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6 회)


16


의자에 제빠듬히 앉은 리석민은 쌉쌀하면서도 향긋한 냄새를 풍기며 김을 물물 피여올리는 커피잔에 입을 가져다댔다.

커피맛이 혀끝에서 기분좋게 돌다가 뜨거운 열을 안고 배속으로 흘러들었다. 요전날 윤상배가 뽐프계약차로 해외출장을 갔다가 가져다준 커피였는데 맛이 전에 마시던것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졸금졸금 커피를 마시는 리석민은 요즘 자기가 커피중독에 걸린게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들었다.

하긴 건설속도가 점차 높아지면서 선행시켜야 할 설비들을 끌어들이기에 동분서주하여야 할 때여서 순간이라도 정신이 흐리터분해서는 안되겠기에 여느때보다도 더 마시는지도 모른다.

기분이 뜬 리석민은 다 마신 커피잔을 원탁우에 올려놓고 책상우에 놓여있는 안전모를 집어들었다.

오후에 현장에서 협의회를 가지기로 하였던것이다.

막 방을 나서려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시오.》

손에 쥐였던 문고리를 놓은 리석민이 뒤로 물러섰다.

방문이 벌컥 열리더니 장사같은 사나이가 들어섰다.

《안녕하십니까? 동주뽐프공장 지배인 리대철입니다.》

복더위속에서 마라손경기라도 한듯 한 리대철의 얼굴에서는 팥죽같은 땀이 비오듯 흘러내렸다.

첫눈에 보아도 거방진 체구에 위압감을 주는듯 한 날카로운 눈빛을 마주한 리석민은 저도 모르게 마음이 긴장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언제나 모든 일에 자신만만해하던 리석민으로서는 여태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였다.

내가 왜 이럴가 하고 생각해보니 깨도되는것이 있었다.

그것은 김원삼이 빨리 동주뽐프공장 지배인을 불러서 뽐프문제를 락착지어야 한다고 한것을 이것 재고 저것 재며 오늘까지 침묵으로 대한것이였다.

이렇게 제발로 찾아온걸 보면 속에 불만이 가득할것이다.

가만, 지도국 차부국장이 이 사람에 대해 뭐라고 했던가. 한번 욱ㅡ 하면 주먹으로 바위라도 깰듯 무분별하다고 했었지.

이제 이 사람이 어떻게 나올가.

은근히 마음이 요글요글해진 리석민은 그답지 않게 어줍은 웃음을 떠올리였다.

《아, 동무가 동주뽐프공장 지배인이였구만. 더운 때 먼길 오느라 수고했소. 날이 꽤 무덥지?》

리석민은 선풍기의 스위치를 눌러 리대철의 앞으로 바람방향을 돌려댔다. 선풍기에서 일으키는 시원한 바람이 리대철을 덮치였다.

금시에 땀이 쑥 들어가는듯 싶었다.

《내가 출장간 사이에 왔다갔더구만.》

《예.》

자기 의자에 가앉은 리석민은 리대철에게 친절하게 벽쪽에 붙어있는 의자를 가리켰다.

《앉소. 앉아서 이야기하기요.》

《고맙습니다.》

리대철이 의자에 앉자 리석민은 다시 그쪽으로 선풍기를 돌려놓았다.

지나칠 정도의 친절한 호의에 리대철은 옹색하기 그지없었다.

마음의 여유를 얻은 리석민이 점잖게 물었다.

《김원삼동무한테서 듣자니 동무네 공장에서 고양정뽐프를 자체로 만들겠다고 했다면서?》

《그렇습니다.》

《그런 뽐프를 만들어본 경험이 있소?》

《없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있습니다.》

《첨단급인데도 자신이 있단 말이지.》

《무엇이 불가능하다면 조선말이 아니지요.》

《음, 그 배짱이 마음에 드누만.》

리석민은 듣던바대로 리대철이 만만치 않음을 느끼였다.

