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4장

3

허줄한 옷차림의 젊은 사나이가 주경포를 찾아왔다. 련두평수전공사장에서 인부로 일하는 정이돌이였다. 주경포 못지 않게 날파람이 있고 눈찌가 감때사나와보이는 정이돌은 백두산으로 갈 동료들중에서 주경포와 쌍벽을 이룬다고 할수 있는 인물이였다. 천남면에 집을 두고있는 그는 씨름판에서 둥글황소를 두번씩이나 상으로 받은적도 있다고 했다.

《자네를 데리러 왔네.》

정이돌이 말했다.

《우리 친구들이 코놓이로 메돼지를 한마리 잡았더군. 칠팔십키로는 실히 될만 한 햇놈인데 만살이 졌다네.》

《거 좋구만. 메돼지고기추렴이라…》

《어서 가세.》

주경포는 련두평으로 돌아오기는 했으나 아직까지 사람들에게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가는 일이 쉽지 않다는데 대해서는 말할수 없었다. 너무나 큰 실망을 주는것 같아서였다. 다만 일행가운데서 주경포와 함께 절대적인 권위를 행사한다고 할수 있는 정이돌이에게만 사실을 그대로 이야기하였다. 초평덕에서 행상녀인을 만나게 된 일이며 장군님부대로 찾아가는 도중 왜놈군대와 맞다드는 경우나 식량이 떨어지는 경우에 대한 행상녀인의 걱정 그리고 조직의 보증과 추천이 있어야 한다는것 등에 대하여… 물론 조직관계자대표들의 모임과 리기율이나 남수와 같은 천도교청년들의 행방을 찾을데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때 정이돌은 아무 대꾸도 없이 줄곧 땅바닥에다 나무꼬챙이로 무슨 그림같은것을 끄적이기만 할뿐이였다. 얼마후에야 그는 꼬챙이를 집어던졌다.

《좀 생각해봐야겠네. 헌데… 친구들한테는 서뿔리 말하지 말았으면 하네. 자칫하면 동요가 일어날수 있으니까.》

《자네의 말도 일리는 있네만 시간을 끌수는 없네.》

주경포는 초평덕의 행상녀인이 이제 곧 조직관계자들의 대표들로 비밀모임을 소집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했다.

《난 백두산으로 가는 문제를 두고 우리끼리 의논해본 다음 대표들과 함께 비밀모임에 참가하기로 했네. 장군님의 새 방침을 전달하게 된다는 비밀모임이여서 거절할수 없었네.》

《하여튼 알겠네.》

정이돌이와의 이야기는 이렇게 끝났다. 그러나 정이돌은 그때부터 가타부타 더 말이 없었다. 수전공사장으로 돌아가서는 저녁마다 진행되는 야학에도 얼굴을 내밀지 않았다. 그자신이 마음속의 혼란을 이겨내느라 무진 애를 쓰는것 같았다. 정이돌의 침묵은 주경포를 무척 당황하게 만들었다. 주견이 강한 그도 이번에는 단독으로 어떤 결심도 내리기 힘들었다. 초조감, 긴장감, 불안감… 그러다가 오늘 드디여 벙어리마냥 내처 입을 꾹 다물고있던 정이돌이 주경포를 찾아온것이다. 전에없이 서글서글한 정이돌의 언행은 단순히 메돼지고기추렴때문만은 아닐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정이돌이 주경포를 안내해간 곳은 마을의 농가가 아니라 수전공사장에서 멀리 떨어진 으슥한 개울가의 숲속이였다. 거기에는 백두산으로 가게 되여있는 스무나문의 사람들이 빠짐없이 다 와있었다. 벌써 한켠에서는 가죽을 벗겨낸 메돼지의 내장을 끌어내고 각을 뜨느라 여념이 없고 한켠에서는 커다란 돌가마를 걸어놓고 불을 피우고있었다.

《이런 일두 오래간만인데 우리도 가서 끼여들자구.》

《가만!》

주경포는 정이돌의 팔을 잡아 멈춰세웠다. 그리고는 날카로운 목소리로 말했다.

《난 먼저 자네의 결심을 듣고싶네. 그냥 이렇게 늑장을 부리는덴 참을수가 없단 말이네.》

《그럼 저 봇나무밑으로 가자구.》

정이돌이도 주경포의 요구에 선선히 응했다.

두사람은 사람들과 좀 떨어진 봇나무아래에 가앉았다.

정이돌이 감회깊게 말했다.

《우리가 만난지도 벌써 두달이 돼오는군.》

《벌써 그렇게 됐던가?》

주경포는 속구구를 해보고는 탄성을 질렀다.

