 얼 제16회 민족의 얼 제15회 민족의 얼 제14회 민족의 얼 제13회 민족의 얼 제12회 민족의 얼 제11회 민족의 얼 제10회 민족의 얼 제9회 민족의 얼 제8회 민족의 얼 제7회 민족의 얼 제6회 민족의 얼 제5회 민족의 얼 제4회 민족의 얼 제3회 민족의 얼 제2회 민족의 얼 제1회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