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3 회)


제 2 장 량심의 선고


3


회의실은 사람들로 가득차있었다. 여러개의 랭풍기가 쉬임없이 찬바람을 내불고있으나 좀처럼 더위를 몰아내지 못했다. 금시 비가 쏟아질듯 무던히도 찌물쿠는 날씨였다.

문옆에 앉아있던 9산과 과장이 땀에 젖은 목덜미를 손수건으로 벅벅 문지르며 투덜거렸다.

《날씨두 젠장!… 이런걸 신소하는데는 없는가?》

사업수첩을 펴들고있던 1부인과 과장이 피씩 웃으며 량벽을 눈짓했다.

《저 랭풍기들이 있지 않소. 왜 좀더 시원하게 돌지 못하는가고 소리치란 말이요.》

누구도 듣는 사람이 없다. 여느때 같으면 이런 롱질에 끼우지 않고서는 견디지 못하는 렌트겐과장도 어깨를 움츠리고있었고 그와 마주서기만 하면 무엇인가 끝없이 수군거리던 병리해부과장도 오늘은 벙어리가 된듯 싶었다.

의사들과 어울려앉은 서범천이도 역시 구름처럼 웃음이 피여나던 커다란 입을 꾹 다물고있었고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늘 흥미있는 표정을 짓군 하던 위인섭이도 눈을 쪼프린채 주위를 둘러보기만 했다. 조용한 회의실에는 오직 량쪽벽에 설치한 두대의 랭풍기만이 이 무거운 침묵을 몰아내려고 애쓰는듯 쉬임없이 돌고있었다.

하경옥은 구석에 앉아 가슴을 조이고있었다. 여느때와 다름없는 강학선의 얼굴표정을 보면서도 불안하게 한숨을 내쉬군 하였다. 제발 다른 일은 없었으면, 그저 아무일없이 지나갔으면!…

이제 곧 열리게 될 림상비판회의는 의사들의 실수로 환자에게 심한 고통을 주었거나 불구로 만들었을 때 병원에서 조직하는 심각한 림상의학적검토이다.

여기서는 의료사고의 원인을 분석하고 그 엄중한 결과에 대하여 비판하고 추궁하며 경우에 따라 급수강급과 법적책임까지도 지우게 된다. 바로 이러한 림상비판회의가 이제 곧 시작되는것이다.

강학선의 얼굴은 약간 긴장해있는듯 싶었다. 그가 이처럼 긴장해있는것을 하경옥은 처음 보는듯 했다.

물론 별일은 없을것이다. 재수술을 하여 소동은 있었지만 과장선생은 사실 그 녀성의 소원을 풀어주려고 이 수술을 맡아하지 않았는가, 그것이 의도적인 사고라고 누가 말할수 있단 말인가, 설사 그런 론조가 나온다 해도 누가 거기에 공감하겠는가!… 하경옥은 이렇게 자신을 위안하며 불안해지는 마음을 애써 누르고있었다.

그때 임선해원장이 회의실로 들어왔다. 주석단가운데로 나가앉더니 맨앞줄에 앉아있는 한사람에게 물었다.

《치료예방과장동무, 다 왔어요?…》

《예, 다 모였습니다.》

임선해는 사업수첩을 펴들고 천천히 말했다.

《오늘 림상비판회의는 부인과와 산과를 같이 맡아보는 권일학기술부원장 그리고 산과고문인 지성하선생이 함께 집행하겠습니다. 나와주세요.》

불리운 두사람이 주석단에 나오는 동안 임선해는 회의실에 모인 여러 부원장들과 수십명의 과장들을 차례로 여겨보았다.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언제나 인정미 넘치던 그가 오늘은 마치 이가 쏘는 사람처럼 씨쁘둥했다. 그리하여 원장의 눈길과 마주친 어떤 과장은 머리를 약간 수그리며 조심히 눈인사를 했고 또 어떤 사람은 애초에 눈길이 마주치는것이 두려운듯 두눈을 질끔 내리감고있었다.

그러나 주석단으로 올라오는 지성하박사만은 아무런 감정표현도 없이 꼿꼿이 걸음을 옮기고있었다. 수십년간 수술장에서 삶과 죽음과의 피어린 싸움을 벌려온 그여서 간혹 수술칼처럼 차고 날카로운 사람으로 보일 때도 있었다.

원장이 손을 내밀어 의자를 당겨주며 그를 자기곁에 앉혔다. 권일학이까지 자리에 앉자 그는 약간 목소리를 높여 물었다.

