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8 회)


38


요즘 선월은 식음을 전페하다싶이 하고 울적한 나날을 보냈다.

요전날 집에 왔다가 글 몇자 써놓고 간다는 인사도 없이 바람처럼 사라진 정향의 처사에 격분한 윤상배는 그날 성이 독같이 나서 노발대발하였다.

《배은망덕한 년, 이제껏 호강시키며 키워놓았더니 뭐가 어쩌구 어째? 제 애비가 역적으로 보인단 말이지. 맘대로 하라구 해. 그까짓 딸년 하나 버린셈치면 되는거지.》

입에서 구렝이가 나가는지 뱀이 나가는지 망탕 씹어대는 남편을 보는 선월은 기가 차서 야단을 해댔다.

《아니, 당신 그것도 말이라구 해요? 철없는 애의 글 몇자 놓고 딸을 버린셈치겠다구요? 그게 제정신있는 소리예요, 예? 제 보기에도 지금 당신 하는 일이 옳은것 같지 않아요. 마음이 불안한게…》

《뭐, 뭐요? 당신이 알면 얼마나 안다구 그런 소릴 해? 주제넘게. 집안에 박혀있으면 허튼 생각말구 방걸레라두 한번 더 치오. 록화기나 보구.》

《예?》

억이 막혀하는 선월을 쏘아보던 상배는 자신이 지나쳤음을 느낀듯 입을 봉하고 밖으로 나갔다.

그것은 수십년동안 함께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생긴 불화였다.

채 닫기지 않은 문가쪽을 실성한 사람모양 멍해서 쳐다보는 선월의 가슴은 찢어지는듯 아팠다.

그렇게 나간 남편은 며칠동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저녁시간마다 전화로 안부를 묻는 정도였다.

거치른 사막에 홀로 남은듯 한 선월의 량볼로 쩝쩔한 눈물이 줄지어내리였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하고 단란하다고 자부하였던 집안이 이 무슨 재변인가.

여적 남편이 하는 일에 대하여 다 옳다고만 여겨온 선월은 집안에 사치한 물건이 생기고 주머니가 빌사이 없이 채워지는 돈이 무역일군인 남편이 정정당당하게 벌어들이는것으로 여겨왔었다.

그런데 집에 왔던 정향이의 말을 들어보니 이번에 남편이 하는 일이 안개속처럼 뿌연게 마음에 걸리였다.

남편의 립장에 서보면 온 나라의 관심속에 일떠서는 창전거리건설이 끝난 후 살림집들에 리용할 뽐프를 수입해오는것은 그 어느 일개인의 주장이 아니라 국가적인 대책이겠는데 그걸 놓고 누가 시야비야한단 말인가 .

한편 정향의 말을 음미해보면 동주뽐프공장에서는 자체의 힘과 기술로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데 무엇때문에 귀한 외화를 탕진하면서 (그것은 정향이의 표현이였다.) 사오겠는가 하는것인데 그 말에도 일리가 있었다.

선월은 지금 경제강국건설에서 자금 한푼한푼이 얼마나 귀한지 모르지 않는다.

더구나 우리 자체의 힘으로 만들수 있는 설비나 제품은 수입하지 말라는것이 당의 요구가 아닌가.

생각만 하여도 온몸이 졸아드는듯 싶었다.

이제라도 남편을 설복하여야 하지 않을가. 하지만 늦은것 같았다.

딸의 진정을 무시한 남편이 자기 말이라고 귀를 기울일텐가. 남편을 돌려세운다는것은 바람난 차를 멈춰세우기보다 힘들것 같았다.

다음은 그 문제의 뽐프때문에 아버지와 딸사이에 생긴 장벽이였는데 지금같아서는 영원히 허물수 없을것만 같았다.

정향이가 쪽지편지에 뭐라고 썼던가.

행복은 정직하게, 성실하게 일할 때 이루어진다고 했지.

정향의 유치원시절이 생각났다.

어느날 유치원에서 돌아온 정향이가 선월의 품에 매달리며 물었다.

《어머니, 우리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사람이 행복하려면 정직해야 한다고 하셨는데 그게 무슨 소리나요?》

《응… 그건…》

예상외의 질문이라 선월은 인차 대답을 하지 못하였다.

생활에서 자주 하는 말이고 많이 듣는 소리였지만 철없는 딸이 리해할수 있도록 가르쳐주자니 생각을 깊이 해보아야 하였다.

행복하려면 정직해야 한다. 어떻게 말을 해주어야 리해할가.

《응, 그건 남을 속이지 말며 남의 물건을 욕심내지도 말고… 그리고 자기가 할수 있는 일을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해야 하고… 하여튼 그 의미는 수없이 많단다.》

머루알같은 눈을 깜빡거리며 선월을 빠끔히 쳐다보던 정향이가 알겠다는듯 고개를 까닥거렸다.

