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회)


제 1 장 그해 여름


9


산원회관은 사람들로 꽉 차있었다. 떠들썩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누르며 마이크를 든 임선해원장이 말했다.

《동무들! 조용하시오. 이제 곧 우리 평양산원에 배치될 제대군인동무들이 들어옵니다.》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들이 출입문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그 순간 확성기에서 환영곡이 터지더니 문이 활짝 열리며 키가 늘씬하고 머리칼이 짧은 제대군인들이 얼굴이 불그레해져서 들어왔다.

간호원처녀들이 꽃다발을 안고 달려나갔다. 힘찬 음악, 반가운 인사, 요란한 박수와 끌끌한 제대군인들이 웨치는 답례로 회관은 떠나갈듯 했다.

《고맙습니다!》

하나같이 미끈한 젊은이들이였다. 키도 같고 몸매도 비슷하고 얼굴생김새도 비슷했다. 그들이 정해진 자리에 앉자 림숙정당비서가 일어났다.

《동무들! 언제나 우리 평양산원에 깊은 관심을 돌리고계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에게 여러명의 끌끌한 제대군인들을 보내주시였습니다. 보십시오. 모두 한사람같이 멋있는 제대군인들입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산원이 개원하던 그날에도 오늘처럼 군대에서 운전사로 복무하던 30여명의 제대군인들을 한날한시에 우리 평양산원 구급차운전사로 보내주시는 크나큰 은정을 돌려주시였습니다.

그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지난 오늘 또다시 이렇게 유능한 운전사들을 비롯한 제대군인들이 한날한시에 배치되여온것은 우리 평양산원의 커다란 자랑이 아닐수 없습니다!》

또다시 터진 요란한 박수, 강학선도 힘껏 박수를 치고있었다.

그의 뒤에서 처녀들이 떠들어댔다.

《저길 봐!》

《뭘?》

《저-기 저 동무… 내가 출근할 때마다 보던 그 동무야. 정말 멋있지?》

《출근때마다? 아니, 저 동무들은 방금 제대됐는데…》

《아이참, 우리가 출퇴근하는 네거리에 대형선전화가 있지 않니. 〈선군혁명총진군 앞으로!〉… 거기 선전화 한가운데 이렇게 가슴을 쑥 내밀고 서있는 총잡은 병사가 바로 저 동무란 말이야! 자세히 봐, 꼭같지? 화가가 바로 저 동물 모델로 삼고 그렸거던.》

까르르 터지는 웃음소리. 강학선은 이마살을 찌프리였다. 원, 까불어댄다구야!… 무엇때문인지 마음 한구석이 불안하고 언짢았다. 딱히 무어라고 찍어 말할수는 없으나 그 누군가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끓어오르는것이였다.

좀전에 절제수술이 아니라 동종란관이식수술을 한 그 환자때문인지, 아니면 조수를 바꾸라고 명령한 기술부원장때문인지…

《제대군인동무들!》

임선해원장이 밝은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있었다. 환영연설을 시작하는것이였다.

《동무들이 배치받은 우리 평양산원은 어버이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들에게 선물로 안겨주신 사랑의 집입니다. 개원한지 수십년이 된 오늘까지 우리 평양산원에서는 헤아릴수없이 많은 어린이들이 태여났고 전국의 녀성들이 의료방조를 받았습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아이들은 조국의 미래이고 희망인데 산모들이 건강해야 아이들이 건강하고 아이들이 건강해야 조국의 미래가 양양하다고 하시며 해마다 인삼과 백두산록태고, 곰열을 비롯한 귀중한 약재들과 수백톤의 산꿀, 잉어, 가물치와 해삼, 지어는 세쌍둥이산모들을 위한 검정닭곰까지 우리 평양산원에 보내주시였습니다.…》

계속하여 임선해원장은 평양산원의 최신설비들과 기동수단인 수십대의 구급차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그때였다. 제대군인좌석에서 한 청년이 불쑥 일어나더니 차렷자세를 취하며 원장에게 큰소리로 물었다.

