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46


며칠동안 품을 들여 날개바퀴목형을 완성한 창근은 소학교학생이 시험지 검열을 받듯 긴장해서 서있었다.

창근의 그 자세는 그 어느 조각가가 품들여 완성한 조각품같은게 옆사람들까지 긴장시켰다.

도면과 실물을 자로 재여보며 대조해보는 리대철의 눈길은 매눈처럼 예리하였다.

보고 또 보기를 그 몇번…

리대철의 옆에 꺼꺼부정해 서있는 목형반장은 숨도 크게 못 쉬는것 같았다.

그 어떤 흠집이라도 잡을듯 목형을 이리 굴리고 저리 굴리고 하던 리대철은 허리를 펴며 창근이쪽을 띠여보았다.

《처음부터 이렇게 품을 들일노릇이지.》

합격이라는 소리였다.

시험점수를 기다리는 학생처럼 속을 조이고있던 창근은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어찌나 긴장했던지 이마에선 땀이 흘렀다.

두손을 썩썩 비비며 허리를 펴고 일어선 리대철이 목형반장에게 무뚝뚝하게 일렀다.

《주형에 넘기라구.》

《알겠습니다.》

칭찬의 말이라도 한마디 얻어들을줄 알았던 창근은 리대철의 처사가 섭섭하기 그지없었다.

《쳇, 잘했다고 칭찬 한마디 해주면 체면이 깎이는가.》

응석부리듯 게두덜거리는 창근을 보며 리대철이 허구픈 웃음을 지었다.

《뭐?! 칭찬? 야! 소잃고 외양간 고친 주제에 칭찬을 바래?》

《됐어요. 그걸 바란 내가 어리석었지.》

《허허허, 어쨌든 수고했다.》

그 말에 창근의 얼굴에 씩 하는 황소웃음이 스치였다.

사기가 난 목형반장이 창근의 손을 잡아흔들었다.

《창근이, 수고했네.》

《뭘요. 괜히 저때문에 반장동지가… 정말 미안합니다.》

리대철이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창근에게 일렀다.

《가다가 집에 들렸다 가거라.》

《거긴 왜요?》

《자식, 들렸다 가라면 들렸다 갈게지 까박은…》

찔 눈을 흘긴 리대철이 돌아섰다.

창근은 겅정겅정 걸어가는 리대철의 잔등에 대고 두덜거렸다.

《그저 떽떽거린다니까. 좀 곰살궂게 말하면 안되나?》

《허허허, 버릇없이… 지배인이 듣겠다.》

《들으라는거예요.》

《이보라구, 오늘은 일찍 들어가 쉬라구. 며칠째 밤을 밝혔는데.》

《알겠어요.》

아닌게아니라 창근은 며칠째 작업장에서 살다싶이하며 일하였다.

원래 사고이후 날개바퀴목형제작을 다른 사람이 하게 되였었다.

그런걸 창근이가 자기가 저지른 잘못은 자기가 보상하겠다고 우겨대서 맡아안았다.

창근이가 작업장을 뜨지 않으니 어머니도 오고 이모도 왔다갔다.

어머니는 창근이가 온 정신을 기울여 일하는걸 보고 너무도 대견스러워 올 때마다 오래동안 작업장을 뜨지 못하였다.

정향이는 새앙쥐 풀방구리 드나들듯 하루에도 몇번씩 작업장에 나타나서 경제선동을 한다며 한참이나 재잘거리다 가군 하였다.

작업장을 나선 창근의 마음은 풍선처럼 붕 떴다.

공장에 입직한 이후 오늘처럼 떳떳하고 자랑스러운 날이 있은것 같지 않았다.

사람이 어떻게 사는것이 보람있고 긍지스러운것인가를 이제야 안듯 싶었다.

키높이 자란 수삼나무우듬지에 한쌍의 까치가 재간스럽게 앉아 무슨 다정한 이야기를 주고받고있었다.

큰일을 해제낀 창근을 칭찬해주는듯 싶었다.

기분이 좋아 활개짓을 하며 정문으로 걸어가던 창근은 왼쪽에 있는 대형속보판앞에서 붓을 쥔 속보원청년이 자기가 쓴 글이 잘되였는지 확인하듯 속보판을 들여다보고있는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추었다.

길이가 거의 20여메터나 되는 속보판은 다른 공장에서처럼 멋들어진 제목에 혁신의 주인공들을 소개하는것이 아니라 월별로 계획완수자의 이름과 함께 계획수행프로수를 공개한다.

그것은 당비서 박영식이 발기한것으로서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누구는 월에 계획을 몇프로 수행했는데 사회주의경쟁순위는 몇등이라는것을 공장종업원들이 다 알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그것을 놓고 분기마다 총화사업을 하는데 등수에 따라 평가도 하고 경쟁상품을 수여한다.

