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9 회)


제 6 장


(3)


고구려 제14대 임금인 고남무는 그날 저녁 운명하였다. 그의 왕호는 고국천왕이였다.

고국천왕의 머리맡을 지키던 을파소는 쏟아지는 눈물속에 고개를 들었다.

귀가에는 나라가 국상에게 달려있으니 부디 새 임금을 잘 받들라던 고국천왕의 음성이 들려오는것만 같았다.

그렇다. 지금 내가 해야 할바는 두가지, 임금의 장례를 치르는것과 함께 시급히 새 임금을 세우는것이다.

장례를 간소하게 하라는 임금의 유언을 어길수 없으니 대궐에 빈소를 만들고 시신을 안치한 다음 3년이 지난 길한 날에 릉을 쓰면 될것이다.

나라에는 잠시도 룡상을 비워두어서는 안되는 법, 더우기 발기가 란동을 부리기 전에 둘째전하를 데려다 등극시켜야 한다.

고구려의 태묘사직이 자신의 한몸에 실려있다는 자각이 을파소로 하여금 임금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분발심으로 이어지게 하였다.

아직은 임금이 세상을 떠났다는것을 누구도 알아서는 안되였다.

현재까지 임금이 잘못되였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을파소와 우왕후뿐이였다.

을파소는 고국천왕의 시신을 부여안고 눈물을 흘리는 우왕후에게 일렀다.

《왕후마마, 둘째전하를 등극시키기 전에 대왕마마께서 잘못되셨다는것이 대궐밖으로 새여나가서는 안되오이다.》

침전을 나선 을파소가 락도상에게 분부했다.

《궁성밖에 나가 진을 치고있는 군사들을 안으로 불러들여 지키되 개미새끼 한마리 기여나가거나 기여들지 못하게 하라.》

달빛에 락도상의 얼굴이 밝아지는것을 볼수 있었다.

《그럼 대왕마마께서 좀 쾌차하였소이까?》

을파소는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참, 고우루와 극실기를 불러주게.》

《알겠소이다.》

인차 침전으로 들어온 을파소는 차마 곡은 하지 못하고 눈물만 흘리는 우왕후를 지켜보며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새 임금을 말썽없이 등극시킬수 있을가?!…

임금의 유언이라고 해도 절대로 굽어들 발기가 아니고보면 미리 군사를 보내여 잡아가둘가?! 아니, 그것도 아니다. 만일 그렇게 한다면 사람들이 연우가 반란을 일으켜 룡상을 빼앗아가졌다고 할것이다. 발기도 꼼짝 못하게 눌러놓고 사람들의 오해도 없도록 할 묘안은?!… 일각이 삼년맞잡이로 귀중한 이때 어서 좋은 궁냥이 떠올라야겠는데…

마음이 조급해서인지 머리속은 온통 잡념들로 뒤죽박죽이고 등골에서는 진땀이 흘렀다.

어떻게 해야 할가?… 을파소는 너무도 안타까와 옷깃을 헤치였다.

가만, 덤벼서는 안된다. 이런 때일수록 마음을 늦추고…

만일 발기의 무리가 역모를 단행하려 한다면 난 결단코 그것들을 파리잡듯 할것이다. 우리에게는 그럴 힘도 있고 그것이 곧 하늘의 뜻인줄도 안다.

크게 숨을 들이키니 조급하던 마음도 가라앉고 달아올랐던 얼굴도 식어지는것 같았다.

이윽고 을파소는 신통한 수를 생각해냈다.

《왕후마마, 대왕마마의 유언을 지키는것은 왕후마마에게도 달려있소이다.》

우왕후가 눈물이 흐르는 얼굴을 들었다.

《신에게 한가지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대로 할수 있겠소이까?》

《대왕마마께서 태묘사직을 국상어른께 부탁하시였는데 제 어찌 국상어른의 생각을 따르지 않겠소이까. 어서 분부하시오이다.》

《그럼 이렇게 하시오이다.》

을파소의 계책을 들은 우왕후는 어쩌면 자기의 생각과 꼭같은지 신기할 정도였다.

