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 회)


제 1 장 그해 여름


4

밤이 퍼그나 깊어서야 권일학은 정철이를 업고 집으로 향했다.

강학선의 안해가 싸준 음식을 배불리 먹은 정철이가 잠내나는 목소리로 그냥 종알대고있었다.

《아버지, 순남이 그 앤 나빠. 꽃밭에서 잠자리를 잡아가지구 책갈피에 넣지 않아? 아직 살아있는데.…》

《저런!…》

정철이는 오늘 유치원에서 순남이란 애와 다투던 일을 일러바치고있었다.

《그래서 내가 소리쳤지 뭐. 그러면 안돼! 하구… 그래서 우린 쌈했어.》

《그래서 쌈했다?…》

권일학은 목에 감겨있는 어린것의 작은 손에 턱을 가볍게 눌러대며 걸음을 옮겼다. 참, 사람의 정이란… 피덩이같은 정철이가 제달을 다 채우지 못하고 태여났을 때엔 눈앞이 캄캄했었는데 지금은 벌써 다섯살이 되였다.

원래 배안에서부터 중독증에 빠져있던 정철이는 태여나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중한 상태였었다. 더는 어쩔수 없는 악성종양에 대한 수술을 벌리고있던중 뜻밖에도 태아의 숨결을 느낀 권일학은 모든것을 다해 갓난애를 살려냈었다. 그렇게 태여난 정철이, 태여나면서 어머니를 잃은 그 피덩이를 놓고 권일학의 년로한 어머니는 무거운 한숨을 쉬였다.

《이제 이 애는 어떻게 키운다는건가?… 원, 무슨 생각에 제발로 찾아가 부득부득 산과의사가 되였는지.…》

늘 푸념하듯 하는 어머니의 그 말을 들을 때면 권일학은 오래전 군사복무기간에 있었던 폭풍의 그밤을 생각하군 했다.

잊을수 없는 그밤…

그날 자그마한 섬초소에 나갔던 권일학은 뜻밖의 소동에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위생지도원!》

이렇게 소리쳐부르고있는것은 땀에 흠뻑 젖은 부소대장이였다.

《왜 그러오?》

《구급환자가 생겼소. 빨리 날 따랏!》

권일학은 습관적으로 머리맡에 놓고있던 위생가방을 찾았다. 그러면서도 덤벼치는 부소대장에게 짜증을 내며 물었다.

《아니, 저녁때까지 소대에 몸이 불편한 사람은 없었는데…》

《빨리빨리 차비하오! 가면서 말해줄게.》

부소대장이 병실에서 달려나오는 누구에겐가 또 소리쳤다.

《1분대장, 사택에 전기를 련결했소?》

《예, 지금 하고있는중입니다. 그런데 폭풍에 전선줄이 자주 끊어집니다.》

《끊어지면 또 이어야지.》

《알았습니다!》

분대장은 어느새 대원들을 이끌고 어둠속으로 사라졌다. 권일학은 어둠속에서 들려오는 구령소리와 공병삽들이 부딪치는 소리를 들으며 서둘러 부소대장을 따라 밖에 나섰다.

갑자기 숨이 꺽 막혔다. 엊그제부터 시작된 세찬 태풍에 온몸이 그대로 바다에 날려버릴것만 같았다. 그 태풍때문에 섬초소의 독립소대에 내려와있던 권일학이 자기 중대로 돌아가지 못했었다.

권일학은 앞선 부소대장을 따라 달리면서도 한밤중에 무슨 일로 온 소대가 깨여나 이렇게 뛰여다니는지 알수 없었다.

권일학이 달리면서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요?》

부소대장이 숨이 턱에 닿아 소리쳤다.

《아, 우리 초기복무사관동지의 아주머니가 글쎄…》

《아주머니가 어떻게 됐다는거요?》

《글쎄 가보면 알게 된다니까!》

섬은 크지 않았다. 유일한 군인가족인 초기복무사관의 집앞에 이르자 부소대장이 숨을 헐떡거리며 말했다.

