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1 회)


21


떡심이 풀린 창근은 통나무우에 털썩 주저앉았다.

량손에 무겁게 들고온 음식구럭지가 맥없이 미끄러져내렸다.

제길, 한걸음만 빨리 왔어도 되는걸.

이제라도 직장휴계실에 가면 동무들이 있지 않을가.

막연한 기대를 품은 창근은 움쭉 몸을 일으켰다.

구럭지를 들고 직장휴계실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별안간 등뒤에서 《하루품을 판 값에 비하면 손에 든것이 너무 가볍지 않은가요?》 하는 송화의 목소리가 울리였다.

창근은 못된짓을 하다가 덜미를 잡히운듯 공연히 화닥닥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퇴근중인듯 외출복차림의 송화가 생글생글 웃으며 서있었다.

날씬한 몸매에 장미꽃처럼 환한 얼굴에 웃음까지 함뿍 담은 송화를 보는 창근은 머리가 핑 도는것 같았다.

송화가 이렇게 아름다왔던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더구나 놀라운것은 오래간만에 송화가 웃는것을 본것이였다.

마치 무겁게 드리운 구름장사이로 얼굴을 내민 해를 보는것만큼이나 마음이 즐거웠다.

아까 전화를 할 때 보아선 만나면 독오른 고추처럼 새파래서 기관총 련발사격하듯 두들겨팰것 같더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일가.

오래간만에 받아보는 따뜻한 정에 흥이 난 창근은 빙긋 웃어보였다.

《동무들의 수고에 비하면 작은건 사실이야.》

《호호호! 오늘은 벌이가 시원치 못한게지요?》

그 말에 속이 켕긴 창근은 침먹은 지네처럼 꼿곳해졌다.

《그건 무슨 소리야? 남을 도와주었는데 벌이라니…》

《또 그 소리, 이젠 내앞에서 낡은 축음기같은 소리를 곱씹기가 창피하지 않아요? 내 공연한 소릴 했지. 그걸 어서 수고한 동무들에게 가져다주세요.》

《퇴근하지 않았을가?》

《아니예요. 이제 오면서 보니 금방 목욕을 끝내고 직장휴계실에 들어가더군요.》

《그래?!》

창근은 늦게나마 면무식을 하게 되였다는 생각에 숨이 나갔다.

《그럼 내 얼른 갔다오겠어.》

사기가 난 창근은 활시위를 벗어난 화살처럼 통나무무지를 에돌아 사라졌다.

한자리에 오도카니 서서 창근이가 사라진쪽을 지켜보는 송화의 입에서는 가는 한숨이 새여나왔다.

좀전에 작업을 끝내고 뒤거두매를 하고있는데 아버지한테서 전화가 왔었다.

퇴근하면서 창근을 집에 데리고 오라는것이였다.

무슨 일인가고 물으니 창근이가 좋아하는 잉어매운탕을 끓여놓았다고 했다. 별로 마음이 동하지 않았지만 창근을 자식처럼 여기는 아버지의 분부여서 군말없이 응하였다.

사실 저녁에 창근을 만나 오늘 작업을 뚜꺼먹은 일을 놓고 단단히 회계를 하려고 별렀었다.

창근이가 좋아하든 싫어하든 악습으로 굳어져가는 그 버릇을 깨야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 계획을 물거품으로 만들었다.

회계를 하자면 낯을 붉혀야 하는데 얼굴에 장마비구름을 안고 아버지앞에 나타날수야 없지 않는가.

그러니 억지로라도 밝은 표정으로 창근을 집으로 《모시고》가는 수밖에…

직장사무실에 갔던 창근이가 싱글벙글하며 돌아왔다.

《어딜 갈가? 식당에 갈가, 극장에 갈가?》

오랜만에 천진한 어린애처럼 기뻐 어쩔줄 몰라하는 창근을 보는 송화는 고까왔던 감정이 말짱 사라진듯 싶었다.

《호호호, 서쪽에서 해뜨겠네.》

《그건 무슨 소리야?》

《동무 입에서 식당, 극장에 가자는 소리를 처음 듣는것 같아 하는 말이예요.》

송화의 비양에 창근은 얼굴이 벌개지며 어설픈 웃음을 지었다.

《그런가?》

이때라고 송화가 탕개를 조였다.

《어디한번 꼽아보라요. 내가 제대되여온 날부터 오늘까지 언제한번 그런 말을 해본적이 있어요? 남들은 퇴근후면 산보를 하고 극장, 영화관에 간다는데… 우린 뭐예요? 만나면 얼굴을 붉히는 일밖에 더 있어요?》

그 목소리에는 설분이 짙게 풍기였다.

