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8 회)


48


새해 2012년에 들어서면서 동주뽐프공장 로동계급은 새해공동사설에서 제시된 강령적과업을 결사관철하기 위한 중요대상설비생산보장과 함께 고양정뽐프생산으로 긴장한 전투를 벌리였다.

지배인으로부터 꿈이야기를 들은 제작조성원들은 그것을 꿈이 아니라 현실로 받아들이고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리는 심정으로 고양정뽐프의 매 부분품들을 닦고 쓸고 하며 온갖 성의를 다 기울이였다.

이해의 겨울은 사람들의 가슴마다에 웅어리진 상실의 아픔을 건드리기 저어하듯 조용히 지나갔다.

봄의 훈향이 따스한 입김으로 아직도 피눈물이 마르지 않은 대지를 쓰다듬었다.

창전거리를 훌륭히 건설하여 인민들에게 안겨주시기 위하여 마음써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뜻을 받들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건설을 빨리 끝내고 인민들을 입사시켜야 한다는 가르치심이 계셨다는 소식은 공장 로동계급을 격동시켰다.

낮과 밤이 따로 없는 전투가 벌어졌다.

고심어린 노력끝에 드디여 수십대의 고양정뽐프를 완성하였다.

그런데 기쁨과 환희로 들먹이는 그들앞에 전혀 예상치 못했던 장벽이 가로막을줄이야.

잘 추던 춤도 멍석을 펴놓고 추라면 못 춘다고 평시에 씽씽 잘 돌아가던 뽐프특성시험장이 고양정뽐프의 류량시험을 걸쳐 양정고를 시험하던중 덜컥 숨이 꺼질줄이야.

압력계의 바늘이 12을 가리키자 긴장해서 지켜보던 제작조성원들 모두가 지구라도 들어올린듯 기쁨에 들떠 두팔을 머리우로 번쩍 들어올리며 환성을 지르는데 이건 도대체 무슨 일인가.

격정에 들썩이던 사람들이 순간에 돌미륵처럼 굳어지고말았다.

얼굴색이 탄덩이처럼 새까매진 리대철이 벼락치듯 소리쳤다.

《이건 뭐요?》

이어 연록색칠을 한 문이 벌컥 열리더니 여러명의 사람들이 튀여나오며 중죄라도 지은듯 고개를 떨구는데 한 청년이 기여드는 소리를 하였다.

《고장입니다.》

린광이 펄펄 이는 리대철의 세모진 눈이 그 청년의 얼굴에 화살처럼 박히였다.

《어디가 고장이라는거요?》

《당장은 퇴치하지 못할…》

《그건 대체 무슨 도깨비같은 소리요?》

격해서 따지고드는 리대철의 목소리는 시험장을 들었다놓았다.

한절반 얼이 나가 중언부언하며 고장요소를 설명하는 청년의 목소리는 마치 숨넘어가는 사람모양 가냘팠다.

용케 자신을 자제하며 그의 말을 마지막까지 다 들어준 리대철은 억이 막힌듯 무거운 한숨을 내불었다.

아쉬웠다.

물론 성공이나 다름없는 치수가 나왔지만 3기압만 더 돌파했더라면 보다 확정적인 성공을 가져오는건데…

어떻게 해야 할지 마음을 질정 못하고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그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전화종소리가 귀따갑게 울리였다.

리대철은 얼른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전화받습니다.》

수화기에서 귀에 익은 김원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배인동무, 수고하오. 나 김원삼이요.》

답답하던 가슴을 활 열어제끼며 울리는 김원삼의 목소리에 리대철은 너무 반가와 환성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안녕하십니까.》

《이보우 지배인동무, 하루이틀사이에 뽐프제작을 끝낸다더니 어떻게 됐소. 이제나저제나 반가운 소식이 오려나 하고 기다리는데…》

그 소리에 흥떴던 리대철의 기분이 물속에 가라앉은 돌덩이처럼 되여버렸다.

사실대로 말을 하자니 서슴어졌다.

