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 회)


제 1 장 그해 여름


5


다음날이였다. 권일학은 지금 한창 꾸리기작업을 하고있는 복강경수술장을 찾았다. 그러나 방은 비여있었다. 그가 돌아서려는데 빈방의 구석쪽에서 인기척소리가 들려왔다.

권일학이 소리쳤다.

《거기 누가 있소?》

구석에서 나오는 사람은 뜻밖에도 나이많은 당비서 림숙정이였다. 혼자서 방을 돌아보고있었던것이다. 그는 문가에 서있는 권일학을 보고 반가와했다.

《어서 오시오, 기술부원장선생.》

권일학은 림숙정에게 머리숙여 인사했다.

《복강경수술장을 꾸린다기에 좀 구경하자고 왔습니다.》

《좋은 일이지. 기술부원장이 먼저 봐야 하구말구!》

림숙정은 여기저기 널려져있는 전기줄들과 무질서하게 놓여있는 설비들을 휘둘러보고나서 한쪽구석에 놓여있는 둥근회전의자에 걸터앉았다.

복강경수술장은 부인과에서 자진해나온 청년들과 설비과와 의료기구과에서 동원된 젊은 기술자들이 꾸리고있었다. 서범천이 책임진 이 청년들속에는 부인과는 물론 산과의 의사, 간호원들도 있었다. 이들은 낮에는 환자를 치료하고 밤에는 여기에 나와 전기설비들을 날라오고 전원을 련결하며 매 장치들의 상태를 검열하기도 했다.

림숙정이 도수높은 안경을 추스르며 권일학에게 자리를 권했다.

《여기 와 앉게.》

《괜찮습니다.》

《앉으라는데.》

권일학은 그의 옆에 앉았다.

림숙정이 주름진 얼굴에 따뜻한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그래, 기술부원장 보기엔 어떻소? 복강경수술을 두고 어쩌구저쩌구 말들이 많다는데…》

권일학은 잠시 한곳에 눈길을 준채 입을 열지 않았다. 그가 처음 산원을 돌아볼 때 제일 흥분한것들중의 하나가 바로 이 복강경수술문제였다. 오늘 21세기의 기본수술방식으로 될 내시경수술의 하나인 복강경수술, 이것은 외과분야에서 일어난 기술혁명이며 선진과학기술과 최신의학과학기술성과의 결정체로서 복부외과, 흉부외과, 비뇨기외과, 산부인과 등 그 리용범위가 매우 넓고 세계적으로 날을 따라 비약적으로 발전하고있다.

그는 기술부원장으로 부임된 첫날 세계적인 첨단기술을 소유하고 실현하는 맨 앞장에 다름아닌 평양산원이 서있다는 사실에 높뛰는 가슴을 진정할수가 없었다.

그런데 강학선은 다르게 말했었다, 너무 기대를 가지지 말라고, 두고보아야 한다고…

《비서동지.》 마침내 권일학은 머리를 들었다. 《최근 많은 나라 산부인과분야에서는 첨단기술의 하나인 이 복강경수술을 널리 도입하고있습니다. 이런 세계적추세에 우리 평양산원도 례외가 될수는 없지 않습니까?》

림숙정이 머리를 끄덕이며 습관적으로 무릎을 주물렀다. 그리고는 아픔때문인지 얼굴을 가볍게 찡그리며 말했다.

《몸에 칼자리를 내지 않고 수술한다는데… 정말 꿈같은 일이지. 그런걸 나로서야 생각이나 해봤겠나. 전쟁때 부상병을 업어내온것밖에 없는 내가 말일세. 그런데 당에서는 제일먼저 우리 산원에 복강경수술장비를 보내주었지, 우리를 믿구. 헌데 아직까지 그 설비를 다루지 못하고있으니.…》

권일학은 당비서의 그 말이 새삼스럽게 가슴을 파고드는것을 느꼈다. 진정 얼마나 많은 사랑과 은정을 받아안은 평양산원인가. 문득 누구나 다 알고있는 그 사연, 새 사람이 산원으로 배치되여올 때마다 림숙정당비서가 늘 하군 한다는 그 이야기가 떠올랐다.