《자, 들어가기요.》

무작정 잡아끄는 부소대장을 따라 들어서니 초불을 켜놓은 어두운 방안에서 초기복무사관의 아주머니가 방바닥을 허비며 모지름을 쓰고있었다. 그리고 그옆에서는 땀투성이가 된 한 처녀가 울상이 되여 어쩔바를 몰라하고있었다.

부소대장이 처녀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 글쎄 이 동무가 나한테 와서 막 울지 않겠소. 자기 언니가 해산을 앞두고 갑자기 무슨 변이 났다는거요. 아직 예정일두 안됐는데…》

《아니, 그럼 내가 해산방조를?!…》

권일학은 펄쩍 놀라 뒤로 한발 물러서기까지 했다. 그제서야 자기가 왜 여기로 왔는가를 깨달았던것이다.

《난… 이런건… 아무것도 아는게 없소.》

부소대장이 허둥거리는 그에게 창밖을 가리켰다.

《자, 보오, 캄캄한 이밤에 태풍까지 이렇게 기승을 부리니 어떻게 산부를 뭍에 실어갈수 있겠소. 부대에는 이미 보고했지만 군의라구 뭐 뾰족한 수가 있겠소? 지금 당장 산부가 위급한데.》

《하지만 난…》

산부가 몸을 비틀며 신음했다. 손끝에 피가 지도록 방바닥을 허비며 무섭게 신음하고있었다.

부소대장이 성이 나서 고함치듯 했다.

《위생지도원, 그래도 동문 의학대학에서 공부하다가 나온 사람이 아닌가?… 이 섬에 의학상식이 있는 사람은 동무밖에 없단 말이요. 알겠소?》

권일학은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의학대학에서 공부하다가 정세가 긴장해지고 전쟁이 터질 위험이 다가오자 중도에 공부를 그만두고 군대에 입대한 그였다. 그러니 폭풍치는 이밤에 독립초소만 있는 이 섬에서 위급한 산부를 돌볼 사람은 오직 자기밖에 없다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또다시 산부가 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이번에는 당장 숨이 넘어갈것만 같았다. 저도 모르게 팔을 걷으며 한발 내짚던 권일학은 다시 주춤거리며 멎어서고말았다.

그때 몸부림치는 언니를 그러안고있던 처녀가 소리쳤다.

《아니, 뭘하고있어요? 사람이 죽어가는데!…》

《그렇지만…》

《그러지 말고 제발 도와주세요. 예, 위생지도원동지?!》

권일학은 저도 모르게 앞으로 나갔다. 자기가 이제 무엇을 어떻게 하려는지도 알지 못하면서 산부의 머리맡에로 다가갔다. 그러자 부소대장이 문고리를 잡으며 말했다.

《그럼 난 가서 보고하겠소.》

《?!…》

무엇을 보고한단 말인가. 내가 산부를 돌본다는것을 말한단 말인가?… 그는 거의나 무의식적으로 위생가방을 열었다. 그속에 들어차있는 갖가지 약품들을 꺼내놓으며 미친듯이 생각을 굴렸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하는가. 림상학부를 다니던 내가 이런 막다른 골목에 처하리라고 어떻게 알수 있었겠는가. 제길할, 저놈의 태풍때문에 내가 죽을 고비에 들었구나.

그는 저도 모르게 주사기와 소독솜을 손에 들었다. 순간 숨을 죽이고 그를 지켜보던 처녀가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주사를 놔야 합니까?》

넨장, 대답할 말이 없었다. 무슨 주사를 어디에 놓는단 말인가. 그는 눈이 보이지 않는것처럼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당겨 눈에 바투 가져다보고는 결이 나서 집어던지군 했다. 별안간 대학때 어느 한 의학서적에서 본 구절이 번개처럼 머리속을 스쳐갔다.

《해산 제1기에는 태아머리가 소골반강내로 내려오기 위하여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그는 마치 한순간에 그 귀중한것을 놓칠가봐 겁내는듯이 눈을 꽉 감으며 그 다음구절을 상기하려고 애썼다.

