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회)


제 1 장 그해 여름


1


떠들썩한 웃음소리가 긴 복도 한가운데 자리잡고있는 2산과 식당에서 울려나왔다. 간호원처녀들이 무엇인가 싸들고 그리로 들락날락하고있었다. 문이 열릴 때마다 구수한 음식냄새가 풍기는데 줄무늬복을 입은 환자들이 복도 한끝에서 목을 길게 빼들고 바라보군 했다. 그곳 식당안에서 지금 류다른 일이 벌어지고있는것이였다.

보통키에 얼굴이 좀 감실감실한 젊은 남자의사도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여 스적스적 걸어가더니 식당문을 활 열어젖혔다. 다음순간 그의 두눈이 둥그래지고 커다란 입이 벌어졌다.

《야 이거, 굉장하구만!… 꼬리떡, 전골, 가재미식혜, 내가 좋아하는 록두지짐도 있구.》

오늘은 여기 평양산원에서 1년에 한번씩 조직하는 민족음식경연날이다. 의사, 간호원들을 비롯하여 녀성이라면 누구나 다 한가지씩 특색있는 민족음식을 해가지고 나오게 되여있다.

갑자기 간호원처녀 하나가 바스라지는 소리를 질러댔다.

《어마나, 서범천선생! 이거 어디다 손을 대는거예요?》

서범천이라고 불리운 젊은 남자의사가 벌써 지짐 한짝을 입에 넣고있었다. 간호원처녀들이 달려들어 종주먹질을 해대고 꼬집어뜯기도 했다.

《아, 이거 지짐 한짝에 사람잡겠다?》

그는 구석쪽으로 밀려나면서도 소리없이 큰 입을 벌리고 호함지게 웃고있었다. 그에게 주먹세례를 안기던 간호원들도 덩달아 웃고 떠들기 시작했다. 흔히 처녀들은 허물없는 사람일수록 마음놓고 지청구를 하며 때려주기도 하는 법이다. 비록 주먹질은 할지라도 거기에는 벌써 후하고 수더분한 그 사람에 대한 따뜻한 정이 들어있다.

갑자기 처녀들이 입을 다물었다. 몸이 둥싯한 최봉숙간호장이 들어서며 엄한 눈길로 사람들을 둘러보았던것이다.

《다 차려놨어요?… 그런데 이건 뭐예요? 길순어머니, 그 곱지 못한 병아리튀기는 저쪽 뒤에 놓아요. 신선로옆엔 약밥을 놓구.》

나이든 간병원은 누가 볼세라 접시에 부리를 구겨박고있는 병아리튀기를 얼른 감추었다. 자기가 애써 만든것이여서 부득부득 한복판에 비집고 들여놓았는데 어느새 간호장의 눈에 띄였던것이다.

간호원들이 까르르 웃었다.

《웃지 말아요! 그런데… 서선생은 어떻게 여기 와있어요?》

《아, 나 말이요?》 서범천은 얼굴이 붉어졌다. 《품평회심사를 맡으라구 해서 왔는데… 음- 난 그래서 말이요.》

그가 떠듬거리는것을 지켜보던 간호원들이 키득거리자 간호장은 다시 엄한 눈길을 던지였다. 그리고는 서범천을 향해 또박또박 찍어말했다.

《품평회심사는 우리 2산과의 하경옥선생이 맡은걸로 난 알고있는데요?》

《하경옥선생?… 아니, 예술공연심사두 경옥선생이 하구 민족음식심사도 경옥선생이라?… 하- 그럼 이 서범천은 뭘하라는거요?》

《됐어요, 난 그런거 몰라요.》 간호장은 에누리없는 녀자였다.

《범천선생은 저 뒤쪽에 물러나세요.》

아무리 사람이 좋고 익살꾸러기라 해도 엄격한 간호장의 정당한 요구에는 어쩌는수가 없다. 한때 사단군의소 간호장이였던 최봉숙은 늘 말하기를 병원의 간호장은 해군함정에서 갑판장이 차지하는 위치와 같은것이라고 했었다. 모든 일과를 집행하고 통제하는 이런 간호장앞에서는 의사들과 지어 과장까지도 눈치를 볼 때가 있다.