《이걸 좀 보오.》

책상서랍에서 윤상배가 가져다준 수입뽐프를 찍은 사진을 꺼낸 리석민은 그것을 리대철의 앞으로 밀어놓았다.

허리를 펴고 일어선 리대철은 책상가까이로 다가서며 그 사진을 집어들었다.

요란하게 설명서를 붙인 고양정뽐프상품광고가 리대철을 올려다보고있었다.

리대철은 피끗 리석민을 띄여보았다. 이걸 자기에게 보여주는 의도가 리해되지 않았다.

다시 설명서에 눈길을 박았다. 겉모양은 일반뽐프와 별반 차이가 없어보였다.

문제는 본체안에 있는 날개각도와 개수, 이여의 부분품들의 구조상기술적특성이였다.

그에 대한 기술적인 자료가 공개된것이 없는탓에 연구소동무들과 정향이가 애를 먹고있었다.

하지만 조만간에 해결하고야말것이다.

사진을 책상우에 놓은 리대철이 싱긋이 웃어보였다.

《우리도 이만한 수준의 뽐프를 얼마든지 만들수 있습니다.》

팔을 내뻗쳐 사진을 집어 서류에 걷어넣은 리석민은 난색을 지었다.

그도 그럴것이 건설지휘부 책임일군들로부터 뽐프수입을 취소할데 대한 과업을 받은 리석민은 윤상배를 불러다놓고 그에 대해 알려주었다가 강한 반발에 부딪쳤던것이다.

대방과의 계약은 개인들간의 약속이 아니라 국가의 존엄을 걸고 하는것인데 그걸 취소시키면 나라의 영상이 흐려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신용을 잃고 앞으로의 무역거래에서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한다는것이였다. 듣고보니 심중한 문제가 아닐수 없었다.

리석민은 지금 자기가 리대철과 윤상배의 틈에 끼워 이쪽저쪽의 비위를 맞추어야 되는 신세가 되였다는 어이없는 생각이 들었다.

일도 참 묘하게 되였다.

결론은 이 지배인을 설복시켜 양보를 받아내는것이였다.

그런데 그것이 이 사람에게 통하겠는지.

《이보우 지배인동무, 건설지휘부에서는 동무네 공장에서 뽐프를 자체로 만들겠다고 한 제기를 놓고 수입안을 취소할데 대한 문제가 론의되였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구만. 그래서… 내 의견은 이렇소. 뽐프수입은 이미 대방과의 계약이 이루어진것만큼 이번엔 동무네가 양보해야 할것 같구만. 앞으로 건설은 계속될테니까 그때 가선 동무네를 믿고 절대로 뽐프를 수입하지 않기로 하고…》

조심스럽게 하는 리석민의 말에 리대철은 속이 꿈틀거리는것을 참을수가 없었다.

리석민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이 순간에 허물어져내리였다.

그런 말이나 듣자고 천방지축 달려온 리대철이 아니였다.

《그 의견은 접수할수 없습니다.》

《허허허! 이제 보니 동문 대외사업에 대하여 잘 모르는것 같구만. 다른 나라와의 무역거래는 아이들 장난이 아니요. 나라의 대외적권위문제란 말이요. 이웃집과 한 약속을 어겨도 얼굴을 붉히며 목소리를 높이는데 황차 다른 나라와 맺은 계약을 파기하면 일이 어떻게 번져질것 같소?》

어떻게든 리대철을 설득시키려는 리석민의 얼굴에서는 어색한 웃음이 감돌았다.

자기를 철없는 소학생취급하듯 하는 리석민의 말에 리대철은 윽하는 성미를 참지 못하고 의자를 차고 일어섰다.

《안됩니다. 뽐프를 사오자면 계약서에 존엄높은 우리 조국의 국호를 밝혀야겠지요? 우리의 힘과 기술로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것을 사온다는것은 조국의 존엄과 자존심을 막눅거리로 파는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그걸 알면 인민들이 용서할것 같습니까?》

휘여잡을수 없는 돌개바람같은 리대철의 반격에 여지없이 면박을 당한 리석민의 가슴은 무딘 송곳에 찔린듯 뜨끔해났다.