《왜 말이 없소. 무슨 일이 있었소?》

한동안 즘자리던 리대철은 용기를 내여 제작이 끝난 뽐프특성시험을 하던 도중에 있은 사실을 토설하고나서 그래서 어떻게 해야 할지 결심을 내리지 못하고있다고 말하였다.

수화기에서 호탕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하하하! 나는 여태 리대철이 하면 꺾이면 꺾일지언정 굽힐줄 모르는 강자인줄 알았는데 이제보니 졸장부였구만.》

《?!》

처음 듣는듯 한 졸장부라는 소리에 리대철은 기분이 상했으나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허참, 내가 졸장부란 말이지. 하긴 그 말이 옳아.

《이보우, 성공이나 다름없는 치수가 나왔는데 무슨 고민이요? 지배인동무, 내 말을 새겨듣소, 세상을 들썩하게 한 인공지구위성 〈광명성〉1호, 2호를 쏴올린 우주과학자들이 무슨 시험을 거쳐 단번 성공한줄 아오? 아니요, 조국의 존엄을 걸고 심장을 내대면 무서운것이 없다는 배짱을 가졌기에 그런 기적을 창조했단 말이요. 동문 처음 뽐프제작을 결심했을 때 그보다 더한 난관이 막아서리라 생각 못했소?》

쇠몽둥이로 후려치듯 하는 김원삼의 말에 리대철은 온몸에 기운이 쭉 뻗쳤다. 기울어지던 기둥을 벋쳐주듯 힘을 주는 김원삼이 고마왔다.

잠시나마 나약해졌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고맙습니다.》

《그런 소리 말고 당장 뽐프를 싣고 올라오오.》

《알겠습니다.》

송수화기를 놓은 리대철은 망짝에 눌리운듯 했던 마음속 고충이 연기처럼 사라진듯 싶었다.

흥분한 리대철이 문고리를 쥐려는데 문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들어오시오.》

문이 열리더니 박영식이 들어섰다.

《지배인동무, 빨리 가십시다.》

밑도 끝도 없는 그 소리에 리대철은 얼떠름해졌다.

《어디로 말입니까?》

《제작조동무들이 퇴근시간이 지났는데 뽐프제작을 성과적으로 끝낸 기념으로 간단히 식을 하면 안되겠는가고 하며 날 찾아왔더군요.》

《그래요?! 그 친구들이 당비서동지를 초청한 셈이군요.》

《초청까지야 뭘, 지배인동무한테 승인을 받으러 갔다가 어찌나 심각해있는지 차마 말을 못하고 나한테 온거지요.》

그제야 리대철은 아까 송화가 문가에서 무슨 말인가 할듯말듯 하다가 말을 못하고 속상해서 돌아서던 생각이 났다.

《아차! 내 그만 실수를 했습니다.》

《갑시다.》

사무실을 나선 두사람이 어둠속으로 빨리워들어갔다.

수십대의 조립된 고양정뽐프들이 사열하듯 줄맞추어 놓여있는 조립직장에 들어서니 맨바닥에 빙 둘러앉아있던 조립조성원들이 그들을 반기였다.

《어서 오십시오.》

그들앞에 놓여있는것은 각각 잔 한개씩과 말린 물고기 몇마리가 전부였다.

그것을 보는 리대철의 마음은 허전하였다.

《이게 전부요?》

명선이가 히죽이 웃어보였다.

《무엇이 부족하거나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전투가 끝나지 않은것만큼 마음의 탕개를 풀어서는 안되겠기에 이렇게 간소하게 하기로 하였습니다. 평양에 가서 뽐프시운전이 성공하면 그때는 잔치를 차리자는겁니다. 어떻습니까?》

리대철은 눈굽이 뜨거워났다.

그렇듯 장한 일을 하고도 소박하게 오늘의 기쁨을 나누려는 이들의 마음이 그지없이 대견하였다.

《난 좋구만! 전투적인것이 마음에 드오. 그렇지 않습니까? 지배인동무.》

박영식의 말에 리대철이 목메인 소리를 하였다.

《좋습니다.》

명선이가 잔 두개를 들어 리대철과 박영식에게 쥐여주었다.

《비서동지, 한마디 하십시오.》

리대철의 말에 박영식이 펄쩍 뛰였다.

