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6 회)


제 3 장 사랑하면 무엇이든 다 열린다


5


불임증연구실에는 위인섭이 없었다. 권일학은 의아한 눈길로 홍정순실장을 바라보았다.

홍정순실장이 놀라운 표정을 지었다.

《모르고계셔요?》

《뭘 말이요?》

위인섭이 떠난다면서 로동과에 내려갔다는것이다.

《글쎄 여기선 암만 해봐야 남을게 없다면서 어느 무역회사로 간다지 않습니까. 우리 연구실에선 제일기둥연구사였는데…》

《뭐라구?!》

권일학은 한방망이 얻어맞은듯 멍하니 홍정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유난히 눈에 뜨이는 두볼의 주근깨를… 자그마하고 이악한 그 녀자의 얼굴에 이런 주근깨들이 박혀있다는것을 처음 알게 된것이 놀라왔다.

왜 몰랐을가? 위인섭이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줄을! 조금만 빨리 왔어도, 지체없이 달려왔어도… 웬일인지 자기가 늦어져서 그가 떠나가버린것만 같았다. 권일학은 더 생각할새 없이 몸을 돌려 실험실을 나와버렸다.

뒤에서 홍정순실장이 뭐라고 했으나 계단을 서너개씩 뛰여넘으며 아래층으로 향했다. 오가는 사람들이 깍듯이 인사할 때마다 머리를 끄덕이군 했지만 생각은 온통 위인섭에게 가있었다. 위인섭은 불임증연구사가 아닌가. 강학선이 소동을 일으켰던 그 불임증환자 아니, 선우금숙을 포함한 많은 녀성들이 기대를 가지고있는 체외수정연구사인것이다. 그는 다른 곳이 아니라 바로 산원에, 불임증연구실에 있어야 한다.

그때였다. 갑자기 누군가 눈앞으로 날아들면서 그의 가슴을 힘껏 떠박질렀다. 로동과에서 정신없이 뛰쳐나오던 위인섭이였다.

《아, 실례했습니다! 부원장선생님, 어디 다치지 않았습니까?》

권일학은 가슴을 그러쥐며 그를 바라보다가 신음소리처럼 나직이 말했다.

《내 그러지 않아도 만나려 했는데…》

《저를요?!-》

《여기서 나간다는데… 그게 정말이요?》

《예- 그렇습니다.》

《음, 사실이였구만. 그래 정말 가겠소?… 선생은 무역회사가 아니라 우리에게 있어야 할 사람이요. 산원사람들의 기대도 크고…》

위인섭이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은채 무심하게 웃었다.

《절 붙잡아두자는겁니까? 설복하지 마십시오. 전 이미 결심한 사람입니다.》

《그럼 선생이 연구하던 체외수정은 어떻게 하구?》

《체외수정이요? 그게 무슨 상관입니까? 부원장선생이 우리 연구실을 맡은것도 아닌데…》

《물론 상관없을수도 있지. 그러나 난 동무가 남다른 실력을 가지고있으면서도 그처럼 중요한 체외수정연구를 포기하구 무슨 무역회사로 간다고 하니…》

《예, 가기로 결심했고 통보도 다 했습니다.》하고 위인섭은 손에 들고있던 종이장을 슬쩍 들여다보며 미간을 찌프렸다. 《솔직히 말해서 난 의사직업에 신물이 납니다.》

《뭐?》

《부원장선생두 잘 알고있겠지만 사람마다 자기가 전공하는 무기가 있지요. 음악가들은 바이올린이나 기타 같은 악기를, 또 군인들은 총이나 장검을 차고다니며 그것을 한시도 몸에서 떼지 않습니다. 의사들의 무기는 뭡니까? 수술칼? 지혈겸자? 주사기?… 그것들이 아무리 귀중한것이라고 해도 그걸 장검처럼 차고다닐수야 없지 않습니까?》

《그럴 필요가 없어서 그러지.》

《옳습니다. 수술칼이란 째고 자르는… 랭정하고 무자비한것의 상징이니까요.》

《아니, 잘못 생각하고있소. 그건 진실하고 참된것이요.》

위인섭은 또다시 무심하게 웃어버렸다.