《소골반강내로 내려오기 위하여 준비하는 시기이므로… 실내에서 걸어다니게 할수 있다.》

눈앞이 확 트이는듯 했다. 그렇다, 정상해산을 위해서는 일정한 운동이 필요할수도 있다!…

《저…》하고 그는 숨이 찬듯 가까스로 말했다. 《아주머니, 참으십시오. 산부의 진통이 무서운거라는건 다 아는게 아닙니까. 그러니 좀 아파도 참아야 합니다. 그리고 긴장된 정신과 몸의 근육도 풀어야 합니다. 그래야 애기를 빨리 낳을수 있거던요.》

옆에 있던 처녀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한다는거나요?》

《내가 시키는대로 하시오. 까드라든 다리를 쭉 펴게 하고 자리에서 일궈세워야 합니다. 그래야 수축되였던 근육의 긴장이 풀리고 산도가 열리게 됩니다.》

《그래요?》

아무것도 모르는 처녀로서는 위생지도원의 그 말을 원사, 교수, 박사의 결론처럼 무조건 따르지 않을수 없었다. 하여 처녀는 모지름쓰는 자기 언니를 부축여세워 한걸음 또 한걸음 움직이게 하느라고 진땀을 뽑기 시작했다.

권일학은 자기의 생각이 옳은지 그른지 따져볼 경황도 없었다. 고통에 몸부림치는 산부의 신음소리만이 그의 귀전에 아프게 파고들고있었다. 속에서는 여전히 《제길할, 내가 지금 무슨 일을 저지르고있는가. 이런 일이 있으리라고 상상이나 했던가?》 하고 이렇듯 막다른 골목에 자기를 몰아넣은 태풍을 끝없이 저주하고있었다.

사실 그가 의학대학에 입학했던것은 꼭 의사가 되고싶어서 그런것은 아니였다. 산골마을에서 태여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늘 농사일에 뼈가 굳어진 부모들을 보아오며 자랐었다. 그래서인지 남달리 총명하고 공부를 잘했던 그는 앞으로 이름있는 농산기사가 될것을 희망했었다.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어머니가 고열로 앓아눕게 되였다.

《어머니! 왜 그러나요?》

이제 겨우 열다섯살에 난 그가 아무리 수건을 적셔 불같이 달아오른 어머니의 이마에 올려놓아도 열은 떨어지지 않았고 어머니는 점점 헛소리까지 치고있었다. 저녁부터는 산골사람들이 쓰던 민간료법도 말을 듣지 않았다.

《어머니, 정신차리세요!》

어머니를 붙안고 울음을 터뜨리는데 그때 십리나 되는 곳에 있는 리진료소(당시)에 달려갔던 아버지가 왕진가방을 든 의사와 함께 집에 들어서는것이였다.

의사는 곧 환자를 치료하기 시작했다. 체온과 맥박을 재고 고열에 들뜬 어머니의 눈까풀을 뒤집어보고 혀까지 들여다보더니 무어라고 알아듣지 못할 소리를 중얼거리며 갖가지 약을 먹이고는 또 한동안 환자를 관찰하였다. 여러가지 암풀의 주사도 놓고… 그런데 의사의 손이 가닿자 신기하게도 어머니의 화독같던 이마에 식은땀이 내배이고 차츰 열이 내리는것이였다.

아버지가 거쿨진 손으로 의사의 두손을 꽉 부여잡았다.

《고맙습니다, 의사선생님!》

그때부터 농산기사가 되려던 권일학의 마음속에는 하얀 위생복을 입은 의사의 모습이, 사람들이 찾아다니고 존경을 담아 바라보는 의사의 모습이 부럽게 새겨졌었다. 나도 의사가 되면 어떨가, 저렇게 하얀 위생복을 입고 사람들에게 약도 주고 병도 고쳐주는 의사가 되면… 그래서 의학대학을 지망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도리질했었다.

