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5 회)


45


눈꽃이 날리였다.

공중에서 유희를 놀듯 자유로이 맴돌다가 땅바닥에 내려앉은 눈꽃들이 기다리고있은듯 덮쳐든 찬바람에 포로되여 이리저리 끌려다니면서 곤욕을 치르고있었다.

창가에 서서 물끄러미 그 모양을 지켜보는 리대철은 벌써 12월이로구나 하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졌다.

그도 그럴것이 설계가 완성되고 개량제가 완성되면 얼음에 박밀듯이 쭉 나갈것 같던 고양정뽐프제작이 이상할 정도로 더디여지고있었던것이다.

어제 두번째로 주물을 한 뽐프의 일부 부분품들이 가공과정에 흡입본체와 안내홈에 기포가 생겨 작업을 중지하였다.

원인은 다른데 있지 않았다.

용선로에 원료투입시 회수한 파철속에 기름이 묻은 기계부속품들이 섞여들어가면 그런 현상이 나타나는것이다.

오작난 부분품들은 다시 용해하면 되지만 문제는 새로 시작한 날개바퀴목형가공을 빨리 끝내는것이였다.

사고이후 당비서한테 불리워가 눈물을 쏟으며 자신의 잘못을 심심히 뉘우친 창근이가 목형가공을 다시 맡았는데 며칠째 집에도 들어가지 않고 현장에서 침식하며 전투를 벌리고있었다.

제 말로는 죽으나사나 사흘내로 완성하겠다고 했다는데 그게 꽤 가능하겠는지…

이제껏 창근을 몹쓸놈이라고 욕만 하였고 지어는 공장에서 내쫓으려 했던 리대철은 뒤늦게나마 그를 만나 따뜻한 말 한마디 해주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옷걸이에 걸어놓은 솜옷을 벗겨 입었다.

그때 그의 발목을 붙잡는 전화종소리가 울리였다.

얼른 송수화기를 집어드니 차부국장의 걸걸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배인동무, 잘있었소?》

《안녕하십니까, 부국장동지.》

리대철은 무등 반가와하며 전화를 받았다.

《듣자니 사고가 났다던데 어떻게 되였나?》

창근이때문에 제기된 사고를 념두에 두고 한 말이였다.

《예, 수습을 하고있습니다.》

《그럴테지. 내가 뭘 또 도와줄게 없겠나?》

《말씀만 들어도 고맙습니다. 부국장동지가 우리를 적게 도와주었습니까? 전번에 개천지구탄광들에 나가서 무연괴탄을 한방통이나 보장해주느라 고생을 하셨는데.》

아닌게아니라 차부국장은 고양정뽐프를 하루빨리 성공하라고 뒤에서 사사모사로 도와주고있었다.

선철이 부족하다는걸 알고 황철에 나가 끌어다주었고 요전날에는 용해용무연괴탄을 한방통이나 해결해주었다.

《2. 8비날론과 흥남가스화대상설비생산도 드티지 않고 내밀겠지?》

《예, 그건 사흘후이면 결속이 됩니다.》

《좋구만, 리대철이 누구라구. 허허허. 지배인동무, 내 말을 잘 듣소. 어제 말이요, 건설지휘부에서 사람이 왔댔소. 이름이 뭐더라. 전번에 동무네 공장에 실태료해를 내려갔던 무역부원 있지 않소.》

《윤상배 말입니까?》

《옳소, 윤상배.》

윤상배라는 소리에 예감이 좋지 않았다.

그가 왜 거기까지 찾아갔댔을가.

《그 사람이 무슨 용건으로 왔댔습니까?》

《그 량반이 신선이 되였더구만. 글쎄 동무네 공장에 중주파유도로를 해결해주겠다는거요.》

《중주파유도로요?!》

아닌밤중에 떡소리같은 소리에 리대철은 펄쩍 놀랐다.

