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9


랭동기에서 꺼낸 살찐 오리 세마리를 찬물에 담근 박영란은 밖에 내건 두개의 큼직한 땅가마에 불을 지피였다.

평양기계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방학을 내려오면 몸보양을 시키려고 마련해놓은것이였는데 좀전에 남편이 전화로 새로 옮기는 주물직장에 나가보려고 하니 뭘 좀 준비해달라고 하기에 아쉬운대로 내놓은것이였다.

그다음엔 뭘 준비한다? 싱겁게 오리 세마리만 난딱 들고가게 할순 없지 않는가. 너무도 급작스러운 분부여서 뭘 어떻게 준비를 해야 할지 궁냥이 떠오르지 않았다.

한동안 곰곰히 생각을 더듬던 영란은 떡이라도 바꾸려고 부엌으로 들어가 쌀독을 여는데 밖에서 남편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여보!》

쌀독뚜껑을 도로 닫은 영란은 황망히 밖으로 나섰다.

문밖에 선 남편을 띄여본 영란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불만이 튀여나왔다.

《에이구, 우물에 가서 슝늉 찾겠어요. 지원을 하려면 미리 귀띔을 했어야지 그렇게 갑자기 분부를 하면 난들 어쩌라는거예요.》

《허허허! 지원은 무슨… 가만 거 듣고보니 그렇구만. 오리 세마리만 난딱 들고가기도 뭣하지, 뭐가 더 없을가?》

남편의 은근한 조바심에 박영란은 밉지 않게 눈을 흘기였다.

《막걸리를 담그어놓은것이 있는데 그거라도 가져가시겠어요?》

《막걸리? 말을 듣지 않을가?》

《원, 걱정두. 막걸리야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우리 민족의 전통음료인데.…》

《응, 그렇구만. 그럼 그걸 한 댓리터 담아주오.》

《그거면 일없을가요?》

미타해하는 영란에게 리대철은 히쭉 웃어보였다.

《일없지 않구. 나도 그들과 함께 저녁밥을 먹자는거요.》

《그러면 오늘은 그렇게 하기로 하고 다음번에는 잘하자구요.》

《그렇게 하기요.》

저녁어둠이 깃든 공장구내는 퇴근시간이 지났지만 기계의 동음이 그냥 울리고있었다.

대상설비생산이 긴장한것만큼 교대작업을 하는것이였다.

한창 이설중인 주물직장에 들어선 리대철은 축구경기장보다 더 넓은 작업장을 휘 살피였다.

원래 있던 주물직장에서 옮겨온 덩지가 큰 설비들이 되는대로 널려있는것이 눈에 거슬렸다.

쇠물프레스들과 혼사망들, 한창 제작중인 용선로를 제자리에 앉히고 본격적인 생산을 하자면 얼마나 시일이 더 걸리겠는지 가늠할수가 없었다.

하지만 명백한것은 최대한 다그쳐끝내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래서 주물직장도 밤낮없는 전투를 벌리는것이다.

원래 있던 주물직장은 부지면적이 여기보다 절반가량 되였었다.

그런데 건물이 하도 오래다보니 보름전에 갑자기 지붕이 통채로 무너져내리는 바람에 생산을 중지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긴장한 생산전투로 하여 언제부터 보수를 한다한다 미루어오던것이 끝내 일을 친것이였다.

다행히 밤에 일어난 사고여서 인명피해는 없었어도 손실은 참혹하였다.

천정기중기가 곤두박질하였고 레루는 엿가락처럼 꼬이였다.

1톤짜리 용선로는 폭격을 맞은듯 볼품없이 깨져나갔고 주형틀들이 박살이 났다.

리대철은 혼쭐이 나도록 욕을 먹었다.

국에 불리워다니며 비판서를 쓰고 사고심의에서 눈물이 쑥 나도록 추궁을 받았다.

뽐프생산의 첫 공정인 주물직장의 사고는 공장의 전반생산에 어두운 그늘을 던지였다.

더구나 어버이수령님탄생 100돐을 맞으며 일떠서는 국가적인 중점대상들에 보장하여야 할 뽐프생산이 중단될수 있는 난관이 조성되였던것이다. 일부 사람들속에서 계획을 조절해야 한다는 꿰진 소리들이 튀여나왔다. 타당성이 있는 소리들이였으나 리대철은 애당초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법과도 같은 인민경제계획을 놓고 흥정을 한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았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군자리로동계급은 이보다 더 가혹하고 어려운 시련속에서도 전시생산을 보장하지 않았는가.

리대철은 화를 복으로 전환하기로 마음먹었다.

