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8 회)


제 1 장 그해 여름


8


다음날 아침 출근길에 오른 하경옥은 대동문-사동행뻐스에 몸을 실었다. 뻐스안은 무덥고 답답했다. 붐비는 사람들의 틈에 끼운 그는 차창에 머리를 기댄채 반쯤 눈을 감고있었다.

지금 그의 머리속에는 《선생은… 자질을 더 높이시오!》하고 말하던 기술부원장의 딱딱한 목소리가 그냥 떠나지 않고있었던것이다.

강학선과장이 그토록 칭찬하고 자랑해온 권일학, 첫 회진에 자기의 실력을 남김없이 보여준 새 기술부원장, 하지만 첫인상처럼 차고 랭정한 인간임을 다시한번 보여준 그 사람…

하경옥은 권일학의 높은 실력에 감탄하여 저도 모르게 랭랭한 그의 첫인상을 지워버리려 애쓰던 자신을 생각하며 머리를 저었다. 높은 실력이 곧 그 인간을 규정하는것은 아닌것이다.

차창으로 시원한 강바람이 불어왔다. 뻐스가 옥류교에 들어서고있는것이다.

《여기 누구 의사선생 없수? 예?!》

다급한 목소리가 생각에 잠겨있는 하경옥의 고막을 때렸다.

《의사선생 없어요?》

또다시 울리는 다급한 목소리. 그제서야 그는 뻐스안에서 사람들이 법석 끓고있다는것을 깨달았다.

하경옥은 반사적으로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예요? 제가 의사입니다.》

나이많은 한 녀인이 배를 그러쥐고 신음하는 젊은 녀자를 안고 황황히 소리쳤다.

《의사선생, 우리 며느리가 죽어가고있수다!》

웅성이던 사람들이 하경옥에게 길을 비켜주면서 벅작 떠들어댔다.

《빨리 적십자병원으로 가야 해요!》

《아니, 구급병원으로 가야 해요!》

《운전사동무, 어서 차를 돌립시다!》

하경옥은 정신없이 헛소리치고있는 환자에게 다가가 침착하게 맥을 짚어보고 아파하는 부위를 눌러보았다. 발작적으로 터지는 신음소리, 그는 산과의사의 본능적인 직감으로 몸을 떨었다. 엑토피아… 빨리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하다!

벌써 뻐스는 문수원으로 들어가는 모퉁이를 힘겹게 꺾어들고있었다.

하경옥이 다급하게 소리쳤다.

《차를 돌리세요! 산원으로! 빨리!》

환자를 둘러싸고있던 사람들이 서로 얼굴을 마주보았다.

《산원에? 임신부인가 뭐?…》

《글쎄…》

《아, 무슨 말들이 그리 많소? 의사선생이 산원에 가야 한다면 가는거지.》

잠시후 사람들을 가득 태운 대형뻐스가 요란한 경적을 울리며 산원정문으로 들이닥쳤다. 난데없이 대동문-사동행뻐스가 나타나는 바람에 깜짝 놀란 경비원아바이가 팔을 내저으며 막아섰다.

《아- 이거 어딜 막 들어오는거요?》

하경옥이 문을 열고 소리쳤다.

《아바이, 구급환자예요!》

《뭐, 구급환자?》

얼떠름한 눈으로 차창에 붙어선 사람들을 한번 휘둘러보고난 경비원아바이가 그제야 황급히 앞을 비켜주었다.

정문을 지나 곧추 들어간 뻐스는 구급과앞에서 멎었다. 사람들이 환자를 부축해내리는데 어느새 간호원들이 달려나와 환자를 옮겨싣고 수술장으로 향했다. 그제야 안도의 숨을 내쉰 하경옥이 이마에 내돋은 땀방울을 손수건으로 찍으며 운전사를 돌아보았다.

《고마워요. 다들 출근길이겠는데…》

그러자 환자를 부축해내린 사람이 말했다.

《인사야 우리가 의사선생께 해야지요.》

뻐스안의 사람들이 입을 모아 떠들어댔다.

《의사선생, 수고해주시오.》

《환자를 잘 봐주세요.》

《부탁합니다!》

뻐스가 정문으로 사라질 때까지 손저어주던 하경옥이 자리를 뜨려는데 환자의 시어머니가 그를 붙잡고 물었다.

