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13


말을 쓰다듬어주려다가 뒤발에 채운 격이 된 상배는 딸 정향의 반발에 속에 온통 화딱지가 들어찼다.

철딱서니없는년… 절 걱정하는 애비앞에서 뭐가 어쩌구 어쨌다구, 동주뽐프공장이 좋다?

이년아, 그 공장이 어떤 곳인줄 알기나 하느냐?

지난날 이 아버지가 떠나온 공장이고 오늘은 창창한 아버지의 앞길에 차단봉을 가로막으려는 공장이다.

상배는 뽐프수입문제로 상반되는 립장이 첨예화된것으로 하여 조만간에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모르는 그 공장에 딸이 있다는것이 시한탄을 안은것만큼이나 불안하였다.

뭐, 고양정뽐프를 만드는 일에 자기도 한몫 한다구?

잘한다, 아버지는 뽐프를 수입하고 딸은 그걸 만드는데 한몫 하고…

생각할수록 기가 막혔다, 맹추같은년.

그 공장 사람들이 한사코 반대하는 고양정뽐프수입을 맡은 담당자가 다름아닌 너의 아버지라는걸 알면 가만있을상싶으냐.

부모가 미우면 그 자식도 미워한다지 않느냐.

희극에 눈물이 있고 비극에 웃음이 있다더니 아버지가 떠나온 공장에 자진하여 간데다가 승산도 없는 고양정뽐프생산에 머리를 들이민 딸때문에 아니할 가슴앓이를 하게 되였으니 생활이란 얼마나 복잡다단한것인가.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평양기계대학을 졸업하고 동주뽐프공장에 배치받았던 윤상배가 2년후 평양에 닻을 내리게 된것은 안해인 선월의 공로였다.

그들의 인연은 모란봉청년야외극장에서 맺어졌다.

그때 대학졸업반이였던 상배는 청년야외극장에서 열린 평양시안의 대학생들의 웅변모임에서 류창한 언변과 세련된 배우적인 형상으로써 청중의 인기를 독차지하였다.

웅변이 끝나자 관람자들이 경쟁적으로 달려나와 상배의 앞가슴에 훈장이라도 달아주듯 꽃다발을 안겨주었다.

그들가운데는 어느 호텔 의례원이였던 선월이도 있었다.

꽃처럼 환하게 웃으며 마주보는 처녀의 부드럽고 온화한 검은 눈동자에 상배는 그만 풍덩 빠지고말았다.

세상에 이런 아름다운 처녀도 있었는가.

처녀 역시 상배의 잘생긴 얼굴과 름름한 체구에 반한듯 싶었다.

한송이 꽃으로 맺어진 인연은 인차 끌수 없는 사랑의 불길을 지피였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상배의 마음을 괴롭힌것은 고향이 지방인것으로 하여 졸업후의 배치문제였다.

대학시절 사회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여 교원들과 학생들속에서 인기가 높았던 윤상배는 졸업후 배치는 먹어놓은 떡이라고 장담하였었다. 그런데 웬걸, 가만 보니 배치가 맘먹은대로 될것 같지 않았다.

윤상배는 고민을 하기 시작하였다.

평양처녀들은 지방에 내려가는것을 꺼려한다는데 이 처녀가 내가 지방에 배치된다면 날 따라오자고 하겠는가.

어떻게 할것인가. 이제라도 이 처녀와 헤여지는것이 옳지 않을가.

천야만야로 깊어지는 상배의 마음속 고민을 읽은 처녀는 어떻게 하나 이 미남자를 잃지 않으려고 모지름을 썼다.

부모들에게 애달픈 마음을 헤쳐보이며 구원의 손길을 내밀었다.

어느 한 중앙기관에서 일하는 삼촌을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간절히 호소를 하기도 하였다.

상배라는 총각을 잃으면 강물에라도 뛰여들것만 같은 딸의 버둥질에 부모들까지 합세하여 앞날의 사위감을 위해 여기저기 문을 두드리며 동분서주하였다.

허나 운명은 그들을 외면했다.

상배가 동주뽐프공장에 배치받았던것이다.

고향이 덕천인 상배에게 있어서 그 공장은 너무도 생소한 곳이였다.

허허벌판이나 같은 그 공장에 가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상배는 그만 절망에 빠지고말았다.

