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7 회)


제 1 장 그해 여름


7


새 기술부원장의 첫 회진을 받게 된 2산과는 아침부터 긴장된 분위기였다. 간호원들과 간병원들은 처치실과 모든 입원실들을 깨끗이 털어내고 닦아내며 바삐 돌아쳤고 의사들은 환자들에 대한 치료정형을 다시 돌이켜보고 병력서를 검토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성미급한 강학선과장은 자기 휘하에 있는 수십명의 의사, 조산원, 간호원들과 함께 간병원들까지 신칙하느라고 바빴다. 새로 온 기술부원장이 자기의 동생벌이고 매우 가까운 사이이긴 하지만 어쨌든 상급이므로 처음부터 좋은 인상을 주고싶었던것이다.

그는 먼저 하경옥에게 숨찬 소리로 속삭이였다.

《병력서들은 다 준비되였소? 오늘이 제일 중요해. 그는 깐깐한 사람이요. 사소한 부주의도 용서하지 않는단 말이요.》

어느새 문밖을 나서며 또 소리쳤다.

《간호장, 그건 뭐요? 퇴원환자?! 아직두 수속이 안됐단 말이요?… 그건 그렇구! 이건 또 누구거요? 검사의뢰서가 왜 여기서 돌아가는거요?》

늘 정기적으로 진행되는 기술부원장의 회진은 모든 과장, 의사들의 실력과 책임성을 검증하는 하나의 계기이다. 이 회진을 통하여 진단과 치료, 간호관리사업에서의 기술규정과 표준조작법준수정형, 진단치료시설의 리용, 특히 중환자와 구급환자들의 치료정형과 문건작성, 문화성보장 등 모든것이 검토평가되기때문이다.

드디여 모든 준비가 다 끝났다.

새 위생복까지 갈아입은 의사들이 의사실에 있는 커다란 거울앞에 몰켜들었다. 서로 위생복소매를 당겨주고 펴주며 저저마끔 몸맵시를 비쳐보고있었다.

그때 거울 한구석에 얼굴을 들이밀던 남자의사가 눈이 휘둥그래서 뒤에 있는 녀의사를 돌아보았다.

《가만, 수정선생이 오늘 어떻게 된 일이요? 갑자기 금강산선녀처럼 고와졌으니.》

보통키에 진하게 화장을 한 녀의사가 입을 비쭉거렸다.

《신기현선생, 선생은 신기한 이름을 가지고있으니까 모든게 다 신기해보이는 모양이지요?》

와- 웃음이 터졌다. 신기현이라고 불리운 남자의사는 흐물흐물 웃으며 반죽을 쳤다.

《아니야, 정말 신기할 정도로 고와졌어.》

또다시 터진 웃음소리. 웃고 떠들고나서야 사람들은 그의 말이 옳다는것을 불현듯 깨닫고 입을 다물며 그 녀자를 쳐다보았다. 수정이라고 불리운 그 녀의사는 뒤축이 높은 신을 신고 위생복이 구겨질세라 손으로 쓰다듬으며 새침한 표정을 짓고있는데 오늘따라 류달리 곱고 맵시나보였던것이다.

《정말, 무용배우같네!》

《오늘 회진땐 수정선생을 맨 앞자리에 세워야겠어요.》

《옳아요. 우리 2산과의 선녀로 내세우자요.》

그러자 김수정이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눈들이 멀었군요. 그래 과연 내가 2산과의 선녀로 될수 있어요? 저기 하선생이 있는데…》

하경옥은 이미 차비를 끝내고 다른 녀의사들의 옷매무시를 봐주고있었다. 다림발이 선 위생복에 흰 실내화까지 받쳐신은 그는 여느때없이 단정하고 깨끗했다. 늘 정갈한 처녀로 알려져있는 그였지만 오늘따라 눈에 띄게 산뜻했다.

《정말?!》

모두가 하경옥을 돌아보았다. 어느 한 녀의사의 이름명찰표를 달아주고있던 하경옥이 그들에게 고개를 돌렸다.