《정말 두달이군. 세월두 빠르기란…》

《자네한텐 빠르겠지만 우린 무척 지루했네. 어쨌든 자네가 우릴 선뜻 받아들인건 참 고맙네.》

《그러지 말게. 고마운건 도리여 나였네.》

주경포의 말은 진심이였다. 그는 정이돌이네를 깊이 파악하고 손잡은것이 아니였다. 그들스스로가 주경포를 찾아온것이다.

지금도 그때일을 생각하면 웃음이 난다. 어느날 문조리에 있는 주경포를 만나러 낯모를 사람이 찾아왔었다.

《난 정이돌이라구 하오. 련두평수전공사장의 인부요. 난 직통배기니 그대로 말하겠소. 권투도 배우구 뜻도 같이하고싶어 찾아왔소. 야학에도 착실히 다니구… 받아주겠소?》

《나를 어떻게 아오?》

《들은 소리가 좀 있소. 경포군이 권투와 골받이재주가 대단하다는것뿐만도 아니요.》

정이돌은 풍산땅이 낳은 유명짜한 세 인물을 꼽았다. 천남면의 김빠이, 안수면의 리인모, 능귀면의 주경포…

《난 자네가 〈요시찰〉대상이라는것도 알고있소.》

《잘못 알았구만. 난 김빠이나 리인모한테 대비할만 한 사람이 못되오. 대신 자넨 정말 간단치 않은 사람 같은데…》

주경포는 경계심이 바늘끝처럼 예리해졌다.

놈들의 간계가 아닐가?

놈들이라면 이런 간계쯤은 얼마든지 꾸며낼수 있는것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오. 난 왜놈들 편이 아니요.》

정이돌이 자기를 의심쩍게 여기는 주경포의 속내를 눈치챘던지 불만스레 흘겨보며 따지고들었다.

《우릴 이끌어주겠소? 거절하겠소?》

《우리란건 또 뭐요?》

《내 친구들이요, 아흡명. 다 수전공사장 인부들이요.》

아흡명! 왜놈들의 간계는 아닌것 같다. 왜놈들이 이 주경포의 속내나 알아보자고 이렇게 아흡명이나 되는 인원을 내몰수는 없는것이다.

아흡명이면 대단한 력량이다. 믿을만 한 사람들에 기갈이 난 주경포는 그들을 그대로 놓쳐버릴수는 없었다. 그러나 조심해야 했다.

《자네들의 진짜목적을 알구싶소.》

《거기에 뭘 모를게 있소? 왜놈들과 싸워보자는게요. 싸워두 본때있게!》

《난 말만으로는 믿을수 없소.》

《그럼 검토해보면 되잖소? 재간껏…》

제법 여문 소리를 하는걸!

《좋소, 찬성이요.》

이리하여 주경포는 그들한테 야학글과 권투를 배워주는 한편 엄격한 검토를 련속 들이댔다. 결과는 예상했던것보다 훨씬 훌륭했다. 정이돌이네 패들은 아무리 어려운 일감을 맡겨주어도 못해낸다는 법을 몰랐다. 이미 주경포가 손잡고있는 청년들보다 얼싸하게 나았다. 말하자면 주경포에게 보배덩이들이 넝쿨채 굴러든것이다.

만족하게 검토를 끝낸 주경포는 그때야 정이돌이네한테도 김일성장군님부대를 찾아가고야말겠다는 자기의 결심을 터놓았다. 모두들 만세를 부르며 절대찬성을 부르짖었다. 그리고 그때로부터 출발준비도 본격적으로 밀고나갔던것이다.

《경포군.》

정이돌이 말을 꺼냈다.

《사실 우린 오늘 경포군과 작별하자구 하네.》

《작별이라니?》

《우린 우리끼리 장군님부대를 찾아가기로 했네.》

주경포는 까딱 움직이지 못했다.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겼음을 알아차렸다. 한마디로 조직의 보증과 추천이 있어야 혁명군부대에 입대할수 있다는데 대한 이들의 명백한 반발이였다. 그것은 충분히 리해되는 일이였다. 자기도 초평덕에서 행상녀인의 말을 들었을 때는 그렇게 반발했었다. 그러나 왜서인지 이 순간에는 그 행상녀인의 말이 백번 옳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홍설란을 만나러 온 녀인, 눈빛으로 천도교인들과의 충돌을 해서는 안된다고 말해주던 녀인, 홍설란의 랭대를 받으면서도 정성껏 시중을 들어주던 녀인… 이제 와서 주경포는 그 녀인의 말이 다 옳으며 그 녀인이 바라는대로 정이돌이네를 깨우쳐주어야 한다는 의무감을 느꼈다.