12월 중순도 안되였는데 벌써 월계획완수자들의 이름이 대문짝만 하게 걸려있었다.

부러움에 차서 눈이 시도록 속보판을 들여다보는 창근은 자기 이름도 한번 올라보았으면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까짓거 나라고 속보판에 못 오른다는 법이 있는가.

오를테다, 온 공장이 다 보게 오를테다.

그때 누군가가 깃을 펴고 나래치는 꿈을 깨뜨리였다.

《뭘 그렇게 부럽게 쳐다봐요?》

아쉬움을 금치 못하며 돌아보니 언제 왔는지 정향이가 새물새물 웃으며 빤히 쳐다본다.

《야! 간떨어지겠구나.》

《호호! 속보에 나고싶어 그래요?》

《헤, 나같은게 어떻게 속보에 난다고 그래.》

목을 움츠리는 창근을 보며 정향은 재미있다는듯 깔깔거렸다.

《거짓말을 곧잘하는군요, 그 얼굴에 다 씌여져있는데…》

속이 켕긴 창근은 얼굴을 붉히였다.

《정향이 눈은 못 속이겠구나. 맞았어. 나도 언제면 저렇게 혁신자들과 나란히 설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어.》

《그럼 내가 가서 창근동지이름을 큼직하게 써달라고 해볼가?》

《큰일날 소리, 써달라면 써주니? 실적이 없는데.》

《왜 실적이 없다고 그래요? 며칠동안 밤잠을 미루어가며 노력해서 날개바퀴를 완성한건 뭐 속보감이 아니나요?》

창근은 놀랐다.

《너 그 소릴 어디서 들었니?》

《좀전에 송화동지한테서요.》

《송화한테서? 정말?!》

송화소리가 나오자 창근은 가슴이 후두둑 뛰였다.

《응.》

《송화가 뭐라고 하던?》

며칠째 그림자도 보지 못한 송화였다.

창근은 귀를 항 열고 호감어린 눈길로 정향의 얼굴을 더듬었다.

정향은 눈을 깜빡거리며 종다리 삼씨까듯 종알거렸다.

《송화동지가 뭐라고 했는가 하면… 창근동지가 제 손으로 날개바퀴목형을 완성했다면서 눈굽을 찍지 않겠어요.》

창근은 가슴이 뭉클하였다.

송화가 얼마나 기뻤으면 큰일도 아닌걸 놓고 눈굽을 찍었겠는가 하고 생각하던 창근은 정향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다.

《방금 한 소리가 진짜야?》

정향은 창근이가 눈을 흡뜨고 따지는 바람에 그만 당황해졌다.

《아니, 그건… 해해, 용서해요. 그건 사실 내가 지어낸 소리예요.》

솔직한 정향의 고백에 효모빵처럼 부풀었던 창근의 마음은 졸지에 김빠진 공처럼 되고말았다.

《에이, 그런 말도 지어내니?》

《미안해요. 난 둘사이가 다시 가까워지기를 바래서…》

애절하게 울리는 정향의 말을 듣는 창근은 무거운 한숨을 내쉬였다.

정향이가 바라는대로 다시 송화와 가까와졌으면 얼마나 좋겠는가.

하지만 그것은 그림의 떡이나 같았다.

송화는 실 끊어진 연이나 같았다.

매혹의 선풍을 불러일으키는 정향의 눈빛이 우울해진 창근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실망하지 말아요. 지금 송화동지는 창근동지한테로 오는중이예요.》

창근은 허거픈 웃음을 지었다.

《야, 너 누굴 놀리는거야?》

《놀리긴요. 내 말을 마저 들어보고 성을 내든 때리든 하라요.

사랑에는요 쓴맛, 단맛, 시큼한 맛, 쩝쩔한 맛이 있는데 그 맛을 다 보아야 진짜래요. 지금 둘 다 그 맛을 다 못 보았거던요.

뭐랄가, 송화동지는 지금 쩝쩔한 맛을 보고있고 창근동지는 매운 맛을 보고있거던요. 왜 그렇게 말할수 있는가.

그것은 서로가 절대로 다른 사람을 넘겨다볼수 없기때문이예요.》

제법 경험자연 하며 훈계를 하는 정향을 보는 창근은 터지는 웃음을 겨우 참았다.

동에 닿지 않는 소리같았지만 멍이 든 마음을 풀어주려 애쓰는 정향이가 고마왔다.

《고맙다, 정향아. 그렇다는 의미에서 내 오늘 정향이가 좋아하는 사과랑 내지, 어때?》

《아이, 좋아!》

《가자.》

창근은 손을 내밀어 정향의 손을 잡았다.

그들은 다정한 오누이처럼 어깨를 나란히 하고 공장정문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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