《아무렴 나같은 녀자가 선녀겠어요? 오늘 우리 수정선생이 단단히 마음먹고 준비했는데…》

《아니예요, 암만해도 전 하선생을 못 따라가겠거던요. 오늘같은 날에 우리 하선생이 척 나서면 새로 온 기술부원장선생도 눈이 휘둥그래질거예요. 그렇잖아요?》

의사들이 이구동성으로 떠들기 시작했다.

《옳아요, 하선생을 내세워야 해요!》

《하선생이야 늘 이런데 뽑히군 하지 않았소?》

《그렇지 않구!》

하경옥은 검은 두눈에 웃음을 담으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아이참, 회진이야 의사들의 자질이 기본이지 무슨 인물심사를 하는건가요? 그런 쓸데없는 소린 그만하고 제할일이나 하자요. 회진시간도 다됐는데…》

거울앞에 마주서 즐거운 마음으로 하얀 위생모를 머리에 올려놓던 하경옥은 무춤 손을 멈추었다. 정말 나도 저들처럼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애쓰는건 아닐가?…

하지만 그 생각은 곧 바람처럼 사라지고말았다.

녀의사라면 꼭 아름답고 훌륭한 실력가가 되여야 한다는 그의 요구에는 그것이 국한된 사람에게나 잘 보이려고 하는것이 아니였기때문이였다. 그리고 의사가 자기를 가꾸는것은 치료의 한부분일뿐아니라 규정이며 환자에 대한 사랑과 정성으로도 되기때문이였다.

드디여 기술부원장 권일학이 강학선과장과 나란히 복도를 걸어왔다. 그뒤로 여러명의 과장들이 따르고있었다. 기다리던 기술부원장의 회진이 시작된것이다.

강학선은 권일학에게 먼저 과성원들과 환자인원을 보고했다.

현재 과의 의사와 조산원, 간호원, 간병원 그리고 입원환자중 산모와 임신부의 수와 2명의 중환자에 이르기까지 다 이야기하였다.

권일학은 그의 말을 귀담아들으며 1호실부터 돌아보기 시작했다. 과장들과 함께 의사들이 그의 뒤를 따랐다.

맨 첫 호실에는 중환자 한명이 있었다. 권일학이 그에게 다가가자 강학선과장이 설명했다.

《전치태반환자입니다. 이름은 리형선, 나이는 스물여섯…》

《가만! 과장선생, 담당의사의 말을 들어봅시다.》

강학선이 의사들을 향해 목을 길게 빼들자 기다리고있은듯 중년의 남자의사가 앞으로 나섰다. 자기의 실력이 평가되는 이 시각 그는 긴장한듯 했다. 두손을 모아쥐고 기술부원장이 아니라 자기 과장만을 쳐다보며 그는 말했다.

《환자는 저… 임신 7개월부터 부정출혈이 심해서 예정일보다 먼저 입원시켰습니다. 현재 임신주수는 저… 그렇지, 36주 2일째입니다.》

《현재 검사치수는?》

《예, 복부초음파검사에 의하면 태반이 산도를 완전히 막고있고 아두대횡경은 80입니다. 그리구… 피검사소견에서는 적혈구수가 에- 250만이고 혈색소지수는 8. 5입니다.》

《현재 어떻게 치료하고있소?》

그는 더이상 더듬거리지 않고 자신있게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예, 말씀드리면… 환자일반상태에서 빈혈소견이 있고 배뭉침도 보이기때문에 절대안정하면서 임신을 유지하도록 하는것이 중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에- 지혈제를 주사하고 아편팅크를 한번에 하루 2번씩 투약하고있습니다. 지혈제로서는 0. 01그람의 비타민 K와 10프로의 염화칼시움 10미리그람을 정맥주사하고있습니다.》

권일학은 천천히 머리를 끄덕이였다. 무엇인가 생각하는듯 잠시 동안을 두었던 그가 의사에게 다시 물었다.