《원장동지! 다른 나라에도 산원이 있습니까?》

가벼운 웃음이 물결치듯 장내로 퍼져갔다. 강학선의 뒤에 앉아있던 처녀들이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소곤거렸다.

《어마나, 선전화에 그려진 저 동무 참 엉뚱하다야. 다른 나라엔 애기가 없나 뭐?…》

《그러게 말이야.》

《참 재미나는 사람이다 얘.》

그 말을 들었는지 제대군인청년이 몸을 쑥 돌렸다.

《그럼 동무들은 알고있소?》

《어마나?!》

기겁한 처녀들이 목을 움츠렸다. 그러자 제대군인청년은 소리없이 씩 웃었다.

임선해원장이 소리내여 웃으며 말했다.

《다른 나라들에는 대체로 산부인과가 있을뿐이예요. 내가 가보니 사회주의를 하던 어떤 나라들에도 자그마한 산원이 있긴 있더군요.》

《원장동지.》 청년이 물었다. 《제가 알고싶은것이 바로 그겁니다. 그 나라의 산원에 구급차가 몇대나 있는지 알고싶습니다.》

그를 내려다보는 임선해원장의 얼굴에 다시금 밝은 웃음이 물결쳤다.

《그 산원의 침대수는 200대였고 구급차는 두대였습니다. 물론 병원의 침대수에 따라 구급차의 대수가 규정되는건 아니지만 동무가 꼭 알고싶다기에 이야기하는거예요.》

《그렇습니까? 그럼 우리 산원은!…》

청년의 경탄에 찬 목소리가 장내를 울렸다.

강학선의 뒤에 앉은 처녀들이 선전화에 그려질만 하다고 제나름대로 속삭이였다.

강학선도 그쪽을 바라보며 저도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 제대군인이 산원구급차운전사로 배치받은것을 더없는 긍지로 여기고있는 주동국이라는 청년이며 그가 이제 이 평양산원과 특별한 인연으로 얽히게 되리라는데 대해서는 전혀 상상도 할수 없었다.

《암만 봐야 멋있어. 선전화에 나올만 해.》

뒤쪽의 한 처녀가 한숨을 내그으며 하는 말에 어떤 남자의 목소리가 시까슬렀다.

《오, 알만 해. 은정동무는 눈이 부리부리한 저런 형의 총각들을 좋아하누만? 그럼 우리 애기간호원은 어떤 사람을 좋아할가?… 애기총각?》

《천만에, 위인섭선생!…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요, 위인섭선생과 딱 반대되는 사람!》

《아하- 그럼 난 어떻게 하라는거요? 나한테 반하는 처녀는 하나도 없으니…》

강학선이 뒤쪽으로 핀잔하는 눈길을 던졌다.

《좀 조용하오.》

이때 연탁에서는 한 제대군인청년이 마치 구령이라도 웨치듯 청높은 목소리로 자기들을 산원에 보내주신 위대한 장군님의 높으신 뜻을 받들어 조국의 미래를 위해, 선군동이들을 위해 충정을 다하겠다고 열렬히 결의다지고있었다.

그의 토론을 듣고있던 원장과 당비서가 무어라고 웃으며 속삭였다. 맨끝에 앉아있던 권일학이 원장의 귀에 대고 무어라고 말을 건네는데 강학선이 보건대 흔히 주석단에 앉아있는 간부들이 하는 그런 틀진 거동이였다.

강학선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그었다. 그가 언짢게 여기는것은 권일학의 그 틀진 거동만이 아니였다. 웬일인지 그가 부원장으로 오자마자 아래사람들을 깔끄럽게, 랭정하게 대하는것 같고 지나치게 요구성을 높이는것 같아 불만스러웠다.

처음 그가 여기로 왔을 때 강학선은 말해주었었다, 사람은 직위가 올라갈수록 겸손해야 한다고.…

문득 대학시절 처음 권일학을 만나던 일이 떠올랐다.