그때 문열리는 소리에 머리를 돌린 간호장이 불현듯 반가운 웃음을 얼굴에 띄웠다.

《아 하선생, 왜 이제야 오세요. 음식평가를 받겠다고 다들 기다리고있는데.》

엄하기로 소문난 최봉숙간호장이였지만 녀의사 하경옥에게만은 류달리 친절하고 공손했다. 간호원들 역시 벅작 떠들며 하경옥을 식탁앞으로 이끌어갔다. 그러자 뒤쪽에 서있던 서범천이 볼부은 소리를 했다.

《체, 강계색시면 다 미인인가? 내가 음식선정을 하겠다구 할 땐 모두 생야단이더니만.…》

하경옥이 놀라와하며 말했다.

《아니, 우리 산원의 첨단기술개척자로 소문난 총각선생을 누가 무시한다는거예요?》

누구도 그에 대답하지 않았다. 여기에 모인 녀자들모두가 오직 민족음식품평회에만 신경을 쓰고있었던것이다. 그들은 자기가 만들어온 음식이 선정되기를 바라고있었다.

사실 여기 산원에서는 민족음식경기를 열고 1등한 종업원에게는 향기그윽한 꽃다발과 함께 그릇조를 상으로 주군 했다. 상이 문제가 아니라 예로부터 녀성이라면 아릿다운 용모와 바느질솜씨 그리고 음식솜씨를 제일가는 미라고 일러왔으므로 누구도 경쟁에서 지려고 하지 않았다.

간호장이 큰소리로 물었다.

《하선생, 어떻게 할가요? 아무래도 품평회에 나갈 음식은 하선생이 선정해야지요?》

《내가요?》

《그럼요, 하선생만큼 정확하게 음식맛을 가려내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아이참, 내가 뭘…》

《아니, 하선생이 해야 해요. 이건 단순한 음식평가가 아니라 우리 2산과의 명예와 관련된단 말이예요.》

하경옥이 빙그레 웃고나서 머리를 끄덕이였다.

《좋아요! 그럼 〈갑판장〉의 명령대로 제가 품평회의 감독이 되지요. 참, 나도 준비해온게 있는데…》

간호장이 머리를 저었다.

《아, 하선생의 음식솜씨야 보나마나지요! 그건 그렇구… 하선생, 해마다 민족음식경기는 설명절이나 추석날에 하군 했는데 이번엔 왜 8월 삼복더위때 하는지 모르겠어요?》

《글쎄?…》

모두가 머리를 기웃거리는데 갑자기 길순이라는 간병원이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쳤다.

《그렇지! 오늘이 음력으로 7월 7석이라구 했어!… 아, 일년에 단 한번 견우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난다는 날 몰라?!》

《정말?!…》

처녀들이 일시에 떠들기 시작했다.

《그럼 우리 처녀들중엔 누가 먼저 오작교에서 멋진 총각을 만나게 될가?》

마침 구석에 몰려갔던 서범천이 처녀들을 둘러보며 소리쳤다.

《옥경이야!… 아니, 영숙이나 홍련인지두 몰라.》

이름을 불리운 처녀들중에서 누군가 놀란 소리를 질렀다.

《어마나! 난 이제야 열아홉살인데?…》

그러자 서범천은 허허 웃으며 하경옥을 돌아보았다.

《아무래도 오늘은… 때가 지나도록 오작교를 건너보지 못한 하선생이 주인공으로 돼야 할것 같소.》

환성이 터졌다. 간호원들은 물론 볼이 잔뜩 부어있던 간병원까지도 손벽을 치며 좋아했다.

《그러니 오늘 주인공은 우리 하선생이구나!》

《맞았어! 아마 견우에게 대접할 음식도 제일 잘해왔을거야!》

하경옥의 두눈이 그들을 향해 웃었다. 원! 당치도 않은 말을…

그는 2산과에서 유독 독신으로 있는 녀의사, 다시말하여 서른이 거의다 되여오는 처녀였다. 사람들은 정차고 남달리 알뜰하기로 소문난 하경옥이 왜 아직까지 가정을 이루지 않는지 이상해했다.

