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3 회)


제 3 장 사랑하면 무엇이든 다 열린다


2


그 시각 전연구분대의 간호장 박현희는 박월선의 열번째 애기를 맡겠다고 한 자기의 편지약속을 두고 여러 사람들이 기뻐하고있다는것을 알지 못하고있었다.

그날도 현희는 중대장 안순남이 일하는 군민중소형발전소 물길굴공사장에 나갔다. 간호원들이 나타나자 웃동을 벗어던지고 일하던 3소대 부소대장이 안순남에게 큰소리로 보고했다.

《중대장동지, 군의소간호원들이 왔습니다.》

《그-래?》

착암기를 틀어잡고있던 중대장 안순남이 간호원들쪽으로 머리를 돌렸다. 순간 현희는 반사적으로 구배진 굴벽에 붙어서며 몸을 숨겼다.

그는 잠시 안순남이 누군가를 찾는듯 두리번거리는것을 지켜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간호원동무들, 또 왔구만. 오늘은 무슨 노래를 준비했소?》

안순남의 물음에 애어린 간호원이 뒤를 돌아보며 소리쳤다.

《간호장동지, 빨리 오세요.》

현희는 하는수없이 구배진 굴벽에서 나와 그들쪽으로 걸어가며 큰소리로 말했다.

《노래요?… 오늘은 돌림감기에 대한 위생선전을 하겠어요.》

《예?》 3소대 부소대장이 중얼거렸다. 《좀 따분한거구만.》

현희가 퉁을 놓았다.

《부소대장동무, 동문 제가 몸이 좋으니 끄떡없다는건데 자기 대원들 생각은 안해요? 자기 소대가 다 감기에 앓아누워도 상관없다는거지요?》

《아, 난 그저… 연설하는게 따분하다구 한 소린데…》

그가 떠듬거리며 뒤더수기를 긁적거리자 주위에 있던 병사들이 와- 하고 웃어댔다. 중대장 안순남이도 소리내여 웃으며 현희에게로 마주 왔다.

《간호장동무, 이제 저 부소대장이 감기에 걸리면 절대 약 한알도 주지 마오.》

부소대장이 팔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아, 제발 그러지 마십시오. 난 조금만 열이 나도 까무라치는 사람입니다.》

또다시 터지는 웃음판. 안순남이 구령을 쳤다.

《중대 휴식!-》

그러자 사방에서 청높은 소리가 그것을 받았다.

《휴식!-》

얼마나 좋은가. 그저 담배질이나 하는 휴식이 아니라 이 세상 제일 예쁘장한 간호원처녀들이 솔잎차며 무우생즙 같은것을 만들어가지고 현장지원을 나와있는 이런 때야말로 온몸의 피로가 일시에 증기발처럼 날려가버리는 즐거운 시간인것이다.

병사들이 떠들썩하며 중대장을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저저마끔 담배를 입에 물고 서로 불을 켜주기도 하며 앞으로 나서는 간호장에게 눈길을 모았다.

《동무들, 오늘은 류행성감기에 대해서 해설하겠어요. 사실 동무들도 감기라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요? 최근에는 감기가 제일 무서운 만병의 근원이라는것이 밝혀지고있습니다. 아까 3소대 부소대장동문 뭐라고 했어요? 아주 따분한거라구요?》

《아, 간호장동무, 나만 계속 몰아주면서…》

병사들이 웃어댔다. 그 웃음속에 서로의 친밀한 정이 오가고있었다. 현희는 계속했다. 입이 벙글써 해서 귀를 기울이고있는 병사들 한사람한사람을 눈여겨보며 해설사업을 했다. 병사들은 그의 재미나는 이야기에 마치 류행성감기가 무섭기는커녕 당장이라도 걸려봤으면 하고 바라는듯 한 표정이였다. 그들의 웃음띤 모습을 둘러보며 현희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세계적인 류행성감기에 대하여 그리고 그를 막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하여 실례를 들어가며 말했다. 위생선전의 마감은 간호원처녀들의 노래로 끝났다.

요란한 박수소리가 멎자 안순남이 현희에게 말했다.

《고맙소, 현희동무. 난 동무가 당장 제대를 앞두고있다는걸 알고있는데 이렇게 매일 현장에 나오니 무슨 말로…》

현희가 재빨리 그의 말을 막았다.

《인젠 중대동무들과 너무 정이 들어서… 그냥 떠날것 같지 못해요.》

《우리 동무들도 이제 동무가 없으면 몹시 섭섭해할거요. 자기들을 애기다루듯 하던 간호장이였으니까.》

《아니, 내가 애기다루듯 했다구요?》

《그게 뭐 나쁘오? 그만큼 정을 기울였다는 소린데…》

잠시 침묵이 흘렀다. 병사들은 간호원들을 둘러싸고 웃고떠들고있었지만 두사람은 갈래많은 생각에 잠겨 입을 다물고있었다.

이윽고 안순남이 조용히 물었다.