《과학부소장 안정호선생 왔습니까? 예… 앉으십시오. 그리고 애기부원장 박선숙선생, 박선숙선생?… 아직 안 왔습니까?… 치료예방과장동무, 어떻게 된 일이예요?》

그때 앞줄의 오른쪽 끝에 앉아있던 애기부원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예, 제 여기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는 사업수첩을 펴들고 무엇인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었던것이다. 하루에 태여나는 애기들만 해도 수없이 많은것으로 하여 그의 사업수첩에는 갖가지 작은 수자들과 애기번호들이 가득차있는데 아마도 거기에 정신을 팔고있은 모양이였다.

《됐습니다. 그담… 약국장 리선영선생은?… 예- 됐습니다. 그럼 회의를 시작합시다.》

먼저 치료예방과장이 강학선의 의료사고에 대한 전말보고서를 통지하였다. 이미 다 알고있는 문제이지만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귀를 도사리며 듣고있었다. 피치 못할 사정인가, 아니면 집도자의 실수인가, 의도적인 모험인가?… 아니, 의도적인 실수란 없다. 있을수도 없고… 사실 의사의 사고는 그 모두가 당자의 기술부족이나 실수때문에 벌어지는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전혀 가망이 없는 환자에게도 수술칼을 들어 대지 않으면 안되는 그런 인간적인, 도덕적인 책임을 지는 경우도 있기때문이다. 그렇다고 그 책임이 두려워 모든 인간적인, 도덕적인 의무마저도 집어던질수는 없지 않는가?… 하경옥은 이렇게 생각하고있었다.

보고가 끝나자 내과과장 류금춘이 일어나 자기가 본 환자의 진찰소견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이렇게 덧붙였다.

《에- 우리 의사들은 환자를 무서워해야 합니다. 벌써 오래전에 누군가가 말했습니다. 환자앞에서는 태연하라! 그러나 돌아서서는 냅다 뛰여가라. 뛰여가서 책을 들여다보며 연구하라!… 얼마나 통속적이며 의미깊은 말입니까. 여기엔 우리 의사들의 량심과 책임성에 대한 조언과 경고가 들어있습니다. 그러면 의사의 량심이란 무엇이겠습니까? 사실말이지 우리 의사들속에는 자신의 명예에 그늘이 질가봐 자신없다고, 아무개한테 가면 될수 있다고 말하지 못해 환자에게 엄청난 고통을 주는 그런 경우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원사, 교수, 박사라 해도 자기가 할수 없는것은 못하겠다고 내놓고 말하는 사람, 난 이런 사람이 책임적이고 량심있는 의사라고 말하고싶습니다. 이렇게 놓고볼 때 강학선과장의 수술은 매우 불충분했다고 봅니다. 과연 그 수술이 책임적이고 량심적인 수술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 무슨 충동을 받았는지 소생과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강학선과장동무가 수술한 선우금숙환자는 지금도 가까스로 산소호흡을 하고있습니다. 그러는 그를 매일같이 지켜보면서 나는 생각했습니다. 어쩌면 그럴수 있는가? 하마트면 환자를 영영 죽일번 하지 않았는가?…》

그는 속에 들어차있는 숨을 던지듯 내불고나서 이렇게 계속했다.

《솔직히 말하여 우리 의사들은 가끔 환자들에게서 가슴아픈 호소를 듣는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환자이지 의사는 아닙니다. 그들은 호소할뿐이지 진단도 처방도 없습니다. 그런데 원칙적인 절제술을 해야 할 집도자가 환자들이 하자는대로 한다면 그를 어떻게 의사라고 할수 있겠습니까!…》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창밖의 하늘에서는 검은구름장들이 밀려들고있었다.

하경옥은 여전히 두손을 가슴에 얹고 옆줄에 앉아있는 강학선만을 지켜보고있었다. 모두가 강학선을 비난하는것은 아니였다. 그를 두둔하던 사람들도 있었다.

제일먼저 참지 못하고 후닥닥 일어난 사람은 고려약 제제과장 정명희였다. 원칙이라면 한치도 양보하지 않는것으로 하여 《자막대기》라는 별명으로 불리우는 정명희, 그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여 처음부터 어성을 높였다.

《난 달리 생각합니다. 물론 환자를 중태에 빠지게 하고 고통을 준것은 비판되여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집도자가 무엇을 생각했고 또 무엇을 지향했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다 아는것처럼 그 선우금숙환자는 불임증이 있는 녀성으로서 간절히 애기를 바랐습니다. 이런 녀성의 심정이 얼마나 눈물겨운것인지 여기에 앉아있는 남자선생들은 알고있습니까? 모르지요.… 그래 우리가 환자의 눈물겨운 호소도 외면한다면 그게 무슨 의사겠습니까!》

그는 시작하던것처럼 갑자기 말을 끊고 자리에 앉았다.

