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5 회)


제 2 장 량심의 선고


5


원장과 함께 회의장에 들어선 윤일국장은 주석단 한가운데 내놓은 의자에 앉으며 들고온 서류가방을 탁에 내려놓았다.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조용해졌다.

윤일국장이 장내를 둘러보자 임선해원장이 권일학을 돌아보며 실무적으로 말했다.

《기술부원장선생, 토론을 계속합시다.》

권일학은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하경옥은 온몸이 조여드는것을 느끼며 권일학을 주시하고있었다.

부어놓은 청동처럼 굳어져있는 그의 얼굴표정을 보고서는 지금 그가 무엇을 생각하고있는지 가늠할수 없었다. 잠시후 그의 조용한 목소리가 회의장을 울렸다.

《다 알고있는것처럼… 산부인과는 수술준비가 불충분한 상태에서도 구급수술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이번 선우금숙 환자도 역시 엑토피아로서 구급환자들중의 하나였습니다. 불임증으로 해서 남달리 딱한 사정도 안고있었고…》

권일학은 잠시 말을 끊고 머리를 떨구었다. 장내의 사람들은 한순간 숨이 멎는것만 같았다.

그가 이제 무엇을 론증할것인가?… 긴장된 분위기로 하여 장내는 얼어붙는듯 했다.

《의사협의회에서는…》 권일학은 다시 머리를 들었다. 《환자를 진찰하고 원칙적인 절제술을 하든가, 가능하면 란관채성형술이나 란관개구술을 할수 있다는 진단치료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강학선과장은 란관채성형수술이나 란관개구수술을 할수 없게 되자 절제가 아니라 염증소견이 남아있는 상태에서 림상에 적용한적이 없는 새로운 동종란관이식술을 결심한것입니다.》

순간 마른땅에 소낙비가 떨어지듯 주위가 소란스러워졌다. 놀란 숨소리들과 수군거리는 속삭임소리… 권일학은 손수건을 꺼내여 이마의 땀을 닦았다.

사실을 밝히지 않을수 없는 권일학, 놀라는 강학선을 보지 않으려고 애썼지만 자꾸만 그에게 눈길이 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 굳어진 눈길로 자기를 쳐다보는 강학선, 긴장감이 어렸던 그의 얼굴이 차츰 색이 바랜듯 창백해지고있었다.

혀를 깨물던 권일학은 그때 또 하나의 찌르는듯 한 눈길이 화살처럼 자기에게 날아드는것을 느꼈다. 누구인가?… 하경옥이였다. 검푸른 그 녀자의 두눈이 그 어떤 실망감과 의혹으로 하여 초불처럼 떨리고있었다. 이어 권일학은 그 녀자의 눈길과 엇갈리는 다른 하나의 눈빛도 알아보았다. 그것은 그의 주장에 공감하고있는 서범천의 진지한 눈빛이였다.

권일학은 가까스로 마음을 다잡고 계속했다.

《어떤 철학가는 수학을 지팽이삼아 철학의 경지에 올랐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의사는 인간심리를 해부하고 분석한 심리학을 지팽이삼아 의학의 상상봉에 올라야 한다고 했습니다. 바로 강학선과장선생이 늘 외우던 말입니다.》

그는 숨이 찬듯 잠시 말을 끊었다. 그의 시선은 또다시 머리를 숙이고있는 강학선의 검붉은 얼굴에서 멎었다. 강학선은 까딱 움직이지 않고 한곳에 눈길을 박고있었다.

《계속하시오.》

시종일관 심각한 표정을 짓고있던 윤일국장이 권일학을 건너다보았다.

여전히 강학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있던 권일학은 다시 입을 열었다.

《옳은 말입니다. 우리 의사들은 환자의 호소에 응당한 관심을 돌려야 하며 또 그것이 의사의 중요한 품성의 하나로 되여야 합니다. 그러나… 과장선생은 보다 큰것을 잊고있었습니다. 인간의 마음과 소망, 과장선생은 이것이 의사의 량심의 전부라고 주장해왔지만… 아닙니다! 그 모든 소망과 희망, 이보다 더 중요한것은 생명입니다. 그 무엇에도 양보할수 없는것이 바로 생명이란 말입니다!…》

어디선가 멀리에서 우뢰우는 소리가 들렸다. 금시 소낙비가 쏟아지려는듯 하늘이 컴컴해졌다.

권일학은 계속했다.

《사고는 여기에 있었습니다. 강학선과장은… 환자가 호소한다고 해서… 간절한 부탁이라고 해서 생명을 가지고 모험을 했습니다. 단순한 모험인가? 아니, 그는 아직 림상실천에 도입해본 일도 없는, 리론적으로만 정립되여있는 위험한 동종란관이식술을 함부로 환자에게 적용했으며 그에 대하여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집도자는 리론적으로만 준비된 상태에서 성급하게 수술조작에 들어갔고 결국엔 환자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린 돌이킬수 없는 의료사고를 내게 되였던것입니다.… 과연 이 수술에 인정만이 아닌 그 어떤 사심은 없었는가? 그 어떤 자기 과신은 없었는가? 그렇다면 이것은 의학적으로나 도덕륜리적으로 절대 용서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또다시 섬광이 번쩍이였다. 이번엔 멀리서가 아니라 바로 가까운 머리우에서였다.

