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9 회)


제 3 장 사랑하면 무엇이든 다 열린다


8


서범천과 헤여진 한송애는 어느 한 아빠트현관에 들어섰다. 여기에 먼저 오지 않고서는 집에 가서도 밤새껏 잠들수 없을것 같았다.

그는 익숙된 동작으로 3층에 있는 어느 한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윽고 문이 열리자 안에서 밝은 빛이 확 쓸어나왔다.

《아니, 이게 누구냐? 너 송애구나! 어서 들어오너라, 어서!…》

부엌에서 저녁준비를 하고있던 녀인이 나와 반갑게 맞아주었다.

《외삼촌어머니, 잘있었어요?》

한송애가 들어서자 외삼촌어머니는 벗어든 그의 외투를 전실에 있는 옷걸개에 걸며 연방 혀를 찼다.

《에그, 벌써 애 한둘은 업고다녀야 할텐데… 외삼촌은 그저 네 걱정뿐이다, 이 가을엔 꼭 시집을 보내야겠다구.…》

《외삼촌은 또 그 소리! 내가 말했지요?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기 전에는 시집을 안 간다구…》

《에그, 처녀들이 시집 안 간다는 말은 거짓말중에서도 첫째가는 거짓말이라더라. 나이를 그만큼 먹구두 원… 어서 방에 들어가보아라. 외삼촌두 오늘은 일찍 들어오셨다.》

《그래요?》

방에 들어서니 안경을 낀 보건성 국장 윤일이 안락의자에 깊숙이 몸을 잠그고 자료철들을 보고있었다.

《외삼촌! 안녕하세요?》

윤일이 자료철에서 눈길을 들었다.

《음, 네가 왔냐? 참 오래간만이다. 그래 앓지는 않았니?》

《아니요-》

송애는 몸가짐새를 바로하며 맞은편에 놓여있는 초물방석에 가앉았다. 윤일이 다시 자료철에 눈길을 주며 말했다.

《그런데 좀 피곤한 모양이구나. 무슨 일이 있었냐?》

《아-뇨.》

한송애의 같은 대답에 윤일이 다시 머리를 들고 안경너머로 조카딸을 눈여겨보았다. 약간 흘겨보는듯 한 억실억실한 눈매는 꼭 제 어머니를 닮았다. 오래전부터 윤일은 자기 집뿐아니라 누이동생의 집에서도 가장으로 되고있었다. 어려서부터 부모들을 일찍 잃은 누이동생은 윤일을 오빠라기보다 아버지처럼 믿고 의지하고있었고 윤일도 역시 그 집안의 모든것을 주관하고 처리하는것에 습관되여있었고 또 응당한것으로 여기고있었다. 두 집안의 모든 일은 크든작든 웃어른인 윤일에게 집중되였고 누이동생의 집에서는 무엇을 하나 해도 그의 의견과 결론을 따르군 했다.

윤일은 하나밖에 없는 조카딸을 제 친자식처럼 여겼고 각별한 관심을 돌려오고있었다. 그래서 더 엄하게 그를 대하군 했는지도 모른다.

《네가 요즘 사업에서 탈선되는 모양이구나. 사람들이 아껴줄수록 일을 더 잘해야지.》

손가락으로 초물방석의 가장자리를 뜯어내고있던 한송애가 새침해서 그를 올려다보았다.

《사업에서 탈선되는건 내가 아니라 바로 외삼촌이예요!》

윤일이 안경을 추스르며 놀란 눈길을 들었다.

《너 그게 무슨 소리냐?》

《복강경수술 말이예요, 외삼촌이 그걸 반대하고있지요?》

《뭐라구? 복강경수술?… 아니, 네가 그걸 어떻게 알구있니?》

《다 알지요 뭐! 전기에네르기가 전자들이 호상 작용하고 운동함으로써 얻어지는 에네르기라면 복강경수술기구는 그 전기에네르기를 응용한 의료전자기구거던요.》

《허-》

윤일은 허거프게 웃으며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럴수도 있다고 너그럽게 생각하는 표정이였다.

《그래, 복강경수술설비들은 거의다 첨단기술을 도입한 전자의료설비들이지. 지금 세계의학과학기술에서도 복강경수술이 추세로 되고있구.》

《그래요, 외삼촌! 산부인과분야에서 내시경수술의 기본으로 되고있는 복강경수술은 새 세기의 기본수술방식이예요. 이것은 외과분야에서 일어난 하나의 기술혁신이며 최신의학과학기술성과의 결정체란 말이예요. 외삼촌은 이 첨단기술이 우리 녀성들의 질병치료에 도입되는것을 한사코 반대하고있지요? 보건성 국장인 외삼촌이 말이예요.》

《내가?…》

윤일은 안경을 탁자에 벗어놓으며 쏘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창문옆에 놓여있는 보온병에서 더운물을 따라 한모금 마시고나서 조카딸에게 돌아섰다.

《나도 반대하는건 아니야. 네 말처럼 복강경수술은 외과분야에서 일어난 하나의 기술혁명이다. 최첨단이지.… 당에서는 녀성들을 위해 평양산원에 그 복강경설비를 선물로 보내주었는데 그것을 다룰 사람이 없어 그냥 두고있으니 참, 가슴아픈 일이지.…》

윤일의 얼굴에 돋은 로인성반점이 더 짙어갔다. 그도 보건성 국장으로서 첨단기술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있는 사람이다. 당에서 보내준 복강경설비를 하루빨리 환자치료에 리용한다고 보고올렸으면 얼마나 좋으랴!… 그래서 더 깊은 지식을 배우러 실습생들을 보내려 했었다. 그런데 젊은 기술부원장이 반대하고있다. 외국에서가 아니라 자체로 완성하여 과학기술축전에 내놓겠다는것이다. 여기에 서범천이라는 고집스러운 청년이 바람에 둥 떠서 황새걸음을 하고…

윤일은 자기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는 조카딸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무리 서범천이라는 청년이 자체로 한다 해도 직접 배워오는것만 하겠느냐? 안돼!… 이제라두 수재들을 선발해서 외국실습을 보내야 한다, 투자해야 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그것만이 가장 빠른 길이야.》

《아니예요, 외삼촌.》 한송애가 안타깝게 두손을 마주 비비며 그에게 부르짖었다. 《외삼촌은 외국에 가야만 최첨단기술을 익힐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외삼촌은 왜 우리 청년들을 믿지 못해요, 예?》

《그만해라! 네가 뭘 안다구. 그런 일에 상관하지 말고 제 일이나 잘해라. 음-》

윤일은 반백의 머리를 흔들며 무슨 말인가 더 하려는 조카딸을 밀막아버렸다.

그러나 한송애는 여무지게 내쏘았다.

《외삼촌같은 일군들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날개를 펴지 못하고있어요. 기존방식으로 모든것을 재면서… 높은 자리에서 웃천정처럼 빛을 가리우고있으니 어떻게 새것이 자라겠어요!》

《뭐라구? 누굴 가르치려들어?》

《낡았어요, 외삼촌은!… 두고보세요, 복강경수술은 꼭 성공할거예요!》

자리에서 일어난 한송애는 문을 홱 열어제끼며 전실로 뛰쳐나왔다.

부엌에 있던 외삼촌어머니가 따라나오며 붙잡았다.

《아니, 왜 그러니?》

《내 금방 외삼촌을 되게 비판했어요.》

《원, 저런!》

《절대 삼촌 편들지 말라요, 예?》

송애는 어리둥절해있는 외삼촌어머니의 얼굴에 입술을 살짝 갖다대고는 소리내여 웃으며 밖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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