질그릇을 깬바에는 놋그릇을 장만한다지 않는가.

이번 기회에 넓은 부지를 차지하고있는 제관직장을 다른 곳으로 옮기고 거기에 주물직장을 앉힐 대담한 작전을 세웠다.

사람들이 입을 하 벌렸다.

지배인이 큰 타격에 넘어졌다 일어난것만도 다행스러운 일인데 이건 걷거나 뛰는것도 아니고 아예 날겠다는것이다.

역시 배짱있고 대틀인 지배인이 다르다고 연방 감탄하며 엄지손가락을 쳐드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리대철의 결심을 지지한 당위원회에서도 주물직장이설을 와닥닥 끝내기로 하고 종업원들을 불러일으켰다.

설비들은 자동차로 끌고 개미역사질하듯 사람들이 달라붙어 힘내기를 하여 옮기였다.

동시에 2톤짜리 용선로제작도 벌려놓았다.

불과 이틀도 안되는 짧은 기간에 설비들을 기본적으로 옮겨놓았지만 주물품의 사락과 원료를 파쇄하는 문형기중기는 옮기지 못하였다.

10톤이 넘는 무게도 무게지마는 기린처럼 기다란 그 높이 때문에 사고없이 무난히 옮기기가 헐치 않았다.

그래 론의들이 분분하였는데 아직 시원한 방도가 나서지 않았다.

얼마전에 대형문형기중기를 옮긴적이 있다는 동림광산기계공장에 사람들을 보내여 경험을 배워오라고 보냈더니 개 바위돌 갔다온 격으로 헛물만 켜고 돌아왔다.

거기서는 경사지를 리용하여 문형기중기를 옮겼기때문에 별로 애를 먹지 않고 쉽게 옮겼다는것이다.

하지만 공장의 실정은 달랐다.

평지길인데다가 공장구내에 조성한 원림들과 잔디밭사이로 기중기가 빠져야 하므로 여간만 까다롭지 않았다.

리대철은 방도를 모색하다가 문형기중기의 네 발통에 스키형식으로 철판을 붙여 대형자동차로 끌면 어떨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는데 여차하면 기중기가 통채로 자빠질수가 있어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었다.

량손에 보자기에 싼 오리와 막걸리가 든 통을 들고 작업조성원들을 찾아 작업장가운데로 스적스적 걸음을 옮기던 리대철은 한쪽구석에 빙 둘러앉은 로동자들을 띄여보고 그쪽으로 다가갔다.

식사전인듯 땅바닥에 포장지를 깔고 주런이 펴놓은 음식들을 보니 푸짐한게 구미가 당기였다.

《마침이군.》

리대철의 출현이 뜻밖인듯 빙 둘러앉았던 주물직장장과 송화와 주경세를 비롯한 로동자들이 엉거주춤 일어났다.

《지배인동지, 어서 오십시오.》

리대철은 그들의 짬을 비집고 앉았다.

차린 음식들을 보고 저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허, 이거 잔치상이로구만.》

돼지고기, 닭고기, 오리고기, 물고기, 떡, 빵, 남새무침 등 없는것이 없었다.

《송화동무가 집에서 가져왔습니다.》

직장장의 말에 리대철의 눈이 떼꾼해졌다.

《송화가?》

닭알형의 곱살한 얼굴에 강단이 엿보이는 송화가 성미그대로 대수롭지 않은듯 말했다.

《아버지가 직장이설작업을 하느라 모두 수고한다고 보냈습니다.》

《음, 그래서 생일상에 놓았던것을 그대로 보냈구만.》

리대철은 최금석의 진정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어제 송화의 아버지 최금석의 생일잔치를 하였다.

공장일군들과 오래동안 최금석과 함께 일한 기능공들과 주물직장로동자들이 찾아가 축하를 해주었다.

그런데 이렇게 상에 놓았던것을 고스란히 작업장에 내보내였다.

역시 최금석은 존경이 가는 로인이였다.

《송화야, 아버지에게 고맙다고 전해라. 자, 송화 아버지 성의인데 많이들 먹고 기운들을 내서 일하자구.》

로동자들이 수저를 들었다.

송화가 리대철에게 위생저가락을 주었다.

《허, 그런데 진수성찬에 빠진게 있다.》

리대철의 능청에 송화가 급해하였다.

《술생각을 했더랬는데 아버지가 얼마나 야단을 치시는지 그냥 왔습니다. 이제라도 집에 뛰여갔다오겠습니다.》

송화의 집은 공장에서 5리 떨어진 곳에 있었다.

이제 왕복 10리길을 언제 갔다온단 말인가.

