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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5일

평양시간


(제 28 회)


28


송화로부터 처녀의 진정을 우롱한 협잡군과는 다신 상종하지 않겠다는 최후통첩을 받은 창근의 심사는 장마철 맹꽁이처럼 불어났다.

생각할수록 기가 막히였다.

협잡군이라는 말은 인간부류에서 론의할 가치도 없는 쓰레기와도 같은것인데 송화는 가차없이 창근에게 그런 락인을 찍어놓았다.

분통이 터질노릇이였지만 제 눈을 제가 찌른격이 된 창근은 입이 열개라도 할말이 없게 되였다.

송화 아버지가 잉어매운탕을 끓여놓고 청한 그날 제 흥에 떠서 이제부턴 송화와 함께 극장과 영화관에도 가고 식당에도 가자고 한 말이 그만 빈말로 되는 바람에 그런 오명을 쓴것이다.

그 이튿날 퇴근시간이 되기 바쁘게 화장경대제작을 부탁받은 집으로 줄달음치던 창근은 송화로부터 걸려온 손전화를 받게 되였다.

퇴근을 했으니 어디서 만나자는가고 하는 송화의 물음에 아무 생각없이 왜 만나자고 그러는가, 무슨 일이 있는가고 반문하였다.

그러자 송화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며 잉어매운탕을 두그릇이나 곱배기를 하더니 머리가 여차해진게 아닌가고 하며 어제 한 약속을 상기시키였다.

그 말에 창근은 깜짝 놀랐다. 그제야 자신이 송화앞에서 번지르르한 약속을 했음을 깨달은 창근은 눈앞이 아찔해졌다.

내가 무슨 정신에 그런 희떠운 소리를 했을가.

야단이였다.

자기가 가고있는 집의 세대주로 말하면 창근이가 소망하는 대외건설에 옮겨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 그의 아주머니와 한 약속을 어기면 만사가 물거품이 되고만다.

어떻게 할것인가를 바재이던 창근은 송화에게 오늘은 사정이 급박해서 그러니 후에 보자고 구구히 변명을 하였다.

그랬더니 송화는 대번에 사내대장부는 일구이언을 안한다면서 자기와의 약속이 중요한가 아니면 급박하다는 그 사정이 더 중요한가고 따지고들었다.

진퇴량난에 빠진 신세가 된 창근은 송화도 리해시키고 제볼장도 보기 위해 별의별 오그랑수를 다 써보았지만 약속을 법처럼 여기는 송화는 요지부동이였다.

무조건 오늘중으로 시예술극장에서 하는 공연을 구경시켜달라는것이였다.

응석을 부리듯 하며 검질기게 물고늘어지는 송화의 요구에 진땀을 뺀 창근은 제발제발 사정을 하여 래일은 꼭 약속을 지키겠노라 다짐을 두고 겨우 떼버리였다.

허나 다음날도 약속을 지키지 못하였다.

했더니 창근을 보고 상대할만한 대상이 못되는 협잡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감투를 씌운것이다. 그거야 정을 떼겠다는것이 아닌가.

그럴만도 하였다. 영란이모의 말에 의하면 공장의 일부 사람들이 창근과 송화를 놓고 형편없이 짝이 기운다고 한다는데 그 말을 들은 송화가 무슨 생각인들 안해보았겠는가. 이러다가 송화를 잃는게 아니야? 아직 한번도 일생문제에서 자기와 송화가 남남이 될수 있다는 생각을 해본적이 없는 창근은 송화가 자기를 버릴가봐 겁이 났다.

그것은 도저히 상상할수 없는 일이였다.

그런 일이 있을가봐 송화의 충고대로 마음을 도슬려먹고 맡은 일을 착실히 해보려고 애써보았지만 한번 맛본 꿀단지에서 입을 떼기가 조련치 않았다.

시내 곳곳에서 가구주문자들이 《모시러》오는데 그걸 어떻게 뿌리치며 수고비라고 주머니에 찔러주는 돈을 어떻게 마다한단 말인가.

그것때문에 송화의 눈에 나서 한동안 《랭전》상태였다가 며칠전에야 겨우 《평화》를 되찾은가부다 했었는데 이번에는 영영 헤여나올수 없는 함정에 빠지게 되였다.

이미 마음속에서 창근이 자기를 지워버린듯 한 송화를 돌려세우기가 조련치 않을것 같았다.

종횡무진하는 상념에 빠져 발가는대로 걸음을 옮기던 창근은 누군가가 어깨를 툭 치는 바람에 흠칫 놀라 굳어졌다.

돌아보니 리대철이였다.

《너 요즘 뽐프제작조에 출근하니?》

여느때없이 살가운 물음이였다.

《그럼요. 래일부터 목형을 시작한다기에 기다리고있지요.》

《그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너도 잘 알지?》

《알지 않구요.》

창근은 대답은 그렇게 하였지만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일에 맞다들렸다는 생각을 털어버릴수가 없었다.