《에그, 지금도 창맞은 쥐를 보면 끔찍해하는게 어떻게 사람의 배를 쭉쭉 짼다는거니? 원…》

사실 그는 어릴적부터 뱀이나 쥐와 같은것을 제일 꺼려하고 싫어했다. 그래서 언젠가 집안사람들을 웃기는 그런 일이 벌어졌던것이다.

그날따라 앞마당에는 여느날과 달리 눈이 많이 왔었다. 두팔을 걷고 눈가래를 찾아 창고로 들어가던 권일학은 그만 질겁하여 뛰쳐나오고말았다. 커다란 쥐 한마리가 창에 찔려 짹짹거리고있었던것이다.

비명소리에 부엌에 있던 어머니까지 달려나왔다. 사연을 안 어머니는 크게 소리내여 웃었지만 그때 권일학은 갈구리로 쥐창을 들고나가는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진땀이 솟고있는 이마만 문질렀었다. 어쨌든 그는 의학대학에 입학했으며 지금은 군대에 나와서도 위생지도원이 된것이다.

방안에 전기불이 켜진것은 그때였다. 병사들이 섬초소의 해산을 위해 전기줄을 잇고 발전기를 돌리고있는것이다.

《아!-》

갑자기 권일학은 깜짝 놀라 머리를 쳐들었다. 동생의 부축임을 받으며 방안을 돌고있던 산부가 그만 허공을 그러안으며 그 자리에 쓰러졌던것이다.

그는 급히 무릎걸음으로 산부에게 다가갔다.

《아주머니, 왜 그럽니까? 예?》

피기가 가셔진 산부는 무섭게 두눈을 흡뜨고있었다. 숨도 제대로 쉬는것 같지 않았다. 돌덩이처럼 그러쥔 두주먹이 경련으로 푸들푸들 떨리고있었다.

이거 어쩌자는건가! 이러다 내가 사람을 죽이는게 아니야?… 눈앞이 캄캄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겁에 질린 처녀가 끝내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정신차려요!…》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땀젖은 얼굴이 쑥 들어왔다. 통신분대에 달려갔던 부소대장이였다.

《위생지도원, 지금 련대군의가 이 섬으로 떠났다오. 날밝기 전엔 도착할거요. 알겠소?》

미처 대답할새가 없었다. 문틈으로 새나가는 불빛에 부소대장을 따라 달려온 전체 소대가 저마끔 팔을 걷으며 문앞으로 밀려드는것이 보였다.

《위생지도원동지, 뭐가 필요합니까?》

《혹시 피가 요구되는건 아닙니까?》

《난 O형입니다.》

권일학은 다급히 문을 닫으라고 손짓하며 소리쳤다.

《그런건 필요없소! 제길할!…》

지금 이 초산부에게 요구되는것은 병사들의 뜨거운 피가 아니라 해산을 방조해줄수 있는 경험있고 능숙한 조산원이였다.

병사들이 눈앞에서 수군거렸다.

《이거 사관동지의 아주머니가 잘못되는게 아니야?》

《무슨 끔찍한 소릴!》

《아, 장가도 못 가본 위생지도원이 어떻게 해산방조를 한다구 그래?》

《하지만 우리 부소대장동지보다야 낫겠지 뭐.》

권일학은 무작정 옆에 놓아둔 더운물에 소독가제를 담그었다. 손가락이 뜨거웠다. 이크, 이건 또 뭔가?!… 비틀어짜던 소독가제를 소랭이에 내던지며 처녀에게 소리질렀다.

《왜 멍청해있는거요? 빨리 캄파!》

흐느끼던 처녀가 어리둥절하여 그를 쳐다보았다.

넨장! 화가 난 권일학은 덮치듯 위생가방에서 암풀 하나를 집어들고 급히 주사기를 쳐들었다. 처녀는 간호원이 아니였던것이다.

권일학은 급히 산부에게 주사를 놓고 진통제를 먹인 다음 땀을 뻘뻘 흘리며 필요한 혈을 찾아 엄지손가락으로 힘껏 누르기도 했다. 인제는 어쩌는수가 없다. 가능한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는 수밖에…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녹초가 되여 겨우 산부를 정신차리게 했을 때는 거의 날이 밝을무렵이였다. 그러나 기운이 진한 산부는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고있었다. 진통이 올 때마다 까맣게 타든 입술만 소리없이 벌릴뿐이였다.

