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2 회)


제 3 장 사랑하면 무엇이든 다 열린다


11


박현희가 간호장으로 복무하고있는 전연구분대의 야산에서는 아침마다 빨간 단풍나무가 전사들의 눈길을 끌군 했다. 가을이 한창이였다.

드디여 제대명령을 받은 현희는 그날도 여느때처럼 현장지원을 나온 간호원들과 어울려 중대원들과 함께 발전소 물길굴 갱밖으로 나가고있었다. 굴입구에 거의다 왔을 때 갑자기 그는 걸음을 멈추었다. 그만 갱안에 중대전사들의 개별검진자료를 두고 나왔다는 생각이 피끗 떠올랐던것이다.

황황히 갱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갱입구에서 인원을 점검하고있던 안순남이 퉁명스럽게 물었다.

《왜 그러오?》

《볼일이 있어서요.》

현희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며 굴안으로 좀더 들어갔다. 처음에는 눈을 밝혀 자기가 흘린 개별검진자료를 찾다가 마음이 언짢아져서 입구에 서있는 안순남에게 토라진 소리를 내뱉았다.

《나만 보면 큰소리라니까. 내가 뭐 귀찮은 손님인가?》

《허, 참!》

그때 얼마나 무서운 일이 다가오고있는것인지 알았더라면 아마 안순남은 절대 처녀를 굴속에 들여보내지 않았을것이다.

갱의 한구석에서 공구들을 주어모으고있던 나어린 전사가 다시 들어오는 현희를 보고 소리치며 물었다.

《간호장동지, 이걸 찾습니까?》

그의 손에는 현희가 찾고있던 검진자료가 들려있었다.

《아, 거기 있었군요.》

그 전사에게 달려가 두툼한 검진자료를 받아 위생가방에 쑤셔넣던 현희는 이상한 예감에 머리를 들었다.

《이게 무슨 소리예요?》

《앗! 간호장동지, 저기!…》

어린 전사가 다급히 가리키는 곳을 올려다본 현희는 그만 몸서리쳤다. 그들의 바로 몇발자국 머리우의 굴천정에 지압이 오면서 무시무시한 소리가 전류처럼 스쳐가고있었던것이다. 무서운 일,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있다는것을 깨달은 순간 현희는 무작정 어린 전사를 잡아끌었다.

《아!- 위험해요, 전사동무!》

굴입구에 서있던 안순남이 뭐라고 소리치며 달려들어오는것이 보였다. 지압에 눌리운 굴천정에서는 벌써 작은 돌들과 부스레기가 떨어져내리고있었다. 현희는 무거운 공구들을 안고 비틀거리는 어린 전사에게 목터지게 부르짖었다.

《빨리! 빨리요!-》

필사적으로 웨치던 현희는 더 생각할새없이 자기앞에서 어룽거리는 어린 전사를 마주오는 안순남에게로 힘껏 떠밀쳤다.

《피하세요!-》

순간 무섭게 무너져내리는 암반, 요란한 소리와 함께 별안간 천근만근 무거운것이 처녀의 허리를 사정없이 짓눌렀다.

《아!…》

《간호장동지!-》

《현희!-》

목갈린 웨침, 누가 그렇게 부르짖었는지…

모든것이 어둠속에 묻혀버렸다. 한줄기 가느다란 안전등빛도 어데론가 가뭇없이 사라지고… 한순간에 처녀는 무너져내린 돌에 깔리워 의식을 잃고말았다.

현희는 며칠만에야 의식을 차렸으나 몸을 움직일수 없었다. 무서운 하반신마비였다. 간호원들이 안타깝게 그를 붙잡고 흔들었다.

《간호장동지!… 이젠 어쩌면 좋아요, 예?…》

꿈꾸는듯 한 현희의 눈길이 울고있는 간호원들의 얼굴에서 차츰 창가로 옮겨갔다. 해빛밝은 아침이였다. 새들의 지저귐소리… 군의소 앞마당에서 코스모스의 꽃향기도 풍겨오는듯 싶다. 오늘은 마지막으로 꽃밭의 북을 주기로 했었지. 그리고 오후엔 애들이 많은 박월선아주머니의 집에 들리고… 참, 산원에 편지를 쓰려고 했었는데…

《아!-》

몸을 움직이는 순간 무서운 동통이 그를 휩쓸었다. 그제서야 모든것을 상기한 현희는 자기가 더는 꽃밭의 김을 맬수 없다는것을, 솔잎차를 달일수도 없으며 다시는 산원의 애기간호원이 될수 없다는것을 분명히 깨달았다. 부지중 달달 말라든 그의 입술이 맥없이 벌어지며 바람소리같은것이 흘러나왔다.