《언제보나 부원장선생은 옳은 말을 하지요. 그래서 다들 처음엔 반했구… 하지만 알고보니 실천에서는 다른것 같더군요.》

《그래도 난 동무처럼 고귀한 의사직업을 배반하는…》

갑자기 위인섭이 눈꼬리를 치뜨며 그의 말허리를 잘랐다.

《배반?!… 그래 제가 뭘 배반했다는겁니까, 예?…》

《그건…》

지나가던 관리원이 놀란 눈빛으로 그들을 살피며 지나갔다. 이어 아래층에서 올라오던 회계원도 무춤 걸음을 멈추었다가 재빨리 눈인사를 하며 지나갔다.

권일학은 위인섭의 팔소매를 끄당기였다.

《가만, 여긴 안되겠소.》

그는 맞은편에 있는 조용한 방으로 위인섭을 끌고들어갔다. 콤퓨터를 마주하고있던 녀직원이 문을 열고 들이닥치는 그들의 엄엄한 표정을 놀라서 바라보더니 권일학이 눈짓하자 자리에서 일어나 그림자처럼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내 언제부터 동무에게 하고싶은 말이 있었는데…》하고 권일학은 위인섭의 불깃해진 얼굴을 면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동문 무슨 거꿀법칙이요. 뭐요 하면서 뒤로 가는 리론을 펴군 하던데… 그래 말해보오. 남들은 다 자기 직무에 충실하게 앞으로 가고있는데 동문 체외수정연구를 완성하겠다고 장담하고서도 이제 와선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리고 무역회사로 방향을 돌렸으니 그래 그게 배반이 아니란 말이요?》

위인섭은 한순간 당황한듯 했다. 눈을 내리깔고 가쁜숨을 몰아쉬더니 갑자기 도전적으로 눈빛을 번뜩이였다.

《그러니 부원장선생은 내가 신성한 의학을 버리고 편안한데로 간다는 소리인데…》

《옳소. 나도 그 말을 하고싶었소. 의학자의 량심과 책임을 지닌 사람이라면 과연…》

순간 위인섭의 번쩍이던 두눈이 가늘게 좁혀지더니 랭소가 비낀 싸늘한 말이 튀여나왔다.

《량심과 책임?!… 그럼 좋습니다. 말이 난김에 한가지 묻겠습니다. 그래 부원장선생은 그 량심과 책임에 대하여 론할 자격이 있다고 봅니까?》

《그건… 또 무슨 소리요?》

《그걸 꼭 내가 말해야 합니까. 영화에도 있지요? 자신에게 몰어보라!… 부원장선생은 자기가 데리고있는 강학선과장이나 서범천선생도 책임져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얼마나 말들이 많은지 압니까?》

《뭐요?》

권일학의 어성이 높아졌다. 찌르는듯 한 그의 눈빛도 날카로와졌다.

위인섭이 하던 말을 계속했다.

《사실 이런 말은 하지 말자고 했는데… 하긴 떠나는 사람이니 뭐 잴것두 없지요. 내가 말하고있는 거꿀법칙은 수학상에서 정리의 가정과 결론을 바꾸어 얻은 명제이지만 부원장선생은 생활에서, 인간호상간에 그 거꿀법칙을 리용하고있단 말입니다. 남들이 사랑하면 미워하고, 남들이 아껴주면 밀어버리고… 전 여기서 강학선과장선생이나 서범천선생처럼 그렇게 되고싶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다니?…》

《부원장선생은 처세술에 능하군요. 벌써 나같은것도 필요없다고 원장선생에게도 말했겠지요? 내가 부원장선생의 뒤소리를 한다고 싫어하는줄 뭐 모르는줄 압니까?》

《아니, 인섭선생?》

《됐습니다. 인젠 난 누구도 믿지 않습니다!》

위인섭은 더 할 말이 없다는듯 문을 열고 나갔다. 이어 쾅!- 문닫기는 소리가 권일학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갑자기 목이 타들었다. 웬일일가? 저 위인섭이도 강학선이나 하경옥이처럼 자기를 그렇게 보고있다. 그는 말라드는 입술을 추기며 조여든 넥타이매듭을 풀어놓았으나 여전히 답답한 가슴은 열리지 않았다.