《무슨 소리! 나야 별로 한 일도 없는데… 지배인동무가 하십시오, 어서요.》

박영식이 리대철을 무작정 일으켜세웠다.

《그럼 제가 한마디 하지요.

동무들! 그동안 수고들이 많았소. 우리가 처음 자체로 뽐프를 제작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의 힘, 우리의 기술을 믿지 않는 사대주의자들은 이렇게 말했소. 첨단급이여서 못 만든다, 경험이 없어서 못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끝끝내 해냈소.

하다면 무엇이 우리가 선택한 길에서 한순간의 주저와 동요도 없이 오늘에로 꿋꿋이 걸어오게 하였는가.

그것은 제 힘을 믿고 떨쳐나서면 강자가 될수 있다는 당의 의지와 배짱을 우리모두의 심장에 쪼아박았기때문이였소.》

열정에 넘친 리대철의 말을 듣는 제작조성원들의 눈가에 눈물이 고여올랐다.

《난 길지 않은 나날 동무들과 함께 일하면서 귀중한것을 얻었소. 동무들과 함께라면 세상 못할 일이 없다는것을… 그렇다는 의미에서 축배를 듭시다.》

했으나 누구도 선뜻 잔을 입가에 가져가지 못했다.

뽐프제작의 시작부터 오늘까지 겪은 기쁨과 고난이 돌이켜져서이리라. 생활은 무엇을 이루고 성공하였을 때에는 반드시 그 과정을 돌이켜보게 하는 법이다.

그러면 아무리 어려웠던 일도 기쁨의 추억으로 아름답게 새겨지게 된다.

가슴이 뭉클해 서있던 박영식이 한마디 하였다.

《왜들 그러고있소? 축배잔은 단숨에 비워야 한다는데… 자, 어서들 들기요.》

그들은 단숨에 잔을 비웠다. 리대철도 박영식이도 잔을 비웠다.

유독 송화와 정향이만이 손에 쥐고있는 술잔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하였다.

그것을 본 박영식이 한마디 하였다.

《에이, 사내들이란… 눈치들이 없다니까. 저들만 축배잔을 들면서 처녀들 생각은 전혀 안했구만.》

그제야 남자들은 자신들이 처녀들 생각을 못했음을 깨닫고 급해하는데 창근이가 가방에서 구럭지를 꺼내보였다.

《안했을게 뭡니까.》

창근이가 헤치는 구럭지안에는 빵과 사과가 있었다.

모두 눈이 떼꾼해졌다.

《역시 창근이가 할줄 알거던.》

박영식의 칭찬에 이때라고 창근이가 능청을 떨었다.

《다년간 후방사업을 맡아하지 않았습니까, 비록 비편제이긴 해도…》

《하하하!》

《하하하!》

지난날의 창근을 돌이켜보게 하는 즐거운 웃음이였다.

리대철의 입가에도 웃음이 스치였다.

창근이가 정향이에게 구럭지를 내밀었다.

《자, 받아.》

정향은 《창근동지, 고마워요.》 하며 손에 받아쥔 구럭지안에서 빨갛게 익은 사과 한알을 골라 송화에게 내밀었다.

《받으라요, 창근동지 성의인데…》

송화는 자기를 지켜보는 눈빛들을 감촉하고는 다른 색갈의 표정이 얼굴에 비낄세라 부러 웃음을 지으며 정향의 손에 쥐여진 사과가 아니라 구럭지를 통채로 앗아내듯 했다.

《다른 사람 손을 빌릴게 있니? 그 사과는 네가 먹어라. 내 먹을 사과는 내가 고를게.》

송화는 활달한 성미대로 구럭을 헤집어대다가 큼직하고 먹음직스러운 사과 한알을 쑥 꺼내들었다.

박영식이 히죽이 웃으며 엉너리를 쳤다.

《야! 그 사과 먹음직스럽게 잘 익었다.》

사과를 두손으로 감싼 송화는 한입 뭉청 베물다가 그때까지도 모두가 자기를 지켜보는지라 얼굴이 활딱 붉어져가지고 바쁜 소리를 해댔다.