《장한 생각들을 했군.》

《내 말을 들어보게. 사실 우린 큰 기대를 품구 자네를 찾아왔었네. 듣던바 그대로 자넨 우리 마음에 들었네. 왜놈들을 미워하구 혁명을 하겠다는 각오두 나무랄데 없구… 더구나 자네가 김일성장군님을 찾아갈 결심을 내놓았을 땐 우리와 뜻이 꼭같아 만세를 부르며 자넬 따르기로 했었네. 헌데 지금은 실망하구 싫증나 하지.》

《입대절차를 밟아서 장군님부대로 가는것이 옳을듯 하다는 내 말이 거슬린다는건가?》

《그런건 아니네만 우린 자네가 말한것처럼 그렇게 엄정한 절차를 밟지 않고도 장군님을 찾아갈수 있네. 내 말을 마저 듣게.》

정이돌은 자기의 충고에 불끈해서 우뜰거리는 주경포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말이 났던김에 한마디 꼭 하고싶은데 자네한텐 인정이라는게 꼬물만큼도 없는게 큰 탈이야. 자넨 검토를 구실로 우리를 아슬아슬한 죽음의 고비로 내몰면서도 눈섭 하나 까딱않더군. 어쩌면 사람이 그다지도 랭혹할수 있나? 그렇게 놀아대서는 사람들을 다 잃기마련이구 조직도 꾸리지 못하게 되네. 제발 그 성격을 좀 고치라구.》

《아니, 난 못할짓을 했다구는 인정할수 없네.》

주경포는 열이 나서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우린 서로 만난지 얼마 안되구 파악두 없네. 비록 뜻을 같이하기로 했지만 난 자네들을 선뜻 믿을수 없었네. 그래서 검토놀음도 벌려놓았지. 자네도 거기에 동의했구. 난 자네들이 끝까지 변심없이 김일성장군님을 따라 혁명을 할 사람들인가, 왜놈들에게 붙잡혀두 변절하지 않을 사람들이겠는가, 단두대앞에서두 사나이답게 웃을수 있겠는가, 난 바로 이걸 알고싶었네. 고맙게두 자네들은 다 용케도 그 검토를 이겨내더군. 난 그때 너무 기뻐서 눈물을 금할수 없었네. 이제야 생사를 같이할 동지를 얻었다구 생각했네. 그런데 이제 와서 싫어졌다? 좋네, 싫으면야 할수 없지. 갈테면 가게. 다만 성사될수 없는 허황한 생각을 버리라는걸 다시한번 진심으로 권고하네.》

《우린 이미 결정했네.》

정이돌은 요지부동이였다.

《그걸 포기할수는 없네. 우린 꼭 장군님을 찾아가겠네.》

《욕망만은 참 좋네.》

주경포는 픽 웃었다. 실상 그는 이 햇강아지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배척한다고 해도 제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자기가 단행한 검토과정이 그들의 담을 그렇게 키워주었는지도 모른다.

《아무런 조직선두 타지 않구 장군님을 찾아가겠다는건 손으로 저 하늘의 구름을 잡겠다는거나 다름없는짓이네.》

《걱정말라구. 우린 향방없이 만주의 산발을 누비자는게 아니니까.》

정이돌은 철없는 어린아이를 내려다보는듯 야릇한 웃음까지 지어보였다.

《우린 무장을 들고 놈들을 족치면서 장군님을 찾아가자는거네. 총소리를 요란히 내면 장군님께서두 꼭 사람을 보내주실거네.》

《자넨 총이란게 뭔지 알구 그러나?》

《허허 참…》

정이돌은 크게 웃었다. 가소롭다는 의미같았다.

《자네가 우릴 한심한 바지저고리들로만 여기는 모양인데 본색을 밝힌다면 천도교의 생산유격대성원들이라네.》

《무엇?…》

《우린 누구나 총과 탄알, 작탄까지 다 가지구있으며 또 어지간히 군사훈련도 받았다네. 이걸 보라구.》

정이돌은 옷자락을 쳐들어보였다.

허리춤에 찔러넣은 권총이 나타났다. 번쩍번쩍 윤택이 나는 모젤권총이였다.

주경포는 한동안 얼이 나간 사람모양 거기서 눈을 떼지 못했다.

초평덕의 행상녀인이 그토록 안타까이 행처를 찾던 천도교의 청년들이 이제껏 자기와 함께 지내고있었다니 꼭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그나마 아직 주경포로서는 들어본적도 없는 천도교생산유격대라는것이다.