그리고 늘 웃고있는 그의 두눈에 때없이 구슬픈 빛이 비끼는것을 볼 때면 저도 모르게 마음이 아릿해지는것을 느끼군 했다. 하여 자신에 대한 요구성이 높을뿐아니라 남을 위해주고 아껴주는 고운 마음씨를 가지고있는 이 녀의사를 의사, 간호원들은 물론 환자들까지도 좋아하고 따랐다.

《하선생, 어서 내놓으세요. 오늘 견우에게 무슨 음식을 준비해왔는지.》

간호장의 그 말에 하경옥은 여전히 웃음을 거두지 않고 가져온 음식그릇을 식탁우에 내놓았다.

《야, 설기떡이다!》

누군가 소리치자 서범천이 또 끼여들었다.

《우리 하선생의 견우는 설기떡을 좋아하누나.》

또다시 터진 웃음소리.

《정말?!… 그러니 하선생에게도 견우가 있다는 소리가 아니야?》

간호장이 마뜩지 않은 눈길로 청높이 떠들어대는 간호원들에게 핀잔을 주었다.

《그만들 해요! 모두 곁눈 팔고싶어 안달이 났다니까. 온통 총각들 생각만 하면서…》

이번에는 처녀들뿐아니라 서범천이까지도 큰소리로 떠들썩 웃어댔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더니 누군가 머리를 쑥 들이밀었다.

《왜들 이렇게 떠드는거요?》

강학선과장이였다. 다부진 체격에 눈이 부리부리한 그는 롱질도 잘하지만 사업에서는 남달리 요구성이 높은 사람이였다. 간호원들이 얼른 손으로 입을 가리며 터져나오던 웃음을 참았다.

《다 준비됐소, 간호장?》

간호장은 풍만한 가슴을 쑥 내밀며 자신있게 대답했다.

《예, 됐습니다. 보십시오.》

과장은 흡족한 눈길로 식탁을 휘둘러보았다.

《음, 모두 잘해왔구만! 괜찮아!… 헌데 이건 누가 해온거요?》

과장은 금방 내놓은 하경옥의 떡그릇을 가리키며 물었다.

《예, 제가 해온겁니다.》

강학선은 뒤를 돌아보더니 머리를 기웃거렸다.

《하선생이?… 그런데 왜 떡뿐이요?》

순간 때를 기다리고있었던듯 서범천이 능글맞은 웃음을 띠우며 앞으로 나섰다.

《아 과장선생, 이건 하경옥선생이 견우에게 주려고 밤새워 준비한 설기떡입니다.》

강학선의 짙은 눈섭이 우로 치켜들렸다.

《뭐, 견우? 견우란건 또 누구요?!》

그러자 간호원들이 저마끔 신이 나서 떠들어댔다.

《아, 과장선생님, 오늘은 7월 7석이 아닙니까!》

《예, 견우와 직녀가 오작교에서 만나는 날!…》

《그래서 우리 하경옥선생도 오작교에서 약속한 총각을 만나게 된단 말입니다.》

떠들썩한 속에서 서범천이 또 끼여들었다.

《그리구 과장동지, 하경옥선생의 견우는 특별히 떡을 좋아한다지 않습니까!》

강학선은 어처구니가 없는듯 머리를 뒤로 젖히고 허허 웃어대더니 손을 홱 내저었다.

《알긴 잘 안다. 하선생의 〈견우〉는 국수를 좋아해. 그것도 농마국수를!… 그 사람은 자강도 위원에서 나서자란 산골바우거던.》

《예?…》

《원, 과장동지두, 제발 웃기지 마십시오.》

그러자 온 식당안이 떠나갈듯 일시에 요란한 웃음이 터졌다. 간호원들은 물론 서범천이까지도 강학선과장이 제멋대로 롱질을 하는것이라고 생각했던것이다. 그러나 그가 얼마나 의미심장한 말을 했는가를 하경옥만은 잘 알고있었다.

《조용해요!》

간호장이 낮고도 엄하게 주의를 주었다. 그러자 강학선과장이 정색하여 말했다.