《아!- 끝장이구나.》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도 사랑했건만… 나의 초소, 나의 전우들 그리고 꿈결에도 보이던 나의 평양산원과 끝없이 입맞추고싶던 애기들. 인젠 이 모든것이 깨여져버렸구나. 모든것이 꿈으로만 남았구나!…


지휘관들이 찾아왔다. 병사들이 찾아왔다. 그들속에는 박월선의 아이들과 함께 온 안순남중대장도 있었다.

《아, 간호장동무, 많이 나아졌다면서?》

웃고있는 그의 머리와 목, 어깨에는 두툼한 붕대가 감겨져있었다. 아이들도 생글거리며 현희의 손과 얼굴을 만져보았다.

《간호원아지미, 아프나요? 그래두 우리 집에 또 오지요?》

《그럼….》

철없는 아이들에겐 하반신마비라는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것인지 알수 없는것이다.

안순남이 롱인지 진담인지 알수 없는 소리로 떠들기 시작했다.

《난 정말 동무가 죽는가 해서 가슴이 막 터질 지경이였소. 아, 글쎄 우리 중대 공사장에 지원나왔다가 이렇게 됐으니 우리 중대 위신이 뭐가 되나 말이요. 공사장지휘관인 난 또 어떻게 되구. 단박에 납작해질거란 말이요, 안 그렇소?》

현희는 눈 한번 깜박하지 않고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아니, 이런 허풍선이같은 사람이였단 말인가? 자기 위신만을 생각하는 그런 사람이란 말인가?…

《현희동무, 그래 어떻소?…》 갑자기 안순남은 한결 낮아진 소리로 정색하여 말했다. 《너무 걱정마오, 다 잘될거요. 그건 틀림없다니까.》

순간 현희는 눈을 꼭 감았다. 다 잘될거라구?… 아니야, 그런 귀맛좋은 소리나 하자구 찾아왔단 말인가.

안순남이 더 가까이 다가와서 말했다.

《그새 우리 중대에선 맡은 구간의 공병작업을 다 끝냈다누만. 우리 동무들이 찾아와서 현희동무 소릴 많이 했소. 그새 나도 입원해있었거던. 제때에 찾아오지 못해 미안하오. 현희, 이건 애들이 가져온건데 어서 하나 맛 좀 보오.》

애들도 종이에 싼것을 그에게 내밀었다.

《잡수어보세요, 우리가 구운거예요.》

그것은 고구마였다. 현희는 그것을 바라보다가 저도 모르게 머리를 돌렸다.

《왜 그러오? 동무야 고구마를 제일 좋아한다구 하지 않았소?》

《그래요, 좋아했어요. 하지만… 인젠 다 싫어요.》

《엉?…》

《미안하지만 혼자 있고싶은데 좀 나가주세요.》

한순간 어리둥절해있던 안순남은 가볍게 한숨을 내그으며 아이들과 함께 군의소밖으로 나갔다.

그러나 또 왔다. 알고보니 그 역시 같은 군의소병동에 입원해있는 환자였던것이다. 나날이 현희는 지휘관인 안순남이 자기의 대원인 어린 전사와 현희를 제때에 구원하지 못한것으로 하여 괴로와하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붕락구간에 함께 있은것도 아닌 그가 나를 어떻게 구원한단 말인가. 현희는 머리를 가로젓군 하였다. 아니, 그를 노엽힌다는건 죄되는 일이야. 인정이 없는 매정한짓이야…

현희는 그가 다시 오면 따뜻이 대해주리라고 속다짐했다. 그런데 매일같이 찾아오던 안순남이 한여름의 소낙비가 갑자기 멎은것처럼 발길을 뚝 끊어버렸다.

퇴원했다는것이다.

현희가 서운하게 여기고있는데 며칠후 안순남이 그를 찾아왔다.

여전히 그는 목소리를 높여 떠들어댔다.

《간호장동무, 괜찮소? 그새 더 많이 나아졌구만!》

《예, 관심해주어서… 그런데 퇴원하면서 한마디 알려줄 시간도 없었는가요?》

《아, 도망병이 어디 행처나 알릴 처지가 됐소?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뛰는 판에…》

《그러니 퇴원이 아니라 도주였군요?》

안순남은 들고온 꾸레미를 어디에 놓을지 몰라 두리번거리는척 하면서 대답을 피했다. 현희는 짐작하고있었다. 그가 다시는 대지를 활보할수 없게 된 자기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싶지 않아 그냥 퇴원해갔으리라는것을…

안순남이 두손에 한가득 들고온 꾸레미를 현희에게 내놓았다.