얼마후 그는 당비서방으로 갔다. 방은 비여있었다. 당비서 림숙정이 지금 치료대를 이끌고 대홍단에 가있다는것을 비로소 생각해냈다.

몸을 돌려 성급하게 걸음을 다그쳤다. 차츰 머리가 지끈거리고 충혈진 두눈이 아파났다. 또 무춤 멎어섰다. 머리를 들어보니 원장방이다. 저도 모르게 힘껏 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대답소리가 들리기도 전에 힘주어 문을 밀고 들어섰다.

그는 숨찬 목소리로 다우쳐물었다.

《원장선생, 그에게 허락했다는게 정말입니까?》

사업수첩에 무엇인가 써내려가던 임선해원장의 손이 멎어섰다.

뜻밖에도 그의 어조는 침착했다.

《위인섭연구사 말인가요? 예, 허락했어요.》

번쩍이던 권일학의 두눈이 한순간 놀란듯 굳어졌다.

《그러니 원장선생은?…》

《그래요, 위인섭은 사랑과 헌신으로 복무하는 의사직업엔 적합치 않습니다. 정신이 흐려있단 말입니다.》

권일학은 아무 대꾸도 없이 임선해원장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동안 처음 보는 사람처럼 그의 훤한 얼굴을 바라보고있던 권일학은 생각에 잠겨 낮은 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런걸 난 또…》

《그러니 부원장선생은…》

《아니, 차라리 잘됐습니다. 그런 사람은…》 어째선지 자기의 목소리가 공허하고 랭담하게 들린다는것을 느끼며 권일학은 계속했다. 《저 가고픈데로 가도록 그냥 내버려두는게 낫지요. 우리에겐 그런 사람이 필요없으니까요.》

마지막말은 얼음장처럼 차거운것이였다.

사업수첩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임선해원장이 그의 류다른 어조에 머리를 기웃거렸다.

《기술부원장선생, 무슨 말이예요?》

권일학은 자기앞에 있는 의자등받이를 꽉 움켜쥐며 주저없이 원장을 마주보며 또 말했다.

《그리구 서범천이도 같지요. 밤낮 첨단기술인 복강경수술을 개척한다고 떠들기만 하더니 이제 와선 내놓구 못하겠다는 소리만 하면서… 거기에 또 하경옥선생은 뭡니까? 지금 쓰고있는 무통법에 만족해서 만세만 부르고있지… 필요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다 제 하고싶은대로 내버려두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가 하려던 말이 아니였다. 그러나 무엇이라고 찍어말할수 없는 불만을 가까스로 누르며 또 비뚤어진 소리를 했다.

《다 보냅시다, 제 가고싶은데로 다!…》

임선해원장이 펼쳐놓은 사업수첩에 두팔굽을 올려놓으며 그를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그건 지나친 말이군요. 나도 결김에 위인섭에게 소리치긴 했지만…》

권일학은 움켜잡고있던 의자등받이를 삑- 하고 당기며 자리에 앉았다. 그의 눈빛은 흥분으로 번뜩이였다.

《사실말이지 위인섭이 간다고 해서 자리가 나는건 아니지요. 위인섭이나 서범천을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지금도 이 기술부원장의 자리에 앉혀놓으면 더 일을 잘할수 있는 사람이 우리 산원엔 많고도 많다는겁니다.》

임선해원장의 얼굴에 어두운 그늘이 졌다.

《기술부원장선생, 왜 그렇게 흥분하고있습니까?》

권일학은 머리를 들지 않은채 꽉 움켜쥐고있는 자기의 깍지낀 두손을 내려다보았다. 내심의 그 어떤 격렬한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며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임선해원장이 조용히 말했다.

《부원장선생, 내게 의견이 있으면 직방 말해주세요, 괜히 엇드레질은 말고.》

권일학은 머리를 들었다. 격한 마음을 억누르는듯 잠시 그를 쳐다보고나서 입을 열었다.