평양을 떠나던 날 작별의 아픈 마음을 흔들며 울리는 기적소리에 이어 미련을 버리라는듯 길게 울리는 애어린 처녀안내원이 불어대는 호각소리를 듣는 순간 처녀는 상배의 두손을 움켜쥐며 흐느끼였다.

《희망을 잃지 마세요. 삼촌의 말이 공장에 가서 기술창안이나 발명을 한건만 하면 정정당당하게 소환을 하겠다고 했어요.》

《?!》

선월의 속삭임은 절망으로 하여 음울한 미소를 짓고있던 상배의 가슴에 화살처럼 박히였다.

생기를 잃었던 눈에 불꽃이 튕기였다.

선월의 따스한 입김은 꺼져가던 불무지안의 작은 불씨에 불길이 확 일게 하였다. 온몸에 기운이 쫙 퍼져가는것을 의식하였다.

흥분한 상배는 식어가던 심장에 온기를 준 선월을 힘차게 포옹하였다. 렬차가 서서히 움직이였다.…

공장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부터 공장생활에 몸을 푹 잠그었다.

우선 사람들의 신망을 얻기 위해 있는 열성을 다하였다.

남보다 먼저 출근하여 청소를 하고 기대를 닦았고 남들이 퇴근한 후에야 공장을 나서는 상배를 보며 사람들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집단을 위하여 헌신하는 상배의 이름이 자주 종업원총회에서 불리워져 공장사람들치고 그를 모르는 사람은 출장자라는 말까지 나돌 정도였다.

당시 가공직장장이였던 리대철은 온 공장이 칭찬하는 상배를 두고 여간만 기뻐하지 않았다.

같은 대학 졸업생이라는 친근감으로 하여 합숙생활을 하는 상배를 자주 집에 데려가기도 하였고 생활상 애로되는 일에는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었다.

그들은 잠간사이에 형님, 동생사이가 되였다.

어느새 2년이라는 세월이 눈 껌벅할 사이에 지나갔다.

기술창안이나 발명을 한건만 하면 평양으로 소환하겠다던 선월의 삼촌의 말이 그사이 삼사월 고드름녹듯 하여버렸다.

그것은 상배 자기능력으로는 기술혁신이나 발명을 할수 없었기때문이였다. 남의 도움을 받아서라도 목적을 이루어보려고 애써보았지만 도저히 마땅한 상대가 나서지 않았던것이다.

에라, 푼수에 맞지 않는 기대는 버리자.

남의 덕에 호강을 하겠다는 인간만큼 어리석은자가 없다는데…

대범하게 생각을 고쳐먹으니 마음이 편해졌다.

남은것은 한주일이 멀다하게 전화를 걸어오는 선월과 헤여지는것이였다.

성사도 되지 못할 일때문에 공연히 처녀의 애간장을 말리는것이 남자로서 할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련인들의 리별의 아픔이 생초목도 태운다지만 어찌하랴.

한동안 가슴이 아플테지만 세월이 흐르느라면 아물겠지.

그런데 어느 하루 처녀한테서 걸려온 전화는 상배를 미칠 지경으로 만들었다.

기다리기에 지친 선월이가 아예 공장으로 내려오겠다는것이였다.

천만뜻밖의 처녀의 결심에 상배는 속이 새까매졌다.

오죽이나 속이 탔으면 처녀가 그런 결심을 하였겠는가.

그런 결심을 하게 된데는 필경 자기로서는 상배를 평양으로 끌어올릴 자신이 없기때문이 아니겠는가.

안돼, 화려한 도시생활에 습관된 처녀가 지방에서 어떻게 생활한단 말인가. 어쩌면 자기때문에 선월을 일생 고생을 시킬것만 같은 죄스러움에 마음이 무거웠다.

련인을 위하여 자기를 바치려는 선월을 위해서라도 내 어떻게든 솟구쳐오르리라.

선월이, 기다려주오. 내 기어이 그대에게로 돌아가겠소.

단념하다싶이 하였던 평양행에 다시금 발동을 건 상배는 어떻게 해서든지 기술혁신이나 발명을 하여 목적을 이루리라 강심을 먹었다.

드디여 기회가 생기였다.

탄광들에서 리용하는 뽐프들의 수명이 짧아진다는 의견들이 제기되자 공장에서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기술혁신조를 조직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였다.

