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4 회)


14


이설이 기본적으로 끝난 주물직장에서는 한쪽으로는 생산을 보장하면서 한쪽으로는 건설직장을 동원하여 새로 제작하는 천정기중기를 설치할수 있게 중간보와 레루를 설치하는 작업을 하고있었다.

흥남가스화대상에 보낼 대형뽐프주물형타를 만들고있는 송화의 눈길은 자주 건설직장사람들이 일하는 곳으로 갔다.

창근의 얼굴이 보이지 않기때문이였다.

그 동문 무슨 일을 하길래 여기에 동원되지 않았을가.

또 후방사업을 턱대고 제볼장을 보러간게 아닐가.

송화는 창근에 대한 불만으로 속이 바글바글했다.

왜 남들처럼 떳떳하게 일을 못할가. 지금쯤 어느 개인집에 박혀 주문받은 가구를 제작해주느라 땀을 흘리고있을것이 뻔했다.

만나기만 해봐라.

요즘 창근은 송화를 슬슬 피해다니는것 같다.

사회와 집단의 리익을 외면하고 제 리속을 채우려는 사람은 떳떳치 못한탓에 자연히 남의 눈치를 보게 되고 비굴해지기마련이다.

그것이 자신의 존엄과 자존심을 스스로 허무는 처신이라는걸 몇번이나 말을 해주었는데도 왜 채심을 못하는가.

속이 앙앙해진 송화의 마음을 눅잦히듯 점심시간을 알리는 고동소리가 울리였다. 사람들이 하나둘 흩어져갔다.

송화가 다짐봉을 사형무지에 내려놓고 작업장갑을 벗는데 누군가가 큰소리로 말하였다.

《송화! 뻐꾸기가 널 찾는대.》

귀거슬리는 소리였다. 순간에 신경이 팩 돋아 고개를 돌리고보니 함께 일하는 금녀아주머니가 저만치 걸어가고있었다.

뻐꾸기란 창근을 두고 하는 소리다.

이름을 부를게지 하필이면 뻐꾸기가 뭐람.

밸이 난걸 생각하면 그를 불러세워 한바탕 화풀이를 하고싶었지만 꾹 참고 바람에 밀리듯 밖으로 향하였다.

직장 맞은쪽 수삼나무아래에 창근이가 서있는것이 보였다.

무슨 기분좋은 일이라도 있는지 히죽히죽 웃으며 송화를 향해 어서 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를 보는 송화의 눈에 불이 일었다.

뻔뻔스럽기란, 남들은 한창 땀흘리며 일하는데 어델 싸다니는거야? 가만두지 않을테다.

창근을 혼쌀내울 화약에 심지를 다지며 다가간 송화가 매몰차게 쏘아붙였다.

《동무, 지금 제정신이예요? 일은 안하고 어델 갔댔어요?》

했으나 창근은 뜨끔도 하지 않고 능글거렸다.

《아, 이런, 만나자바람으로 성은 왜 내는거야. 곱게 말해도 되겠는데… 야, 이 땀 좀 봐!》

오히려 제편에서 너덜거리는 판이다.

땀을 닦아주려고 다가오는 손을 참지 못하고 콱 움켜잡았다.

《아가가!》

창근이가 숨넘어가는 소리를 쳐댔다.

송화는 그 소리에 혹시 사람들의 눈길이 미칠가봐 겁이 나 얼른 놔주고말았다.

《야, 팔목뼈 부스러지겠다야. 얼굴은 고운데 무슨 녀자 손이 이렇게 매워? 제대군인이라는거 다 알아. 앞으로 같이 살면서도 세대주한테 주먹세례를 안기면 야단인데… 그래두 난 송화가 좋아.》

아유, 살갑다는건. 웃지 않을수 없었다.

송화에게 시틋한 웃음을 지어보인 창근은 웃옷주머니에서 두겹으로 접은 종이를 꺼내 내밀었다.

《자, 받아.》

《이건 뭐예요?》

《펴보라니까.》

종이를 받아들고 펼치던 송화의 눈이 꼿꼿해졌다.

시뻘건 공인명판이 찍힌 식료공장 로력조절의뢰서였다. 기가 막혔다.

《내가 그걸 해결하느라고 얼마나 품을 들였는지 알아? 로력이 다 찼다는걸 손이야 발이야 빌며 겨우 그 공장 로동과장을 설복시켰거던. 처음에는 값을 올리던 로동과장이 송화의 경력을 듣더니 입이 터진 팔자루가 되지 않겠어. 송화를 자기네 공장 직맹해설강사로 쓰겠다나. 어때, 괜찮지?》

큰일이라도 해제낀듯 잔뜩 기분이 떠서 하는 창근의 말에 송화가 갑자기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였다.

