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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5일

평양시간


(제 41 회)


41


때이른 가을비가 추덕추덕 내리고있었다.

얼굴을 찡그리고 검은구름이 덮인 하늘을 올려다보는 창근은 가슴속에 그 어떤 묵직하고 컴컴한 덩어리가 꽉 들어찬듯 한 감을 느끼였다.

이제껏 하늘소처럼 우쭐해서 세상에 제가 똑 제일인체 하던 창근은 대외건설지배인과 헤여지는 순간부터 꿰진 북신세가 되였다.

뒤늦게야 창근은 매 인간은 운명적인 시각에 평정이라는 저울에 자기의 몸값을 재여보게 된다는것을 안듯 싶었다.

그 저울우에 올라선 창근의 몸값은 눅거리였다.

마치 그 누구도 눈길을 돌리지 않는 체하상품처럼…

그런 상품은 아무리 겉이 번쩍거려도 별로 쓸모가 없는것으로 하여 그 누구도 손을 대지 않는다.

바로 창근이가 그 꼴이 되였다.

그것이 과연 누구의 탓인가를 놓고 고민의 산을 쌓던 창근은 제스스로 자기 눈을 찔렀다는 자책보다도 그 누군가가 자기가 잘되는것을 배가 아파 훼방을 놓았다고 생각하였다.

심사가 칡넝쿨처럼 꼬인 창근은 이미전에 공장을 뜨지 못한것을 백번천번 후회하였다.

공장을 떴더라면 만사가 무난히 해결되였을것이다.

그 누구에게도 하소연을 할수 없는 괴로움을 안은 창근은 지금 송화한테로 가는 길이였다.

아까 대외건설지배인과 마주앉았을 때부터 성가실 정도로 자기를 찾는 손전화기신호가 련발하기에 전원을 차단해버렸었다.

밖에 나와 전원을 켜니 가시가 돋친 통보문이 눈을 찔렀다.

《지은 죄가 두려워서 전화를 받지 않는가요? 꼭 만날 일이 있으니 우리가 이전에 만나던 곳으로 나오세요.》

창근은 쓴웃음을 지었다.

뭐, 지은 죄가 두려워서 전화를 받지 않았다구?

이건 도대체 무슨 도깨비같은 소리야?

창근은 송화가 왜 그런 통보문을 보냈을가 하고 추리를 해보았다.

죄지은것은 없는것이고… 그렇다면, 그렇다면?…

아하, 알만 하다. 이제껏 나를 썩은 콩 대하듯 하더니 그게 마음에 걸려 화해를 하자는것이 아닐가?

좋게 말하면 응할것 같지 않으니까 그런 오그랑수를 썼을거야.

역시 마음이 여린 송화다운 처신이다.

그렇다면 내 기꺼이 만나주지.

만나서 지나간 일을 놓고 진심으로 잘못을 사죄하면 용서해주는것이고 전번처럼 날 학생취급 하려들면 가만두지 않을테다.

제가 아무리 나보다 잘난체 해도 녀자야 녀자겠지.

멋스럽게 팔을 내저어 얼굴을 타고 흐르는 비물을 훔쳐내던 창근은 갑자기 못 볼것을 본듯 와뜰 놀랐다.

저앞으로 명선과 뽐프제작조 성원들이 걸어오고있었던것이다.

그들을 만나기가 두려웠다.

만났댔자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것은 뻔하였던것이다.

이런 땐 삼십륙계 줄행랑이 제일이라고 생각한 창근은 어디 몸을 숨길데가 없는가 해서 사방을 두릿거리였다.

허나 공교롭게도 길옆에는 벼가을을 끝낸 드넓은 논밭이 있을뿐…

그들과의 거리가 가까와졌다.

피할수 없는 외나무다리에 선듯 조바심치는 창근의 눈에 허리통이 굵은 나무 한대가 안겨들었다.

물에 빠진 놈 지푸래기 잡는 격으로 무작정 그곳으로 다가간 창근은 신발을 고쳐신는척 하며 허리를 굽히였다.

한발자국, 한발자국 그를 향해 걸어오는 명선이네가 주고받는 말소리가 창근의 귀구멍을 쑤셔댔다.

《창근이 그치 오늘 자기때문에 사고가 난걸 알기나 하고 돌아치는지 모르겠구만.》

《알턱이 있어? 지금쯤 어느 집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대패질을 하고있겠는데…》

《가련하군. 돈이라면 자존심이구 체면이구 헌신짝처럼 집어던지구 돌아친다니까.》

그들이 창근을 보지 못한듯 지나쳤다.

