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47


원료를 장입하고 불을 지핀 용선로안을 들여다보던 리대철의 마음은 조급해났다.

괴탄에서 뿜어올리는 새파란 불길이 원료를 녹여 주형을 하려면 적어도 대여섯시간은 기다려야 하기때문이였다.

《제길, 가마안의 쌀을 익히듯 30분내로 쇠물을 끓이는 방법이 없는가.》

혼자소리로 중얼거리는 리대철의 곁에 있던 명선이가 싱긋이 웃으며 한마디 했다.

《지배인동지두 참, 임신부보고 열달전에 아이를 낳으라고 하면 낳습니까?》

《엉, 그거야…》

말문이 막힌 리대철은 허허 웃고말았다.

《쇠물이 익자면 오후 4시는 되여야 할것 같소.》 하던 리대철의 눈길이 한곳에서 굳어졌다.

용선로앞에 주런이 놓여있는 주형품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있는 송화를 본것이였다. 늘 배꽃처럼 환하던 송화의 얼굴에는 생기라고는 한점도 찾아볼수 없었다. 송화가 그렇게 된것이 창근이때문이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아릿하였다.

안해한테 듣자니 창근이가 사고를 친 날 청천강기슭에서 둘이서 싸우듯 했다며 짐작에는 송화가 창근에게 결별을 선언한것 같다고 하였다.

게다가 창근이 어머니가 송화를 따로 만나 자기는 다르게 생각하지 않을테니 창근을 포기하고 좋은 총각을 만나 시집을 가라고 했다던지.

그때문에 혹시 아버지의 노여움을 산것은 아닌지.…

리대철의 추측은 그릇된것이 아니였다.

요즘 송화가 창근을 공장에서 내보내지 않도록 당비서를 찾아가 제기는 하였지만 그전처럼 애틋한 정을 다시 이을것 같지 못하다는 생각에 마음이 괴로왔다.

발없는 말 천리 간다고 언제 창근에 대한 소식을 들었는지 아버지는 송화가 집에 들어서자바람으로 꿇어앉히고 한평생 쇠붙이를 다루며 여물대로 여문 쇠덩이같은 주먹으로 방바닥을 두드리며 딸을 다불러댔다.

창근이를 헌신짝처럼 버리듯 했다는게 무슨 소리냐?

딴 사내한테 정분이 난게 아니냐? 설사 창근이한테 잘못이 있기로서니 그걸 바로잡아주지 못해 이 애빌 실망시키느냐?

당장 창근이와 화해하고 집에 데려오너라.

소낙비 쏟아지듯 하는 아버지의 줄욕에 송화는 속이 죽가마끓듯 하였으나 뻐꾹소리 한마디 못하였다.

아버지앞에서 말대꾸나 변명이란 생각도 할수 없는것이였다.

마음속에는 시름이 산처럼 쌓이였다.

아버지말대로 창근과 화해를 하자니 자존심이 허락치 않았다.

무엇때문에 그앞에 먼저 머리를 숙인단 말인가.

그가 먼저 머리를 숙인다면 몰라도…

속을 시퍼렇게 여물구었지만 아버지의 기대는 저버릴수 없었다.

그래 이튿날 아버지앞에서 타협안을 내놓은것이 고양정뽐프제작을 끝내고 창근을 집에 데리고 오겠다고 하였는데 그게 과연 가능하겠는지 두고보아야 할 일이였다.

요새 창근이가 엉치를 붙이고 일을 하는걸 보면 전혀 딴사람이 된듯 싶은데 그게 정오때 달아올랐다가 해지면 식는 조약돌같은 열성은 아닌지.…

송화의 심중에서 흔들거리는 고민을 엿본듯 한 정향이가 찰거마리처럼 딱 붙어 창근에 대해 좋다는 말을 다 갖다붙이며 방송을 해대는데 그 말을 믿어야 하겠는지.

질정하기 힘든 번민을 털어버리지 못하고 허리를 펴던 송화의 눈길이 자기를 지켜보는 리대철의 눈길과 허공에서 부딪쳤다.

리대철의 눈길에는 련민의 빛이 어려있었다.

마주보기가 무안해난 송화가 얼른 고개를 돌렸다.

그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확성기에서 불어대는 방송처럼 작업장을 흔들었다.