다른 일이라면 열두번도 목청을 돋구련만 뽐프수입은 실무적인 문제가 아니라 당정책을 대하는 자세와 립장문제이며 그때문에 지휘부 책임일군들도 수입계획을 검토하라고 하였는데 심중하지 않을수 없었다.

물론 동주뽐프공장에서 능히 만들수 있다는 믿음이 가지 않았지만 기어코 하겠다고 두주먹을 부르쥐고 나서는데야 그를 묵살시킬수 없지 않는가. 과시 이 사나이는 한번 윽하면 주먹으로 바위라도 깨겠다고 하는 인간이라는 위압감이 들었다.

좀더 비위를 건드렸다간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몰랐다.

《허허허! 이제 보니 지배인동무의 배짱이 여간 아니구만. 좋소! 지휘부일군들과 토의한대로 수입을 중지하기요.》

천정이 무너져내리기라도 할듯 우뚝 버티고 서있던 리대철은 리석민의 결단에 저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리였다.

《그게 정말입니까?》

《허허허, 내 아무렴 동무와 숨박곡질을 하겠소? 동무 말마따나 나라의 권위와 존엄을 지키는 일인데… 동무네를 믿어야지.》

리석민의 용단에 리대철은 공감은 되나 수입중지라는 말이 아리숭하였다.

이왕 결심을 했으면 파기시키는것이 옳지 않는가.

수입을 중지한다는것과 파기한다는 의미는 질적으로 다르다.

중지는 무슨 일을 도중에 그만두는것으로서 부득이한 경우 다시 시작할수 있다는 뜻이요, 파기는 계약을 무효로 완전히 취소시키는것으로서 우리를 믿으려면 그렇게 해야 옳은것이 아니겠는가.

하긴 우리가 뽐프를 제작하면 수입계약은 스스로 파기되고말것이다.

《그럼 전 돌아가서 뽐프제작을 내밀겠습니다.》

《뭘 그렇게 덤비오? 듣자니 동무넨 주물직장을 새로 옮기면서 중요대상설비생산을 형편없이 미달했다고 하던데 계획에 없는 뽐프제작을 벌려놓았다가 일을 그르치지 않겠소?》

점잖게 던지는 리석민의 말에 리대철은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벌써 우리 공장실태를 구체적으로 알아보았구나. 하긴 뽐프제작이 일정에 올랐으니 우리 공장에 대해 구체적인 파악을 했을것이다.

《주물직장이설로 중요대상설비생산이 늦어진건 사실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린 아직 국가의 지령을 어긴적이 없습니다.》

말문이 막힌 리석민의 갱핏한 얼굴에 씁쓸한 웃음이 스치였다.

《그럴테지.》

《그럼 돌아가겠습니다.》

《잘 가오.》

인사를 한 리대철이 문가로 향하는데 리석민이 무슨 생각이 났는지 불러세웠다.

《가만!》

돌아서는 리대철을 쳐다보던 리석민은 할말을 잊은듯 머리를 흔들며 애매한 소리를 하였다.

《내가 이제 무슨 말을 하려고 했던가. 허참, 이젠 나이가 들어서인지 머리가 온통 채구멍이 되였거던. 금방 하려던 말도 다 잊고… 안됐소, 가보오.》

리대철은 속으로 어이없는 웃음을 지으며 방을 나섰다.

그가 사라진 문가쪽을 지켜보는 리석민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윤상배가 알면 노발대발 하겠는걸.

리석민은 그를 어떻게 설득시킬것인가에 대해 은근히 속을 썩이였다.

리석민과 헤여진 리대철은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현장에 앉아 우에서 올라오라는 지시를 기다리고있다가 어쩔번 하였는가. 늦게나마 달려온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처음으로 마주섰던 리석민과의 담화과정을 돌이켜보느라니 이야기도중 얼굴을 붉힌적은 있었으나 총적으로 평가하면 그가 결패가 있는 일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군은 응당 그래야 한다.