그것을 알게 된 상배는 그 문제를 해결하는것이 그 어느 개인에 한한것이 아니라 집단의 지혜를 모아야 하는것만큼 거기에 끼우면 덕을 보고 선월이가 기다리는 평양으로 날아갈것 같았다.

두번다시 없는 기회라고 판단한 상배는 즉시 리대철을 찾아가 기술혁신조에 망라시켜줄것을 제기하였다.

상배의 속심을 알리 없는 리대철은 이번 기회에 실력을 보이라고 풍구질까지 해주었다.

어느 한 탄광으로 간 기술혁신조 성원들은 갱막장들에 들어가 뽐프들의 운영을 구체적으로 관찰하였다.

여러날동안 뽐프들의 가동을 주시하였지만 수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찾을수가 없었다. 모두 속들이 탔다.

그러한 때에 윤상배가 기막힌 발견을 내놓았다.

상배의 말인즉 뽐프의 수명이 짧아지는 원인이 탄광지하수에 탄가루가 섞이여들어가 뽐프가 가동할 때 과부하를 받기때문이라는것이였다.

고심과 탐구가 엿보이는 상배의 발견에 기술혁신조 성원들은 사막에서 오아시스라도 만난듯 환성을 올리였다.

이튼날 그들은 일반용수와 탄광지하수를 퍼올리는 뽐프를 따로따로 설치하고 비교실험을 해보았다.

며칠간의 가동끝에 뽐프들을 분해해보니 확실히 차이가 있었다.

지하수를 퍼올리는 뽐프는 물속에 섞이워 올라오는 탄가루에 의하여 균형판의 마찰이 심하다는것을 확정하였다.

원인이 명백히 밝혀진 이상 해결방도는 어렵지 않았다.

진지한 토론끝에 균형판이 없는 쌍원심뽐프를 리용하면 뽐프의 수명을 늘일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공장으로 돌아왔다.

공장에서는 그들이 제기한 안을 심의하고 쌍원심뽐프를 제작하였다.

그 과정에 이전에 마찰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던 귀한 합금강을 쓰지 않으며 베아링도 수지메달로 교체하였다.

새롭게 개조한 뽐프는 탄광들에서 대단한 호평을 받았다.

그 일로 하여 상배는 일약 수재로 떠받들리게 되였다.

그도 그럴것이 그의 발견이 아니였더라면 갈이성매질이 뽐프수명을 줄이는 근본원인이라는것을 알수 없었을것이다.

기술혁신조의 성과는 발명권으로 평가되였다.

상배도 발명권을 받았다.

그뿐아니라 그들이 달성한 성과가 도일보에 모두의 사진까지 받쳐 큼직하게 소개되였다.

드디여 평양소환장이 떨어졌다.

지방에 묻어두기는 아까운 인재라며 소환한다는것이였다.

윤상배의 뜻밖의 소환은 공장사람들의 아쉬움을 자아냈다.

리대철은 공장을 위해 큰일을 할만 한 아까운 사람을 곶감 뽑아먹듯하는 웃사람들에게 로골적인 불만을 터뜨리였다.

상배가 평양으로 떠나던 날 역전까지 따라나온 리대철은 헤여지기 아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정이 들만 하니까 리별이라더니. 정말 섭섭하구만… 하긴 우에서도 자네가 더 큰일을 할수 있다고 보고 소환장을 떨구었겠지. 올라가서 꼭 성공하라구.》

고지식하기 그지없는 리대철의 당부에 윤상배는 마음에 걸리는것이 없지 않았지만 짐짓 섭섭한 표정을 지으며 목메인 소리를 하였다.

《나도 형님하고 떨어지기가 아쉽군요. 그리고 공장사람들과도… 어데 가도 잊지 않겠어요.》

그때로부터 아득히 흘러간 세월은 상배한테서 동주뽐프공장에 대한 추억이 흘러간 물처럼 다시 돌아오지 않게 할줄 알았는데 고양정뽐프로 하여 원래대로 돌아오게 하였으니 세상에 이런 기묘한 일이 또 어데 있겠는가. 그래서 아마 생활은 반복의 련속이라고 하는지.…

거기에 딸 정향이까지 끼여들었으니 장차 일이 어떻게 번져질지 상배자신도 바이 가늠할수가 없었다.

답답한 마음을 잠재우지 못하는 상배의 머리속에서는 빨리 대방과 약속한 뽐프를 들여와야 한다는 생각이 고패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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