《원장선생, 그럼 말해봅시다. 전 리해되지 않습니다. 인재들을 제일 아끼던 원장선생까지 그럴줄은…》

《그러니… 기술부원장선생은 위인섭을 내보낸것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는 우리 산원에 꼭 필요한 사람입니다. 인재를 그렇게 다 놓쳐버리면 우리 산원의 기술진영은 어떻게 됩니까?》

《…》

《원장선생, 그는 재능있는 사람입니다. 나도 그가 삐뚤어진 소리를 할 때마다 좋지 않게 생각했지만 그건 일시적인거구… 사실말이지 저나 원장선생이 그를 설복시켜야 했습니다.》

임선해원장이 사업수첩을 덮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언제나 웃는 얼굴로 사람들을 대해주군 하던 그였지만 지금은 딱딱하고 랭정해보이기도 했다.

《아니, 위인섭은 이미 자기 리속과 타산밖에 모르는 리기주의자가 됐어요. 그런 사람을 붙잡아두어야 더 오만해질뿐이예요.》

권일학은 두눈을 내리깔았다. 한없는 피로가 그의 마음을 그림자처럼 뒤덮었다. 모든 일이 이렇게 힘이 드는가? 아니면 나의 힘과 능력이 이 산원의 기술부원장을 감당하기엔 부족한것인지?…

아까는 괜히 서범천이나 하경옥을 두고 뭐라고 했지만 그것은 사실 원장에게가 아니라 맥을 놓고있는 자기자신을 비꼰 소리였었다. 물론 이 산원에서 서범천이나 하경옥이 지금껏 해놓은 일은 작은것이 아니였다. 벌써 복강경수술은 인체수술에 접근했고 하경옥이 연구한 약물무통법은 산과에 도입되여 일반화되고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만족할수 없는 이 평양산원인것이다.

한동안 두눈을 내리깔고있던 권일학은 깍지낀 손을 활 풀어버리며 머리를 번쩍 들었다.

《원장선생, 전 기술부원장으로 여기에 처음 올 때 첨단기술을 중시하는 평양산원을 두고 정말 기뻐했습니다. 우리 장군님께서 관심하고계시는 평양산원이 다르다고 말입니다. 희망과 포부도 그만큼 컸구요.》

권일학은 잠시 말을 끊고 가쁜숨을 몰아쉬였다. 마음이 아프고 괴로왔다. 심장을 꼬집는듯 한, 가슴을 허비는듯 한 아픔에 저도 모르게 목소리가 젖어드는것을 느끼고있었다.

《그런데 원장선생까지 이럴줄은… 어디 좀 말해보십시오. 그런 인재를 보내고도 마음이 편합니까?》

임선해원장은 손에 들고있던 원주필을 놓았다. 권일학을 마주보는 그의 눈빛은 서늘하였다.

《부원장선생, 그렇게 속단하진 마세요. 기술부원장선생도 여기 와서 많은것을 느꼈겠지만 난 지금도… 가슴이 저려드는걸 어쩔수 없어요. 우리 인민이 최대의 국상을 당했던 그날… 수령님을 모신 령구차가 바로 이 평양산원 앞도로에서 떠나지 못할듯 멈추어섰던 일을 생각하면 난 정말… 그때 온 산원이 눈물에 젖어 곡성을 터뜨렸지요.

〈어버이수령님, 어디로 가십니까? 못 가십니다. 우리를 두고서는… 못 가십니다!〉하고…

정말 그때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생전에 그처럼 사랑해오시던 이 나라 녀성들과 아이들을 두고 차마 가실수 없으시여… 그토록 오래 멈추어 서계신것이 아니겠어요? 난 당비서동지랑 같이 사람들에게 울면서 말했어요.

〈동무들, 어버이수령님께서 우리를 믿으시고 온 나라 녀성들을 맡기고 가십니다. 모두 눈물을 닦고 일어나자요. 아픔을 이겨내며 치료사업을 더 잘합시다.〉하고 말이예요.