기분이 들뜬 리대철은 김원삼처장을 만나지 못했다는 생각에 걸음을 되짚었다.

그의 사무실에 가니 열쇠가 잠가져있었다.

손전화기를 꺼내여 김원삼을 찾으려는데 별안간 리석민의 방문이 열리더니 그의 얼굴이 쑥 나타났다.

의문어린 리석민의 눈길이 리대철의 얼굴에 박히였다.

《아직 안 돌아갔소?》

《예, 저… 뭘 잊은게 있어서…》

《누굴 만나려고?》

《예, 김원삼처장동지를 만나려고…》

리석민이 웃음을 띠우며 손을 내저었다.

《김원삼동무는 지금 출장중이요.》

《그렇습니까?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건설지휘부에서 나와 건설장을 가로질러가던 리대철은 앞에서 웬 사람이 흠칫 놀라며 한옆으로 비켜서는것을 보았다.

그 사람은 이상하게 얼굴을 외로틀며 뜨아해서있는 리대철의 앞을 바람처럼 지나쳤다.

어쩐지 자기를 피하는것만 같았다. 왜 그럴가?

혹시 내가 아는 사람이 아닐가 하는 의문이 든 리대철은 그의 옆모습을 훔쳐보았다. 순간 눈이 커졌다.

어디서 본 낯이였던것이다.

누굴가? 내 저 사람을 어디서 보았던가. 재빨리 기억의 갈피를 번지였으나 인차 떠오르지 않았다.

분명 알만 한 사람인데…

다시한번 곰곰히 기억의 장부를 벌컥거리는 리대철의 눈앞에 한 인간의 모습이 흐리마리하게 떠올랐다.

누구였던가. 드디여 그 인간의 표상을 끄집어내고야말았다.

아! 윤상배. 20여년전 공장에 와있는 기간 앞날이 촉망되는 《수재》로, 《호남아》로 소문을 냈던 그 윤상배가 분명하였다.

가슴속에서는 멀기가 치밀었다. 부르르 몸이 떨렸다.

자기의 리속을 위해서라면 인간의 귀중한 존엄도 자존심도 휴지장처럼 구겨버린 인간.

부지중 리대철의 뇌리에 그 인간의 너절한 행위에 대하여 알고 경악을 했던 일이 생각히웠다.

그때가 언제였던가. 그렇지, 윤상배가 공장을 떠나간지 석달후였지.

그때 공장에서는 탄광에서 석탄을 받아오기가 힘들어 공장운영과 종업원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는것으로 하여 론의들이 분분하였다.

그러한 때 리대철이 더는 나라에 손을 내밀지 말고 자체로 탄광을 개발할것을 제기하였다.

그의 제기는 일군들은 물론 종업원들의 지지를 받았다.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면서 해당한 절차를 밟아 탄광개발승인을 받은 리대철은 자기가 직접 돌격대를 책임지고 탄광으로 떠났다.

탄광에 도착한 리대철은 그곳 일군들에게 호소하여 탄광에서 로력사정이 긴장하여 개발을 중단한 어느 한 갱을 넘겨받았다.

막상 일을 시작하고보니 탄광경험이 없는 그들로서는 기술자의 방조가 필요하였다.

탄광에서는 갱작업경험이 많은 기사 한명을 붙여주었다.

그런데 나이가 쉰줄에 들어선 그 사람은 리대철이네를 쓴 외보듯 하며 도와주는것을 별로 달가와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도저히 일자리가 나지 않았다.

무슨 일에서나 쪼물짝하고 우유부단하는것을 보면 참지 못하는 리대철은 어느 하루 그를 만나 왜 우리 일에 손발이 시려하는가, 우리 뽐프공장에 대해 무슨 고까운 감정이라도 있는가고 따져물었다.