목형을 잡고늘어지면 코를 꿴 송아지신세가 되고만다.

가구주문이 련달은 때에 시간을 내지 못한다고 생각하니 손에 쥐였던 보물을 놓친것만큼이나 아쉬웠다.

그렇다고 못하겠다고 발버둥질을 할수가 없었다.

뽐프제작조 인원선발을 당위원회와 합의하고 하였다는데 무슨 할 소리가 있단 말인가.

좋기는 맡겨진 일을 잽싸게 해치우고 시간을 따내는 수다.

《내 방으로 좀 가자.》하는 리대철의 말에 창근은 공연히 속이 활랑거리였다.

또 무슨 욕을 하려고 방으로 가자고 하는가.

까짓거, 갈테면 가자. 이번에도 욕을 하면 가만있지 않을테다.

그때 방송선전차에서 경쾌한 경음악이 울리더니 사무실들과 직장들에서 사람들이 마당으로 우르르 달려나와 질서정연하게 렬을 지어섰다.

업간체조시간이였던것이다.

그들의 앞으로 체육복을 입은 송화가 나섰다.

인차 방송선전차에서 노래 《우린 사랑한다》의 선률이 흘러나왔다.

모두 송화의 동작에 맞추어 률동체조동작들을 하는데 제법이였다.

리대철도 로동자들속에 끼여 동작을 하였다.

어슬렁어슬렁 대렬속에 끼여든 창근은 동작을 몰라 물에 빠진 사람 허우적거리듯 손과 발을 놀리는데 가관이였다.

언제 한번 업간체조에 제대로 참가해본적이 없으니 그럴수밖에…

옆사람들의 동작을 띠여보며 따라하느라 하였지만 어느 동작 하나 제대로 되는것이 없다.

창근의 그 모양을 보며 주위사람들이 키득거리였다.

이런 난사라구야. 달아날수도 없고… 어쩐다?

얼굴 뜨겁게 창피를 당하느니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것이 나을것 같았다.

망두석처럼 굳어져 이 사람, 저 사람의 동작을 훔쳐보던 창근의 눈길이 그만 송화와 부딪쳤다.

순간 비웃음이 스치는 송화의 얼굴이 눈뿌리를 지지였다.

다시는 상대를 하지 않을듯 왼고개를 트는 송화를 보는 창근은 모욕을 당한것 같아 속이 울컥 하였다.

이젠 내가 쉰밥이란 말이지. 실컷 태가락 부려봐라.

업간체조가 끝나자 사람들이 삼삼오오 떼를 지어 작업장으로, 사무실로 흩어져갔다.

리대철이 다가오며 빈정거렸다.

《이자 네 꼴을 보니 꼭 뼈대없는 문어같더구나. 봐라, 얼마나 집체생활에 빠졌으면 률동체조동작 하나 제대로 못 따라하는걸… 한심하지.》

창근은 들은체도 않고 힝 코김을 내불었다.

쳇, 눈두 밝다.

앞서 걷는 리대철을 쫓아 사무실로 들어선 창근은 의자에 앉으려다가 책상 맞은켠에 놓여있는 앞차대를 보고 그쪽으로 다가섰다.

《아니, 지금이 어느때라구 이런 구식차대를 놓고있어요?》

그 말에 선풍기스위치를 누르려던 리대철이 뻥해서 돌아섰다.

《구식이라니?》

《이걸 보라요. 형식도 낡은데다가 도색도 한심하지. 내가 이제껏 이걸 왜 모르고있었는가. 당장 추세에 맞는걸로 교체하자요.》

창근의 희떠운 소리에 리대철은 어이가 없어 껄껄 웃었다.

《허허허, 창근이 손재간이 좋다고 시내에 소문이 짜하다고 하는데 어디 한번 솜씨를 좀 볼가.》

《아, 앞차대같은거야 이틀이면 멋쟁이로 만들지요 뭐.》

《그렇다, 그럼 수고비는 얼마나 내야 되냐?》

《그건 보통 한개당…》 하던 창근은 얼른 말을 돌리였다.

《아, 내 아무렴 이모부한테 돈을 받겠어요? 여론 나빠지게…》

선풍기를 켜놓고 의자에 앉은 리대철이 중떠보듯 물었다.

《야! 너 이제껏 개인들의 가구제작을 해주고 얼마나 벌었니?》

속이 찔린 창근의 낯빛이 금시에 익은 고추빛이 되여 외마디소리를 내질렀다.

《벌긴 뭘 벌었다는거예요. 부탁을 하니 도와준거지요.》

《저런, 대단한 자선가인걸. 됐다. 지나간 일은 령으로 치고 이제부턴 정신차려 일을 하거라. 하긴 고양정뽐프를 제작하느라면 언제 헛눈 팔새가 없을테니 엉치를 든든히 붙이고 일을 해서 소문을 내봐라. 정창근이가 질적으로 달라졌다는 말을 듣게 말이다. 그렇게 되면 송화의 마음도 돌아설게다. 알겠니?》

귀에 거슬리는지 밤알이라도 문것처럼 볼이 부어있던 창근이가 꿰진 소리를 하였다.