《여기서 뭣들을 하고있소. 낮 12시부터 중대방송이 있는데…》

모두 놀란듯 돌아보니 공장당위원회 선전일군이였다.

그제야 생각난듯 리대철이 마주대고 소리쳤다.

《아참, 12시에 중대방송이 있다고 했지. 뭘 가지고 하는지 모르겠소?》

리대철의 물음에 얼굴이 퉁투무레한 선전일군이 아는체 했다.

《아, 그쯤한거야 넘겨짚어야지요. 요새 못되게 노는 미국놈들을 꾹 눌러놓는 인공지구위성발사 아니면 지하핵시험소식이겠지요.》

십분 그럴수 있다고 저마다 열띤 소리들로 맞장구를 쳤다.

《아, 그럴수 있지.》

《그놈들이 또 홍찌를 갈기게 됐군.》

《가서 가슴후련한 소식을 듣고 오후에 쇠물을 뽑아 우리도 고양정이라는 위성을 쏴올리자구.》

앞장서 걷는 리대철의 뒤를 따라 우르르 밀려갔다.

그들이 회관안으로 들어서니 벌써 공장 종업원들이 자리들을 차지하고있었다.

모두 선군조선의 막강한 국력을 또 한번 온 세상에 떨치리라는 기대와 흥분으로 붉은 기폭이 펄럭이는 텔레비죤화면을 들여다보고있었다.

허나 2011년 12월 19일 정각 12시의 중대방송은 이 나라 천만자식들이 하늘처럼 믿고따르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심장의 고동을 멈추셨다는 천만뜻밖의 비통한 소식이였다.

순간 회의장은 울음바다에 잠기였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이였지만 어쩔수 없이 믿어야 하는 현실이였다.

《장군님! 우릴 두고 어데로 가십니까.》

《안됩니다, 장군님! 우릴 두고 못 가십니다.》

《장군님!》

어버이장군님을 찾고부르는 피타는 웨침이 회관을 흔들었다.

리대철의 량볼로 눈물이 줄지어 흘렀다.

30여년전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고 공장에 찾아오시여 공장이 나아갈 앞길을 환히 밝혀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태양같은영상을 가슴깊이 안고 살아온 동주뽐프공장 로동계급은 다시 오실 장군님을 기다리였지 이렇게 가슴터지는 소식을 기다리지 않았다.

아,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단 말인가.

공장에 다시 오시면 장군님의 가르치심대로 때벗이를 한 공장과 활성화된 뽐프생산공정을 보여드리고 기쁨을 드릴 한마음으로 기다리고기다리였는데 이 무슨 변괴냐.

믿지 않아, 믿지 않아…

목터지게 부르짖으며 가슴을 탕탕 두드리던 리대철은 그 자리에 졸도하고말았다.

의식을 잃은 리대철을 사무실로 옮겨간 박영식과 공장 일군들이 근심과 걱정속에 지켜보는 속에 공장 진료소의사가 그의 팔에 점적주사침을 꽂았다.…

리대철은 꿈속에 잠겨있었다.

리대철이네가 한창 완공된 창전거리 고층아빠트의 어느 한 뽐프장에서 자기들이 제작한 고양정뽐프를 설치하고있는데 어둑시그레하던 뽐프장이 갑자기 대낮처럼 환해졌다.

웬일인가 해서 허리를 펴며 문가쪽으로 고개를 돌리던 제작조성원들은 깜짝 놀랐다.

꿈결에도 뵙고싶던 위대한 장군님께서 해빛처럼 환히 웃으시며 뽐프장안으로 들어서시는것이 아닌가. 송화와 정향이, 명선이 등 제작조성원들이 너무도 꿈만 같은 기쁨에 위대한 장군님께 미처 인사도 올리지 못하고 목멘 소리로 울먹이였다.

《아버지장군님!》

《아버지장군님!》

리대철은 어린애마냥 기뻐하며 위대한 장군님 앞으로 다가섰다.

《위대한 장군님, 안녕하십니까.》

장군님께서는 리대철의 기름묻은 손을 허물없이 잡으시며 말씀하시였다.