처음에 뻣뻣해있던 기사는 뽐프공장에 대해 불신을 가지게 된 사연을 토설하였다.

천만뜻밖에도 그의 입에서 윤상배 소리가 튀여나왔다.

몇달전 장기질환으로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다가 퇴원한 기사의 집에 웬 젊은이가 량손에 무거운 꾸레미를 안고 찾아왔다.

동주뽐프공장 아무개라고 자기 소개를 한 젊은이는 방바닥에 들고온 물건들을 주런이 펴놓았다.

고기와 수산물, 닭알 그리고 약꾸레미였다.

기사는 어리둥절하였다. 도대체 무슨 일때문에 생면부지의 젊은이에게서 이런 호사를 받아야 하는지…

영문을 모르는 기사의 눈뿌리를 자극하는것은 멋지게 포장한 약병이였다.

장기가 좋지 않아 철이 바뀔 때마다 신고하는 기사는 병치료에 좋다는 약은 다 써보았지만 별로 효과를 보지 못했는데 젊은이가 들고온 약은 최근에 개발한것으로서 좀처럼 구하기가 힘든것이였다.

병자의 마음은 항상 병을 털어버릴수 있는 약에 가있는 법이다. 이게 웬떡이냐. 슬며시 그 약을 손에 쥔 기사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았다.

설명서를 보니 당장에 병이 뚝 떨어질것 같았다.

저도 모르게 탄성이 터졌다.

《야! 이거 정말 좋은 약이로구만.》

그 말에 젊은이는 히쭉 웃었다.

《예, 그 약은 우리 친척되는 사람이 연구개발한것인데 림상실험결과 써본 사람들의 호평이 대단하답니다.》

《이 약을 동무의 친척이 개발했단 말이요?》

《예, 써보고 효과가 있으면 부탁하십시오. 얼마든지 구해드릴테니.》

《고맙소, 정말 고맙소.》

인차 상이 차려졌다.

젊은이가 들고온 음식들은 모두가 가공품이여서 부엌바람을 쏘이지 않아도 되였다.

기사는 속탈때문에 술은 들지 않았으나 이 젊은이가 왜 낯도 코도 모르는 나에게 이렇듯 극진한 선심을 쓸가 하는 의문이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무슨 목적이 있어서 찾아왔겠는데 그게 뭔지?

돌아가는 말이 동주뽐프공장에서 탄광에서 사용하는 뽐프의 수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찾자고 기술혁신조를 무어가지고 내려왔다는데 혹시 나의 도움을 받자고 온게 아닐가.

아닌게아니라 기사는 몇년째 뽐프의 수명이 짧아지는 원인을 찾기 위해 남모르는 사색과 탐구끝에 갱들의 지하수가 뽐프의 흡입관을 통과할 때 침전물이 함께 따라올라오기때문이라는것을 발견하게 되였다.

기사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젊은이의 입에서 그 문제가 튀여나왔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지금 자기에게는 운명적인 문제가 걸려있는데 도와달라는것이였다.

하지만 그 운명적인 문제가 무엇인지 딱 찍어말하지 않았다.

손이야 발이야 빌며 통사정을 하는 젊은이앞에서 기사는 심중해지지 않을수 없었다.

무릇 발견이란 한 인간의 고심참담한 사색과 노력의 창조물로서 자기의 살붙이와 같은데 그것을 어찌 남에게 순순히 넘겨준단 말인가.

안돼, 내가 그걸 발견하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품을 들이였던가.

젊은이의 호소가 어찌보면 무례한것이라고 생각되였지만 눈앞에 보이는 약꾸레미를 보느라니 모질게 먹었던 강심이 자기도 모르게 물러지는것을 어쩔수가 없었다.

허ㅡ 결국은 나의 창조물을 이 약과 바꾸는셈인가?

눈물이 나도록 아쉬웠다.

한동안 생각을 깊이 한 기사의 마음속에서는 자기자신의 리기적인 타산을 타매하는 목소리가 울리였다.