속이 뜨끔해난 창근은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고 애매하게 고개를 끄떡끄떡거렸다.

개인들이 주문한 가구를 그들의 취미와 기호에 맞게 제작한다는것은 고도의 신경전이여서 언제 다른 일에 마음의 여유를 둘새가 없었다.

그러니 송화를 위해 시간을 낼수 없은것은 당연한 일이였다.

진정 송화에게 미안스럽기 그지없었다.

《좋아, 이제부터 송화를 기쁘게 해주겠어. 퇴근후에는 산보도 하고 극장과 영화관에도 가고… 좋지?》

창근의 장담에 송화의 버들눈섭이 꼬리를 쳐들었다.

《그렇다는 의미에서 오늘은 극장으로 가자구.》

흥분한 창근은 당장 하늘의 별이라도 따줄듯 흰목을 뽑았다.

진정이 넘치는 창근의 호기에 말려든 송화는 너무 기뻐 환성을 올리였다.

《정말?》

《정말이라니까, 가자구.》

창근이 송화의 손을 잡아 이끌었다.

《가자요.》 하고 몇걸음 끌려가던 송화는 아버지의 당부가 생각이나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오늘은 안되겠어요.》

《안되다니? 왜?》

《아버지가 동무를 집에 데려오라고 하셨어요.》

《동무 아버지가? 왜? 무슨 일인데…》

성급하게 묻는 창근이의 얼굴이 금시에 긴장되였다.

혹시 송화 아버지가 앓는게 아닐가.

이 기회에 창근을 정신차리게 해줄 엉뚱한 생각이 든 송화는 부러 시무룩해서 기여드는 소리를 하였다.

《아마 아버지가 동무에 대해 다 들으신것 같아요. 맡은 일에 성실하지 않고 개인들의 가구제작에 정신이 빠져돌아가는…》

《뭐야? 그걸 어떻게 아신단 말이야? 혹시 송화가 다 일러바친게 아니야?》

혼겁해서 내지르는 창근의 외마디 소리에 송화는 웃음집이 흔들거리는것을 참고 성난 표정을 지었다.

《날 무슨 고발쟁이로 아는게 아니예요? 시시하게…》

《챠 이런, 야단났는데… 그러니 송화 아버지가 날 찾는건 매를 안기기 위해서겠어?》

《혼쌀나게 됐지. 우리 아버지 성나면 범보다 더 무섭다는걸 알지요?》

송화의 말은 사실이였다. 평시에는 말이 적고 인자해보이는 송화 아버지는 일단 성이 나면 범보다 더 무서웠다.

그 모습을 그려보느라니 벌써부터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였다.

《송화, 난 동무 아버지앞에 나설 자신이 없어. 그러니 혼자 가서 사정이 여사여사해서 데려오지 못했다고 잘 말해달라구.》

《몰라요. 난 이미 아버지한테 동무를 데려간다고 전화를 했어요. 그러니 무조건 가야 해요. 어쩔테예요? 가겠어요, 안 가겠어요?》

호미난방격이 된 창근은 잔뜩 여기가 질려 갈팡질팡하였다.

시르죽은 상을 한 창근을 띄여본 송화는 정도이상으로 놀리는것 같아 탕개를 늦추었다.

《방금 한 말은 내가 지어낸것이예요.》

《뭐야?》

《내 말로는 동무를 교정할수가 없어 아버지이름을 빈것이니 이젠 정신을 차리라요, 알겠지요?》

안도의 숨을 내그은 창근은 민망한 눈길로 송화를 흘기며 볼부은 소리를 하였다.

《알겠어, 이제부턴 내 송화가 싫증이 나도록 산보를 시키지.》

《호호호, 두고보자요. 누가 싫증이 나는가.》

《그런데 동무 아버지가 날 찾는 리유는 뭐요?》

《응, 그건… 동무가 좋아하는 잉어매운탕을 대접하시겠다나.》

《잉어매운탕?》

탄성을 올리는 창근의 얼굴이 확 밝아졌다.

집에 기쁜 일이 있거나 특식이 생기면 잊지 않고 꼭꼭 찾는 송화 아버지 진정에 가슴이 뭉클하였다.

그날 송화 아버지의 성의가 담긴 얼벌벌한 잉어매운탕을 두사발이나 축낸 창근은 래일부터 자기를 기쁘게 해주기를 갈망하는 송화를 실망시키였다.

지어먹은 마음 사흘 못 간다고 경쟁적으로 접어드는 가구주문자들의 유혹이 송화와 한 약속을 헌신짝처럼 집어던지게 하였던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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