두사람의 생각이 일치하다는것은 그 실현에서 보다 좋은 결과를 기대할수 있다는것이 아니겠는가?!…

돌아간 임금의 뜻대로 사직을 바로 이으리라 비장한 마음을 먹은 우왕후는 먼저 발기의 집을 찾아갔다.

저녁시간에 뜻밖에 찾아온 우왕후인지라 발기는 어리둥절하였다.

손님방에서 발기와 마주앉은 우왕후는 평온한 안색을 짓고 입을 열었다.

《댁에 백년묵은 산삼이 있다기에 해가 졌음에도 불구하고 찾아왔소이다. 어의의 말이 대왕마마께 드릴 약에 백년묵은 산삼이 꼭 들어가야 한다기에 어찌 다른 사람을 보낼수 있겠소이까.》

아닌 밤중에 홍두깨 내밀듯 한다더니 생각지도 않던 우왕후가 나타나 있지도 않는 백년묵은 산삼을 내라고 하니 요즘 그를 미워하던 발기로서는 성을 낼수밖에 없었다.

열흘전 우왕후는 본가를 찾은적이 있었다.

그날 우소는 우왕후에게 발기가 통이 크고 무술이 뛰여난 인재이니 임금에게 아뢰여서 임금을 이을 동생으로 봉하자고 졸라댔다.

허나 발기를 좋지 않게 여기는 우왕후는 즉석에서 아버지의 청을 거절하였었다.

이 사실을 안 발기는 어느때건 우왕후와 그의 집안을 멸족시키리라 독을 품고있었다.

(요즘 임금의 병이 심상치 않다더니 이년이 나의 거동을 살피러 왔구나. 을파소, 그놈이 시켰을테지, 죽일 년놈들.)

고국천왕이 잘못되였음을 꿈에도 알리 없는 발기는 을파소가 예견했던바대로 우왕후에게 성을 내며 말했다.

《원참, 우리 집에 백년묵은 산삼이 있으면 내가 벌써 임금님께 가져다 올렸을것이오이다. 도대체 그런 허튼소리를 누가 하오이까?》

우왕후는 락심한듯 한숨을 쉬고나서 말했다.

《대왕마마의 병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태자마저 없으니 저의 죄가 크오이다. 아무래도 전하가 형님의 뒤를 이어야 할것 같소이다.》

이렇게 말하는 우왕후의 가슴은 세차게 울렁이였다.

발기가 내 말을 덥석 받아물면 좋지 않은데…

하지만 일없어, 나에겐 또 다른 계책이 있으니까 하면서도 가슴은 그냥 울렁거렸다.

우왕후가 속이 한줌만해서 있을 때 발기는 코웃음을 쳤다.

(흥! 이 계집이 나를 어린아이로 아는가보지? 내 입에 낚시를 물려보자구, 어림도 없다.)

발기는 내부사인 극실기가 자기를 감시하고있다는것을 잘 알고있었다.

(이것들이 내가 들고일어날가봐 눈들에 쌍심지를 켰군.)

왕위에 대한 욕심이 전혀 없다는듯 발기는 떠들어댔다.

《난 그런데 흥미가 없소이다. 사람의 운수는 하늘이 정하는 법인데 그런걸 경솔하게 론해서야 쓰겠소이까. 더우기 아녀자가 밤중에 왕족의 집을 찾아와 그런걸 론하는게 례법에 맞느냐 말이오이다.》

우왕후는 속으로 안도의 숨을 몰아쉬였다.

어쩌면 국상의 예견대로 되였는지…

이제는 제가 그런 말을 내뱉았으니 룡상의 주인이 되지 못했다고 해서 대들 명분이 없게 된 발기였다.