《그렇소. 그 량반이 갑자기 그런 선심을 쓰는 목적이 무엇인지는 가늠이 가지 않았지만 욕심이 나더구만. 동무네 공장에서 언제부터 해결하려다가 끝내 못한 중주파유도로가 아니요. 그래 슬쩍 한마디 비쳤지. 어떻게 그런 생각을 다 했는가고 말이요. 그랬더니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동무네 공장에서 고양정뽐프제작이 시작부터 애를 먹고있다는걸 다 알고있더구만. 저주파유도로에서 개량제를 뽑다가 실패한거랑 그리고 날개바퀴오작사고랑…》

리대철은 숨결이 거칠어졌다.

윤상배가 그걸 어떻게 알고있을가. 혹시 정향이가…

아니, 정향은 이미 아버지와 상반대는 리해관계로 하여 거의나 상대를 하지 않고있지 않는가.

제길, 별걸 다 신경쓰는군. 그가 어떻게 알았든 상관이 뭔가.

《그러면서 하는 말이 처음 해보는 일이여서 애를 먹을거라며… 그래서 자기네 사장과 토론하고 동무네 공장을 도와주기로 했다오. 지배인동무를 책임자로 해서 뽐프제작공업이 발전된 나라에 보내여 첨단급뽐프제작기술을 배워오도록 말이요. 갔던김에 중주파유도로도 사오고…》

유혹적인 그 말에 리대철은 가슴이 활랑거렸다.

이런 횡재라구야. 중주파유도로라?

언제부터 해결하지 못해 속을 태웠는데 이렇게 쉽게 해결되다니?…

《내 보기에도 잘된것 같소. 이 기회에 발전된 나라의 기술도 배워오고 좀 좋소. 어쨌든 동무넨 떡함지에 앉게 되였소.》

마음을 가라앉히며 차부국장의 말을 다시금 음미해보는 리대철은 어째서인지 윤상배가 연출하려는 《작품》의 종자가 아리숭하였다.

《부국장동지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나야 꿩먹고 알먹는격이라고 생각하지. 발전된 나라의 기술을 배워오는거야 좋은것이 아니겠소, 중주파유도로도 해결하고… 한번 믿어보는게 아니요?》

리대철은 한동안 망설이지 않을수 없었다.

가만, 좀 생각해보자. 그들이 우리에게 사다주려는 중주파유도로의 값은 어디에서 생긴것일가.

제 주머니를 털어서 우리에게 주는것은 아닐것이다.

분명 국가의 자금에서 떼낼것인데 나라에 도움을 주자고 일을 시작한 우리가 오히려 나라에 부담을 주면서 제 목적을 이룬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 여기까지 생각한 리대철은 강잉히 머리를 흔들었다.

《부국장동지, 우린 그 사람들에게 중주파유도로를 해결해달라고 손을 내민적도 없으며 또 거저 준다고 해도 받지 않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은 나라의 귀한 자금을 가지고 낯내기를 하고 생색을 하려고 하는데 그건 죄악입니다. 그리구 우리에게도 뽐프제작공업이 발전되였다는 나라들과 당당히 어깨를 겨룰수 있는 자력갱생의 공장이 있는데 뭐가 부족해서 기신거리겠습니까?》

칼로 물베듯 하는 리대철의 결단성에 차부국장이 환성을 올렸다.

《하하하, 역시 동문 어쩔수 없는 사람이로구만. 옳소, 그것 참 결심 잘했소. 허, 그걸 보면 내가 떨떨했구만. 윤상배의 말에 귀가 항아리만 했댔으니 말이요.》

《그럴수 있지요. 저도 처음 귀가 버룩해졌댄걸요. 그런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사람이 어데 있겠습니까. 문제는 제정신을 가지는거지요.》

《그런것 같소. 이번에도 지배인동무한테 단단히 한꼴 먹는구만, 허허허.》

《그런 말씀 마십시오.》

《알겠소, 윤상배동무에게 동무의 의사를 전하겠소.》

전화를 끊은 리대철은 당장 윤상배에게 맞불질을 걸고싶었지만 꾹 참았다.