《됐다. 이제 거기까지 갔다오느라면 이 삶아낸 오리랑 닭이랑 다시 살아나겠다. 그걸 보면 내가 영 눈치가 없는건 아니라니까.》 하며 리대철은 옆에 놓였던 보자기에 싼것을 송화에게 밀어놓았다.

《이건 뭡니까?》

《우리 집사람이 준비한거야.》

보자기를 헤치니 막걸리가 든 수지통과 아직도 뜨끈뜨끈한 오리 세마리가 나졌다.

수지통을 흔들어보던 송화가 입을 삐쭉 내밀었다.

《어마나, 이거 술이 아닙니까?》

《술인지 아닌지 맛을 보고 평가하라구.》

술이라는 소리에 곁에 있던 주경세가 목젖을 움씰거리며 송화의 손에서 수지통을 앗아내였다.

《그걸 알아맞추는데야 이 주경세이상 있나? 어디 보자구.》

능청을 떠는 주경세를 보며 송화가 웃음을 참지 못하였다.

《호호호, 경세동진 술이라면 오금을 못 쓴다니까.》

《허허허… 내가 왜 당비서동지랑 지배인동지 눈에 든줄 알아? 그건 말이야, 내 성의 뜻이 술 주자인데다가 그걸 좋아하기때문이지. 남들처럼 일 잘한다는 칭찬을 받지 못할바엔 술이라도 많이 마시고 소문을 내보자고 했더니 아닐세라… 지배인동지, 그렇지 않습니까?》

주경세의 희떠운 소리에 리대철이 어깨를 들썩이였다.

《허허허, 그 말이 옳아. 주경세라면 술고래로 소문이 났었지. 그때문에 비판도 많이 받았고… 헌데 요즘은 경세동무가 술을 마신다는 소문이 들리지 않으니 공장이 별스레 조용해진것 같아.》

《한생 먹을 술을 초과했으니 이젠 그쯤하자는겁니다. 대신 일을 잘해서 소문을 내자는겁니다.》

《허, 사람발전 모르겠거던. 동무들도 보았지, 요전날 생산총화에서 주경세동무가 상금을 받아안고 싱글벙글하던 모습을.…》

수지통마개를 열던 주경세가 코를 벌름거리며 부러 얼굴을 찡그리였다. 《이크! 이거 냄새가 이상한게 먹지 못할거로군.》

그 소리에 모두 눈들이 퀭해졌다.

가슴이 선뜩했던 리대철은 뒤늦게야 주경세가 노죽을 부린다는것을 눈치채고 시치미를 떼며 수지통에 손을 내밀었다.

《내가 양재물이 담긴 통과 바꾸어왔는가? 그걸 이리 가져오라구. 공연히 먹지도 못할걸 내놓았다가 여론 나빠지겠소.》

그러자 급해맞은 주경세가 통을 꽉 그러안으며 아부재기를 쳤다.

《아, 아닙니다. 이 아까운걸 내놓다니요.》

영문을 알리 없는 주물직장장과 로동자들이 고개를 기웃거리는데 주경세가 빈사발에 막걸리를 부어 입에 가져가며 너스레를 떨었다.

《잘들 보십시오. 내가 먼저 검식을 해보겠는데 이상이 없는지…》

그제사 주경세를 지켜보던 사람들이 향긋한 막걸리냄새를 맡고 흐아흐아 웃음을 터뜨리였다.

《엉큼한 친구.》

《하하하, 역시 주경세의 노죽은 못 당하겠다니까.》

그러거나말거나 막걸리가 든 사발을 숨도 쉬지 않고 비운 주경세가 엄지손가락을 흔들었다.

《야! 막걸리맛 기막히다. 지배인동지, 이거 집의 아주머니가 담근것입니까?》

《내가 담근거야.》

《지배인동지가요? 모를 소리다. 좌우간 누가 담근것인지는 마시고 따져봅시다. 자, 동무들, 기름이 동동 뜬 찹쌀막걸리요. 송화 뭘해? 사발들을 펴놓지 않구.》

송화가 급해맞아 빈사발들을 주런이 펴놓자 주경세가 거기에 막걸리를 채워넣으며 시까슬렀다.

《자, 어서들 드시오. 먹다가 모자라면 지배인동지네 집으로 달려가 가져오면 될테니 걱정들 말라구요.》

리대철이 어이없어하며 주먹을 흔들어보였다.

《주경세, 말 조심하라구. 누가 들으면 우리 집이 주막집인줄 알겠어.》

《하하하!》

즐거운 웃음소리가 꽃보라처럼 날렸다.