《내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다가 동주뽐프공장에서 창전거리살림집들에 리용될 고양정뽐프를 만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너무 기뻐서 찾아왔소.》

《장군님, 고맙습니다!》

장군님께서는 무릎을 접고 앉으시며 뽐프의 동체를 쓸어보시였다.

《멋쟁이로구만. 척 보기에도 단숨에 저 높은 살림집꼭대기까지 물이 올라갈것 같구만. 듣자니 이 뽐프는 첨단급으로서 세계적으로 기술이 발전된 나라들중에서도 이걸 만드는 나라가 몇개 안된다지? 그런데 동무들이 만들어냈구만. 그것도 단번에… 수고들 했소. 동주뽐프공장이야 나와 인연이 깊은 공장이지. 30여년전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공장에 갔던 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소. 그때도 동무네 공장 로동계급은 위대한 수령님께 기쁨을 드리였지.》

장군님의 과분한 치하에 리대철은 황송해 어쩔바를 몰라하는데 그이께서는 말씀을 이으시였다.

《이렇게 로동계급을 믿으면 얼마든지 세계적수준의 제품을 만들수 있는데 일부 사람들은 수입병에 걸려 쩍하면 다른 나라의것을 사올 생각만 하거던. 내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다른 나라에 의존하게 되면 민족의 존엄과 자존심을 팔게 되고 나중에는 망하게 된다는 력사의 법칙을 명심하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력갱생해야 한다고 강조하는데 사대주의병에 오염될대로 오염된 일부 사람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남의것을 넘겨다보고있거던. 그걸 보면 동주뽐프공장 로동계급은 자력갱생은 진리이고 승리라는 나의 사상과 의지를 심장으로 받들줄 아는 충직한 동지들이요. 축하하오! 동무들이야말로 불가능을 모르는 자력갱생의 강자들이요. 자, 그럼 어디 한번 시동을 걸어보오.》

장군님께서는 자리에서 일어서시였다.

리대철이 전원을 투입하였다.

윙ㅡ 하는 힘찬 동음이 울리였다.

장군님께서는 기세좋게 돌아가는 뽐프를 보시며 환히 웃으시였다.

《뽐프소리가 힘차구만. 정신이 번쩍 드오!》

좀 있더니 벽에 걸려있는 무선통화기에서 45층까지 물이 꽝꽝 올라간다는 환희에 찬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장군님께서는 엄지손가락을 흔들어보이며 만족해하시였다.

《성공이요! 성공! 이것이 바로 조선의 자존심이고 조선의 창조본때요. 동주뽐프공장 로동계급이 수입병에 걸린 사대주의자들의 면상을 보기 좋게 후려갈겼소. 그 사람들이 이걸 보면 뒤로 희뜩 나자빠질거요. 동주뽐프공장 로동계급에게 나의 인사를 전해주오.》

그이를 우러르는 리대철과 뽐프제작조 성원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목청껏 만세를 불렀다.

《만세!》

《만세!》

《내 인차 동무네 공장에 가겠소.》

《장군님, 꼭 오십시오. 기다리겠습니다.》

사랑의 약속을 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을 우러르는 리대철과 제작조성원들은 무한한 행복과 기쁨에 가슴들을 들먹이였다.

번쩍 눈을 뜬 리대철은 몸을 벌떡 일으키며 웨쳤다.

《뭣들 하고있소, 위대한 장군님께서 오시였는데…》

리대철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 소리에 모두 말없이 눈굽을 훔치였다.

리대철은 자신이 꿈을 꾸었다는것을 느끼고 오열을 터뜨리였다.

《아! 이럴수가 있는가! 이럴수가…》

한동안 자신을 진정 못하던 리대철은 신발을 발에 꿰였다.

그 서슬에 팔에 꽂혀있던 점적바늘이 뽑혀졌다.

공장진료소 의사가 급해맞아 리대철의 팔을 붙잡았다.

《지배인동지, 왜 이러십니까?》

《쇠물을 부어야 하오, 쇠물을…》

의사를 뿌리친 리대철이 비척비척 문가로 걸어갔다.

박영식이 리대철을 따라서는 의사를 만류하였다.

《놔두오.》

용선로에서는 쇠물이 끓고있었다.

리대철이 쇠장대로 출선구를 헤집었다.

비애와 슬픔에 잠긴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끓던 피눈물인양 주홍색쇠물이 흘러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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