《결국은 소리없이 자취를 감췄다는 천도교인들이란 자네들이였군.》

《우린 그렇게 하지 않을수 없었네.》

정이돌의 말에 의하면 천도교생산유격대성원들은 새로운 투쟁방략을 토의하기 위한 비밀모임을 소집했다고 했다. 그런데 회의림박에 한 동지가 비밀모임장소가 놈들에게 로출되고 벌써 놈들이 달려들고있다는것을 알려왔다. 그 동지는 천도교인들속에 밀정이 박혀있다고 했다.

그의 희생적인 노력으로 그들은 무사히 탈출했으나 정체를 숨기지 않으면 안되였다.

《두어달 지내는 동안 우릴 찾지 않는것으로 보아 천도교에 잠입한 밀정도 우리 생산유격대의 내막은 모르는것 같네.》

《자네들이 한꺼번에 없어졌는데 놈들이 주목하지 않을가?》

《우리 친구들은 이 넓은 풍산땅 각곳에 널려사는 사람들이라네. 어디론가 돈벌일 갔다면 가는데마다 공사판을 벌려놓아 온 나라 각지의 인물들이 몰려와 바글거리는 이 풍산땅에서야 우리가 어디 숨어있는지 알턱이 없지.》

정이돌은 이렇게 말하고는 조심스레 화제를 바꾸었다.

《자네하구 신정윤선생은 어떤 관계인지 말해줄수 없겠나? 비밀이 아니라면…》

《비밀이랄것두 없네. 그분은 내가 제일 존경하구 따르던 선배님이였네. 난 친형님보다 그분과 더 가까이 지냈다네.》

《나두 그렇게 짐작했네. 경포군, 그분은 나와 우리 천도교생산유격대성원들을 구원해준 고마운 은인이라네.》

천도교생산유격대원들의 비밀모임장소가 로출되고 놈들의 습격이 시작된것을 알려준 사람은 신정윤이였다는것이다. 그는 원제민종리원장도 놈들의 감시를 받는것만큼 함부로 만나서는 안된다고 당부했다는것이였다.

《신정윤선생은 권총으로 놈들을 쏘아눕히며 우릴 빼돌리다 부상을 입고 체포되였다네. 그후에 인차 잘못되였지.》

《아니, 그럼?…》

주경포는 마치 권투시합장에서 상대편의 강타를 받은것처럼 정신을 수습할수 없었다. 그렇다면 신정윤선배님도 왜놈들과 싸우던 사람이였단 말인가.

정이돌의 침통한 목소리가 다시 울렸다.

《우리두 신선생이 그런분인줄은 꿈에도 몰랐네.》

《그런데 자넨 어째서… 어째서 지금껏 입을 다물고있었나? 선배님이 왜놈들의 끄나불이라는 오명을 쓰고 사람들의 지탄을 받는데 어째서 함구무언을 하고있었는가 말일세.》

《용서하게. 나두 피눈물을 삼키며 참아야 했네.》

정이돌은 자기가 이제껏 입을 다물고있던 두가지 리유를 말했다. 하나는 신정윤이 자신에 대해서는 일체 누구한테도 말해서는 안된다는 당부를 했다는것과 정이돌이로서는 신정윤의 오명을 벗겨주느라 생산유격대의 존재를 로출시키는 모험을 할수 없었다는것이다.

《그러느라니 내 가슴에도 피눈물이 가득차있네. 난 자네가 신선생의 집과 각별한 인연을 맺고있다는 소리에 의도적으로 손을 잡았네. 혹시 백두산과 줄을 가지고있지 않는가 해서 말이네.》

주경포는 정이돌의 심중이 리해되였다. 그리고 그의 모든 행동이 얼마나 주도세밀한지 자기로서도 따를수 없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니 결국은 내가 자네들의 손바닥우에서 검토를 당한셈이구만.》

그는 대번에 기가 꺾여 침울하게 말했다.

《뛰는 놈우에 나는 놈이 있다더니 자네들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네, 전에두 가끔 그런 생각이 들군 했네만…》

《그런 소릴 말게. 내 아픈 소릴 좀 했네만 자넨 역시 괜찮은 사나이네. 여기 일은 자네가 있으니 우린 마음놓구 떠날수 있네. 자, 기념으로 이거나 받게.》

정이돌은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내여 주경포에게 내주었다. 주경포에게도 총이 꼭 필요되리라는것이다.