《호호호! 직맹해설강사?》

《그럼. 거기 가면 쭉 때벗이를 하지. 편안하겠다, 먹을 알이 있겠다, 좀 좋아? 여기처럼 먼지 먹을 일도 없고…》

웃음이 사라진 송화의 얼굴에 싸늘한 랭기가 풍기였다.

서리를 품은 눈가장자리가 파르르 떨리였다.

분하였다. 창근의 동정의 대상이 된것이 참을수 없이 분하였다.

《뭐예요?》

송화는 윽벼르며 창근이에게 다가섰다.

창근이 비실비실 뒤걸음쳤다.

《자 이런, 또 또… 말루 하자, 말루…》

송화의 손에서 종이장이 발기발기 찢어졌다.

《내가 언제부터 정창근이라는 인간의 동정의 대상이 됐어요?》

그것을 창근의 발치에 내던지는 송화의 눈가에 분노의 눈물이 가랑가랑하였다.

가랑잎처럼 흩날리는 종이쪼각들을 보는 창근의 눈이 뒤집혔다.

《정신있어? 그걸 찢으면 어떻게 해?》

창근을 노려보는 송화의 눈은 성냥가치를 가져다대면 금시 불이 당길듯 하였다.

《그래 그따위걸로 내 비위를 맞추자고 남에게 굽신거렸다는거예요? 시라소니처럼…》

《뭐, 시라소니? 정말 말 다했어?》

귀뺨을 얻어맞기라도 한듯 볼을 실룩거리는 창근의 얼굴은 화로불을 마주한듯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호랑이라는 말을 듣고싶거든 처신을 바로해요. 자존심, 존엄이라는 말은 다 잊어버렸지요? 몇번이나 말했어요. 그래 엎드려 빌어야 말 듣겠어요? 눈물을 쏟으며 통곡을 해야 말 듣겠어요?》

다시는 상대를 하지 않을듯 팩 돌아선 송화가 찬바람을 일구며 걸음을 내짚었다.

《서라!》

역정에 가까운 창근의 성이 난 목소리가 잔등을 때리였으나 송화는 못 들은체 그냥 걸음을 옮겼다.

모욕을 당한것만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사람을 어떻게 보고 그따위 흥정판에 날 올려세우는거야.

뭐, 식료공장? 편안하고 먹을 알이 있다, 먼지 먹을 일도 없고…

정창근이,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도 달라질수가 있는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만 하여도 푸른 하늘처럼 쾌청하고 샘물처럼 맑던 창근이가 언제부터 리기심이 머리속에 꼴깍 찬 속물로 되였는지 리해가 안되였다.

사람이 그렇게도 변하는가.

송화와 창근은 어릴 때부터 콩깍지안에 나란히 들어앉은 콩알처럼 다정하게 지내며 자랐다. 그것은 아마도 아버지들이 한직장에서 일하며 형님, 동생처럼 자별하였던 까닭이였는지도 모른다.

그래서인지 유치원과 인민학교를 거쳐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한번도 떨어진적이 없었다.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그들은 인민군대로 탄원하였다.

군대에 나가도 한부대에서 복무하기로 약속하였었다.

구김살없이 소박하고 열렬하였던 그들의 꿈이 창근이가 철봉훈련을 하다가 떨어져 팔을 다치는 바람에 광주리채로 뒤집어져 박살이 난 닭알처럼 될줄 어찌 알았으랴.

대공을 날으려던 푸른 꿈이 깨여진 창근은 너무 분하여 어린애처럼 소리내여 울었다.

운명의 장난같은 창근의 불행에 송화도 울었다.

군복을 입은 송화가 초소로 떠나던 날 자신의 처지가 서글퍼난 창근은 눈물이 글썽해서 푸른색뚜껑의 수첩을 내놓았다.

《송화, 이걸 받아. 여기에 내가 송화에게 하고싶은 부탁을 적었어.》

가슴이 뭉클하여 수첩을 펼치니 거기에는 창근이가 품들여 또박또박 쓴 노래가사가 적혀있었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행복한 나날엔 다 모른 그 사랑

시련의 나날에 가슴에 새겼네

눈비에 젖을가 찬바람 맞을가

한몸에 막아준 그대의 넓은 품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한생을 바치자 위대한 내 조국에


자식들 얼굴에 웃음꽃 필 때에

그대의 어깨엔 더 큰 짐 놓였네

철들어 마음에 그 짐을 져보니

키워준 그 은정 눈시울 뜨겁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한생을 바치자 위대한 내 조국에


그대를 지키는 성스런 이 길에

후대들 누려갈 행복도 있어라

값높이 바치는 오늘의 애국은

내 나라 번영의 초석이 되리라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한생을 바치자 위대한 내 조국에


이미 머리속에 환한 노래였지만 새로운 의미로 가슴에 새겨졌다.

송화는 작별의 그 순간 창근이가 하고싶은 말이 많고많으련만 왜 노래의 구절을 새겨주는지 잘 알았다.