권일학은 입을 다물었다. 다른 사람들도 모두 숨을 죽이고 무엇인가를 기다렸다.

이윽고 《꽈당!-》하고 하늘땅을 들부시는듯 한 천둥소리가 터지고 소낙비가 창문을 드세게 후려치기 시작했다. 누군가 다급히 바람에 열려진 창문을 닫았지만 세차게 후려갈기는 소란한 비소리는 사람들의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하경옥은 진저리쳤다. 몸이 떨리고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얼음장같은 사람, 수술칼같은 인간!… 강학선과장은 어찌하여 저런 사람을 그토록 멋쟁이라고 내세우고 칭찬했단 말인가, 저런 사람을?…

자기옆에 앉아있는 강학선을 곁눈질하면서 하경옥은 아프도록 입술을 깨물었다. 강학선의 이마에 굵은 피줄이 두드러지고있었다. 어느새 그의 얼굴은 죽은 사람처럼 해쓱해졌고 초점 잃은 눈길은 무릎우에 놓여있는 두손에 머물러있었다.

그렇듯 존경해마지 않던 강학선과장이, 그토록 숭배해온 유능한 의사가 지금 머리를 들지 못하고있는것이 그 녀자로서는 숨막히도록 가슴이 아프고 저려들었다.

하경옥에게 있어서 강학선과장은 미세수술을 배워주고있는 스승이였다. 그만이 아니라 대학을 졸업하고 새로 온 많은 젊은 의사들이 그에게서 정교한 수술조작을 배웠고 또 지금도 배우고있다.

그런데 누구보다도 강학선과 친교가 깊다는 권일학이, 의학계에서는 서로 재능을 다투는 그가 지금 강학선을 사정없이 무자비하게 공격하고있는것이다.

그 녀자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도, 원장이 회의장을 돌아보며 뭐라고 주의를 주는것도 알지 못했다.

회의를 지도하고있던 윤일국장이 의자등받이에서 몸을 떼며 누군가를 찾는듯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의 눈길은 먼저 교수, 박사들과 로력영웅, 조선의학협회와 산부인과 학위학직심의위원회의 골간인 안정호, 림현복, 림준호, 최성심 등을 차례로 훑더니 원장옆에 앉아있는 지성하에게서 멎었다.

《지성하선생, 선생의 의견은 어떻습니까?》

지성하가 꼿꼿하게 허리를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괴롭게 장내를 둘러보며 뜨직뜨직 말했다.

《제 책임이 큽니다. 제가 잘… 돕지 못했습니다. 인젠 그도 박사라고 해서 조언을 주는것도 주저했습니다. 조언이나 충고는 그가 누구건 우리 의사들에게 꼭 필요한것인데도 말입니다.》

그는 잠시 머리를 흔들더니 말을 이었다.

《예로부터 약으로 고칠수 없는것은 칼로 고치고 칼로 고칠수 없는것은 마음으로 고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음이란 사랑과 정성입니다. 환자가 눈물로 호소한다고 해서 서뿔리 수술칼을 댄다면 그를 어떻게 인간생명의 기사인 의사라고 하겠습니까? 저는 정말… 놀랍기 그지없습니다. 과학적담보가 없이 어떻게 몸에 칼을 댈수 있는가?》 지성하는 자기가 채 말하지 않은것을 강조하려는듯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물을 뿌린듯 조용한 회의실… 어디선가 억누른듯 한 흐느낌소리가 들렸다.

얼굴색이 거멓게 죽은 강학선의 옆에서 어깨를 떨고있는 녀의사를 스쳐본 윤일국장이 심중한 어조로 말했다.

《엄중하오. 협의회질서를 어기고 제 마음대로 수술을 하다니? 온 나라가 사랑의 집이라고 부르는 평양산원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수 있는가, 응?…》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떨구었다. 그렇다. 정연한 녀성건강관리체계가 세워진 평양산원에서는 모든 녀성들의 건강이 항시적으로 장악료해되고있으며 질병이 있는 녀성들과 산모들은 지체없이 입원시켜 부인병 치료와 해산방조를 받게 하고있다. 하여 산원은 보건성적으로도 환자치료에서 많은 성과를 거두고있는 모범병원이다. 그런데…

윤일국장의 좀 높아진 어성이 회의장을 계속 울렸다.

《회의에서 토론한 기술부원장의 비판이 전적으로 옳습니다. 여기 평양산원이 어떤 산원인가.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기 바랍니다라는 뜨거운 믿음의 말씀을 우리 산원 전체 종업원들에게 보내주시였습니다. 그래서 장군님의 그 말씀을 받들고 오늘까지 동무들은 환자치료에 뜨거운 지성을 다 바쳐왔습니다.