《의사선생, 우리 며느리가 일없겠수?》

《걱정하지 마세요. 제때에 산원에 왔으니 별일없을거예요.》

하경옥은 그 녀인에게 엑토피아란 외임신이라는것을 설명해주고 병조가 있는 그 부위를 수술하여 떼버리면 아무일 없을것이라고 안심시켰다.

《떼버리다니?!…》

《일없습니다. 임신은 다시 없겠지만 생명은 담보됩니다.》

《뭐라구요? 그럼 영영 애를 못 가진다는거요?》

《?!》

환자의 시어머니는 무너지듯 바닥에 주저앉았다.

《아이구, 이게 무슨 일이요!… 여태 애기가 없어 속을 태웠는데… 이 일을 어쩌문 좋소?》

늙은이는 손을 내밀어 하경옥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

《의사선생, 제발 좀 도와주시오. 우리 며느린 시집온지 여섯해가 넘었는데 아직 애가 없수다.…》

애기가 없다니? 그럼 불임증환자란 말인가?… 하경옥은 잠시 망설이였다. 환자를 수술장에 인계했으니 산과의사가 할 일은 이미 다 끝났었다. 그러나 락망하는 늙은이를 외면하고 가버릴수는 없었다.

그는 잠시 생각하다가 급히 몸을 돌려 수술장으로 향했다. 바닥에 주저앉았던 늙은이가 황황히 뒤따랐다. 이윽고 수술장대기실에 들어서는데 발작적인 고통으로 몸을 비틀며 괴로와하고있던 환자가 그를 향해 부르짖었다.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전 애를 낳아야 해요!…》

환자는 자기를 산원에 실어온 이 녀의사에게 지금 모든것이 달려있다고 믿는듯 했다. 무서운 진통때문에 입술을 악물면서도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다. 아마도 그는 자기를 진찰하고 수술준비를 서두르는 마취의사와 간호원들이 주고받은 말들과 시어머니의 눈물젖은 얼굴에서 모든것을 짐작한것 같았다.

하경옥은 환자의 머리맡으로 다가갔다.

《아주머니, 수술하지 않으면… 생명이 위험해요.》

파리해진 환자의 입술에 경련이 일었다. 이지러지는 얼굴, 아픔과 고통에 못이겨 부릅뜬 두눈에는 어느덧 피처럼 진한 눈물이 고이고있었다.

《그럼 난… 어떻게 하나요, 예?!》 무서운 절망이 슴배여있는 젊은 녀인의 호소… 《도와주세요. 선생님, 좀 도와주세요!》

의사인 하경옥이도 녀성이다.

녀성이라면 누구나 다 어머니가 될것을 바란다. 자기의 분신인 새 생명의 격렬한 태동을, 그 크나큰 기쁨과 환희를 맛보기 바란다. 그리고 자기 몸에서 태여난 새 생명인 자식을, 자기의 피와 넋이며 숨결인 자식을 고이 기르는 어머니의 자애로운 사랑과 숭고한 희망을 한생 안고살기를 바란다.

그러나 모든 녀성이 다 어머니로 되는것은 아니다. 어머니로 되기를 희망하지만 한생 어머니로 되지 못하는 녀성들도 있다. 그런 녀성들이 얼마나 쓰라린 아픔을 안고 한생을 살아가는지, 그것이 얼마나 큰 고통이고 불행인지 어느 누가 다 알수 있으랴!…

하경옥은 련락을 받고 내려온 부인과 젊은 의사를 한옆으로 이끌었다.

《저, 란관채성형수술을 할수 없을가요?》

《글쎄, 환자의 요구를 다 들어주면 얼마나 좋겠소. 우리야 미세수술전문가가 아니지 않소?》

《의사협의회를 할수 있지 않습니까. 미세수술전문가인 강학선과장선생이 수술하도록…》

《글쎄…》

잠시 소리나게 손가락마디를 꺾고있던 부인과 의사가 초소전화번호를 눌렀다. 곧 강학선과장이 나왔다.

《무슨 일이요?》

《과장선생님, 지금 수술장에 엑토피아환자가 들어왔습니다.》

수화기에서 강학선의 웅글은 목소리가 울렸다.

《그래서?》

《저… 그는 불임증환자입니다. 과장선생님이 란관미세수술을 맡아 해줄수 없을가 해서…》

《내가?!》

《예, 우리 부인과 과장선생도 련락을 받았으니 이제 곧 내려올겁니다. 여기서 과장선생님과 의사협의회를 하면…》

잠시 조용하던 수화기에서 강학선의 강단있는 목소리가 울렸다.