산부를 마구 흔들던 처녀가 권일학에게 부르짖었다.

《우리 언닐 살려주세요, 예? 위생지도원동지.》

문밖에서 부소대장이 또 목청을 돋구었다.

《위생지도원, 조금만 견디여주오! 이제 련대군의가 꼭 올거요. 정말이요, 내 말을 듣소?》

권일학은 부석부석해진 두눈을 맥없이 손바닥으로 누르며 고개를 저었다. 이 태풍에 어떻게 군의가 날바다를 건너온단 말인가. 안될 소리!… 그도 이런 날씨에 배를 띄울수 없다는것을 잘 알것이다. 폭풍이 잦을 때까지 그냥 기다린다면 경각에 다달은 두 생명, 녀인과 세상에 태여나지도 못한 태아의 생명은 그대로 영영 꺼지게 될수 있다. 아, 이 저주로운 태풍!…

그때였다. 갑자기 밖에서 병사들이 큰소리로 떠들며 소리쳤다.

《배가 온다!》

《련대군의가 온다!》

어디론가 달려가는 발걸음소리로 밖은 소란해졌다.

《군의동지가?…》

권일학은 자리를 차고 일어났다. 급히 창문에 다가가 목을 빼들었다. 멀지 않은 앞바다에서 배 한척이 날바다를 헤치며 이쪽으로 다가오고있었다. 부소대장이 말한대로 군의를 태우고 오는 함정이였다.

저도 모르게 손으로 힘껏 얼굴을 문지르고난 그는 눈뿌리가 저리도록 가까이 오는 함정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불시에 목이 메고 가슴이 뻐근해졌다. 미구에 태여날 갓난애기와 산부를 위해 전투함정이 폭풍을 헤치며 이 섬으로 오고있는것이다.

바다가로 달려나간 병사들이 함정을 향해 물에 뛰여드는것이 보였다. 어느새 가까이 다가와 내다보고있던 처녀가 얼굴을 싸쥐며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 인젠 됐어요! 저기 큰 배가… 군의동지를 태운 배가 오고있어요!》

얼마후 련대군의가 병사들에게 떠밀리워 방에 들어섰다.

곧 긴장한 해산전투가 시작되였다. 기진한 신음소리와 산부를 고무하는 군의의 웅글고 침착한 목소리…

《일없소. 자, 힘을 내오. 숨을 깊이 들이쉬였다가 다시 길게 내쉬면서… 하나, 둘… 그렇지!》

가슴이 조여들고 입안이 말라들었다. 권일학은 군의에게 항생제와 소독방포 같은것을 섬겨주면서도 다급히 군복깃의 단추를 헤쳐놓았다가 재빨리 다시 채우군 했다. 자기가 벌써 몇번째나 그것을 반복하고있다는것도 알지 못했다. 제발 무사했으면, 아무일없이 해산했으면!…

《으-앙!》

드디여 기다리던 음향이 힘차게 소리높이 울렸다. 미처 그 의미를 깨닫기도 전에 또다시 진감하는 갓난애기의 기운찬 울음소리…

권일학은 몸을 부르르 떨었다. 탄생의 울부짖음 아니, 그것은 그저 울부짖는것이 아니라 숨쉬는 생명이 몸부림치며 웨쳐대는 환희의 목소리였다.

문밖에서 기다리던 병사들이 환성을 질렀다. 누군가는 문을 열고 안을 들여다보기도 했다. 그러자 군의가 그에게 손을 홱 내저었다.

《정신들 있소? 산모가 찬바람을 맞으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안으로 들이밀었던 머리가 쑥 나갔다. 모두 문밖에 가득 몰켜서서 웅성거리고있었다.