《앞으로 대책은?》

《예, 말씀드리면… 한주일에 250그람의 피를 수혈하고 에- 출혈에 대한 감시를 잘하면서 최대한 2주일 임신을 더 유지한 다음 계획적인 수술을 하려고 합니다.》

권일학은 눈앞에 있는 담당의사로부터 강학선과장에게로 눈길을 옮기며 만족하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렇게 치하받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간혹 이마살을 찌프리기도 했지만 기술부원장은 가벼운 지적으로 넘어가군 하였다.

처음부터 권일학을 지켜보던 하경옥은 그의 높은 실력과 림상경험에 감탄하지 않을수 없었다. 년한이 오랜 의사들도 그만한 실력을 갖추자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것이다. 문득 강학선과장이 그를 두고 누구와도 견줄수 없는 실력가라고 귀띔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것은 결코 처녀에게 권일학을 높이 춰올리려는 과장된 칭찬이 아니였었다.

그디여 18호실, 하경옥의 차례가 왔다. 점적을 달고있는 환자앞에 이른 기술부원장이 강학선과장에게 물었다.

《담당의사가 누굽니까?》

《예, 하경옥선생입니다.》

강학선이 자신있게 대답하고나서 급히 의사들을 휘둘러보았다.

맨뒤에 있는 하경옥을 발견한 그는 권일학이 들으라는듯 우정 큰소리로 불렀다.

《하선생, 뭘하고있소? 빨리 나오지 않구!…》

앞에 있던 의사들이 하경옥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하경옥은 곧추 걸어나갔지만 자기를 지켜보는 권일학의 주의깊은 눈길을 온몸으로 느끼고있었다. 어째선지 마음이 긴장해졌다. 그 녀자는 입을 꾹 다물고 기술부원장이 아니라 옆에 서있는 강학선과장을 쳐다보았다.

강학선이 그 녀자와 눈길을 마주치자 의미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그것은 《한번 잘해보오! 이 사람이 깜짝 놀라게 말이요.》라고 하는듯 싶었다.

하경옥은 환자의 병력서를 기술부원장에게 내밀었다.

《환자는 임신성고혈압이여서 어제 절개해산수술을 했습니다. 수술 당시 출혈량은 700그람, 수술시 부손상은 없고 5프로포도당 500을 점적하고 수혈 250을…》

권일학이 그의 말을 중단시켰다.

《잠간.》

그제서야 하경옥은 자기가 묻지도 않은 수술정형을 내리엮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권일학이 물었다.

《상태관찰표를 기록했습니까?》

《예.》

하경옥은 상태관찰표가 정확히 기록되여있는 병력서의 다음장을 가리켰다.

상태관찰표란 수술할 때 환자의 혈압과 맥박, 사용한 수액의 종류와 량을 시간별로 기록하는것으로서 흔히 수술이 잘된 경우에는 병력서에 적어넣지 않고 그냥 넘어가기도 하지만 모든 일을 규정의 요구대로 하는데 습관된 하경옥이여서 사소한 빈틈도 없었다.

권일학이 병력서에서 눈길을 떼며 짧게 말했다.

《좋습니다.》 그리고 재차 물었다. 《현재 환자의 생명지표는 얼마입니까?》

하경옥은 또다시 긴장해지는것을 느끼며 재빨리 대답했다.

《혈압은 100/80이고 맥박은 85, 체온은 36도 5부입니다.》

잠시 환자를 진찰하고 맥박을 짚어보던 권일학이 약간 놀란듯 머리를 기웃거리며 그를 돌아보았다.

《환자가 열이 있는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까?》

《?!…》

하경옥은 그만 혀를 깨물었다. 긴장하여 환자의 현재 생명지표가 아니라 규정된 정상수치를 대답했던것이다.