《지금 새로 온 기술부원장이 원장선생과 함께 매 과들을 돌아보고있소. 이제 곧 여기로 올거요.》하고나서 그는 슬그머니 하경옥의 팔소매를 끄당기였다. 《하선생, 나 좀 봅시다.》

그들은 문밖으로 나섰다.

《왔소! 그가…》하고 강학선은 하경옥에게 의미있는 미소를 보냈다. 《내 언젠가 말하던 권일학 그 사람이 바로 우리 산원 기술부원장으로 왔단 말이요!》

《?…》

《아, 내가 말하지 않았소?》

하경옥은 두눈을 내리깔았다. 지금 이야기되고있는 권일학은 강학선이 얼마전에 하경옥에게 귀띔한 사람이다. 그때 강학선은 제1인민병원 산과과장이며 로총각인 권일학이라는 사람에 대하여 말하면서 이렇게 계속했었다.

《이제 보면 알겠지만 그는 거 뭐라고 할가.… 날카로운 코마루처럼 성격도 맵짠 그런 사람… 하여튼 아주 멋있는 사람이요. 나보다 나인 아래지만 오래전부터 우린 막역한 사이요. 사실 내가 림상에선 뭐 어쩌구저쩌구 하는데 그와 대비하면 어림도 없소! 정말 누구도 견줄수 없는 실력가이구 또 반할만 한 멋쟁이라니까!》

아직 만나볼 기회는 없었지만 강학선의 말을 들어보면 세상에 그만한 남자는 없는듯 했다. 하지만 하경옥은 그가 한 마지막말을 지금도 잊지 않고있다. 반할만 한 멋쟁이!…

언젠가 하경옥이 가슴을 울렁이며 기다리군 하던 그 총각도 《멋쟁이》였다. 외국어에 능통하고 례절도 바르다면서 사람들이 떠받들어주고 그자신도 자기의 남다른 총명함을 자랑하던 사람, 하경옥은 자기의 사랑이 배반당한 그때로부터 그 어떤 《멋쟁이》에게도 마음을 주어본적이 없다.…

《아니 하선생, 오늘 어떻게 된 일이요?》

강학선과장이 걸음을 옮기려다말고 그를 돌아보았다.

《하여튼 만나보긴 하겠지?》

《글쎄요.》

하경옥은 여전히 눈길을 들지 않고있었다. 웬일인지 선듯 대답이 나가지 않았다. 별로 마음이 동하지도 않았다. 정말 그런 사람이라면…

끝내 만족한 대답을 듣지 못한 강학선은 손을 홱 내젓고 식당안으로 바삐 가버렸다.

그때 등뒤에서 문이 열리더니 와!- 하는 웃음소리와 함께 여럿이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하선생, 뭘하구있어요? 모두 기다리는데.…》

그래, 품평회에 내놓을 음식을 선정하라고 했었지?…

식당안으로 들어서는데 직일의사가 뛰여오며 원장선생이 새로 온 기술부원장과 같이 여기로 온다고 소리쳤다.

해빛이 밝았다. 창문으로 흘러든 복더위철의 뜨거운 해빛은 네거리갈림길처럼 뻗어있는 복도의 분흥색벽체와 넓다란 홀을 눈부신 빛으로 비쳐주었다. 그 홀과 이어진 복도 한가운데로 임선해원장과 새로 온 기술부원장이 걸어오고있었다. 지금껏 이런 일에 참견한적 없는 원장이 새 기술부원장과 함께 동행하는것이 이례적이였다.

식당안에서 간호장이 바빠하며 나직이 소리쳤다.

《자, 빨리 식당안을 정돈해요, 거기 식탁우의 빈자리도 메꾸고…》

처녀들이 헤덤비며 식탁을 정돈하고 널려있는 의자들을 제자리에 옮겨놓았다.

《빨리, 빨리! 벌써 다 왔어요.》

어떻게 알았는지 입원실문들이 빠금빠금 열리며 수십쌍의 눈들이 복도를 내다보고있었다. 새로 온 기술부원장이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동했던것이다. 이전 기술부원장은 나이가 많아 회진때에도 가까스로 걸음을 옮기군 했고 환자들과의 상담도 많지 않았었다. 그러므로 새로 온 기술부원장에 대하여 환자들이 커다란 관심을 돌리는것은 응당한 일이였다.