《옳습니다!》하고 자리에서 일어난것은 약국장 리선영이였다. 《그 정황에서는 어쩔수 없는 일이였다고 전 생각합니다. 환자를 끝까지 위해주려던 집도자의 실수를 두고 의도적인 의료사고라고 보는것은 너무 지나친것입니다. 그리고 강학선과장은 지금까지 미세수술로 수많은 불임증환자들을 치료해준 유능한 의사입니다. 이런 그가 환자들에 대한 의료봉사수준을 더 높이려고 시도한 이번 수술에 대해서도 우린 일정한 리해를 가져야 한다고 봅니다.》

가슴을 조이며 토론을 듣고있던 하경옥은 저도 모르게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회의분위기가 차츰 강학선을 동정하고 리해하는 온화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것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임선해원장이 손에 쥐고있던 원주필로 가볍게 탁자를 그루박으며 주의를 주었다.

《자, 조용들 합시다. 또 토론들 하세요.》

그런데 이번엔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이 없었다. 녀성들의 격한 론조에 남자의사들은 모두 입을 다물어버렸던것이다.

임선해의 얼굴에 알릴듯말듯 미소가 떠오르고있었다. 그는 원장으로서 강학선과장을 남달리 위해주군 했었다. 산원기술진영을 대표하는 한사람으로서 강학선은 미세수술의 전문가, 만사람이 인정하는 실력가였던것이다. 떼여버리기 쉬워도 인재를 하나 구하기는 쉽지 않다. 지금 많은 사람들이 이에 대하여 생각하고있지 않을가?…

임선해는 가볍게 안도의 숨을 내그었다. 이대로 나간다면 오늘 림상비판토론회의가 강학선에게 엄중경고를 주는것으로 가볍게 끝날수도 있다.

그것은 그가 은근히 바라기도 한것이였다.

임선해는 권일학기술부원장에게 눈길을 돌렸다.

《기술부원장선생 생각은 어떤지?… 좀 얘기해보세요.》

커다란 기대가 어린 원장의 눈빛, 이제 그의 견해와 립장에 따라 강학선의 운명이 결정될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느끼고 숨을 죽였다.

권일학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도 모르게 강학선에게 가닿는 눈길. 긴장하게 앉아있던 강학선이 그의 눈길과 마주치자 두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었다. 마치 그것은 《어서 말하게. 자네야 내 마음을 다 알고있지 않나?》하는듯 했다.

권일학은 괴롭게 눈길을 떨구었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듯 한손으로 책상모서리를 꽉 잡고있었다.

강학선의 옆에서 그를 바라보고있던 하경옥은 무엇때문인지는 알수 없으나 가슴이 서늘해지는것을 느꼈다. 예감이 좋지 않았다. 권일학의 해쓱해진 얼굴과 입술을 깨물고있는 모습에서 좋은 말은 기대할수 없다는 느낌이 들었던것이다.

마침내 권일학이 머리를 들었다.

《그럼… 제 소견을 말하겠습니다.》

바로 그때 누군가 문을 빠끔히 열고 회의실로 들어섰다. 치료예방과 부원이였다.

《무슨 일이예요?》

원장이 낯을 찡기며 물었다.

《저… 원장동지.》

그는 잰걸음으로 주석단에 올라가더니 원장에게 무어라고 귀속말을 했다.

《그래요?》

원장은 놀라운 기색이였다. 두눈을 내리깔고 잠시 생각하더니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오늘 림상비판회의때문에 보건성 국장이 내려옵니다. 직접 회의에 참가하겠다고 하는데… 잠간 휴회하고 기다립시다.》

원장이 밖으로 나가는것을 멀거니 바라보면서 하경옥은 숨이 차오르는것을 느꼈다. 부지중 가슴속에 시커먼 먹장구름이 끼는듯 했다.

여기저기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문제가 커진다느니, 이제 일이 심상치 않게 벌어질것이라느니, 아마도 강학선은 무사치 못할것이라느니 하는 소리들이 하경옥의 귀에도 들려왔다. 그는 머리를 숙이고있는 강학선에게서 눈길을 뗄수 없었다. 과연 그렇게 될가? 무사치 못한다면 어떻게 된다는건가?…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마음은 불안과 위구심으로 하여 매운 연기라도 삼킨듯 했다. 보건성에서 어느 국장이 내려왔는지 알고싶었다. 그가 이제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많은것이 좌우될것이기때문이였다.

그는 산원에 자주 내려오던 여러명의 국장들가운데서 그 누군가의 얼굴을 기억해내려고 애썼으나 웬일인지 오늘따라 아무리 해도 짚이는 사람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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