《…우리 산원사람이 되자면 이 산원이 어떻게 세워졌는가 하는것부터 먼저 알아야 해. 인젠 30년전의 일이지만… 그때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몸소 이 산원건설의 착공식으로부터 완공에 이르는 전과정을 직접 자신께서 맡아 보아주시였지. 정말 온 나라가 부글부글 끓었어! 누가 상상이나 했겠나? 녀성들을 위한 이런 큰 산원이 세워진다는걸… 그래서 모두가 떨쳐나섰네. 정무원, 위원회, 부 그리고 평양시와 지방당조직에서 무어가지고온 수많은 돌격대들과 지원자들이 밤낮없는 전투를 벌렸구.… 그래서 짧은 시일안에 건물이 일떠서구 장군님께서 수많은 자금을 들여 마련해주신 의료설비, 의료기구들이 그쯘하게 갖춰지구.… 그때 우리 장군님께서는 완공된 평양산원에 어버이수령님을 모시기 위해 먼저 자신께서 이곳을 찾아주시였네.…》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산원의 중앙홀로부터 외래진찰실과 수술장, 해산실, 입원실, 텔레비죤면회실, 응접실, 사무실들을 차례차례 돌아보시고 당에서 품들여 갖추어준 귀중한 의료설비와 경영용시설들, 비품과 가구들에 이르기까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보아주시였었다. 그러시면서 평양산원은 어버이수령님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건설된 대기념비적창조물이라고 하시며 수령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평양에 현대적인 산원을 건설할데 대하여 교시하시였는데 이때까지 산원을 건설하지 못하였었다고, 그래서 당에서 이번에 이 평양산원을 맡아 건설하였으며 인민들에게 선물하였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그후의 이야기는 평양산원에 실습나왔던 의사라면 누구나 다 알고있는 일이였다.

그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보슬비가 내리는것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만면에 환한 미소를 지으시며 개원을 앞둔 산원을 몸소 찾아주시였다. 그이께서는 마치 어머니가 어린 자식을 품에 안는듯이 형상한 평양산원건물을 오래도록 보고 또 보시며 가까이 계시는 장군님께 산원 자리를 좋은 곳에 잡았다고, 건물이 참 멋있다고 그토록 만족해하시며 말씀하시였다.

이어 보석장식을 한 중앙홀로 걸음을 옮기시던 수령님께서는 《오늘 우리 나라 녀성들은 얼마나 행복합니까. 지난날에야 우리 녀성들이 벼짚을 깔고 몸을 풀지 않았소? 그런데 지금은 이런 큰 집에서 애기를 낳는단 말이요, 큰 집에서.…》라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오늘 한생의 시름이 다 풀리는것 같다고, 그래서 더없이 기쁘다고 말씀하시며 생각깊은 눈길로 멀리 창가를 바라보시였었다.

추억에 잠기신 어버이수령님의 숙연한 그 눈빛… 어이 알랴! 그 순간 그이의 깊은 심중에 이 나라 녀성들과 아이들을 위한 이런 산원을 그리도 소원하셨던 김정숙동지의 잊지 못할 그 모습이 떠오르시였는지.…

이렇게 오랜 시간 산원의 매 층과 수많은 방들을 다 돌아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날 일군들에게 환자들에 대한 의료봉사에서 지켜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고 정문을 나서시여서도 걸음이 떨어지지 않으시는듯 오래도록 분수가에 서시여 산원건물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시였다고 한다.

그처럼 우리 수령님의 마음속에 깊이 새겨진 평양산원! 그것은 진정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의 사랑의 결정체로 솟아난 이 나라 녀성들과 애기들의 따스한 친정집이고 보금자리였다.

권일학은 지금 또다시 두어깨가 무거워지는것을 느끼였다. 그렇다. 당에서는 우리 녀성들과 아이들을 위해 세상에서 제일 크고 현대적인 산원을 세워주었다. 지금 우리는 당에서 돌려주는 이 남다른 관심과 은덕에 습관되여 그것을 응당한것으로 여기는 일도 없지 않다.

이제는 우리가 주인이 되여야 한다. 앉아서 주는것만을 받아안는 주인이 아니라 당에서 바라는대로 평양산원을 첨단의학기술을 갖춘 세계적인 녀성종합병원으로 내세우는데 몫을 다하는 그런 주인이 되여야 한다.

권일학은 그래서 복강경수술을 해보겠다고 나선 서범천에게 그처럼 관심이 모아졌던것이다. 오늘 서범천을 만나려 한것도 복강경수술의 전망과 이제 몇달후에 열리게 될 전국과학기술축전에 이 복강경수술을 내놓자는것을 토론하고싶어서였다.