《좀 기다리오. 내 곧 내려가겠소!》

강학선과 부인과 과장이 수술장으로 내려오자 즉시 의사협의회가 열렸다. 젊은 부인과 의사가 강학선에게 환자상태를 설명했다.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귀담아 듣고있던 강학선은 환자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손끝을 뗄 때마다 뒤따르는 녀인의 신음소리… 강학선이 머리를 기웃거리자 협의회에 참가한 부인과 과장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강학선은 입을 꾹 다물고 잠시 아무말없이 미간을 찌프리고있었다. 불안한 눈길로 그를 올려다보던 환자가 숨찬 목소리로 속삭이였다.

《선생님! 전 애를 낳아야 합니다. 제발 낳게 해주세요!…》

《…》

강학선은 눈을 감고있었다. 한옆에 서있던 하경옥이 거의나 들리지 않는 소리로 물었다.

《과장선생님! 미세수술이 힘들가요?》

강학선은 여전히 대답이 없었다. 미세수술은 충분한 심리적, 기술적준비를 갖추어야 하는 수술이여서 구급환자에게 적용하기는 어려웠던것이다.

물속같은 침묵, 그때 누군가 수술장으로 들어왔다.

《과장선생, 구급환자입니까?》

하경옥은 저도 모르게 온몸이 굳어지는것을 느꼈다. 돌아보진 않았지만 그가 기술부원장 권일학이라는것을 온몸으로 느꼈던것이다.

강학선이 권일학에게 눈길을 돌렸다.

《때마침 왔구만. 부원장선생, 이 환자는 말입니다.》하고 그는 환자의 상태를 설명하면서 계속했다. 《아무래도 성형수술을 해야 할것 같습니다.》

환자를 살펴보던 권일학이 머리를 기웃거렸다.

《성형수술을요?… 그러다 패혈증이 오면 어쩌자구 그럽니까? 제 보기엔 환자가 이미 골반복막염을 앓았을 가능성이 충분한데… 이런 환자의 수술은 절제하는게 원칙이 아닙니까.》

《아니, 일없습니다.》

강학선이 잘라말했다. 그 어투에는 유능한 외과의사의 자부심과 자신에 대한 확신이 짙게 배여있었다.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권일학이 머리를 들었다.

《이왕 의사협의회에 참가했으니 이 수술을 과장선생이 맡아주는게 좋을것 같습니다. 그러나 란관채성형수술이나 란관개구수술을 할수 없는 경우엔 원칙대로 절제수술을 해야 합니다.》

《…》

강학선의 얼굴이 약간 어두워졌다. 지금껏 실력가인 그에게 누구도 이런 투로 말한 사람은 없었던것이다.

그러나 권일학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듯 그에게 다시 물었다.

《조수는 누가 맡습니까?》

강학선이 여전한 표정으로 하경옥을 돌아보았다.

《의사협의회에서는 부인과 의사와 함께 우리 하경옥선생이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하경옥?! 그건 안됩니다!》

별안간 머리우에서 번개가 쳤다고 해도 그렇게 놀라지는 않았을것이다. 하경옥은 저도 모르게 그를 쳐다보았고 머리를 획 돌린 강학선은 숨이 막힌듯 꺽꺽 갑자르며 힘들게 말했다.

《기술부원장선생, 하경옥선생은 과에서 제일 유능한…》

《아니, 승인할수 없습니다. 조수를 바꾸십시오.》

권일학은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돌아서더니 문을 향해 걸어나갔다.

하경옥은 또다시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그를 돌아보던 강학선은… 그만에야 눈을 감고말았다.

시간이 갈수록 강학선은 이 수술이 여느때와는 달리 매우 위험한 수술이라는것을 인정하지 않을수 없었다. 개복해보니 진찰할 때 짐작했던것처럼 녀인은 이미전에 골반복막염을 경과한 환자였다.