뭘 주저하느냐, 뽐프의 수명을 연장하면 나라에 도움을 주겠는데 네것내것하며 옹졸하게 저울질을 하지 말라, 젊은이를 도와주라, 앞길이 구만리같은 젊은이가 운명적인 문제를 걸고 도움을 청했지만 어쨌든 너의 발견은 나라를 위한 일이 아니겠는가.

생각을 털어버린 기사는 드디여 젊은이의 요구에 응하기로 결심하였다. 고심어린 기사의 발견을 수첩에 또박또박 받아쓴 젊은이는 머리를 방바닥에 닿도록 백배사례하며 기사의 호의를 일생 잊지 않겠노라고 거듭거듭 외웠다. 그러면서 기사의 병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노라고 다짐을 두는것을 잊지 않았다.

젊은이와 헤여진 후 기사는 그가 가져다준 약을 장복하기 시작하였다.

확실히 효과가 있었다. 소화도 잘되고 기운이 뻗쳤다.

일욕심도 배로 생겼다. 약이 떨어져가자 은근히 그 젊은이를 기다리게 되였다.

그가 뭐라고 했던가, 자기의 병치료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장담하지 않았던가.

그런 가위에 동주뽐프공장에서 탄광용뽐프의 수명을 늘이는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소식을 신문에서 보게 되였다.

발명자의 이름과 함께 젊은이의 사진까지 받쳐 실은 신문은 그 젊은이에 대하여 요란하게 소개하였다.

공장에서의 생활을 구체적으로 담은 그 기사를 보느라니 신문의 주인공이 여간만 성실하고 근면한 인간이 아니였다.

그를 만나 축하해주고싶었다. 그럴수록 그가 더 기다려지게 되였다. 허나 기다리는 젊은이는 실 끊어진 연처럼 다시 나타날줄 몰랐다.

일이 바빠서 못 오겠지, 신문을 보면 사람이 의리도 깊다고 했는데 아무렴 자기를 도와준 나를 잊었겠는가.

목마를 때 만났던 샘은 일생 잊혀지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던가.

목이 빠지게 젊은이를 기다리던 기사는 어느날 동주뽐프공장에 가서 뽐프를 접수해오라는 과업을 받게 되였다.

마침이였다. 공장에 가서 그 젊은이를 만나면 얼마나 반가와할텐가.

허나 그것은 한갖 꿈이였다. 공장에 가보니 그 젊은이가 발명권을 받은지 얼마 안되여 평양으로 소환되여 갔다는것이였다.

그 소리에 온몸이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졌다.

그러니 그때 그 젊은이가 눈물이 글썽해서 사정을 하던 운명적인 문제가 평양소환이였단 말인가.

기사는 자신이 그 젊은이에게 기만당한게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었다. 왜냐면 자기에게 달라붙으며 통사정을 할 때에는 살점이라도 베여줄것처럼 살갑던 그가 탄광을 떠나간지 이날껏 일언반구 소식이 없었기때문이였다.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온 기사는 얼마후 탄광에서 조직한 평양견학을 가게 되였다.

그때는 그 젊은이에 대한 미련이 연기처럼 사라진 뒤였다.

즐거운 평양견학의 나날 기사는 우연히 평양역앞에서 그 젊은이를 만나게 되였다.

승용차곁에서 웬 사람과 마주서서 열정적으로 이야기를 주고받는 그 젊은이는 그전날의 초췌해보이던 모습과는 영 딴판이였다.

보기에도 경쾌한 가을용제낀깃양복에 하얀 점이 다문다문 박힌 청색바탕의 넥타이를 매고 색안경까지 척 코에 건 젊은이는 범접하기 어려운 기품이 느껴졌다.

반가왔다. 어쨌든 나야 저 사람에게 일생 잊어서는 안될 신세를 지운 사람이 아닌가. 그런 생각으로 배심있게 그앞으로 다가간 기사는 수년만에 혈육이라도 만난듯 기뻐하며 환성을 터뜨렸다.