을파소는 우왕후를 미워하는 발기의 이 점을 노려 그런 계책을 꾸민것이였다.

고개를 수그리고 일어선 우왕후는 《내가 경솔했나보오이다.》라는 말을 남겨놓고 발기의 집을 나섰다.

발기는 어둠속으로 사라지는 우왕후의 수레를 쏘아보며 껄껄 웃었다.

《너희들의 얕은 수에 빠질 내가 아니다.》

한편 연우는 아무런 예고도 없이 찾아든 우왕후앞에 너무도 반가와 눈물이 글썽해졌다.

우왕후를 단지 형수만이 아닌 어머니로 여기는 그였던것이다.

우왕후의 팔을 잡은 연우는 절절하게 말했다.

《형수님이 형님의 병구완을 하느라 끼식인들 제대로 드셨겠소이까. 모처럼 우리 집에 오셨는데 내 손으로 음식을 대접하겠으니 잠간만 기다리시오이다.》

발기와는 너무도 상반되는 연우의 대우에 우왕후는 눈물이 솟구쳤다.

우왕후에게 다문 한끼라도 반드시 제 손으로 음식을 지어 대접할 마음인 연우는 부엌어멈도 찾지 않았다.

제가 직접 부엌에 들어가 쌀을 일어 솥에 안치는 연우의 태도에 우왕후는 가슴이 뜨거웠다.

솥에 쌀을 안친 연우는 자기를 지켜보는 우왕후에게 말했다.

《마침 사슴고기가 생겼소이다. 제가 얼마나 고기국을 맛있게 끓이는지 그 솜씨를 보여주겠소이다.》

연우는 사슴 뒤다리에서 큼직하게 살을 저며냈다.

그리고 고기를 써는데 그 솜씨가 여간 서툴지 않았다.

하긴 지금껏 끼식을 끓여보지 못한 그였으니 그럴수밖에 없는것이다.

그것이 우왕후를 감동시키기에는 충분하였다.

형수를 부모처럼 여기며 제 손으로 음식대접을 하려 하는 저런 고운 마음을 지닌 사람이 임금이 되여야 왕실도 우씨집안도 모두 편안할것이 아닌가.

감동속에 연우를 지켜보던 우왕후는 몸을 흠칫 떨었다.

고기를 썰던 연우가 손을 베였기때문이였다.

자기의 손을 벤듯 한 느낌에 몸을 떤 우왕후는 치마자락을 찢었다.

《어서 상처를…》

우왕후는 연우의 손을 잡고 베인 손가락을 싸매였다.

그에 감동된 연우가 목메여 말했다.

《형수님도 참. 아, 요쯤한걸 보고… 내 인차 고기국을…》

연우의 팔을 잡은 우왕후가 목메여 부르짖었다.

《방금 대왕마마께서 돌아가셨소이다.》

연우는 무너지듯 주저앉았다.

《그게… 그게 참말이오이까?》

《태제를 정하지 않았으니 발기전하가 뒤를 이어야겠지만… 포악무도하기에 대왕께서는 그에게 왕위를 물려주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셨소이다.

국상어른께서 기다리고계시니 어서 가시오이다. 시간이 없소이다. 자, 어서!》

연우가 우왕후에게 등을 떠밀려 수레에 오르기 바쁘게 수레는 쏜살같이 대궐을 향해 질주했다.

을파소는 그동안 대궐로 불려온 고우루에게는 경군을 거느리고 국내성을 에워싸고 지키며 내부사인 극실기에게는 발기를 잠시도 시야에서 놓치지 말것을 분부한터였다.

대궐뜨락에서 연우를 맞이한 을파소는 고국천왕의 시신을 옮겨놓은 별궁으로 그를 이끌었다.

고인을 붙안고 통곡하는 연우를 남겨놓고 별궁밖으로 나온 을파소는 그때에야 락도상에게 임금이 세상을 떠난 사실을 알려주었다.