《송화소린 하지도 말라요. 제가 뭘 잘났다구. 만나기만 하면 훈시질을 하려고 접어드는걸 보면 어이가 없어서… 아, 글쎄 날 소학생취급하려든다니까요.》

《뭐가 어쩌구 어째? 세살난 아이 말도 들을 땐 들으랬어. 정신을 차리고 길을 곧추 가라는데 그게 싫다는거냐? 너 같은건… 송화한테 된매를 맞아봐야 정신차려. 너도 알지, 송화가 제대군인이라는걸…》

손바닥으로 책상을 내리치며 목청을 돋구는 리대철을 마주보며 창근은 맞받아 소리쳤다.

《내 정신이 어떻다고 그래요. 그리구 세상에 처녀가 송화 하나뿐이라구 송화, 송화 하는가요.》

《하하하!》

갑자기 리대철이 너털웃음을 터뜨리였다.

방안이 흔들거릴 정도로 폭소를 하는 리대철을 쳐다보는 창근의 표정은 혼빠진 사람모양 눈정기가 풀어져있었다.

눈물이 날 정도로 시원스럽게 웃고난 리대철이 눈을 가로뜨며 코웃음을 쳤다.

《야, 속에 없는 소리 하지도 말아. 네가 열번 죽었다가 세상에 다시 나도 송화만 한 처녀를 만날것 같아 그따위 생주정을 해? 그래두 뭘 달았다구 흰소린 잘 친다. 좋아, 너 진짜 송화가 싫으면 맘대로 해라. 나나 네 이모도 더는 상관을 안할테니. 그리구 내 송화 아버지를 만나면 네녀석을 단념하라구 할테다. 알겠지?》

숨가쁘게 조여대는 리대철의 탕개에 궁지에 빠진 창근은 공연히 객적은 소릴 했다는 후회로 하여 몸둘바를 몰랐다.

《아니, 그렇게까지 할거야 있어요. 뭐…》

《됐어. 난 일구이언 몰라.》 하고 또 한번 엄포를 놓는데 책상우에 놓여있던 전화기가 다급하게 울어댔다.

얼른 송수화기를 집어든 리대철의 안색이 긴장되였다.

《예, 지배인 리대철입니다. 예…》

전화를 받던 리대철이 창근에게 나가라는듯 한손을 내저었다.

쫓기듯 밖으로 나선 창근은 속이 훌떡거려 참을수가 없었다.

뭐, 내가 열번 죽었다가 세상에 다시 나도 송화만 한 처녀를 만나지 못한다구? 사람을 우습게 봐도 분수가 있지.

바람맞은 갈대모양 퉁기친 마음을 진정 못하던 창근은 자신이 결김에 실언을 했음을 느끼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제길, 세상에 처녀가 송화 하나뿐인가 하는 소린 왜 했담.

정창근이 넌 언제봐야 격하면 감정과 리성을 분간 못하는게 탈이야.

엎지른 물을 다시 주어담지 못한다는데 이거 야단났는데…

이모부가 송화 아버지를 만나 이 정창근이를 단념하라고 하겠다고 했지. 정말 송화 아버지를 만나면 야단인데…

이제라도 제발 송화 아버지만은 만나지 말아달라고 사정을 해볼가.

한번 결심을 하면 뒤걸음질을 모르는 이모부인데…

절망의 수렁창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창근의 눈앞에 자기에 대한 말을 듣고 실망해서 한숨을 내부는 송화 아버지의 모습이 환영처럼 얼른거렸다.

에라, 될대로 되라. 이미 쑤어놓은 죽인데 까짓거 송화와 헤여지면 한동안 마음은 괴롭겠지만 시간이 흐르면 잊혀지겠지.

그때쯤이면 도소재지에 있는 대외건설로 소환되여갈지 혹시 알겠는가.

뒤죽박죽이 된 자신의 운명을 마음내키는대로 재단을 하는 창근에게 경종을 울리듯 손전화기신호음이 울리였다.

꿈쩍 놀라 주머니에서 손전화기를 꺼내보던 창근의 얼굴은 사막에서 샘물을 만난것처럼 기쁨이 살아났다.

《안녕하십니까. 정창근입니다. 예? 내 문제를, 대외건설사업소 지배인동지에게 상정시켰다구요?》

증폭건을 누르자 상대방의 거나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응. 자네의 목공기능에 대한 말을 듣더니 적임자라고 좋아하더군. 그러니 조만간에 좋은 소식이 있을터이니 마음놓고 기다리라구.》

《고맙습니다. 성의를 잊지 않겠습니다.》

《물론 그래야지. 누구나 가고싶다고 마음대로 가는 곳이 아니거던. 그렇지 않은가?》

《그럼요.》

전화를 끊은 창근의 마음은 번화한 도소재지로 들어서는듯 한 기분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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