원장과 기술부원장이 복도를 걸어오자 호실문짬에 층층이 덧쌓여있던 머리들이 쑥 들어갔다가는 다시 빠금히 열리는 문과 함께 나타나군 했다.

《야, 미남자구나!》

《응, 총각이래!》

《기술두 높대.》

《그럼 치료도 아주 잘해줄거야!》

이상하게도 모든 환자들은 자기를 치료해주는 의사가 남자라면 인물 잘나고 친절하기를, 녀자라면 아름답고 상냥하게 대해주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아마도 그런 의사들에게는 자기의 그 용모처럼 따뜻하고 아름다운 마음과 함께 높은 의술까지 다 갖추어져있으리라고 믿기때문인것인지도 모른다.

《쉿, 조용해!》

가까와오던 발걸음소리가 식당앞에서 멎어섰다. 약속이나 한듯 모든 사람의 눈길이 원장옆에 서있는 젊은 기술부원장에게 집중되였다. 좀 큰 키에 보기 좋은 체구, 갓 벗어지기 시작한 훤칠한 이마며 날카로운 코마루 그리고 신중해보이는 주의깊은 눈빛… 그에 대하여 술렁이는 속삭임들이 파도처럼 물결쳐갔다.

《우리 산원에서 치료사업이 제일 잘되고있는 2산과예요.》 임선해원장이 하는 말이였다.

《과장선생과는 이미 잘 아는 사이지요?》

《예.》

새로 온 기술부원장 권일학은 강학선과장에게 다정한 눈인사를 보내였다. 강학선도 스스럼없이 그를 마주보며 웃고있었다.

그때 하경옥은 식탁 한켠에 선채 권일학을 유심히 지켜보고있었다.

별로 눈에 띄는것은 없는듯 하다. 그러나… 주의깊은 그 눈빛만은 남다르다는것을 느끼지 않을수 없었다. 모든것에 대하여 자신심을 가지는 사람, 자기가 지혜롭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이 흔히 저런 눈빛으로 사람들을 둘러보군 하는것이다.

《2산과에선 모두 음식을 잘해왔구만요.》

임선해원장이 식당안을 들여다보며 환하게 웃었다. 강직하고 침착하며 매사에 정확하기로 널리 알려져있지만 무엇보다 사람들의 눈에 뜨이는것은 그의 훤한 얼굴과 밝은 미소이다.

임선해원장의 밝은 웃음은 곧 간호원들모두에게로 옮겨졌다. 하지만 새로 온 기술부원장은 미간을 찡그리고있었다. 무엇때문일가?… 임선해원장이 그에게 계속 설명해주고있다.

《우리 산원에서는 자주 이런 민족음식경기를 조직하군 한답니다. 민족음식도 장려하는겸 또 환자들의 구미에 맞는 갖가지 료리경험도 쌓을겸 좋은점이 많거던요.》

그때였다. 구석쪽에서 《아이쿠!》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그릇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맨뒤에서 정신없이 키를 돋구며 덤벼치던 간병원이 그만 손에 들고있던 음식그릇을 떨구며 넘어졌던것이다. 아까부터 말썽많던 병아리튀기가 어느새 상밑으로 미끄러져 들어가고 바닥에 엉치를 짓쪼은 간병원은 이를 악물고 신음소리를 삼키고있었다.

폭소가 터졌다. 임선해원장이 민망한 표정을 짓는데 뜻밖에도 날카롭고 엄한 눈길이 그들에게 던져졌다. 새로 온 기술부원장이 그들모두를 비난하는 눈빛으로 둘러보고있었던것이다. 순간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단박에 조용해졌다. 민족음식경연이라는 즐거움에 그만 병원의 규정을 잊고있었던것이다.

하경옥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 권일학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가늘게 쪼프러진 두눈과 꾹 다물린 입술, 어인 일인지 한순간 코마루가 날카로운 그의 얼굴이 좀 메말라보이는것같이 느껴졌다. 아니, 대리석으로 깎은 조각상마냥 찬 기운이 풍겨오는것만 같았다.