《아침까지는 이 일이 밖으로 새여나가서는 안되네. 이제 곧 중외대부와 례복구, 명림어수를 불러들이게.》

락도상과 헤여진 을파소가 별궁으로 돌아오니 아직도 연우는 땅을 치며 울고있었다.

연우의 팔을 잡으며 을파소가 말했다.

《급히 의논할 일이 있사오니 잠시 여길 뜨셔야겠소이다.》

내시들이 다가와 연우를 부축하고 을파소는 본전으로 그를 이끌었다.

여러가지 등불이 본전안을 환히 밝히고있었다.

룡상에 연우를 앉힌 을파소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선왕께서는 왕위를 둘째전하께 물려주라고 유언하셨소이다.》

연우가 룡상에서 일어섰다.

《아무리 선왕의 유언이라고 해도 형님이 시퍼렇게 살아계시는데 내가 감히?!…》

을파소에게는 확실히 예상치 못한 일이였다. 그러나 동요하지 않았다.

임금이 미처 후임을 정해주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대도 발기를 눌러놓고 연우를 나라의 주인으로 받들 결심이였는데 무엇을 주저한단 말인가.

국상으로서 고구려를 위할수만 있다면 남들의 오해를 받는다 해도 물러서지 않을테다.…

그때 조심히 다가온 내시가 을파소의 귀에 대고 아뢰였다.

《대왕마마의 령전에서 중외대부어른이 기절하여 쓰러졌소이다.》

소스라치게 놀란 을파소는 안류에게 달려가고싶었다.

그러나 보다 급한 국사를 생각하여 자신을 다잡아야 했다.

《내 곧 가겠으니 먼저 어의를 불러다 보이게.》

내시를 돌려보낸 을파소는 저력있게 입을 열었다.

《난 전하께서 이다지도 졸장부인지 몰랐소이다. 모두가 발기전하가 나라를 가지면 차대왕처럼 나라를 망친다고 하는데 다른 사람도 아닌 전하께서 고구려의 전도를 외면할수 있소이까. 지금 후한이 변방에 대군을 끌어다놓고 우리를 넘보는 이때 왕위를 사양하려든다면 이건 죄악인줄 아오이다. 이미 하늘의 뜻에 따라 룡상의 주인이 결정되였으니 어서 보위에 오르시오이다.》

을파소의 완강한 태도에 감동된 연우가 그의 손을 굳게 부여잡았다.

우왕후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다가와 연우에게 룡포를 걸쳐주었다.

예상치 못했던 일을 바로잡은 을파소가 밖으로 나오니 명림어수와 례복구가 기다리고있었다.

을파소는 먼저 명림어수에게 일렀다.

《자네는 날이 밝는 즉시 모든 조정대신들을 불러들이게.》

이어 례복구의 손에 자신이 직접 작성한 공문서를 들려주었다.

《난 자네가 의로운 장수임을 아네. 그래서 믿지. 대왕마마께서 돌아가신 이때 자네에게 제일 힘든 일을 맡기네. 이안에는 자네를 신성고을의 태수로 봉하는 직첩도 있고 자네가 신성고을에 내려가 해야 할 일이 씌여져있네.

지금껏 연인장군에게 신성고을의 태수를 겸임시켰는데 오늘에야 진짜주인을 보내네. 어려운 때 신성을 맡기네.》

을파소는 또 다른 공문서를 례복구에게 주었다.

《이 공첩들은 우거장군과 연인장군에게 보내는것들이네.》

두개의 공문서에는 후한군이 쳐들어오는 경우 군사를 어떻게 쓰라는 계책이 씌여있었다.

례복구의 등을 어루만지며 을파소는 단호한 어조로 말했다.

《사태가 긴박하니 이밤으로 떠나게.》

례복구를 바래워준 을파소는 크게 숨을 들이켰다.

《아직은 마음을 놓을수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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