《고맙네만 내절로 구하겠네. 그러나 자네들은 못 가네.》

《이러지 말게. 우린 다른 길이 없네.》

그는 주경포의 이야기를 듣기 전부터 벌써 원제민이며 여러 사람들이 자기네를 찾고있다는것을 알고있었노라 하였다. 그러나 그것을 매우 좋지 못한 위험한 조짐이라 생각한다는것이다. 원제민의 곁에 경찰의 밀정인 허병팔이 진드기처럼 꼭 붙어있는 조건에서 생산유격대의 비밀도 로출될수 있었기때문이라 했다.

《우린 허병팔이란 놈을 풍산 네거리에 목매달아놓구 떠나자는거네.》

그는 추석날 신정윤의 묘소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도 다 알고있으며 특히 허병팔이란 놈이 경찰의 밀정이라는 사실도 확인했다고 했다.

《참, 한가지 잊을번 했구만.》

정이돌은 주경포의 무릎을 탁 쳤다.

《난 추석날 새벽 신정윤선생의 묘소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가 자네 애인을 만났네. 처음엔 몰랐지만 거리에서 다시 먼빛으로 띄여보았는데 자네의 약혼녀더군.》

《뭐? 분이를…》

《그렇네. 그도 신선생의 묘소에 인사를 드리려구 남몰래 왔더군.》

정이돌은 그날 새벽 묘소에서 있은 일을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주경포로서는 놀라지 않을수 없는 이야기들이였다.

《경포군, 나두 소문을 들었는데 처녀를 버리지 말게. 참 좋은 처녀라구 생각하네.》

《자넨 혼자 해산을 한 안해를 남겨두고 가겠다면서 나더러 그런 소릴 하나?》

《나야 어쩔수 없는 형편이 아닌가.》

《됐네. 그 이야긴 그만하구 난 자네를 놓아줄수 없네.》

주경포는 이 자리에서 정이돌을 붙잡아두지 않으면 영영 놓쳐버린다는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할수는 없었다. 초평덕에서 만난 녀인의 당부도 간곡했지만 그자신이 정이돌이와 같은 사람을 놓쳐버릴수 없었다. 그리고 앞에는 공작원을 만날수 있는 기회도 있는것이다.

《내가 자네랑 같이 참가하자는 비밀회의란 보통회의가 아니네. 큰 손님을 모시구 하게 되는 회의란 말이네.》

《큰 손님?》

《백두산에서 오신 공작원동지 말이네.》

주경포는 자기가 이렇게 엄청난 거짓말을 하게 될줄은 상상도 못했었다. 초평덕에서 만났던 행상녀인은 이번 비밀모임에 사령부의 대표도 참가할지 모른다고 하였지 그와 관련한 명확한 말을 한적은 없었다.

그리고 큰 손님이라는 말은 언제인가 분이한테서 들은적 있는 말이였다. 그때 분이는 북청의 친척할아버지네 집에 백두산의 큰 손님이 다녀가셨노라고 자랑스레 속살거렸다. 백두산의 큰 손님이란 장군님의 특사분이라는것이다. 주경포는 정이돌을 놓치지 않으려면 다른 도리가 없어 그런 거짓말도 서슴지 않았다. 오늘 이들을 놓쳐버리면 다시 찾기는 매우 어려울것이다.

《그분이 자네들을 찾는것 같네.》

《인젠 알만 하네.》

정이돌은 그제야 깨도가 되는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원제민이뿐만아니라 황수원의 리인모까지 나서서 자기네들을 찾고있는 진짜 리유를 알게 되였다고 했다. 이제까지는 혹시 놈들의 간계가 아닐가 해서 깊이 은페할 작정이였다는것이다.

《인젠 자네 말을 믿겠네. 실은 내가 리기율이라네. 남수는 리인모네 친구들속에 끼여있는 상호이구…》

정이돌은 씽긋 웃었다. 비밀을 지키느라 변성명을 하고보니 생각보다 편리한 점이 더 많기도 하거니와 인제는 새 이름에 정이 들었노라 했다. 다른 친구들도 같은 생각이라는것이다.

《그럼 우리도 회의에 대표를 파견하겠네.》

《인차 소식이 올거네.》

주경포는 이렇게 대답하였으나 마음은 큰 짐을 진것처럼 무거웠다.

정이돌이를 붙잡아두기 위해 자기가 너무나 엄청난 속임수를 쓴것이 마음에 몹시 켕기였던것이다.


×


주경포가 정이돌이네와 헤여져 마을의 숙소로 돌아오니 문조리에 있는 형인 주경두가 와있었다. 주경포보다 나이는 훨씬 우이고 어리무던해보이는 형이였다.