《서범천이 그 녀석 말이네.…》 림숙정이 또 말을 이었다. 《한땐 강학선에게서 배운다고 따라다녔지.》

《예?… 서범천이 미세수술 후비였단 말입니까?》

옆에 놓여있는 광원장치를 만져보고있던 권일학의 손이 그 자리에 멎었다.

《그렇네. 헌데 그 사람이 글쎄 미세수술이 아니라 배꼽으로 수술한다는 그 복강경수술에 홀딱 반하지 않았겠나? 그래서 두사람사이가 버그러졌지.… 재간들은 있는데 영 고집불통들이야.》

《예-》

권일학은 한동안 생각에 잠겼다. 누구보다 큰 기대를 걸고있는 강학선과 서범천, 그들의 사이가 버그러지다니?… 흔히 누구나 산원이라면 녀성들과 갓난애기를 먼저 생각하게 된다. 녀성전문병원인 산원에는 서범천이나 강학선이처럼 중요한 모퉁이를 맡고있는 남성의사들도 많다. 아마도 그것은 단번에 두 생명을 책임져야 할 산과의사들에게 남성적인 힘과 용기 그리고 결단이 필요하기때문인지도 모른다.

림숙정이 또 무릎을 주무르며 말했다.

《난 기술부원장이 그들을 잘 도와주리라고 믿네. 강학선이나 서범천이두 좋아할거요. 녀의사들두 많이 찾아서 키워야 하지 않을가. 재간있는 녀의사들이 많다네. 유전연구실의 전인숙선생이나 약무부의 박금옥선생두 다 재간있는 녀자들이지. 우리 원장만 봐두 남자의사들도 손을 대기 어려워하는 그런 일에 두팔걷고 나설 때가 많거던. 전쟁때라면 틀림없이 영웅이 되였을거야.》

권일학은 소리없이 웃었다. 《영웅간호장》인 림숙정이 자기 원장을 영웅처럼 묘사하는것이 마치 자기 친딸을 자랑하는것처럼 느껴졌던것이다.

림숙정이 그를 건너다보며 물었다.

《왜 웃나? 우리 원장이 마음만 고운줄 아는게지? 아닐세. 손탁이 세구 결단두 있다네. 들어보겠나? 그게 언제였던지.… 갑자기 이완성 출혈로 산모가 사경에 처한 일이 있었네. 기술부원장이야 잘 알겠지만 그게 얼마나 급한 일인가. 출혈은 멎지 않고 계속되는데 협의회에 참가했던 남자의사들까지 산모의 생명이 위급하여 맥을 놓고 한숨만 내뿜지 않았겠나. 그 시각 임선해원장이 나섰네. 그땐 과장이였지. 〈내가 해보겠어요!〉하고 말이네. 그는 당장 배를 열고 절제술을 진행하였는데 수술이 끝난 후에도 피응고장애가 와서 2차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네. 결국 수술은 종일 8시간동안이나 걸렸지. 피도 몇차례 수혈하면서… 정말 다행이였어. 과장의 결심이 조금만 늦었어도 일은 틀려졌을거야.》

권일학은 늘 미소가 떠나지 않는 임선해원장의 얼굴을 상기했다.

그에게 그런 담찬 기질과 강인함이 있었단 말인가? 권일학은 그를 만난 첫순간부터 큼직큼직한 이목구비와 그쯘한 체격을 가진 원장이 시원시원한 일솜씨를 가진 녀성일군일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온화해보이는 그에게 남성적인 결단과 기질까지도 있다는것이 무등 놀랍기 그지없었다.

림숙정이 두눈을 가늘게 쪼프리며 소리없이 웃었다. 아마 녀의사들을 자랑하는것이 그에겐 무척 즐거운 일인듯 했다.