허리를 펴는 창근의 얼굴은 금시에 종이장처럼 하애졌다.

나때문에 오늘 사고가 났다는건 무슨 소리인가?

사고가 났다면 어떤 사고이고?…

도무지 갈피를 잡을수 없는 생각에서 허둥거리던 창근은 뭔가 짚이는것이 있었다.

엊그제 자기가 완성한 날개바퀴목형을 놓고 도면치수와 맞지 않는것같다고 하던 목형반장의 말이 생각히웠다.

그때 나는 그럴수 없다고 하였지. 그러니까 합격으로 인정을 하였고… 그것이 어떤 사고를 빚어냈단 말인가? 가만, 곰곰히 생각해보자.

목형이 완성되면 주형을 빚어 거기에 쇠물을 붓는다. 그다음 사락을 하고…

방정식풀이를 하듯 매 공정을 따져보던 창근은 자기때문에 사고가 났다는것을 도대체 리해할수가 없었다.

하다면 방금 명선이네가 한 말이 꾸며낸 소리겠는가.

온몸이 갑자기 오한을 만난듯 떨리였다.

대외건설지배인한테서 물러설 때의 절망감과는 질적으로 다른 그 무엇인가 공포감을 몰아왔다.

문득 처음 뽐프제작조를 구성할 때 고양정뽐프제작은 국가적으로 아주 절박하고 긴급한 과제이며 중요하게는 나라의 존엄과 공장 로동계급의 자존심을 지키고 우리가 세계와 당당히 겨루는 강자가 되는 중대사라고 하던 이모부의 엄숙한 강조가 뇌리를 때리였다.

가슴이 마구 풀무질을 하였다.

그래서 송화가 지은 죄가 두려워서 전화를 받지 않는가고 따졌댔구나.

혼비백산한 창근의 눈앞에 지금쯤 온몸에 서리발을 세우고 자기를 기다리고있을 송화의 표표한 모습이 얼른거렸다.

그앞에 서자니 다리가 후들거리였다. 차라리 그 누구에게 매를 맞느니 송화에게서 터질 줄욕을 들쓰기가 더 두려웠다.

돌아서고싶었지만 가야 했다.

사내라는 노루꼬리만 한 자존심이 뒤걸음치지 못하게 하였다.

허탈감에 온몸이 묶이워 지척지척 청천강제방뚝에 이르니 우산도 비옷도 없이 내리는 비를 온몸에 들쓴 송화가 결투라도 걸듯 창근을 향해 육박해왔다.

혐오감에 찬 눈길에서는 불꽃이 튕기였다.

창근은 그 눈길을 마주볼 용기가 없어 고개를 떨구었다.

저벅저벅 자갈밟는 소리가 귀를 메웠다.

《이걸 잡으라요.》

귀따갑게 울리는 소리에 고개를 쳐드니 삽을 쥔 송화의 손이 창근의 눈을 찌를듯 가까이에 있었다.

이건 뭔가? 창근은 무의식중에 삽을 받아쥐였다.

어쩌자는건가? 어리둥절해진 창근을 놀래우는 소리.

《저걸 뽑으라요.》

송화가 손짓하는 곳에 시선을 던지던 창근은 누가 뒤덜미를 잡아당기기라도 한듯 와뜰 놀라며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거기에는 떡돌처럼 반듯한 두개의 큼직한 돌이 놓여있었다.

몸서리치게 얼나간 사람처럼 그것을 보는 창근의 눈섭이 파르르 떨리였다.

그것을 뽑는다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짐작한 창근은 가슴이 섬찍하였다.

그것은… 그것은…

《왜 멍청해있는거예요?》

야멸차게 내쏘는 독촉에 창근은 삽을 내던지며 벌컥 성을 냈다.

《난 못해! 파겠으면 네 손으로 파라!》

《좋아요!》

자갈판에 나딩구는 삽을 쥔 송화가 와락와락 돌주변을 파헤치기 시작하였다.

그 모양을 보지 않을듯 눈을 꾹 감고있던 창근이가 갑자기 와락 덤벼들며 송화의 손에서 삽을 나꾸어챘다.

《너 정말 나를 버리자는거야?》

그 서슬에 몸중심을 잃고 비칠거리는 송화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였다.

