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0 회)


제 1 장 그해 여름


10


환영모임에서 숱한 처녀들의 눈길을 끌었던 주동국은 행사가 끝난 다음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신형구급차들이 주런이 서있는 운수과를 돌아볼 때에도 시종일관 맨앞장에서 쓸어보고 만져보고 기술적성능을 물어보고는 혀를 차며 감탄하군 했다.

그는 모든것이 마음에 들었다. 번듯하게 세운 운수과 정문도, 자체로 꾸려놓은 수리기지도, 마당에 심은 감나무와 포도나무도 그리고 수많은 비둘기들도 모두 마음에 들었다. 운전사들을 위한 식당에 들렸을 때는 수도꼭지옆에 놓인 30여개의 고뿌를 보고 그 남다른 관심과 세심함에 또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고뿌는 매 칸마다 놓여있었는데 그 하나하나의 개별고뿌마다에는 구급차번호가 차례로 새겨져있었던것이다. 주로 구급차운전사로 배치받은 제대군인들은 기뻐서 어쩔줄 몰랐다.

《어떻소, 동무들! 이제부턴 온 나라 녀성들과 애기들을 위한 전투에 들어가는것이?…》

《좋소! 아주 멋있는 말이요.》

군대에서 장령차운전사로 복무했다는 주동국이 소리내여 웃으며 호응했다.

《멋있는 말이 중요한게 아니라 멋있는 생활이 중요한거요!》

《그 말도 멋있어, 응? 그렇지?》

《그래, 좋은 말이야.》

제대군인들은 모두 흥분하고있었다.

그때 경리부원장 박준영이 다가왔다. 그는 정문에 서있는 대형뻐스를 가리키며 말했다.

《자, 우리의 귀중한 제대군인동무들! 점심시간이 다 됐는데 식사를 해야지? 이 경리부원장이 유명한 옥류관국수를 대접하겠소. 어서 뻐스에 오르시오.》

와- 환성이 터졌다.

제대군인들을 태운 뻐스가 옥류관에 도착하자 경리부원장이 또 소리쳤다.

《자! 마음껏 신청하라구. 이 경리부원장이 한상 단단히 차리는것이니 사양말고 두그릇이면 두그릇, 세그릇이면 세그릇. 가마마차노래에도 있지 않나, 곱배기도 요청하면 들어준다네, 헤이!…》

재미나는 사람이였다. 젊은 나이에 이마가 쭉 벗어졌는데 웃음띤 얼굴에서는 한없는 친절과 성의가 번들번들 내배여있었다.

박준영이 그럴만도 했다. 수많은 환자들의 주방을 맡아보고있는 경리부원장의 밑에는 회계과, 경리과, 공급과, 설비과, 세탁소, 배전실 등 많은 과가 있는데 거기서도 제일 큰 운수과에 이런 끌끌한 제대군인들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한날한시에 배치되여왔으니 경리부원장으로서는 명절을 맞는듯 기쁘지 않을수 없었다.

접대원들이 국수를 내오자 그는 매 식탁을 돌아다니며 빈그릇이 나는 족족 덧국수를 가져오게 했다. 모두가 사양하지 않고 마음껏 청했다.

남먼저 국수그릇을 단숨에 비운 주동국은 옥류관에서 나와 씨엉씨엉 모란봉으로 향했다. 청류정밑에서는 지금 미술대학 졸업반에 다니는 녀동생 은경이가 그림습작을 하고있을것이다.

오늘 그는 시간을 내여 동생 은경이가 그리는 풍경화를 보아주겠다고 약속했었다. 그러니 늦지 말아야 했다. 누이동생 은경이는 토라지기 잘하는 처녀였다.

산기슭에 들어서자 땀에 젖었던 군복웃옷 앞자락에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주동국은 취할것만 같은 신선한 숲의 향취를 마음껏 들이마시며 갖가지 꽃향기에 휩싸인 청류정으로 곧장 올라갔다.

멀리서도 쏟아지는 폭포를 배경으로 파란 잔디밭에 앉아 해가림모자를 쓰고앉은 은경이의 모습이 잘 보였다. 그는 등뒤에 오빠가 다가온것도 모르고 붓질에 여념이 없었다.