《녀자란 무엇이겠나. 어느 시인은 가장 약한것이 녀자라고 했다지만… 아닐세, 녀자란 곧 어머니일세. 어머니처럼 강하고 뜨겁구 한없이 자애롭고 정찬 품이 또 어디 있겠나. 그래서 아마 어머니로 되지 못한 녀자들이라 할지라도 가끔 놀라운 힘을 발휘하는것이 아닐가? 우리 산원에서도 그렇지. 녀의사들은 물론 조산원들이나 간호원모두가 위급한 환자가 생기면 주저없이 소생전투에 달라붙군 하지. 정말 놀라울 때가 많아. 말하긴 쉽지만 환자가 소생될 때까지 아예 꼬박 밤을 밝힌다네. 자기를 다 바치지. 처녀조산원으로부터 산과의사로 많은 일을 한 최성심이두 그래, 애기과 부원장 박선숙이두 그래, 부인과 과장 김옥순이 그리구 산과에 있는 하경옥이는 또 얼마나 이악하고 성실한지 몰라.》

뜻밖에 하경옥의 이름이 불리워지자 권일학은 웬일인지 마음이 따뜻해지는것을 느꼈다. 그것은 지금까지 그가 느껴보지 못했던 류다른 감정이였다.

《하경옥이란… 2산과의 녀의사 말이지요?》

《벌써 만나봤나? 남달리 연구심이 높은 녀의사이지. 누구도 하지 못한 무통제도 그 처녀가 만들어냈다네.》

《예? 무통제를요?》

《그렇네. 지금 우리 산원에서 쓰고있는 그 무통제가 바로 하경옥선생이 연구해낸거네. 참 훌륭한 녀의사지.》

권일학은 문득 수술장에서 만났던 그 처녀가 떠올랐다. 흰 수술장갑을 끼고 날렵하게 움직이던 작은 손, 집도자의 의도를 정확히 파악할줄 아는 놀라운 감각, 감탄할만 한 신속한 손놀림…

권일학은 그 모든것이 마음에 들었으나 수술이 끝난 다음에도 그에 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았었다. 평양산원 의사라면 누구나 응당 그만한 수준에 올라야 한다고 여기는 그였던것이다.

그런데 그 처녀가 수술만 잘하는것이 아니라 산원에서 일반화되고있는 무통제까지 연구해냈다니 무통법에 남달리 관심을 돌리고있던 권일학에게 있어서 그것은 실로 반가운 일이 아닐수 없었다.

이윽고 림숙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미소어린 눈빛으로 권일학을 바라보며 나직이 말했다.

《새 기술부원장이 해야 할 일이 많네. 치료사업은 물론 복강경수술이나 체외수정연구도 밀어주어야지.…》

《비서동지, 알았습니다.》

불현듯 권일학은 하얗게 서리가 불린 림숙정의 귀밑머리를 아릿해지는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산원당비서 림숙정, 전쟁때엔 쌍태머리 영웅간호장으로 소문났었지만 지금은 어느덧 할머니이다. 중년의 의사들은 비서어머니라 부르고 스무살안팎의 간호원들은 비서할머니라고 한다. 한생을 뒤돌아봄이 없이 앞으로만 줄달음쳐 살아온 녀인, 자랑할만 한 한생의 사연들이 그의 저 한오리, 한오리 흰 머리칼에 슴배여있는것이다.

저려드는 다리때문인지 약간 비청거리며 걸어나가던 림숙정은 한쪽에 잔뜩 뜯어놓고 벌려놓은 고주파전류발생장치를 힐끗 쳐다보더니 혀를 찼다.

《녀석들이 한다는짓이… 콩밭에 서슬치겠다니까. 의료기구과장이 당위원회에까지 찾아와 고아대게 만들구.》하고나서 그는 권일학에게 머리를 돌렸다. 《녀석들이 아마 몰래 내온 모양일세. 의료기구과장을 얼려내지 못했던게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구. 유명한 구두쇠라니까.》

림숙정이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걸음을 옮겼다. 권일학이 그를 부축해주었다.

《일없네. 가끔 이렇게 다리가 말썽이지.…》

지쳐서 쉬여버린듯 한 늙은이의 그 목소리에 권일학은 그 어떤 련민과 더불어 따뜻한 정이 스며드는것을 느끼였다. 젊었을 때 운동을 많이 한 사람들이 이렇게 나이가 들면 무릎에 아픔이 온다고 한다. 전장에서 한꺼번에 두셋씩 업어나른 억대우같은 남자들의 무게가 쌍태머리처녀였던 그에게 엄청난 부담을 주었던것이다.

그가 림숙정당비서를 만난것은 오늘이 두번째이다. 처음은 부임인사를 하면서였다. 그때엔 로숙한 당일군과 마주앉아 공식적인 담화를 하였지만 오늘은 그때와 전혀 다르다. 여기서 이렇게 무릎을 마주하고보니 림숙정은 꼭 귀여운 손자들에게 옛말을 들려주는 인정깊은 할머니였고 다 큰 자식들을 걱정하는 다심한 어머니였다. 그래서 정이 더 들고 기대가 가는것인지도 모른다.