자라면서 정향은 정직하게 살기 위해 애썼다.

아버지가 무역일군이여서 외국에 출장갔다가 사다주는 물건은 우리 나라것도 좋은데 싫다며 받지를 않았다.

남들이 쓰지 않는 사치한 물건을 쓰면 사람의 값이 올라가는것이 아니라 오히려 깎인다면서…

중학교를 졸업할 때 남편은 정향이를 외국어대학에서 공부시켜 외국에 내보낼 의향을 비쳤었다.

그때 정향은 나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실력있는 대학이라고 높이 평가하시는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공부하여 사회주의강국건설에서 빛이 나는 일을 하겠다며 아버지의 요구를 거절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향은 언제한번 아버지의 의향과 요구를 귀담아 들어본적이 없었다.

그때문에 남편은 이따금 정향을 두고 자기 피를 받은 애같지 않다고 하여 사람을 웃기군 하였다.

대학에 입학하여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인 정향은 어머니의 일에 간섭하기 시작하였다.

남들보다 색다른 물건을 쓰고 색다른 옷을 입으려고 하면 우리 나라 상품도 좋은것이 많은데 하필이면 왜 남의것을 탐내는가고, 그것은 자존심이 없는 표현이라고 속상해하였다.

여하튼 정향은 특이한 애였다.

물먹은 솜처럼 나른해진 몸을 겨우 일으켜앉은 선월의 정기없는 눈길이 맞은편 벽에 걸려있는 사진액틀에서 멎었다.

호함진 꽃다발에 싸인 얼굴에 환한 웃음을 한가득 담고 찍은 정향의 사진이 선월을 마주보고있었다.

저 사진은 남편이 정향이가 대학을 졸업하던 날 딸의 졸업사진은 자기가 직접 찍어주어야 한다며 일부러 대학에까지 찾아가 찍어준것이였다. 그날 정향은 얼마나 기뻐하였던가.

세상에 우리 아버지가 제일이라고 하였었지.

이윽토록 딸의 모습을 보느라니 이제라도 정향의 마음을 돌려세울수 있지 않을가 하는 실낱같은 기대가 머리를 쳐들었다.

부모자식간의 의견상이는 모래불에 찍힌 어지러운 자욱이 파도에 지워지듯 한다지 않는가.

선월은 책상에로 팔을 내뻗쳐 손전화기를 집어들었다.

인차 정향이가 나왔다.

《어머니, 저예요.》

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선월은 불쑥 눈물이 솟구쳤다.

《정향아, 그날 그렇게 가는 법이 어디 있니?》

《엄마, 미안해. 달리는 할수 없어서 엄마가 노여워할줄 알면서도 집을 떠났어.》

순식간에 달아오른 흥분을 가까스로 눌러앉힌 선월은 담담히 말을 이었다.

《정향아, 난 너의 처신이 리해 안되는구나. 아버지가슴에 그렇게 못을 박는 법이 어디 있니?》

《아니예요. 어머니, 아버지는 지금 국가적으로 중요한 일을 한다는 외피를 쓰고 아니해야 할 일을 하고있어요. 우리 나라에서도 얼마든지 만들수 있는것도 무턱대고 다른 나라에서 들여오겠다는 사람은 민족적자존심도 애국심도 없는 사람이예요. 아버지가 바로 그런 사람이란 말이예요.》

서슴없이 하는 정향의 말에 선월은 가슴이 두방망이질을 하였다.

《야! 너 그게 무슨 말본때냐.》

《난 그렇게밖에 말할수가 없어요. 명백한것은 이제라도 아버지가 여기 동주뽐프공장 로동계급이 하자는대로 하면 되는거예요. 그것은 당의 요구이니까요. 그러면 떳떳할수 있고… 기어코 자기 주장을 고집한다면 나라에 죄를 짓게 될거예요.》

《뭐라구?!》

그 말이 선들선들 날이 선 비수가 되여 가슴을 쿡 찔렀다.

어쩌면 경망스럽다 할 정도의 딸의 훈시질에 선월은 그만 리성을 잃다싶이 하였다.

《야, 무슨 계집애가 그렇게 독살스러우냐? 아무 말이나 탕탕… 못쓴다, 못써.…》

《나에 대해 별말을 다해도 좋아요. 어머니, 난 자식으로서 아버지가 나라의 존엄을 지키기를 바랄뿐이예요. 그리고 우리 집이 행복하기를 간절히 소원하는거구요.…》

정향은 전화를 끊었다.

선월은 미여지는듯 한 가슴을 움켜쥐고 방바닥에 쓰러졌다.

그 서슬에 그의 손에서 미끄러진 손전화기가 저발치에서 나딩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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