이윽고 밖으로 나오는 군의와 권일학을 병사들이 와- 하고 에워쌌다. 그리고는 갓난애기를 낳은것이 마치 권일학이기라도 한듯, 그가 세상에서 제일 유능한 조산원이기나 한듯 위생지도원인 그의 손을 힘껏 잡아흔들었다.

《위생지도원동지, 수고했습니다!》

《우리 위생지도원이 제일이요!》

권일학이 군의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아니, 저 난…》

련대군의도 그에게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수고했소. 위생지도원, 정말 고맙소!》

권일학은 고개를 떨구며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무엇인가 말하고싶었으나 불같은것이 가슴에 치밀어올라 아무 말도 할수 없었다. 다만 힘있게 울리는 갓난애기의 울음소리만이 달아오른 그의 가슴에 파고들뿐이였다.

부소대장이 대원들에게 소리쳤다.

《자, 동무들!-》

병사들이 와- 환성을 올리며 권일학에게 달려들어 하늘높이 그를 추켜올리기 시작했다.

《영-싸!》

《영-싸!》


잊을수 없는 폭풍의 그밤, 그때 권일학은 부대의 명령을 받고 폭풍을 헤쳐오던 그 전투함정에서 그리고 태여나는 갓난애기와 산부를 지켜 한밤을 지새운 병사들의 모습에서 진정 새 생명을 가장 뜨겁게 사랑할줄 아는 이 나라 사람들의 소박하고도 진실한 인정의 세계를 새삼스럽게 깨달았으며 처음으로 두 생명을 책임진 산과의사의 고결한 의무와 신성한 책임감에 대하여 뜨겁게 느끼였다.

그후 군사복무를 마치고 다시 의학대학으로 돌아온 권일학은 새로운 결심을 가지고 의학공부에 달라붙었으며 더 깊이, 더 많이 배우기 위해 시간을 쪼개며 탐구에 몰두했었다.

그가 높은 성적으로 대학 전과정을 졸업하고 박사원까지 마치게 되자 배치부서에서는 처음엔 권일학을 심장을 전문으로 보는 제1인민병원 순환기내과로 배치하였었다. 제자의 재능을 아껴오던 로교수도 그 소식을 듣고 권일학을 찾아왔었다.

《축하하오! 난 앞으로 동무가 순환기전문부문에서 이름있는 권위자가 되리라고 믿소. 꼭 성공하기를 바라오.》

그러나 권일학은 머리를 저었다.

《아닙니다, 교수선생님. 전 달리 결심했습니다. 순환기내과도 중요하지만 녀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산부인과도 역시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하고 힘든 과가 아닙니까. 그래서 전 산과로 가려고 합니다.》

로교수는 놀라와했다.

《산과의사?… 그건 자기의 리상을 포기하겠다는것이 아니요? 내 생각엔 순환기내과나 사지외과는 동무의 성격에 어울리고 또 앞으로도 전망이 확실하다고 보았는데…》

《저도 이전엔 팔다리의 외상을 치료하는 사지외과나 정밀성과 대담성을 요구하는 심장전문분야야말로 이 세상에 소리쳐볼만 한 일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남자들이 산부인과 의사가 되는것을 우습게 여겨왔었구…》

《그런데?》

로교수는 리해할수 없다는듯 그를 쳐다보았다.

권일학이 계속했다.

《제가 잘못 생각하고있었습니다. 두 생명을 다루어야 하는 산과야말로 종합적이며 녀성다운 부드러움과 정다움만이 아닌 용기와 결단, 힘과 무자비성이 필요한 그런 과들중의 하나라는것을 전 알게 되였습니다. 그리고 태여나는 애기들과 우리 녀성들을 위한 산과의사의 고결함과 긍지가 얼마나 큰것인가를!… 전 그것을 군사복무기간 어느 한 섬초소에서 배웠습니다. 그래서 대학을 졸업하면 꼭 산과의사가 되리라고 결심했던겁니다.》

반백의 로교수는 안경너머로 그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마치 마음속깊이까지 들여다보는 스승의 눈길로 그토록 아껴오고 믿고있던 제자의 재능과 진심을 가늠해보려 애쓰는듯 했다.