그때 원장이 권일학을 데리고 몇걸음 앞으로 걸어나갔다.

《이 방은 복강경수술장이예요. 새로 꾸리고있는중이지요.》

다음순간 원장은 빈방에 머리를 들이밀고 기웃거리다가 《어딜 갔을가, 서범천선생이?…》 하고 중얼거렸다.

《예, 제 여기 있습니다!》

지금껏 처녀들에게 구박받고있던 서범천이 급히 그들을 헤치며 나왔다. 그는 바삐 서두르며 위생복의 단추를 채우고 벗어놓은 위생모를 찾는데 권일학이 성큼성큼 마주가더니 그의 손을 덥석 잡았다.

《복강경수술을 지망한다지요? 이렇게 만나서 참 반갑소! 앞으로 손잡고 같이 일해봅시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서범천도 기분이 좋은듯 했다. 언제나 구름처럼 웃음이 피여나는 얼굴에 큰 입을 하- 벌리고 어줍게 말을 이었다.

《우리 산원에선 복강경수술만 시도하는게 아닙니다. 이 맨 웃충은 체외수정연구실인데 거기에두 첨단기술을 탐구하는 사람들이 있지요. 홍정순선생과 위인섭선생을 비롯해서…》

그가 말끝도 맺기 전에 임선해원장이 끼여들었다.

《참, 기술부원장선생은 첨단기술분야이라면 발벗고나선다지요? 그렇게 소문이 났더군요.》

그가 무엇이라고 대답했는지… 목소리가 낮아서 하경옥은 듣지 못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이였는지는 짐작되였다. 새로 온 기술부원장이 첨단기술인 복강경수술에 커다란 흥미를 느끼고있는것이였다.

어느덧 원장과 권일학은 복도를 따라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하지만 하경옥은 그 자리에 못박힌채 움직일줄 몰랐다.

강학선과장이 과찬하던 권일학… 과장이 바라는 오작교 저 건너편 기슭엔 권일학의 두 모습, 즐겁게 웃고 떠들던 사람들에게 엄한 눈길을 던지던 랭철한 인간과 첨단기술을 두고 그토록 반가와하는 새 기술부원장이 나란히 서있는것이다. 서로 다른 한사람, 판이한 두 모습. 하경옥은 여전히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아니, 하선생! 왜 그러구있어요?》

간호장이 하경옥을 이끌었다. 식탁을 둘러싼 간호원들이 다시 품평회에 나갈 음식을 고르느라고 야단법석이였다. 그들은 새로 온 기술부원장보다도 민족음식품평회가 더 절박했던것이다.

《하선생은 어느게 제일 나아보여요?》

《글쎄, 어디 보자요.》

재빨리 음식들을 훑어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겉보기가 속보기라고 하지만 언제나 그런건 아니예요. 겉보기엔 기름이 찰찰 돌아 그대로 꿀꺽 삼키고싶은것이 정작 입에 넣으면 지내 짜거나 싱거워서 이마살을 찌프리는것도 있거던요. 하지만 이 도라지무침을 한번 맛보자요.》

그는 저가락으로 도라지무침을 집어 간호장의 입에 넣어주었다.

《어때요?》

《야, 막 죽여주누나!》

여러 처녀들이 《나도 좀.》하면서 몰려드는것을 막으며 하경옥은 말했다.

《겉보기엔 수수해도 진맛이 나는 이런게 상을 받아야 한단 말이예요.》

《옳아요.》

《내것도 좀 맛봐주세요.》

《역시 하선생은 단번에 속까지 다 본다니까.》

떠들썩하는 처녀들에게 둘러싸여 소리없이 웃으며 하경옥은 열려진 문을 통해 복도를 내다보았다. 새로 온 기술부원장은 이미전에 복도 저끝으로 멀어져갔지만 그의 자신만만해하던 얼굴은 여전히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고있었다. 과연 그는 어떤 사람일가? 강학선과장이 말하던 그런 멋쟁이일가?… 옆에 서있던 간호장이 놀라서 쳐다보는것도 알지 못하고 그는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머리를 젓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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