어느해 봄날, 대학입학시험을 치는 날이였었다. 그날 의학대학정문에는 벌써 수많은 수험생들로 꽉 차있었고 나무밑이나 담장옆 구석에서는 한아름이나 되는 책을 옆구리에 낀 학생들이 무엇을 암송하느라고 여념이 없었다.

그때 대학졸업반이였던 강학선은 늘 그랬듯이 이번에도 한고향내기들을 찾아 정문으로 나갔다. 그는 매번 고향에서 올라온 학생들의 입학시험을 도와주는것을 선배로서의 응당한 본분이라고 여기고있는 사람이였다.

수험생들을 하나하나 살펴나가던 강학선의 눈길이 어느 한 학생에게서 멈추어섰다. 모두가 초조해하고 걱정하고있는데 유독 그 학생만은 한쪽에 혼자 가만히 서있었다. 지방에서 온듯 한 그 학생은 가족들과 친척도 없는듯 했다.

강학선이 다가가 그에게 말을 걸었다.

《학생은 어디서 왔나?》

《자강도 위원군 읍중학교에서 왔습니다.》

《그래?…》

자기 고향내기는 아니였다. 만만치 않은 그의 눈빛과 자신심에 넘친 목소리가 강학선의 마음에 들었다.

《난 림상학부 졸업반 강학선이요. 입학시험공부를 도와줄가?》

《괜찮아요.》

강학선은 그를 훑어보았다. 아무러한 공식수첩도 책도 참고서적도 없이 맨몸 그대로이다. 다만 학생복앞 웃주머니에 꽃은 만년필만이 류달리 눈에 띄였는데 그 만년필이야말로 그의 실력과 자신심의 뚜렷한 증거인듯 싶었다.

《자신있단 말이지? 좋아! 대학에 입학하면 우리 림상학부에 오라구. 의학계에서 기본은 이 수술칼이거던, 알겠나?》

강학선은 수술칼을 쥔 손동작을 하고나서 그의 어깨를 툭툭 쳤다. 그렇게 함으로써 마치 강학선 자기가 그의 입학을 승인한다고 비준하는듯 했다.

그후 입학시험이 끝나자 교원들과 대학생들속에서는 시험 전과목을 만점으로 치른 자강도 산골내기 권일학이라는 수재의 이름이 오르게 되였다.

그때에도 그를 제일먼저 찾은것은 강학선이였다.

《소문이 뜨르르한 그 산골내기 권일학이가 바로 자네였구만. 반갑소!》

그날 저녁 강학선은 집에서 보내온 송금을 다 털어 권일학과 마주앉아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학의 고상한 사명과 인간의 생명에 대하여 그리고 복잡한 림상리론과 실천에 대하여…

권일학은 그의 권고대로 림상학부에서 공부했다. 뛰여난 수재에 대한 강학선의 남다른 관심은 대학 전기간과 박사원은 물론 자기가 박사로 된 오늘까지도 변함이 없었다.

오늘 강학선은 그지없이 마음이 괴로왔다. 권일학이 기술부원장이 되더니 벌써 관료주의냄새를 풍기고 교만해지고있는것처럼 느껴지기때문이였다.

오늘 그는 박사인 자기의 의도를 부정했으며 녀의사들중에서 제일 괜찮은 하경옥을 소개했는데도 처음부터 기웃거리며 말이 없더니 오늘은 수술에도 참가시키지 않았다. 그것은 어찌보면 강학선 자기에 대한 일종의 무시라고도 볼수 있는것이였다.

그는 무거운 마음으로 한숨을 길게 내쉬였다. 언제 환영모임이 끝났는지도 알지 못했다. 뒤쪽의 처녀들이 소곤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그네들의 눈길이 따르고있는 제대군인 주동국에게 흘끔 눈길을 던졌다. 그의 눈으로 보건대 그 제대군인은 별로 남다른것이 없는듯 했다. 산원에 온 제대군인들은 하나같이 름름한 청년들인데 그들중 한사람만 춰올린다는것은 당치 않은 일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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