《이제 제대되여가면 또 애기간호원을 하겠소?》

《거야 물론이지요.》

안순남이 소리내여 웃어대자 현희가 퉁을 놓았다.

《중대장동지, 웃지 마세요.》

다음순간 현희는 숱한 전사들이 자기들쪽을 바라보고있다는것을 깨닫고 우정 청을 높여 말했다.

《참, 중대장동진 〈아기! 너 없이야〉라는 시를 들어본적이 있어요?… 없지요? 그럼 한번 들어보세요.》

현희는 잠시 두눈을 가늘게 좁히며 자기를 지켜보는 전사들을 둘러보다가 조용히 시를 읊기 시작했다.


아기!

너없는 집은 불이 꺼진 집

웃음을 모르는 집

미래가 없는 집


네가 있어 집집마다

꿈이 있고 웃음이 있단다

네가 있어 엄마 아빠들은

한생 힘든줄 모르고 일하는거란다

그 땀으로 내 나라는 부유해지고

인민은 길이길이 늙지 않는거란다…


시를 읊던 현희가 북받치는 감정에 겨워 한순간 숨을 돌리는데 안순남이 큰소리로 말했다.

《그거 정말 좋은 시구만!》

현희는 그에게 가볍게 눈을 흘기고 시를 마저 읊었다.


아기! 너없이 인생의 노래가 있으랴

아름다운 생활이 있으랴

너를 위해 우리

그리도 열렬히 삶을 사랑하고

너를 위해 병사들

피흘려 조국땅 지키는거란다


《그건 옳소! 아기들은 조국의 미래이니까.》

안순남의 그 말에 숱한 전사들이 떠들썩 호응해나섰다. 현희는 무엇때문인지 눈굽이 쩌릿해졌다. 조그마한 손에 푸르고 줄기찬 미래를 꼭 쥐고 이 세상에 태여났다는 아기, 천사같은 모습으로 엄마, 아빠들을 사랑에로 떠민다는 아기, 더없이 훌륭하고 사랑스러운 이런 아기들이 애기간호원인 그에게 맡겨질 때마다 현희는 처녀인 자기도 마치 그 아기들에게 말을 배워주고 사랑을 듬뿍 주는 아기들의 엄마가 되는듯 했었다.

안순남이 웃음을 거두지 않고 물었다.

《그런데 그 시는 어떻게 알게 되였소?》

《평양산원에서 애기를 낳은 한 녀류시인이 쓴건데 아기에 대한 시여서 수첩에 베껴두었거던요.》

《아, 그렇소? 참 좋은 시이구만. 어떻소, 동무들?》

《예, 좋습니다!》

벙글거리던 전사들이 기운차게 대답했다.

현희는 감동어린 눈빛으로 전사들을 둘러보았다. 그 누구보다 강하고 굳센 사나이들이 아기에 대한 시를 그처럼 뜨겁게 받아안는것을 보니 별안간 어머니사랑에 대한 숭엄한 감정이 가슴을 흠뻑 적시는것이였다.

안순남이 정색하여 말했다.

《현희동무, 난 태여나는 애기들에 대한 시도 있다는걸 처음 알았구만. 그 시를 들으니 평양산원이 눈앞에 안겨오면서 거기에 깃든 우리 장군님의 사랑이 가슴뜨겁게 안겨와 마치 나도 거기서 태여난것만 같았소.》

현희는 숨도 쉬지 않는듯 입을 벌린채 그에게 눈길을 떼지 못하고있었다.

《어쩌문!… 막 정이 가는군요.》

《뭐, 정? 하!… 이거 일이 별나게 된다?》

전사들이 떠들썩 웃어대자 현희는 얼굴을 붉히며 말을 떠듬거렸다.

《아이참! 웃지 말고 들어보세요. 사실 난 지난날 애기간호원으로 일하면서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은 뜨겁고 인정깊지만 아이들을 고와하지 않는 사람은 차고 매정한 사람이라는걸 알게 되였어요. 중위동지가 아이들에 대한 그 시를 듣고 자기도 우리 장군님의 사랑속에 솟아난 평양산원에서 태여난것 같다고 하는 말이 얼마나 반가운지…》

안순남은 아무말없이 코잔등을 긁으며 처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전사들도 자기들에게 차례지는 솔잎차를 마시며 간호원들을 둘러싸고 웃고 떠들며 롱질을 했다. 이들중에 많은 전사들이 평양산원에서 첫울음을 터뜨리며 태여났던것이다.

이렇게 벅찬 날들이 흘러갔다.

안순남은 나날이 자기가 현희가 나타나기를 은근히 기다리고있다는것을 깨닫고 무등 놀라와했다. 현희 역시 공사장에 지원나올 때마다 중대장인 안순남을 먼저 찾고 남몰래 정찬 눈빛을 던지게 되는 자신을 발견하고 가슴을 울렁이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안순남은 한생 총쥔 병사로 살 맹세를 다진 사람이였고 현희는 애기간호원을 희망하는 처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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