주경포는 놀라 주경두한테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형님이 어떻게 여길…》

《내가 오면 안된다더냐?》

그는 어설프기 짝이 없는 방안을 다시 둘러보며 나무라듯 말했다.

《야학선생을 한다더니 이렇게 살구있구나.》

고향집보다 한심한데서 사서 고생을 한다는 소리같았다. 그는 말없이 쌈지를 꺼내였다. 낯색이 그닥 밝지 못했다.

주경포는 아래방에서 재털이를 가져다 주경두앞에 놓았다. 대진내가 코를 찌르는 되박같은 재털이였다.

《형님, 무슨 일이 생겼소?》

주경두는 쌈지안의 거칠게 썬 되초를 꺼내여 손가락처럼 굵게 말아물고는 솜씨있게 부시돌로 불을 일구어 붙이였다. 고향집에서 부모님들을 모시고 농사질을 하는 그는 한어머니의 배속에서 나온 사람이라 믿지 못할만큼 주경포와는 판판 달랐다. 생김새도 다르고 성미도 어진데다 말수도 적었다. 하지만 주경두도 이미전부터 지하조직에 망라되였던 경력을 가지고있었으며 지금은 주경포의 도움을 받으며 문조리에 새 조직을 꾸리는데 실속스레 한몸을 잠그고있었다.

그는 독한 되초연기를 한숨처럼 내뿜고나서 말을 꺼냈다.

《애 경포야, 집에서 일이 터졌다.》

《일이 터지다니요?》

《아버지가 너때문에 대노하셨다.》

아버지는 집안의 막내녀석이 당장 혼사를 치르어야 할 초평덕의 새아기네 집으로 가서 파혼을 선포한 다음 련두평쪽에 와 돌아친다는 소리를 듣고는 천둥같이 화를 냈다고 했다. 세상인륜을 어지럽히는 이런 해괴망칙한 일이 어디 있느냐, 집안이 망할 징조이다라는 대소동이였다. 그러지 않아도 자기와 대판 엇들던 나머지 영영 하직이노라며 집을 뛰쳐나간 막내녀석에 대한 노여움이 골수까지 차있는 아버지였다.

이어 아버지는 온 집안이 아연실색하지 않을수 없는 기막힌 용단을 내렸다. 집안의 가장으로서 불망종같은 막내녀석의 파혼행실을 용납할수 없으니 즉시 가마에다 초평덕의 새아기를 싣고와서는 신랑없는 외짝 결혼잔치라도 해야겠노라 고래고래 소리지르며 들볶아댔다.

맏이인 주경두가 아버지를 달래느라 갖은 애를 다 썼다.

《아버지, 경포가 파혼한건 새애기쪽이 순사네 집안이라고 그러는겁니다. 순사네 집안과 사돈을 맺는건 아무래두…》

《순사네 집안이 어때서?… 그게 더 좋지 않느냐?》

《더 좋다니요? 아버지.》

《사돈집과 뒤간은 멀어야 한다구 했느니라. 사돈네가 순사집이라면 새아기를 데려다놓구 발길을 딱 끊어버리면 되는거지 그게 큰일이라구 그러는거냐?》

《아니 아버지, 그거야…》

《이 무슨 대꾸질인고? 어서 잔치준비를 서둘지 못할가?》

집안에서 아버지의 말은 곧 법이고 따라서 즉시 받드는것이 어길수 없는 가풍으로 되고있었다.

주경두는 어떤 든장질을 하든 아버지의 고집을 꺾을수 없다는것을 깨달았다. 《양지촌의 고집불통》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는 아버지였다.

그는 이래저래 속을 태우다못해 부랴부랴 동생을 찾아온것이다.

《아버지두 참…》

주경포는 어이없기도 하고 서글프기도 했다.

아버지는 한생을 문조리 양지촌의 메마른 자드락밭에 명줄을 걸고 살아온 고박한 농사군이였다. 기름기가 말짱 빠진 돌자갈투성이의 땅돼기라도 어디에 감자를 심어야 알이 커지고 어디에 귀밀이나 보리씨를 뿌려야 소출을 얼마큼 더 낼수 있는가를 귀신같이 잘 알아맞히였다. 그러나 바깔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해서는 그믐밤처럼 깜깜이였다. 아마도 세상일에 대한 철저한 무관심이 아버지의 인생관인지도 모른다. 아버지는 한뉘를 그렇게 살아오느라 등허리가 굽어들고 머리에 백발을 얹은 오늘에 이르러 자기 주장만 내뻗칠줄밖에 모르는 아다모끼로 되고말았다.