《고마워, 동무의 부탁을 잊지 않겠어.》

그들은 이렇게 헤여졌다.

군사복무의 나날 송화는 창근의 부탁을 새겨안고 조국을 위하여 충정의 발걸음을 걸었다.

군대에 나온지 두달만에 송화는 아버지가 보낸 편지를 읽다가 그만 졸도할번 하였다.

창근이 아버지가 작업도중 동지들을 구원하고 희생되였다는것과 구원된 사람들중에 자기의 아버지도 있었다는것이였다.

제정신으로 돌아온 송화는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

울면서 창근이가 수첩에 적어준 그 노래구절을 입속으로 불렀다.

그 노래를 부르며 창근을 그려보았고 그의 아버지를 생각했다.

송화를 만나면 친딸을 만난듯 반가와하던 창근의 아버지였다.

언젠가 창근의 아버지는 송화를 보며 최금석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형님! 이담에 송화가 크면 다른데 시집보내선 안되우다. 이 앤 우리 며느리요.》

그때 아버지는 싱글벙글하며 뭐라고 하셨던가.

《그야 이를 말인가. 난 이미 동생네 아들 창근이를 내 사위로 점찍어놓은지 오래다네.》

송화는 자라면서 아버지들이 주고받은 말이 술좌석에서 나는 객담이 아님을 느끼게 되였다.

송화가 열일곱살 잡히던 해의 생일날 창근의 아버지는 숫눈처럼 하얀 한쌍의 비둘기가 들어있는 장을 가지고 집으로 찾아왔다.

타원형으로 된 비둘기장은 창근의 아버지가 직접 제 손으로 만들었다는데 어떻게나 섬세하게 가공을 하였는지 한다하는 목수재간을 가진 사람들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팥알처럼 빨간 눈을 삼빡거리며 자기를 빠금히 쳐다보는 한쌍의 비둘기를 보는 송화는 창근의 아버지가 왜 이것을 가져왔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비록 설명은 없었어도 자기와 창근의 마음이 한쌍의 비둘기처럼 다정하고 깨끗하기를 바라는것임을 느꼈을 때 아직은 이성에 대해 눈이 채 트이지 않은 송화였지만 별스레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 마음을 엿본듯 한 아버지가 히죽이 웃으며 한마디 하였다.

《허허허, 비둘기란 한번 정을 붙이면 일생 떨어질줄 모르지.》

그래서 아마도 제대되여온 후 청천강의 방천에서 창근을 만났을 때 주저주저하며 하는 그의 사랑의 고백에 거절없이 응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내보니 창근은 오늘의 벅찬 시대를 빛내이기 위해 청춘의 슬기와 용맹을 떨쳐가는 청년들처럼 훌륭한 인간이 아니라 벌레먹은 콩처럼 아무 쓸모도 없는 속물로 변한 정신적인 약자였다.

오한을 만난것처럼 속이 떨리였다.

전쟁보다 더 어려웠던 시련의 나날 눈비에 젖을가, 찬바람 맞을가 애지중지하며 키워준 어머니조국을 위해 심장을 바치겠다고 할 때가 언제인데 저 하나를 위해서 사는 너절한 인간으로 되였는가.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아버지를 잃은 다음부터 창근이가 이지러지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돈맛을 들인때문인듯도싶었다.

공장에서 일한 대가와 개인들의 가구주문으로 얻은 보수의 차이는 창근이로 하여금 저도 모르게 제 주머니를 채우는 일에 성수가 나게 하였고 그것이 재미가 붙어 점차 집단생활에서 탈선하게 하였다.

그것을 가늠 못하는 건설직장장과 일부 사람들은 창근이가 때때로 직장을 위해 《후방사업》을 하는것을 잘한다, 잘한다 하며 추어주니 자기도 집단을 위해 뭔가 기여한다고 우쭐해졌다.

그런 창근을 바로잡아주자고 충고도 하고 사정도 해보았지만 송화 자기 말은 먼산의 우뢰만큼도 여기지 않는다.

창근이가 그런 인간인줄 모르는 송화 아버지는 일흔돐생일날 창근이가 힘에 부치게 지고 나타난 음식감들과 옷감들을 보고 사람이 진국이라고 입에 침이 마를새없이 칭찬을 해댔다.

아버지는 지금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창근의 소리다.

뭐, 사위감이라구?

창근의 곁에 자신을 세워보는 송화는 기가 막히였다.

안돼! 어제날의 창근이로 되돌아오기 전에는 절대로 곁에 설수 없어.

절대로 죽은 심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수가 없어.

갈팡질팡거리는 생각에 빠져 발길 가는대로 걸음을 옮기던 송화는 자기 집을 지나쳤음을 깨닫고 황황히 되돌아섰다.

생각해보니 허망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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