《하, 제법인데?…》

그제야 고개를 돌린 은경이가 뾰로통해서 말했다.

《오빤 뭐예요? 빨리 오겠다구 하구선…》

《미안하구나, 끝나자바람으로 뛰여오느라고 했는데… 그래, 점심은 먹었니?》

《오빠가 안 왔는데 나 혼자 어떻게 먹나?》

아침에 은경이가 오빠의 점심밥까지 챙겨넣은것을 주동국은 알고있었다.

《난 방금 옥류관에서 곧장 오는 길이야. 우리 산원 경리부원장이 한상 차렸거던.》

《응, 그랬군요!》

주동국은 웃주머니에서 파견장을 꺼내 누이동생에게 내밀었다. 오빠의 파견장을 들여다보던 은경이가 소리내여 읽었다.

《주동국. 평양산원 구급차운전사. 그러니 오빤 애기차운전사란 말이지요?》

《왜, 마음에 안 드니? 자기두 산원에서 태여나구선…》

《그렇지만 오빠야 왕별을 단 장령차를 몰지 않았어. 좀더 크고 보람있는 일을 했으면…》

《아이들은 나라의 왕이야.》 주동국은 싱긋 웃으며 누이동생의 코등을 손가락으로 튕겨주고나서 계속했다. 《바로 거기에 의의가 있는거야! 장령- 하면 전쟁에서 싸움을 지휘하는 사람들이거던. 그런 장령을 태우고다니던 사람이 전쟁이 아니라 평화를 아니, 조국의 미래인 애기들을 실어나르는 사람이 되였다! 얼마나 멋이 있니?》

은경이는 까르르 웃음을 터치였다. 그리고는 재미난듯 오빠에게 말했다.

《그럼 이제부터 오빠에게 〈애기차운전사〉라는 별명을 달아주겠어! 좋지?》

《예-잇!…》

주동국이 얼른 허리를 굽히며 상을 받는 흉내를 냈다. 그리고는 둘다 맘껏 웃어댔다.

얼마후 그들은 화판을 걷어가지고 나무그늘밑을 찾아들어갔다. 주동국은 누이동생이 밥을 먹고있는 동안 습작한 여러 그림들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풍경화도 있었고 인물소묘도 있었으며 무엇을 그리려고 했는지 대충 구도만 잡아놓은 도면 같은것도 있었다.

《아직은 서툴러, 멋부리려고 하거던.》

은경이는 부지런히 저가락을 놀리며 종알거렸다.

《오빠가 미술을 알게 뭐야. 그림이란 인간의 미적리상을 아름다운 색조와 …》

주동국이 그 말을 받았다.

《공간 및 균형의 예술이며 눈으로 보는 음악이지.》

《어마!》

은경이 입을 딱 벌렸다. 손에 들고있던 저가락이 풀밭에 떨어지는것도 몰랐다.

《정말 우리 오빠가 맞아?》

《아니야.》하고 주동국은 눈을 끔쩍했다. 《난 그저 주은경의 오빠야.》

은경은 두손을 내저었다.

《정말이야, 우리 오빠가 이렇게 멋있는 사람이 되다니!… 난 졸업작품으로 오빠의 초상을 그리겠어. 찬성하지요?》

주동국은 머리를 저었다.

《난 반대야.》

《왜요?》

《아직은 작품의 주인공이 될 사람이 못됐거던.》

그들은 다시금 즐겁게 소리내여 웃었다.

바로 그때였다. 그들의 웃음소리를 짓누르며 멀리 청년공원 야외극장쪽에서 산원구급차의 경보신호가 울렸다. 그들은 목을 빼들고 그쪽을 바라보았다. 구급차에서 사람들이 뛰여내리는것이 보였다. 그들이 팔을 내저으며 무어라고 소리치자 방금 옥류관에서 나와 야외극장앞에 멈추어선 대형뻐스(제대군인들을 싣고온 산원뻐스였다.)에서 누군가 뛰여내렸다. 잠시후 구급차는 그 사람을 싣고 바람같이 도로 달려갔다.

산원에서 무슨 일이 생겼는가?… 이윽토록 그쪽을 바라보는 주동국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그늘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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