《그래 형님은 아버지가 정말 초평덕에 가마를 보낼거라구 생각한단 말이요?》

《설마 그러기야 하겠냐마는…》

주경두는 내키지 않은 말을 꺼낼적마다 하는 습관대로 연신 밭은 기침소리를 냈다.

《하지만 너두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알지 않니? 저쯤 뿔이 났으면 꼭 무슨 일을 칠것 같아서 겁이 나는구나.》

《그럼 나더러 어떡하라는거요? 그럼 형님두 나더러 잔치상에 앉으라는거예요?》

주경포의 날이 선 목소리에 주경두는 황급히 손을 저었다.

《경포야, 지금은 무엇보다 아버지를 진정시키는게 먼저라구 생각한다. 잔치문제는 그다음에 의논할 일이구…》

《…》

《나두 너무 힘들어서 너를 찾아왔단다.》

주경두는 집안의 맏이로서 나이도 퍽 우였으나 마음이 용해서 생매같은 막내동생을 좀 두려워했다. 더구나 막내동생은 성미가 면도날인데다 어릴적부터 신동으로 소문날만큼 총명하고 글공부도 많이 한지라 다문박식하여 애당초 상대가 되지 않는 주경두였다. 하지만 그는 류다른 인정미로 이 감때사납기 그지없는 발개돌이막내동생을 고분고분 순종케 하는 수완도 가지고있었다.

《그래서 너하구 좀 의논해보자는거다.》

《의논을 한다구 무슨 뾰족한 수가 나지겠어요?》

《야, 그러지 말아.》

주경두는 속상해서 언짢게 말했다.

《뾰족한 수는 바라지 않는다만 어떤 뭉툭한 수라두 끄집어내지 않으면 난 집에 들어가지 못할 처지란다.》

《하, 이거 참…》

주경포는 오만상을 찌프렸다. 실상 이 문제는 그에게 있어서 큰 골치거리였다. 정말 눈앞이 막막했다. 《양지촌의 고집불통》인 아버지는 그 별명에 걸맞게 한번 입밖으로 말을 내쏟은 이상 설사 초평덕의 분이를 가마에 태워와서 외짝잔치는 못한다 하더라도 어떤 희비극을 벌려놓을지 예측할수 없었다. 만일 그 고집을 돌려세우지 못한다면 주경포는 신문에 나오는 만화의 주인공처럼 세상의 큰 웃음가마리로 되기마련이다. 그때 가서 무슨 낯으로 사람들앞에 나서겠는가. 장군님부대로 가리라는 필생의 소원마저 물거품으로 될수 있었다.

《형님, 뭘 좀 생각해둔게 없어요? 제발 이 막내를 살려주…》

《그럼 이렇게 하는게 어떠냐?》

생각이 깊은 주경두가 뭉툭한 수를 내놓았다. 그 수란 주경포가 낯이 따가운대로 초평덕의 분이를 찾아가 잘못했노라며 노여움도 풀어주고 잘 구슬려서 잔치를 하자는것이였다.

《그게 어디 수요?》

주경포는 답답해서 오히려 역증을 내였다. 과연 주경두다운 수였는데 뾰족하기는커녕 뭉툭한 수라고도 할수 없는 궁리가 아닌가. 그렇게나 해서 해결될것 같으면 자기가 왜 이런 고민을 하겠는가.

《경포야, 녀자의 오래비가 순사이긴 하지만 그까짓거 아버지의 말씀대로 잔치를 해놓구선 발을 딱 끊어버리면 네 체면두 세울수 있지 않겠느냐 말이다.》

주경포는 무어라 대답을 못했다. 그것은 도저히 성사될수 없는 일이였기때문이였다. 이틀전에 분이를 만나본 때를 생각하면 굴욕감으로 머리를 쳐들수 없었다.

《형님, 분이하군 안돼요. 난 다시는 분이앞에 나서지 못해요.》

《야, 그 꼴이야 어디 봐주겠니? 난다긴다 하던 네가 처녀 하나 휘여잡지 못해 쩔쩔매는 꼴을 말이다.》

《그렇게 됐어요.》

이때 방문이 열리며 하숙집로파의 머리가 기웃하더니 바깥에 야학선생을 찾는 손님이 왔노라고 하는것이였다.

주경포는 순간이라도 머리아픈 화제에서 벗어나게 된것이 다행이런듯 얼른 자리에서 일어났다. 머리가 복잡해서 생각을 다잡을수 없었다. 가뜩이나 장군님을 찾아가겠다고 나섰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숯가마처럼 속이 타는데 고향집에서는 아버지가 때를 만난것처럼 해괴한 야단법석인것이다.