눈감고도 외울수 있는 환자병력서, 붉은색과 푸른색도표로 병력서마다 맨앞장에 그려넣는 생명수치는 담당의사라면 응당 알고있어야 할 가장 초보적인 수자였다. 그런데 첫눈에 알아볼수 있게 기록된 그 수자를 왕청같이 대답하다니…

환자에게서 물러난 권일학이 낮고도 조용하게 말했다.

《의사는 자기 환자에 대하여 정확히 알고있어야 하오.》

하경옥은 저도 모르게 위생복앞자락을 더듬어쥐였다. 그는 입술을 감빨며 병력서를 돌려주고 출입문으로 향하는 권일학을 야속하게 바라보았다.

《날카로운 코마루처럼 성격도 맵짜구…》

누구의 말이던가. 역시 강학선과장의 말이다. 권일학은 오늘 회진에서 누가 잘했다고 특별히 칭찬한것은 없으나 머리를 끄덕이는것으로 그것을 대신했다.

그런데 하경옥에게는 그 작은 선정도 차례지지 않았다.

그때 문으로 향하던 권일학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돌아섰다.

《점적이 끝나면 10단위 옥시토진 1. 0을 근주하시오. 출혈을 감시하면서… 그 다음대책은 준비됐겠지요?》

하경옥은 얼떨떨해졌다. 다음대책? 어떤 대책을 말하는가?… 자기 생각에 골몰해있던 그는 뜻밖의 물음에 어떻게 대답할지 몰라 입술을 감빨았다. 머리속이 어두운 항아리처럼 텅 빈것만 같았다.

《예… 10프로 캄파와 술파티아졸…》

권일학이 의아한 눈길로 그를 유심히 쳐다보았다. 의사들이 웅성거렸다.

하경옥은 지금 자기가 무엇인가 혼동하고있다는것을 어렴풋이 느끼고있었다. 가만, 캄파? 그리고 술파티아졸은 또 뭐구?… 아니다, 수축제인 옥시토진을 근주하고 찬찜질을 하면서 오로를 배출시켜야 한다!… 그가 이것을 막 말하려는데 강학선이 긴장해서 그를 쳐다보았다. 강학선의 눈길과 마주친 순간 하경옥의 머리속에 솟구치던 그 모든 생각이 그만 어디론가 흩어져버리고말았다. 그는 목구멍에서 맴돌던 오로에 대한 치료대책이 아니라 왕청같은 다른 말을 하고말았다.

《그렇습니다. 환자의 발열은 산욕열로서 캄파와 술파티아졸계의 항생제치료를 해야 합니다.》

강학선이 아연하여 입을 벌렸다.

《하선생,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있는거요?…》

그제서야 하경옥은 자기가 실수했다는것을 깨달았다. 당황한 눈길을 어디에 들지 몰라하는데 권일학이 한마디한마디 찍어 말했다.

《이 환자는 산욕열이 아니라 오로정체증으로 열이 나고있소.》

하경옥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맞잡은 두손을 아프게 비틀었다. 아, 이게 무슨 일이람!… 후회는 언제나 뒤늦게 오는 법이다. 그가 자신을 되찾았을 때는 이미 모든것이 끝난 뒤였다.

권일학이 해쓱하게 질리는 그 녀자를 못 본듯 강학선에게 날카로운 눈빛을 던졌다.

《과장선생, 어떻게 된겁니까? 검사지표엔 발열원인이 명백한데?…》

강학선이 입안소리로 뭐라고 얼버무렸으나 권일학은 머리를 가로저으며 랭혹하게 하경옥을 치떠보았다. 이어 낮고도 조용한 목소리가 울렸다.

《선생은… 자질을 더 높이시오!》

사람들이 모두 얼어붙었다. 숨소리마저 멎어버렸다. 강학선은 검붉게 상기된 량볼만 움씰거릴뿐이였다.

하경옥은 피나게 입술을 깨물었다. 따끔한 경련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올랐다. 숨이 막히고 가슴이 싸늘해졌다. 어쩌면? 어쩌면 이런 일이?!… 수치와 모욕으로 하여 눈앞이 아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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