《누가 누굴 버렸다는거예요, 누가!… 길을 곧추 가라고 안타까이 간청할 때에는 제 잘난체 귀를 막고있은게 누구야? 그러구서두 내가 버린다구? 난 더이상 시궁창에 코를 박은 정창근이라는 인간과 마주서기 싫어, 싫어!》

눈물을 좔좔 쏟으며 하는 송화의 절규가 예리한 화살처럼 창근의 가슴을 뚫고들어와 심장을 마구 쑤셔댔다.

한동안 어깨를 떨며 흐느끼던 송화가 두손으로 얼굴을 싸쥐고 돌아섰다. 멀어지는 송화의 뒤를 심술궂게 노려보는 창근의 입에서 황소영각같은 넉두리가 터져나왔다.

《갈테면 가라, 가! 너 없다고 내가 못살줄 알아?》

리성을 잃은듯 한 창근은 손에 쥔 삽으로 송화가 파다만 자리를 헤집고 돌을 뽑아내여 경사지로 내리굴리였다.

어느결에 다쳤는지 손등에서 피가 흘렀다.

마치 마음속에서 흘러내리는 피방울처럼 느껴져 창근은 눈물이 콱 솟았다.

그때였다. 누군가의 손이 창근의 귀뺨을 때리였다.

얼마나 세게 때리였는지 창근은 몸중심을 잃고 비틀거리였다.

한손으로 얼굴을 싸쥐며 눈길을 쳐들고보니 언제 왔는지 어머니와 이모가 서있었다.

매를 든 사람은 이모였다.

《사람구실 못할 녀석!》

그들을 본 창근은 무시무시한 섬광을 보기라도 한듯 간이 콩알만 해서 고개를 수그리고 눈둘 곳을 몰라 허둥댔다.

순간 그의 시야에 어머니의 발이 화살처럼 날아들었다.

어머니의 한쪽발에는 신발이 없었다.

오른쪽에 신고있는 편리화마저 어디서 걸채였는지 앞코숭이가 찢어져있었다.

《네가 이 지경이 된걸 땅속에 누워계시는 아버지가 알면 날보고 뭐라고 하실테냐? 자식의 잘못을 꾸짖지 않으면 나중에 제가 벌을 받는다더니… 내가 벌을 받았지, 벌을 받았어.》

분격이 하늘에 치받는 이 시각 회초리를 휘둘러도 시원치 않을 아들에게 그 정도밖에 질책을 못하는 언니가 민망스러워난 영란이가 참지 못하고 창근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이 자식아, 말은 고삐를 늦춰준 은혜를 알고 개는 자리를 깔아준 은혜에 보답을 한다고 했다. 하물며 사람의 허울을 쓴 네녀석은 그 미물들보다 나은게 뭐냐. 남들처럼 떳떳하게 살기를 바란 아버지의 뜻을 저버리고 못된짓을 골라하더니 끝내는 집단의 버림을 받은 추물이 되였으니 어쩌면 좋단 말이냐, 응?》

《…》

《그만 돌아가자. 아무리 말해야 소귀에 경읽기야. 이녀석은 내 아들이 아니야. 나에겐 이젠 아들이 없어! 아하, 귀동이를 낳은줄 알았더니 내 배속에서 저런 악동이가 나왔구나, 어이구.》

가슴을 쥐여뜯는 슬픔을 달래며 혼자소리처럼 뇌인 창근의 어머니가 실성한 사람모양 비척비척 걸음을 옮기였다.

전혀 뜻밖인듯 영란이가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언니! 어쩌면 그런 말을…》

얼마 못 간 창근이 어머니가 갑자기 그 자리에 풀싹 주저앉았다.

영란이가 얼른 뛰여가 언니앞에 무릎을 꺾고 앉았다.

《언니!》

창근의 어머니가 영란을 부둥켜안으며 오열을 터뜨리였다.

풀로 붙인듯 그 자리에 굳어져 얼빠진 사람모양 그들을 지켜보는 창근은 입술이 터져라 앙다물며 고개를 하늘로 쳐들었다.

아! 어머니! 그렇게 마음곱고 선량한 어머니…

어리석으리만치 어지고어진 어머니는 여적 창근에게 매 한번 든적이 없었다.

강아지도 욕할줄 모르는 어머니는 잘못을 타이르는 경우에도 갓난아이 얼리듯 조용조용 말하군 하였다.

그런 어머니를 이제껏 괴롭히고 가슴에 재를 꽉 채웠다고 생각하니 창근은 자신이 끝없이 저주스러웠다.