인제는 한시바삐 장군님부대로 가야 했다. 그것만이 유일한 출로였다. 행상녀인만 승인해주면 될것 같은데…이런 생각으로 마당가에 나서던 주경포는 그만 두눈이 퀭해져서 멈춰섰다. 볼모양없이 찌그러진 삽짝문안에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서있는 처녀를 띄여본것이다.

주경포는 자기의 두눈을 의심하지 않을수 없었다. 분이가 삽짝문가에 고개를 숙이고 서있었던것이다. 이틀전 자기한테 철추를 내리듯 집에서 쫓아냈던 분이가 백수십리나 떨어진 여기로 왔다는것은 믿을래야 믿을수 없는 일이였다. 그러나 꿈도 아니고 착각도 아니였다. 눈앞에 서있는 처녀는 분명 분이였다.

주경포는 주저주저 분이한테로 다가갔지만 선뜻 말을 떼지 못했다.

인제는 스스럼없이 분이를 대할 처지가 못되였다. 놀랄만큼 도고해지고 범접키 어려워진 분이였던것이다.

《어떻게 왔소?》

《어마나!》

조심스럽기는 했으나 너무나 귀익은 목소리가 울리는 바람에 분이는 전률한듯 화닥닥 물러섰다. 다음순간 최면술에라도 걸린것처럼 꼼짝않고 서버렸다. 그도 주경포와 만나게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한것 같았다.

《분이…》

다시 울리는 주경포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린 모양 분이는 쏜살같이 삽짝문밖으로 달려나갔다. 숲속에서 맹수와 맞다든 메토끼처럼 필사적인 달음박질을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발을 재게 놀린다고 해도 분이가 주경포의 걸음을 당해낼수는 없는것이다.

어느새 주경포가 분이의 앞을 막아섰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요?》

《난, 난 거길 찾아온게 아니예요.》

분이는 맵짜게 내쏘았다. 이런것도 주경포에게는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아마 주경포와 때아니게 맞다들게 되자 가슴속에 깊이 묻어두었던 분노와 원망이 걷잡을수없이 터져나온듯 했다.

《난 야학선생을 찾아온거지 거기와는… 길을 내주세요.》

《야학선생?》

주경포는 더욱 리해할수 없었다.

《야학선생이란 나요. 나밖에는…》

《비켜주세요. 야학선생을 찾아왔다질 않아요?》

《분이, 내가 야학선생이란 말이요.》

《아니?!…》

분이의 얼굴은 경악으로 이지러졌다. 그 순간에야 그는 자기 걸음의 의미를 알아차린것 같았다. 분이는 선자리에서 바람소리가 나게 되돌아섰다.

그가 막 걸음을 옮기려는찰나에 주경포가 다시 앞을 막아나섰다.

《분이, 나를 주경포라 생각지 말구 어서 사연이나 말해주오. 야학선생을 찾아온 까닭은 뭐요?》

《나도 몰라요.》

분이는 성나서 손안에 감춰두고있던 글쪽지를 주경포의 발치에 내던졌다.

주경포가 글쪽지를 주어들고 허리를 폈을 때는 이미 분이가 저만치 사라진 뒤였다. 주경포는 성급히 글쪽지부터 펴들었다. 거기에는 래일 저녁 초평덕에서 임북술의 생일잔치로 위장된 비밀모임이 소집되므로 대표들을 제때에 도착시키라는 내용이 적혀있었다. 또한 주경포가 한발 먼저 와서 제일 위험한 박순기를 업어넘길 《화해》놀음을 벌려야겠다는 사연까지 밝혀져있었다.

행상녀인이 보낸 글쪽지로구나!

그제야 주경포는 분이가 여기에 나타난 까닭도 석연해졌다. 아마도 분이는 쪽지의 사연을 모르고 예까지 온듯싶었다.

《고맙소, 분이!》

그는 곧장 집안으로 들어왔다.

《형님, 집에 가 며칠간만이라도 아버질 붙잡아주세요. 내 초평덕에 갔다가 집으로 가겠으니 제발 그렇게 해주오.》

《글쎄 며칠간이라면 어째보겠다만 너두 서둘러야겠다. 그렇잖다간 큰 망신을 하게 된다.》

《알겠어요. 그럼 먼저 돌아가세요.》

주경포는 서둘렀다. 정이돌이한테 비밀모임참가를 알려주고는 그자신은 즉시 초평덕으로 떠나야 했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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