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2 회)


제 2 장 량심의 선고


2


밤은 깊어가고있었다. 의사실에서 강학선과 마주앉은 권일학은 무슨 말부터 먼저 꺼내야 할지 몰라 침묵만 지키고있었다.

방금전 서범천과 함께 앞으로 열리게 될 과학기술축전에 복강경수술을 완성하여 내놓자고 열을 내여 토론한 그였지만 래일 있게 될 림상비판회의를 두고 강학선을 찾아온 지금은 웬일인지 말이 나가지 않았던것이다.

이윽고 권일학이 나직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림상비판회의가 열린다는데…》

《글쎄.》

《전 그 일때문에 잠이 오지 않습니다. 선생님에게 그런 일이 생기다니?》

강학선이 침울하게 대답했다.

《참, 안됐네. 자네가 기술부원장으로 오자마자 이런 일을 저질러서…》

《저야 뭐랍니까. 선생님에게 일이 생긴게 걱정이지.… 그래도 환자에겐 다른 일이 없으니 참 다행이지요.》

강학선이 길게 한숨을 내그으며 눈길을 떨구었다.

《그 환자에게 미안하게 됐소. 재수술을 한데다가 인젠 영영 아이까지 못 낳게 됐으니…》

한동안 두사람은 말이 없었다. 그 환자의 첫번째 집도자와 재수술을 한 집도자가 서로 마주앉아있는것이다. 흔히 이런 경우에 재수술한 집도자는 앞서 수술한 사람의 잘못에 대하여 누구보다 잘 알게 되므로 그에 대하여 량심적으로 보고할뿐아니라 자신의 견해도 발표하게 되는것이다.

하지만 권일학은 지금 그에 대하여 비난하려고 찾아온것이 아니다. 그가 한 수술이 얼마나 모험적이였던가를 터놓고 말해주고싶었을뿐이였다.

권일학은 무엇인가 저어하듯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제 보기엔… 과장선생은 그 환자에게 란관채성형수술이나 란관개구술이 아니라 동종란관이식수술을 적용했던것 같은데… 그건 아직 림상경험이 없는게 아닙니까?》

강학선이 머리를 천천히 끄덕이며 그의 말을 긍정했다.

《그건 옳소. 병조부위는 파렬된 상태였소. 하지만 난 란관이 파렬되였어도 그 정도가 심하지 않으면 동종란관이식술을 적용할수 있다고 보고 그 방법을 택했던거요. 후에 패혈증만 오지 않았다면 그것이 성공할수도 있었겠는걸…》

《하지만 그건…》

권일학은 말끝을 맺지 못했다. 차마 그앞에서 자기의 생각을, 그것은 협의회질서를 어긴 위험한 수술이였으며 과학적담보가 없는 수술이였다는것을, 그래서 자기는 그것을 모험으로 인정하지 않을수 없다는것을 솔직하게 말할수 없었던것이다.

강학선이 그의 속마음을 들여다본듯 나직이 말했다.

《물론… 의사협의회에서 토의된 진단치료계획을 어긴건 잘못된거요. 하지만 의사는 자기가 손을 댄 환자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오. 무엇을 쉽게 떼여내는것으로 자기 책임을 다했다고 본다면 그게 무슨 의사겠소. 지금도 눈물에 젖어있던 그 환자의 애절한 부탁이 귀전에 떠나지 않는구만. 그런데도 인젠 영영 그 소망을 들어줄수 없게 되였다는걸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오.》

《하지만… 우리 의사들에게 있어서 그것이 문제일가요? 환자는 생명을 잃을번 하지 않았습니까!》

강학선이 눈길을 들어 그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래, 기술부원장은 지금 뭘 말하자는거요?》

《저…》

권일학은 그만 말문이 막힌 사람처럼 헛기침을 했다. 사실 권일학은 림상비판회의에 나설 강학선을 위안하거나 동정해주려고 온것이 아니였다. 선군시대의 의료일군, 생명을 다루는 의사가 확고한 과학적담보도 없이 인체에 칼을 대는것은 용서할수 없는것이라는것을 그에게 납득시키고싶었다. 그리고 기술부원장인 자기가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하여 림상비판회의에서 반드시 론의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결국은 그의 무모한 모험에 대하여 비판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그와 터놓고 이야기하고싶었다. 이제 벌어질 림상비판회의며 이제 닥치게 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하여 그가 무겁게 받아들이고 마음의 준비를 갖추고 나서기를 바라고있었던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금 자기의 이 모든 생각을 그앞에 솔직히 털어놓고 말한다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깨닫고있었다.

하지만… 말해야 한다. 그것이 아픈 말일지라도 진정 그를 위한것이라면 모든것을 숨김없이 말해주어야 하는것이다. 그는 지금 이 시간이 아니라면 그에 대하여 더 이야기할 기회가 없다는것을 알고있었다.

권일학은 눈길을 들어 강학선을 마주보았다.

《과장선생…》

그러나 말끝을 잇지 못했다. 그를 지켜보고있던 강학선이 느닷없이 소리내여 웃으며 이렇게 말했던것이다.

《아, 알만하오. 기술부원장, 물론 림상비판회의에서 재수술에 대해 론의도 되구 비판도 하겠지. 그 론의가 결코 사인토론회는 아니지 않나? 법의감정이 붙는것도 아니고… 너무 마음쓰지 말게. 오랜 의사생활에 가끔 이런 일두 생긴다는거야 자네도 알지 않나. 그 회의에서 주요 발언은 기술부원장인 자네가 할텐데… 난 별로 신경을 쓰지 않네.》

《?…》

권일학은 더 말을 이을수 없었다. 지금 강학선은 그가 걱정하고있는 림상비판회의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있는것이다. 그저 가벼운 경고나 받는것처럼 생각하고있는것이다.

과연 그 회의가 그렇게 무난히 끝날수 있을가? 과연 내가 자기의 량심을 속이고 그를 두둔할수 있을가?… 강학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자, 이젠 가자구. 정철이가 집에서 기다리겠는데. 참, 래일 저녁 일이 끝나면 애와 함께 집에 들리게. 우리 경철이 생일이라구 집사람이 자네를 꼭 데려오라구 하더구만. 내 따로 말하지 않아도 그냥 들리게. 알겠나?…》

강학선의 마지막말은 맑고 지어 즐겁게까지 들렸다. 그 어조에는 자기의 친근한 벗에 대한 살뜰한 정과 믿음이, 깊은 우애와 우정이 깃들어있었다.

권일학은 그처럼 자기를 믿고있는 그에게 터놓고 이야기하지 못하는것이 괴로왔다. 그리고 래일 회의에서 자기는 어쩔수 없이 그를 두둔하지 않으면 안된다는것을 새삼스럽게 느끼고있었다.

권일학은 무거운 마음으로 어두운 창문을 바라보았다. 밤은 여전히 깊어가고있었다. 불안과 괴로움, 안타까움과 초조감에 모대기는 그의 마음과 함께 끝없이 깊어가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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