한동안 말없이 그를 바라보던 로교수는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요, 난 동무의 강한 그 기질이 지금 산과보다도 심장을 전문으로 보는 순환기내과에 더 필요하다는것을 깨우쳐주고싶소. 동무의 전공은 심장전문분야이여야 하오. 재능이 있단 말이요, 남다른 재능이!… 다시 잘 생각해보시오.》

권일학은 언짢게 방을 나서는 로교수를 바라보며 굳어졌었다. 내가 노엽혔는가?…

그러나 며칠후 그는 로교수가 무엇인가 깊이 생각한 끝에 대학당위원회를 찾아가 바로 권일학 자기의 결심을 지지해주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하여 그는 폭풍치는 섬초소의 그밤으로부터 시작된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쉬임없이 걸어왔으며 그로부터 제1인민병원의 산부인과 의사, 다음은 과장 그리고 오늘은 평양산원의 기술부원장으로 일하게 된것이다.

정철이가 또 뭐라고 했다. 인제는 잠에 취한 목소리이다. 권일학은 애를 추슬러올리며 지하건늠길로 나왔다. 지나가던 녀인들이 그를 돌아보며 뭐라고 소곤거렸다. 그러건말건 그는 여전히 걸음을 옮기며 번거로운 생각을 계속 이어갔다.

전국의 녀성들을 다 안고있는 여기 평양산원의 기술부원장, 비록 오늘까지 넓은 범위에서 풍부한 림상경험을 쌓아왔고 여러가지 무통법에 대한 연구도 해왔으며 사람들속에서 통솔력있는 일군이라고 평판도 났던 그였지만 나라의 자랑인 이 큰 산원의 기술부문 사업을 이제 어떻게 떠메고나가야겠는지 걱정부터 앞서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그는 걸음을 빨리하였다. 용기를 내자. 자신심을 가지고 시작하자. 이곳 산원에서 하고있는 복강경수술이며 체외수정연구, 강학선과장의 미세수술과 같은 첨단기술을 첫째가는 목표로 내세우고 힘껏 내밀자. 첨단으로 나가자! 더 높은 세계로 돌진하자!

하여 우리 녀성들과 미래를 위한 평양산원에 세계의학계의 앞장에 서는 훌륭한 기술진영을 꾸리자!…

그는 끝없이 부푸는 가슴을 안고 걸음을 다그쳤다.

이윽고 자기 집 현관앞에 이른 권일학은 걸음을 멈추었다. 그를 기다리고있던 년로한 어머니가 넘어질듯 마중했던것이다.

《이제 오느냐?》

권일학이 어머니를 나무람했다.

《참, 어머니두… 그만큼 기다리지 말랬는데 또 기다리셨군요. 밤이 깊었는데.》

《이렇게 기다린게 어디 한두번이라구. 어서 애를 이리 다오. 에그, 이 늙은게 애 하나 보지 못해 소동이 났으니.…》

초저녁부터 여기저기 정철이를 찾아다니다가 산원정문에까지 전화를 걸어왔던 어머니였다.

《그냥 두세요, 이젠 승강기도 다니지 않는데…》

《애가 추워할가봐 그런다.》

기어이 아들의 등에서 정철이를 받아내린 어머니는 정신없이 곯아떨어진 어린것을 들여다보며 바람이 들세라 옷섶으로 꼼꼼히 싸안았다.

《인젠 애를 따라다니기도 힘들구나. 언제면 장가를 들어 이 늙은걸 고생시키지 않겠는지.…》

늘 이럴 때면 터놓군 하는 늙은이의 푸념이다. 권일학은 어린것을 안고 제먼저 계단을 오르는 어머니의 굽은 등을 새삼스럽게 바라보았다. 정철이를 키우느라 고생도 많았던 어머니… 이제는 나이가 들면서 벌찬 정철이를 돌보는것도 힘들어하군 한다. 하지만 변함없이 어린것에게 친할머니의 정을 쏟고있는 어머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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