량측부속기염으로 하여 임신으로 파렬된 란관뿐아니라 다른 한쪽도 충분히 자기의 기능을 수행할수 없게 되였던것이다. 어쩔수없이 란관채성형수술이나 란관개구수술이 아니라 절제수술을 할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것까지 떼여버린다면?…

그는 손을 멈추고 수술대에 누운 환자를 내려다보았다. 녀인은 이제 이 수술장에서 밀차에 실려나가면 다시는 어머니로 되지 못한다. 여기로 들어올 때는 간절한 희망과 기대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 다시는 의사들의 옷자락을 부여잡으며 눈물로 호소하지도 못할것이다. 어떻게 할것인가. 원칙적인 절제? 아니면 보존수술?…

몸부림치는 녀인을 붙안고 자기를 쳐다보던 하경옥의 얼굴이 떠오른다. 그의 타는듯 한 그 눈길은 이렇게 말하고있었다. 《왜 주저합니까. 그렇듯 유능한 산과의사가, 박사선생이 이렇게 눈물을 머금고 호소하는 녀인을 외면한다면 그는 이제 어떻게 되겠습니까?…》

강학선은 이마에 축축히 내돋은 땀방울을 느꼈다. 그래, 지금껏 그는 많은 수술을 해왔었다. 부인림상이라면 그 어떤 수술에도 자신있다고 자부해왔고 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해오기도 했다. 그래서 박사도 되였고 집단의 사랑과 존경도 받고있다. 그런데 녀인의 눈물에는 아랑곳없이 손쉬운 방법으로 적출해낸다구?…

아니다! 절제수술은 내가 아니라도 누구나 다 할수 있는것이다. 대담하게 이식수술을 적용해보자! 그래, 새로운 동종란관이식수술을…

강학선은 드디여 결심하고 힘주어 지시했다.

《봉합침!》

그가 무엇을 결심했는가를 알아차린 조수가 그의 번쩍이는 눈빛에 놀란듯 허둥거렸다.

드디여 강학선은 아직 리론상으로만 정립되여있는 미세수술의 한 방법인 동종란관이식술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간호원이 이마에 맺히는 땀방울을 소독가제로 찍어내였다. 미세한 손놀림, 눈도 한번 깜빡이지 않는다.

강학선은 초인간적인 긴장속에서도 외우고 또 외웠다. 잘될것이다. 또 잘되여야만 한다!… 꼭 이 녀인은 어머니가 되여야 한다!…

《어떻습니까, 과장선생?》

수술장면을 텔레비죤화면으로 보고있던 기술부원장 권일학은 마이크로 강학선에게 물었다. 그는 머리도 들지 않은채 단마디로 대답했다.

《잘돼갑니다.》

그러나 권일학이 보기에는 수술이 힘겹게 되는것 같았다. 간단히 끝날수 있는 성형수술이나 절제수술인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있었던것이다. 뭔가 불안해졌다. 왜 이럴가? 저건 간단한 성형술이나 절제술 같지 않은데… 가만, 그건 이식수술이 아닌가! 틀림없이 이식수술이다.

어쩌자는건가?… 그때 갑자기 텔레비죤화면에 이상현상이 비쳐지였다. 수술부위에서 심한 출혈이 나타난것이다.

《어떻게 된겁니까?》

권일학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그리고는 대답도 기다리지 않고 자리에서 뛰쳐일어났다. 어느새 말코지에 손을 내밀고 위생복을 벗겨들었다. 그런데 이건 또 뭔가? 위생복은 그의 어깨에 걸쳐있었던것이다. 그는 화를 내며 금시 벗겨들었던 외출복을 집어던지고 문을 차고 달려나갔다.

그가 수술장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출혈을 멈춘 강학선이 페복을 하고있었다. 붉게 물든 백포, 땀에 젖은 강학선의 수술복에 점점이 묻어있는 피자욱들… 《수고했습니다, 과장선생님!…》

강학선은 대답이 없었다. 성난듯이 입을 꾹 다문채 수술복을 벗어던지며 와락와락 소독수에 손을 씻기 시작했다.

권일학은 수술에 대해 묻고싶었지만 수술은 이미 끝났고 집도자인 강학선이 무엇때문인지 노여워하고있으므로 그가 손을 씻도록 말없이 기다렸다. 수술환자를 실은 밀차가 문밖으로 소리없이 굴러갔다.

《저…》

《됐습니다, 기술부원장선생. 더 말하지 맙시다.》

지친듯 한 강학선의 그 말에 권일학은 한동안 갑자르다가 조용히 말했다.

《저… 과장선생님, 이제 회관에서 제대군인들을 환영하는 모임이 있는데… 가봐야지요?》

강학선은 례사롭게 머리만 끄덕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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