《윤상배동무 아니요?》

그런데… 자기를 보면 반가와하며 얼싸안을줄 알았던 젊은이의 태도는 기사를 아연케 하였다.

먼 하늘에서 울리는 우뢰소리라도 가늠하듯 마지 못해 돌아보는 얼굴, 자기앞에 선 탄부제복을 입은 기사를 영 남남을 대하듯 하는 쌀쌀한 눈길, 그의 입에서 새여나오는 무뚝뚝한 목소리…

《누구신지요?》

너무도 랭담한 태도에 기사는 놀란 나머지 그 자리에 얼어붙고말았다. 이럴수가 있는가. 이 사람이 날 못 알아보아서인가, 아니면 모르는체 하는건가.

의분이 솟구쳤다.

두방망이질하는 가슴을 가까스로 달래는 기사의 목소리는 떨리였다.

《날 정말 모르겠소?》

한동안 기억을 더듬는듯 고개를 궁싯거리던 젊은이는 설레설레 머리를 저으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

《모르겠는데요. 하두 사람들을 많이 대상하다보니…》

《뭐라구?》

배신감으로 하여 기사의 가슴속에서는 분화구를 찾아 몸부림치는 용암과도 같은 분노가 부글거리였다.

그때 곁에 있던 사람이 차에 오르며 윤상배에게 뭐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윤상배는 기사를 향해 건성으로 《미안합니다.》 하더니 미련을 가지지 말라는듯 승용차문을 쾅 닫았다.

미구에 발동이 걸린 승용차가 망두석처럼 굳어진 기사의 얼굴에 하얀 배기가스를 들씌우며 미끄러졌다.

멀어지는 승용차를 쏘아보는 기사의 입에서 울분이 터져나왔다.

《너절한 자식! 내가 청맹과니였지, 청맹과니였어.》 …

기사의 자초지종을 들은 리대철은 격분을 참을수가 없었다.

때묻지 않고 진실하다고 보았던 윤상배가 가시지 않은 재털이처럼 속이 시꺼먼 인간인줄 뒤늦게야 안것이 통분하였다.

자기도 기사못지 않게 윤상배앞에서 청맹과니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이 어쩌면 그렇게까지 철면피하고 파렴치할수 있는가.

인생의 초엽에 들어선 젊은 나이에 벌써부터 일신의 리기와 공명을 위해 남을 희생시키는 행위도 서슴지 않는 그런 인간이 앞으로 무슨짓인들 못할텐가.

미꾸라지 한마리 강물을 흐린다고 윤상배때문에 자기 공장이 탄광기사한테 곡해를 당하였다고 생각하니 그가 눈앞에 있다면 귀뺨이라도 때리고싶었다.

리대철은 지금 윤상배가 어떤 인간으로 변하였을가 하고 생각해보았다.

아직도 공장에 있을 때처럼 《진실한》 연기로 사람들을 기만하는 파렴치한 인간으로 남아있을것인가.

제발 그런 인간이 아니기를 믿고싶었다.

젊어 한때 평양소환이라는 유혹에 빠져 실수할수도 있지 않는가.

이제는 달라졌을것이다.

그가 발을 붙인 직장에도 조직이 있고 량심과 도덕의리를 귀중히 여기는 사람들이 있기에 그들의 손에서 닥달질을 받아 훌륭한 인간으로 되였으리라.

청심제와도 같은 세월의 흐름은 강물의 흐름과 어딘가 비슷한데가 있다. 강물의 흐름이 모난돌을 깎고 씻어 보기 좋은 조약돌로 만들듯이 세월의 흐름 역시 인간생활의 이모저모에서 나타나는 잘못에 대하여 그냥 스쳐버리지 않는다.

더구나 서로 돕고 이끄는 우리 사회에서는 매 인간들의 생활이 사회와 집단의 관심과 보살핌속에서 진행되기에 부패물은 반드시 씻기기마련이다.