식사가 끝나자 리대철이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주물직장에서는 문형기중기를 옮길 좋은 안이 나온게 없소?》

《예, 몇사람이 안을 제기하였는데 그중 송화동무의 아버지가 발기한 안이 제일 흥미가 있습니다.》

직장장의 말에 리대철은 흥미가 동하였다.

《송화 아버지가? 뭔데?…》

《예. 기중기발통에 스키형식으로 신발을 신기고 대형차로 끌면 된다는겁니다.》

《가만, 가만. 기중기발통에 스키형식으로 신발을 신기고…》

리대철은 자기의 생각과 일치한 최금석의 발기가 하도 신통해서 무릎을 쳤다.

《됐소! 멋있소. 역시 최금석아바이가 보배야!》

작업장으로 흩어진 로동자들이 벌써 일손들을 잡고 기세들을 올리고있었다.

출출했던 배에 만장약을 한 그들은 무거운 설비들을 옮기면서도 기운들이 넘쳐있었다.

《영차! 영차!》

함성소리가 넓은 작업장을 뒤흔들었다.

용선로제작을 마무리하는 용접화광에 작업장이 대낮처럼 밝았다.

지금처럼 일을 다그치면 이삼일후에는 주물직장이설을 완전히 끝내고 생산을 시작할것 같았다.

문형기중기를 옮기는것도 이제는 문제가 아니다.

로동자들의 기세에 힘을 합치고싶어 그들에게로 걸음을 옮기던 리대철은 무엇인가 놓친것이 있다는 생각에 송화쪽으로 돌아섰다.

창근이 문제때문이였다.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물덤벙술덤벙하는 녀석을 될대로 되라고 내버려두었다가는 무슨 일을 칠지 몰랐다.

눈에 거슬리는것을 쫓아가면서 욕을 할라치면 팥죽장사처럼 능글거리며 놀자고 접어드는데 영 이가 들어가지 않는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창근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사람은 초급단체위원장이라는데 지금 노는 행동을 보면 그런것 같지도 않았다.

그래 송화에게 창근의 코를 꿰게 하여야 하겠다고 생각을 해왔는데 그게 꽤 가능하겠는지.…

한뿌리에서 자란 넝쿨처럼 서로 뗄래야 뗄수 없는 사이인 송화와 창근은 평시에는 퍼그나 다정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말은 한쪽귀를 열고 듣는 창근이지만 송화 말이라면 딸랭이를 흔드는 어머니를 쫓는 아기처럼 고분고분한다고 한다.

《요새 창근이를 자주 만나나?》

그릇들을 한쪽에 모아놓던 송화는 리대철의 말이 느닷없는 질문이여서 당혹감을 숨기지 못하고 기여드는 소리를 했다.

《예.》

《다른 일은 없구?》

《없습니다.》

그 소리는 어쩐지 애달프게 들리였다.

표현은 안했지만 무슨 상서롭지 못한 일이 있는듯 싶었다.

그게 무슨 일이겠는지.

꼬집어 물어보고싶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리대철은 하는수없이 자기의 의사를 표명하는 수밖에 없었다.

《인간생활이란 기쁜 일만 있는게 아니지. 송화가 창근이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을거야. 어찌겠니, 사람이란 만들어주기탓이라는데…》 하던 리대철은 자신이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했다는 생각에 혀를 깨물었다.

사람이란 만들어주기탓이라는 말은 송화에게 해당되는것이 아니라 리대철자신의 몫이였던것이다.

그런데 누구에게 그 몫을 떠미는가.

절로 얼굴이 붉어졌다.

주위가 어둑시그레하다보니 송화가 못 본게 다행이였다.

할수 없지, 한번 내뱉은 말은 쏟은 물 한가지라는데.…

《창근이를 잘 이끌어주렴. 변명같지만 난 그녀석을 다룰 자신이 없어. 쩍하면 다른데로 보내달라고 억지를 부리는데 제 아버지넋이 스민 공장을 버리고 가면 글쎄 어디로 간단 말이냐.》

진중해서 듣고있던 송화가 오연히 머리를 쳐들었다.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

《고맙다. 아니, 미안하다. 어려운 부탁을 해서…》

리대철의 얼굴에 열적은 웃음이 어리였다.

《아이, 지배인동지두 그런 말씀을 하실 때두 다 있습니까.》

《허, 이 체네 봐라. 그럼 이 지배인이 곰같이 생겼다구 그런 말두 못하는줄 알았나?》

생긋이 웃어보이는 송화의 모습이 벙긋하며 작업장을 밝히는 용접불빛에 달덩이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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