그런데 당에서 그토록 관심하고있구 또 온 나라가 다 바라보고있는 산원에서 이런 의료사고가 났다는것은 정말 불미스러운 일이 아닐수 없소.》

말을 끊고 장내를 둘러본 국장이 심각한 표정으로 옆에 앉아있는 임선해원장을 돌아보았다.

《앞에서 기술부원장이 명백히 비판했는데… 아무래도 문제를 세워야 할것 같소. 단순하게 그저 스쳐지날 의료사고가 아니라는것이 밝혀진 이상… 그렇지 않습니까, 원장선생?》

임선해원장은 대답이 없었다. 사업수첩우에 놓여있는 원주필을 손끝으로 만지작거릴뿐이였다.

한동안 회의장을 더듬던 임선해의 눈길이 강학선에게서 멎었다. 모지름쓰는듯 떨리는 손으로 무르팍을 비벼대고있는 강학선의 어두운 얼굴은 고통스럽게 이지러지고있었다. 임선해는 안타까운듯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어쩔수 없는 일이다.

협의회질서를 어긴 그 한가지 사실만도 엄중한것인데 권일학은 생명을 다루는 의사로서 강학선이 얼마나 위험한 모험을 했는가 하는것을 과학적으로, 그 어떤 자그마한 변명도 끼워들지 못하게 빈틈없이 론증하였던것이다.

임선해의 얼굴에 비껴든 어두운 그림자가 더욱 짙어졌다. 아무리 유능하고 오랜 의사라 해도 생명을 두고서는 그 어떤 모험도 용서할수가 없는것이다.

여전히 창밖에서는 소낙비가 창문을 두들겨댔다.

소란한 그 소리를 누르며 윤일국장이 당의 보건정책과 의사의 본분에 대하여 다시금 강조하고나서 회의를 결속하며 원장에게 말했다.

《인젠 어쩔수 없소. 법무위원회의 결론을 기다리는수밖에…》

그는 탁자우에 놓았던 서류가방을 집어들었다.

국장이 자리에서 일어나자 원장은 물론 회의장의 모든 사람들이 따라일어섰다. 그러나 유독 한사람, 탁자모서리에 눈길을 박고있는 기술부원장 권일학만은 그대로 앉은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들이 멀어져가고 회의장은 텅 비여가고있었다. 맨마지막으로 자리에서 일어난 권일학은 무겁게 옮기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어두운 방구석에 또 한사람이 남아있었던것이다.

강학선이였다. 나무등걸처럼 웅크리고있는 그는 머리를 떨군채 허탈에 빠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있었다.

그를 바라보는 권일학의 창백한 두볼이 가늘게 떨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단 말인가? 내가 강학선을?… 과연 내가 혈육처럼 사심없는 그를 곤경에 몰아넣었단 말인가?

손발이 저려들고 온몸이 굳어져 움직일수가 없었다.

《과장선생…》

강학선은 아무것도 듣지 못하고있었다. 그저 얼나간 눈길로 낯모를 사람을 쳐다보듯 망연히 얼굴을 들었을뿐이다.

권일학은 그만 눈길을 떨구었다.

《미안합니다.…》

강학선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발을 내짚던 그가 무엇에 걸채인듯 비칠거렸다. 권일학이 황급히 그를 부축했다.

그제서야 강학선이 그를 쳐다보았다. 아까와 같은 멍청한 눈이 아니였다. 번뜩이는 그 눈빛에는 서운하고도 노여운 그 무엇이 짙게 어려있었다.

강학선은 천천히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돌렸다. 까닭모를 분노가 서서히 연기처럼 차올랐다. 비로소 심장이 떨리고 쓰라린 아픔이 가슴을 긁어내렸다. 후회와 수치심, 이 모든것이 한꺼번에 그의 가슴을 비틀었던것이다.

《필요없네!》

강학선은 낮게 소리치며 단호하게 그의 손을 뿌리치고 출입문으로 향했다.

권일학은 갑자기 허리가 굽은듯 머리를 잔뜩 수그리고 회의실에서 나가는 그를 따라가다가 멈춰서서 손아귀가 아프도록 의자등받이를 그러쥐였다.

갑자기 피곤이 몰려오고 현기증이 났다. 그래, 이렇게밖에는 달리할수 없었단 말인가?! 지금껏 자기를 위해 애써온 그를 리론적으로, 의학적고찰로 두둔해주고 무마시킬수는 없었단 말인가?!…

권일학은 무거운 다리를 끌고 문쪽으로 향했다.

돌연 무엇이 발에 부딪치는것 같다. 그것을 피해가니 이번엔 또 무르팍을 짓쫗는다. 그대로 걸음을 옮기던 그는 누군가의 싸늘한 눈길이 자기의 등뒤에 와닿는것을 느끼며 다시 멈추어섰다. 머리를 돌려보니 하경옥이였다.

그 처녀는 처음부터 모든것을 다 지켜보고있었던것이다. 입을 꼭 옥물고 한동안 뚫어지게 그를 바라보던 하경옥은 끝내 아무말없이 그냥 돌아서 나가버리고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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