그런 까닭에 윤상배라는 인간도 그 전날의 파렴치한으로 남아있을수는 없을것이라고 리대철은 믿고싶었다.

자석에 끌리는 철편처럼 슬금슬금 윤상배의 뒤를 쫓아온 리대철은 그가 건설지휘부 접수구를 통과하는것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아연한 표정으로 윤상배가 사라진 쪽을 지켜보던 리대철은 무엇인가 뇌리를 치는 생각에 촉각이 곤두섰다.

혹시 윤상배가 뽐프수입을 맡은 담당자가 아닐가.

부지중 언젠가 정향에게 아버지가 다니는 직장을 묻던 생각이 났다.

그때 그 직장이 창전거리건설에 동원된 기관의 명칭과 같아 고개를 기웃했었는데… 윤상배가 정향의 아버지가 아닐가?

그럴수도 있다. 윤상배, 윤정향… 너무도 놀라운 일치여서 핑 머리가 돌았다.

엉뚱하게 가지를 치는 생각에 마음이 활시위처럼 켕기여진 리대철은 접수구로 다가섰다.

다시 나타난 리대철을 본 접수원녀인이 뜨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니, 왜 또 오셨어요?》

《아주머니가 보고싶어 또 왔습니다.》

푸접좋게 하는 리대철의 롱말에 녀인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호들갑을 떨었다.

《아이구! 이런 고마운 일이라구야. 다 시든 호박꽃을 찾아주는 사람도 있구만요, 호호호.》

《시든 호박꽃이라니요? 내 눈엔 한창나이로 보이는데요.》

《호호호, 지배인동지도 롱담을 곧잘 하시는군요.》

기분이 좋아 활짝 웃는 녀인을 마주보며 벙글거리던 리대철이 슬쩍 한마디 던지였다.

《방금전에 들어간 윤상배동무는 여기서 무슨 일을 합니까?》

《윤상배? 무역부원동지 말이예요?》

녀인의 말에 리대철은 어마지두 놀랐다.

《예? 상배동무가 무역부원이라구요?》

《그럼요, 완공된 살림집들에 리용할 뽐프수입을 맡았다던지…》

기웃거리며 하는 녀인의 말이 리대철의 급소를 찔렀다.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그랬댔구나.

사람의 륙감이 때로 상상못할 정도로 정확할 때가 있다더니 그야말로 놀라운 일이였다.

접수원녀인이 갑자기 고통을 겪는 사람처럼 험하게 이지러진 리대철의 얼굴을 보고 급한 소리를 하였다.

《아니, 갑자기 왜 그러세요? 어디 아픈가요?》

《아… 아닙니다.》

접수구에서 물러선 리대철은 한옆에 쭈그리고앉아 널뛰듯 하는 가슴을 달래려는듯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물고 불을 붙이였다.

쓰거운 담배연기가 속을 훑어내리니 한결 마음이 가라앉는듯 하였다.

생활이란 얼마나 오묘한것인가.

오래간만에 만난 윤상배를 어길수 없는 외나무다리에서 맞다들줄이야…

우리의 인연이 처음부터 그렇게 맺어졌던가.

어제는 같은 대학졸업생이라는 반가왔던 감정이 얼마 못 가 분노로 치닫게 하더니 오늘은 물과 불처럼 타협 못할 처지에서 부딪치다니. 어떻게 되여 윤상배가 무역부원자리를 타고앉았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였다.

하긴 모를것도 없었다.

남의 발견을 흥정하여 제것처럼 분칠을 할줄 아는 그 처세술이면 그쯤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쯤은 식은죽 먹기였을것이다.

가만, 윤상배가 여기로 온것이 리석민사장을 만나러 온게 아닐가. 그럴수 있다. 예측이 틀리지 않는다면 사장과 나의 담화는 어떻게 리해하여야 하는가.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머리를 쥐여짜던 리대철은 자리를 털고 일어서며 윤상배가 나오지 않을가 하여 접수구쪽을 기웃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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