그때 갑자기 복도에서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복강경수술장꾸리기에 동원된 청년들이 서범천을 앞세우고 방으로 우- 밀려들어왔다.

맨앞에서 싱글거리며 들어서던 서범천이 우뚝 걸음을 멈추었다. 그제서야 다른 청년들도 당비서 림숙정과 기술부원장을 알아보고 입을 다물었다.

《아이, 비서동지가 어떻게?!…》

이렇게 부르짖으며 뛰쳐나오는 처녀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남들과 달리 하얀 위생복이 아니라 견장을 단 군복을 입고있었다.

《접니다. 비서동지! 애기과에 실습나왔던 박현희.… 정말 생각나지 않습니까?》

림숙정의 얼굴이 환해졌다.

《왜 모르겠나. 간호원학교졸업생 현희, 전연구분대에서 간호장을 한다는 얘길 들었는데 어떻게 여기 왔나?》

《예, 중앙병원에 환자후송을 왔습니다. 왔던김에 제가 실습하던 애기과랑 그리고 부대에서 진행하는 웅변모임에 참가한 저에게 〈병사와 자장가〉라는 원고를 써준 서범천선생이랑 모두 보고싶어서 이렇게 들렸습니다.》

《그래?… 저 서범천이 그런 재간두 좀 있긴 하지.》

못내 기특하여 군복입은 처녀를 정겹게 바라보던 림숙정이 권일학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 평양산원 간호원학교를 졸업하고 전연구분대로 간 처녀일세. 참, 어느 애기과에 실습나왔댔더라?…》

《9애기과였습니다.》

《오, 그렇지. 참, 새로 온 기술부원장선생이야.》

《예, 그렇습니까?》

박현희가 생긋 웃으며 권일학에게 깍듯이 거수경례를 했다. 목이 상큼한 처녀… 권일학은 이미전에 신문, 방송으로 소개된 평양산원 간호원들의 소행에 대하여 알고있었다. 그때 군대에 나간 처녀들은 하나같이 평양산원에서 태여난 처녀들로서 자기들이 받아안은 한없는 사랑과 은정에 보답하고저 남먼저 최전연으로 달려갔었다. 하여 그들은 언제든 자기들이 태여난 사랑의 집을 잊지 못해 기회가 있을 때마다 편지를 쓰고 단 한시간의 여유만 있어도 기를 쓰고 달려오는것이다.

림숙정은 반가와 어쩔줄 모르는 처녀에게 따뜻이 물었다.

《그래 군사복무가 힘들지 않나?》

《힘들지 않습니다!》

박현희는 차렷자세를 취하며 힘차게 대답했다. 그를 둘러싸고있던 청년들이 입을 하 벌리며 처녀에게 감탄의 눈길을 보냈다. 림숙정의 주름진 얼굴에도 미소가 어렸다.

《허, 이젠 쇠소리가 나는 녀장부가 다됐구나.》

당비서의 칭찬에 얼굴이 발가우리해진 박현희는 친할머니를 만난듯 또다시 그의 팔에 매달렸다.

《비서동지, 통신구분대에 입대한 손은별이 말입니다, 인민군신문에 사진이 나지 않았겠어요? 그런데 이렇게 몸이 났습니다. 그리구 차경숙이, 그 앤 지금 간호장을 하고있는데… 참, 그 성희도 전달에 산원에 왔었다지요?… 그담 7산과에 실습나갔던 혜경이, 종양과에 나갔던 은영이… 그들도 벌써 간호장이 됐답니다. 또 곽영옥이, 민영심이 그리고 동정희도 아시지요?… 그 애들은 작년에 벌써 표창휴가를 받았다나요.》

숨막힐듯 재게 엮어내려가던 현희가 갑자기 입을 다물었다.

《어마나? 내가 왜 이렇게 저 혼자만…》

림숙정이 흐뭇하게 웃었다.

《다들 용쿠만!…》

어느새 청년들도 활기를 띠고 저마끔 떠들기 시작했다.

《야, 우리 간호원학교 처녀들이 정말 괜찮은데!》

《아무렴! 우리 산원처녀들이 역시 다르지뭐.》

《옳아! 어디에 내놔두 손색이 없다니까.》

박현희가 젊은이들에게 손을 내저었다.