사람은 무엇을 잃은 뒤에야 귀한줄 알고 후회한다고 창근은 뒤늦게야 그렇듯 인자하고 자애로운 어머니를 잃는다는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통절하게 절감하였다.

집단과 동지들의 버림을 받고 송화마저 잃은 내가 어머니까지 잃으면 어떻게 산단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한 창근은 갑자기 물밖에 난 잉어처럼 몸을 솟구며 앞으로 걸음을 내짚었다.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숨이 떡 막히였다.

푸들푸들 떨리는 입술사이로 몇번이나 어머니라고 찾았으나 도무지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꺼이꺼이 울음소리만 흘러나오던 입에서 힘겹게 그러면서도 애타게 울부짖음같은 소리가 터쳐졌다.

《어머니!-》

창근의 웨침소리가 메아리처럼 울리였다.

아들의 목터지는듯 한 소리에 꺼이꺼이 목놓아울던 어머니가 펀뜩 고개를 쳐들었다.

허위허위 정신나간 사람처럼 달려오던 창근이가 그만 돌부리에 걸채여 앞으로 푹 꼬꾸라졌다.

그것을 본 어머니가 영란을 뿌리치고 한팔을 길게 내뻗치며 기겁한 비명을 터쳤다.

《창근아! 다치지 않았느냐.》

무릎걸음으로 엉금엉금 기여온 창근이가 와락 어머니품에 안겨들었다.

《어머니!》

창근의 어머니가 아들을 꼭 껴안았다.

《어머니, 날 버리지 마십시오. 죽을 죄를 지은 이 아들을 용서…》

어머니의 품을 파고드는 창근의 어깨가 마구 오르내리였다.

《내 아들아!》

《어머니!》

어머니와 아들은 뗄래야 뗄수 없는 한덩어리가 되였다.

한옆에 비켜서서 그 광경을 보는 영란의 눈가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얼굴을 든 창근이가 한쪽신발이 없는 어머니의 발을 쓰다듬었다.

자식을 위해 쉼없이 걷고걸어온 어머니의 발, 피가 진 발등이며 터갈라진 발바닥을 정신없이 가슴에 붙안고 쓰다듬으며 창근은 참을수 없는 자신에 대한 환멸과 죄책감에 철부지 그때처럼 엉엉 울어댔다.

《어머니, 잘못했어요, 내가 잘못했어요. 가지 말아요. 나를 버리고 가면 안돼요.》

비에 푹 젖은 흰머리칼을 빗질하듯 쓰다듬어주는 아들을 멍하니 지켜만 보던 어머니가 퍽 기운이 진한 소리로 조용히 뇌이였다.

《내가 널 버리고 가면 어디로 가겠니? 너 없이 난 못산다.》

창근은 손등으로 눈물을 뻑 닦고 등을 돌려댔다.

《어머니! 내 잔등에 업히세요.》

어머니가 기겁을 했다.

《그러지 말아. 내 발로 걸어갈수 있다.》

《안돼요. 맨발로 어떻게 가신다고 그래요. 어서 업히세요.》

어머니는 하는수없이 창근의 잔등에 업히였다.

움쭉 허리를 펴고 일어서던 창근의 가슴이 후두둑 떨리였다.

어머니가 솜처럼 가벼웠던것이다. 또다시 줄줄이 쏟아지는 눈물…

어머니, 날 업어키울 때 무거웠겠지요.

강인함과 대바름, 량심과 헌신… 간직된 그 모든것을 이 아들에게 넘겨주시느라 가벼워진 나의 어머니. 아, 이제라도 그것을 돌려줄순 없을가.

어머니를 아들에 대한 긍지와 자부로 다시 무겁게 해드릴수만 있다면…

창근의 량볼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였다.

그것은 회오의 눈물, 뼈아픈 자책의 눈물이였다.

어머니, 이 못난 자식때문에 어느 하루 마음 편한 날 없으셨을 어머니, 다시한번 용서를 빕니다.

전 이제껏 어머니를 잊고 살았어요. 전 오늘에야 알았어요. 세상에 어머니를 잊어버리는 아들은 있어도 아들을 잊어버리는 어머니는 없다는것을…

제 다시는 어머니를 잊지 않겠어요.

그 자리에 못박힌듯 서있는 창근의 량볼로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리였다.

안개비는 조용히 내리고있었다.

강기슭으로 자책과 고뇌에 푹 젖은 창근이가 시름과 걱정에 젖을대로 젖은 어머니를 업고 조심조심 걸음을 내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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