《목이 마르길래. 헌데 왜 모두들 나만 보는거예요?》

그 소리에 모두가 와하하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나 슬그머니 송화를 훔쳐보는 창근의 인상은 여전히 무표정이였다.

그들의 감정변화를 예리하게 주시하던 박영식이 창근이쪽을 보며 넌지시 말을 던지였다.

《창근이, 오늘처럼 기쁜 날에 노래 한마디 하라구.》

《예.》

주저없이 자리를 털고 일어선 창근이가 음정을 잡는듯 몇번 헛기침을 하더니 노래를 부르기 시작하였다.


행복한 나날엔 다 모른 그 사랑

시련의 나날에 가슴에 새겼네

눈비에 젖을가 찬바람 맞을가

한몸에 막아준 그대의 넓은 품



창근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의 마음은 숭엄한 감정에 휩싸였다


심장을 바치자 어머니조국에

한생을 바치자 위대한 내 조국에


자식들 얼굴에 웃음꽃 필 때에

그대의 어깨엔 더 큰짐 놓였네



합창으로 번져진 노래는 조립직장을 가득 채우며 공중으로 울려퍼지기도 하고 뽐프들을 쓰다듬기도 했다.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는 송화의 눈가에 눈물이 함초롬히 고여올랐다.

군복을 입고 초소로 떠나던 날 이 노래를 적은 수첩을 주며 자기 몫까지 합쳐 군사복무를 잘하라고 당부하던 그날의 창근의 모습을 보는듯 싶었다

그밤 창근은 강변에서 기다리겠다는 송화의 짤막한 전화를 받았다.

너무도 뜻밖이여서 통화가 끝났어도 그냥 귀가에 손전화기를 대고있기만 했다.

산악같은 흥분의 파도가 넘실거리며 들씌워졌다.

송화는 나를 잊지 않고있었다, 나를 지켜보고 기다리고있었다. 정신없이 강변으로 달려갔다.

달리면서도 꼭 자신이 꿈을 꾸는것만 같이 생각되였다.

누군가 자기를 놀리려들지 않는가 하는 의혹이 들며 그것이 만약 거짓이라면 심장이 멎어버릴것만 같아 달리다가는 서서 곰곰히 생각해보고 또 달리다가는 다시 멈춰서서 전화기의 통화기록을 펼쳐보기도 했다.

강변에 다달았을 때 창근은 바위처럼 우뚝 서버렸다.

눈굽이 콱 쑤셔나고 목이 꺽 메였다. 심장은 세차게 두방망이질하는데 주위가 이렇게 고요할수 있는지 이상했다. 팔뚝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그제야 창근은 자기로 돌아온듯 싶었다. 꿈이 아닌 현실이였다.

모든것이 자기만을 위해 존재하는듯 싶은 주위세계였다.

아! 나의 밤, 나의 강변 그리고 저 하늘의 달도 나의 달…

그속에서 처녀가, 오직 창근이만을 아는 처녀가 끙끙 힘을 쓰며 돌을 굴려가느라 애를 쓰고있다.

송화, 나의 송화!

창근을 띄여본 송화가 허리를 펴더니 이마에 내밴 땀을 문대며 소리질렀다.

《뭘 멍청해서 그래요? 빨리 이걸 들어다 제자리에 놓지 못하겠어요?》

얼굴이 온통 웃음으로 환해진 창근이가 그 소리에 한쪽무릎을 꺾어 앉으며 길게 소리를 뽑았다.

《예ㅡ이, 공주마마의 분부대로 하겠소이다.》

그리고는 껑충 뛰여올랐다가 달려갔다.

한달음에 달려오는 창근을 바라보며 송화는 웃음속에 뇌이였다.

《꼭 어린애같다니까. 돌을 뽑아치우랬다구 정말 뽑아던지는 미욱쟁이가 어디 있담.》

소연히 흐르는 강물, 그 물속에 풍덩 빠진 둥근달은 좋아라 웃어대느라고 제 모양이 볼품없이 쭈그러들기도 하고 형편없이 늘어나는줄도 모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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