《자, 우리 중대동무들이 보내는것이요. 사과, 배, 사탕, 과자, 물고기통졸임… 이건 우리 중대병실앞에서 딴 첫 감!… 아참, 고추잎도 가져왔소.》

《고추잎? 그건 어디에 쓰려구요?…》

《군의장이 그러는데 이 고추잎달인물찜질이 거기… 음- 그런 치료에 아주 좋다는게 아니겠소. 그래서 중대동무들이 떨쳐나서 고추밭이란 고추밭은 다 훑으며 성한 잎들을 거두어왔단 말이요. 지금 우리 병실에 두마대나 쌓여있소.》

《어마나! 그렇게 많이요?… 한데 그걸 언제 다 달이겠어요? 난 인젠 제대됐는데…》

안순남은 먹음직하게 잘 익은 빨간 감을 골라 그의 손에 쥐여주며 또 너스레를 떨었다.

《걱정마오. 제대되여간다구 내가 못하겠소? 이래뵈두 약초 달이는 솜씨는 날 따를 사람이 없소. 우리 할아버지가 고려의학 연구사였거던.》

현희는 손등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피- 중대장동지 할아버지야 농업대학 강좌장, 박사라고 하지 않았나요?》

《참, 내가 그렇게 말했던가?… 농업박사니까 약초문제에서도 환하거던. 그래서 나도 잘 아는거지 뭐.》

《모를 소리!》

《모를게 뭐 있소? 내가 고추잎달인물로 딱 한번만 동무 아파하는데를 찜질해줘보지?… 그저 너무 좋아서 나한테 덥석 안기지 않나!》

《어마나!》 현희는 숨넘어가는것처럼 비명을 질렀다. 《무슨 끔찍한 소릴!… 내가 뭐 어데 안긴다구요?》

《됐소, 됐소.》

웬일인지 안순남은 입을 다물고 고개를 떨구었다. 말큰말큰한 감알을 손수건으로 정히 닦으며 현희는 그를 살펴보았다. 비로소 그의 이마에 난 상처를, 아직도 피가 슴배여 불그스레해진 붕대를 살펴보았다. 이번에 생긴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것이였다.

그의 놀라는 눈빛에 안순남은 소리없이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더니 묵묵히 밖을 내다보았다. 웬일인지 그의 구리빛얼굴에는 무엇인가를 터놓고싶으나 말하기 저어하는 그런 복잡한 표정이 어려있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윽고 안순남이 머리를 돌리였다.

《동무가 어떻게 생각하든 난 이미 결심했소. 난… 동무가 자리를 차고 일어날 때까지 고추잎달인물로 찜질을 해줄테요. 그것이 10년이든 20년이든!…》

현희는 갑자기 개인 하늘에서 번개가 번쩍인듯 불시로 몸을 떨었다. 깜짝 놀란 두눈이 안순남의 얼굴에 살같이 박혔다.

《다시 말해보세요, 뭐라구요?》

안순남은 가슴에 들어찬 무거운 숨을 한꺼번에 내뿜으며 나직이 힘주어 말했다.

《그렇소. 현희, 난 결심했소. 영원히 동무의 손발이 되고 마음의 기둥이 되겠다고 말이요!》

《?!…》

현희는 세차게 머리를 저었다. 그는 두발로 땅을 짚고 일어설수 없는 몸인것이다. 한생 다른 사람의 시중을 받아야만 할 몸이다.

현희는 몸부림쳤다. 아니, 그럴수 없어! 난 한생 남의 짐이 될수는 없어. 더구나 최전연에서 복무하는 중대장동지한텐… 안순남동지, 제발 그러지 마세요. 그러면 안됩니다. 동진 지금 일시적인 충동에 겨워 그렇게 말하는데… 절대 안됩니다. 자기가 책임질수도 없는 말을 그렇게 하는건 뭐예요? 예?… 안순남이 뭐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그러나 현희에게는 한마디도 귀에 들려오지 않았다.

입을 옥물고 두눈을 치뜬다. 마치 난생처음 보는 사람처럼, 이 세상사람이 아닌것처럼 멀거니 마주보고있다. 손세를 써가며 무엇인가 열을 내여 설득시키고있는 안순남의 얼굴을 놀라서 얼나간듯 보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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