많은 의사, 간호원, 직원들이 맹세했어요, 수령님의 유훈을 지켜 치료사업에서 더 큰 성과를 올리겠다구요.… 그날 손바닥으로 눈물을 훔치며 목메여 맹세를 다지던 위인섭이 그날의 맹세를 벌써 잊어버리고말았어요. 수령님령전에 다진 맹세를 잊고 투정질을 하다못해 딴길을 가겠다고 제기해왔어요. 그가 가는 딴길이 과연 어떤 길인가요. 은혜를 저버리고 맹세도 저버리는 이런 사람을 그냥 붙잡고 사정을 해야겠어요? 아니, 이건 위인섭이란 사람의 능력과 품성에 대한 문제이기 전에 신념과 의리에 대한 문제예요. 난 단호하게 결심했어요. 그런 배은망덕은 절대 용서할수 없다고 말이예요.》

그의 어조는 서리찼다. 한 인간에 대한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경멸과 증오까지 뒤섞인 무서운 단죄였다.

권일학은 입이 얼어붙은듯 했다. 가슴속에 꽉 들어찬 갖가지 복잡한 생각들로 하여 숨쉬기조차 힘들었다. 물론 원장선생의 말은 전적으로 옳다. 그것은 시대의 요구이고 법도이기도 하다.

한동안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임선해원장이 그를 눈여겨보며 나직이 말했다.

《하고싶은 말이 있으면 다 하세요.》

권일학은 머리를 들었다. 마른침을 꿀꺽 삼키고 천천히 말을 시작하였다.

《원장선생도 알고있는것처럼 전… 처음 여기 오면서 생각… 아니, 결심했다고 할가… 우선 주인구실을 하자, 인민을 위하여 복무하기 바랍니다라고 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벽에 모셔놓지만 말고 진정 녀성들에 대한 의료봉사수준을 더욱 높이자, 우리 평양산원을 반드시 어버이수령님께서 생전에 바라신대로,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치신대로 첨단의학기술을 겸비한 세계 1류급의 녀성종합병원으로 만드는데 힘껏 이바지하자! 이렇게 결심했습니다.》 차츰 그는 흥분어린 목소리로 열을 내여 계속했다. 《그래서 전… 우리 평양산원이야말로 진정으로 민족의 태줄을 지켜주는 가장 현대적인 병원, 미세수술이나 체외수 정, 복강경수술과 같은 첨단기술에서도 일등급의 산원이 되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원장선생도 그때 저의 결심을 들어보고 얼마나 반가와하구 기뻐했습니까. 그래서 적극 지지해주구… 그런데 오늘 뜻밖에 이런 일이 생기니… 맥이 빠집니다. 정말 힘이 듭니다.》

임선해원장은 두팔굽을 책상에 올려놓은채 까딱 움직이지 않고있었다. 줄곧 말없이 앞쪽만 바라보고있는것이 마치 이 방에 그 누군가가 또 있다는것을 잊고있는듯 했다.

이윽고 임선해원장이 그에게 눈길을 돌렸다.

《부원장선생, 그러지 마세요. 기술부원장선생의 결심과 의지에 따라 자기가 맡고있는 의료집단의 목표와 실력이 높아지거나 낮아진다는걸 잘 알면서도 그러면 되겠어요? 절대 흔들리지 말고 자기 결심을 끝까지 내미세요.》

《하지만 위인섭은…》

《그에 대해선 이미 말하지 않았어요. 의리도 모르는 사람에게선 아무것도 기대할것이 없어요.》

《그러니 원장선생은 끝내…》

저도 모르게 신음소리같은것이 새여나왔다. 탁자모서리를 움켜쥐였던 손아귀가 아래로 처지며 맥없이 풀렸다. 더이상 아무 말도 하고싶지 않았다.

권일학은 갑자기 목이 뻣뻣하게 아파나는것을 느끼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정말 힘이 듭니다. 윤일국장동지까지 복강경수술을 반대하는데다가 원장선생도 그러니… 정말 자신이 없습니다. 차라리 전 기술부원장을 그만두고 그저 의사로 일하는것이 더 나을것 같습니다.》

《부원장선생!》

《아니 원장선생, 전 정말 힘듭니다. 더는… 기술부원장을 못하겠습니다!》

《뭐, 못하겠다구요?!…》

임선해원장이 부르짖었다. 그러나 벌써 자리에서 일어난 권일학은 두눈을 내리깐채 문쪽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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