속담에 친구와 나누는 술은 천잔으로도 모자라지만 비렬한자와 나누는 말은 한마디라도 많다고 하지 않았는가.

윤상배는 메사해졌다.

리대철이 제아무리 곧은 목이라고 해도 공장에 목이 멘 중주파유도로라는 《고기덩이》는 덥석 받아물리라 타산하였던것이다.

그가 그런 타산을 하게 된데는 어떻게든 수입안을 견지하리라 기대하였던 리석민이 주대가 없이 리대철이 잡아끄는대로 끌려다니는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때문이였다.

그전에는 일처리에서 결패가 있고 강단이 있어 함께 호흡이 잘 맞았는데 이번에는 왜 좌왕우왕하는지 리해가 안되였다.

리석민이 자기 권한으로도 주무르지 못하는 리대철을 자기가 중주파유도로로 유화시켜보려고 했었는데 일도 참 맹랑하게 되였다.

리석민이 그걸 알면 앙천대소할것이다.

그러지 않아도 중주파유도로소리를 비쳤을 때 반신반의했던 리석민이였다.

《그게 가능할가? 안돼! 그만두오. 리대철지배인과의 회계는 그들이 만든 뽐프를 놓고 해야 하오.》

했건만 윤상배는 리석민의 충고를 무시하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배심으로 리대철에게 미끼를 던졌었다.

그런데 웬걸… 주먹맞은 감투격이 된 윤상배는 자신의 처신이 경솔했음을 후회하지 않을수 없었다.

한편으로는 리석민의 애매한 태도에 대하여 머리를 기웃거리게 되였다. 혹시 그 어른이 동주뽐프에 기대를 걸고있는것이 아닐가.

십분 그럴수도 있다.

동주뽐프가 성공하는 경우에는 리석민이 자력갱생의 옹호자로 평가를 받을것이요, 설사 실패한다고 해도 수입안을 배제한것으로 하여 추궁을 면할수 있을것이다.

하다면 수입안을 기어이 성사시키려던 나는 어떻게 될것인가?

사대주의에 푹 절은 너절한 인간으로 타매될것이다.

여기까지 생각한 윤상배는 이제라도 수입안을 뒤집어엎고 동주뽐프공장의 편에 서는것이 현명한 처사가 아닐가 하고 망설이게 되였다.

그것은 딸 정향이가 바라는것이였다.

그 고양정뽐프라는 《신령스러운 물건》에 현혹되여 금이야 옥이야 하던 딸과 수화상극이 되다싶이 된걸 생각하면 기가 막힌 일이다.

별안간 상념의 우물에 깊숙이 빠져 허우적거리는 상배를 놀래우며 전화종소리가 귀따갑게 울리였다.

얼른 팔을 뻗쳐 송수화기를 집어드니 국제통신국이였는데 대방으로부터 확스가 왔으니 어서 와서 받으라는것이였다.

그 소리에 윤상배는 고개를 기웃거리였다.

이제껏 자기가 거래대방을 찾기 전에는 그쪽에서 먼저 찾은적이 없었기때문이였다.

대체 무슨 일때문일가?

혹시 계약된 뽐프전량을 들이밀자고 그러는게 아닐가.

수수께끼같은 의문을 풀지 못한채 몇번이나 발동이 죽어 애를 먹이는 승용차를 끌고 국제통신국에 가니 아닐세라 언제 뽐프전량을 가져가겠는가 하는 물음과 함께 약속대로 요구한 서유럽산 승용차기관을 구입해놓았다는것이였다.

학수고대하고있던 숭용차기관을 구입해놓았다는 소리에 흥분한 윤상배는 좀전에 기연가미연가하였던 모든 생각이 바람처럼 사라지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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