《어마나! 너무 그러지 마세요. 그렇게 비행기를 태우니 머리가 다 휘휘 돌아가는군요.》

웃음이 터졌다. 모여선 청년들뿐아니라 림숙정과 권일학이도 소리내여 따라웃었다. 맨앞에 있던 서범천이 박현희에게 엄지손가락을 내밀었다.

《어쨌든 우리 산원처녀들이 제일이요! 현희동무, 제대되면 다시 산원으로 오라구. 누구보다 먼저 복강경수술장 간호원으로 받아줄테니까.…》

현희는 재빨리 도리머리를 저었다.

《아니, 서선생은 복강경수술만이 최고라고 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는거!… 난 군사복무를 마치면 꼭 애기간호원으로 돌아올거예요. 알겠어요?… 그때면 난 여기서 태여나는 애기들을 간호하는 유명한 애기간호원이 되겠단 말이예요! 알겠어요?…》

마냥 즐겁기만 한듯 줄곧 노래부르듯 말하는 발랄한 처녀… 그로 하여 어수선한 작업장에서는 밝은 빛과 신비한 음향 그리고 숲속의 싱그러운 향기까지도 들어차는듯 했다.

박현희가 응석기를 가시고 림숙정에게 말했다.

《비서동지, 여기 왔던김에 산원을 좀 돌아보게 해주십시오. 이제 돌아가면 〈병사와 자장가〉라는 웅변모임에 출연해야겠는데 제가 새롭게 변모된 여기 산원을 다시 보고 가야 우리 병사들에게 더 잘 말해줄수 있지 않습니까.》

《암, 그래야지. 다 알게 해야 하구말구. 그런건 이 기술부원장선생에게 부탁하면 돼. 새로 부임되였지만 이 산원을 손금보듯 잘 알고있지. 아마 잘해줄거야.》

권일학은 선선히 대답했다.

《병사들에게 좋은 얘기를 해주겠다는데 도와주어야지요.》

《고맙습니다.》

림숙정이 현희의 손을 꼭 잡아주었다.

《자, 그럼 부대에 돌아가서두 군사복무를 잘하라구. 돌아올 때엔 제 고향집을 잊지 말구.…》

《알았습니다. 꼭 고향집으로 돌아오겠습니다!》

현희에게 머리를 끄덕여보인 림숙정이 천천히 복강경수술장을 나가 계단쪽으로 멀어져갔다.

이윽고 권일학은 여전히 떠들어대는 청년들을 그대로 남겨두고 현희와 함께 새로 꾸린 여러 과들을 차례로 돌아보기 시작했다.

유선종양과에 들린 처녀는 정확도가 높은 유선종양진단기의 액정화면을 바라보며 손벽을 쳤고 기능진단과에 들려서는 3차원복부초음파를 두고 감탄했으며 원래보다 8배이상을 액정텔레비죤에 기억시킬수 있는 렌트겐설비를 보고는 입을 딱 벌렸다.

처녀는 자기가 여기 평양산원 애기과에 있을 때에도 다는 몰랐던 그많은 귀중한 설비들과 현대적인 비품들을 위대한 장군님께서 마련해주시기까지의 뜨거운 사연을 알게 되자 두눈을 빛내이며 열렬히 속삭이는것이였다.

《전 이 모든걸 우리 병사들에게 말해주겠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태여난 이 고향집을 생각하며 총대를 더욱 굳게 잡고 군사복무를 더 잘하자고 뜨겁게 호소하겠습니다.》

권일학이 그에게 미소를 보냈다.

《그렇게 해주오, 녀성군인동무.》

녀성군인이라는 말에 처녀는 또다시 발랄하게 웃었다.

그때 복도 한끝에서 간호원에게 지시를 주며 마주오던 녀의사가 그에게 깍듯이 인사하며 한옆으로 비켜섰다.

그 녀의사는 하경옥이였다. 권일학의 눈길과 마주치자 그 녀자는 두눈을 내리깔았다.

권일학이 그에게 물었다.

《오늘 직일입니까?》

《예.》

하경옥은 짧게 대답했다.

《그럼 수고하오.》

《안녕히 가십시오.》

비로소 처녀는 머리를 들었다. 그러나 은근하고 검푸른 그의 눈길은 권일학이 아니라 군복을 입은 박현희의 뒤를 따라 불밝은 복도 저끝, 환자들이 들어있는 입원실쪽으로 향하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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