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4 회)


제 3 장 사랑하면 무엇이든 다 열린다


13


그날 점심때 권일학은 자기를 찾아온 강학선의 처 오기화를 만났다. 그새 눈가의 주름살이 더 깊어진것만 같았다. 오기화는 애써 미소를 그리며 말했다.

《저, 이건 정철이가 부러워하던 그림책인데…》

권일학은 한동안 그가 내놓은 그림책표지만 내려다보았다. 강학선이 떠나기 전에 그의 집에 찾아갔다가 끝내 만나지 못하고 돌아서던 일이 떠올랐던것이다.

오기화가 눈길을 떨구며 말했다.

《정철이 아버지, 그땐 정말 안됐어요.…》

《아니, 모든게 제 잘못입니다. 제가 그만 과장선생을…》

잠시 말없이 서있던 오기화가 고개를 들었다.

《너무 속쓰지 마세요. 우리 경철이 아버지야 원래 그런걸요. 한번 수틀리면 끝까지 못나게 군다는걸 잘 알지 않나요. 그도 이제 정철이 아버지를 리해할 때가 있을거예요. 전… 믿어요.》

《고맙습니다, 경철이 어머니.》

권일학은 우선우선하며 강학선과장의 소식과 함께 그의 건강이 어떤가고 물었다.

《저, 무엇때문인지 심장이…》

《아니, 그럼 과장선생의 건강이 나빠졌단 말입니까?…》

오기화가 고개를 외로 돌리며 얼른 눈굽을 훔쳤다.

《예, 협심증이 심해졌답니다. 그래서 좀 가보려구 이렇게…》

《알겠습니다. 경철이 어머니, 걱정말고 돌아가십시오. 제가 필요한 약들을 가져가고 대책도 세우겠습니다. 제 마침 그 공장에 가야 할 일이 제기되였습니다.》

《…》

오기화는 물기에 젖은 눈으로 그를 지켜보았다. 고마움과 믿음이 어린 눈빛이였다.

권일학은 가슴이 저려드는것을 느꼈다. 오래전부터 허물없이 지내였고 누이처럼 극진하게 집안일을 돌봐주던 녀인, 마음씨 고운 이 녀인이 무엇때문에 눈물짓고있는것인가. 권일학 그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수 있고 또 해야 하는 크지 않은 성의가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고마와하는것을 보니 자기가 지금까지 강학선에게 크게 관심을 돌리지 못했다는것이 죄스럽게 느껴졌다.

《제 곧 가보겠습니다. 래일이라도 당장!》

《고마워요.…》

그를 바래준 권일학은 오래도록 생각에 잠겨있었다.

다음날 권일학은 필요한 출장준비를 갖추고 약도 구해가지고 강학선이 있는 의료기구공장으로 떠났다.


그 시각 강학선은 단조직장에서 일하고있었다. 온몸이 땀으로 젖은 그는 벌겋게 불에 익은 소재를 연방 프레스밑에 들이밀었다. 오늘도 열아홉살인 동남이와 한조가 되여 프레스작업에 참가하고있는것이다.

동남이가 작업장갑을 내던지며 펄썩 주저앉았다.

《아바이, 좀 쉬구 하자요!》

강학선이 하던 일을 계속하며 대꾸했다.

《자네나 쉬라구.》

《챠, 아바이, 단조일이란 그렇게 급하게 하는게 아니라니까요. 적당히 쉬기도 하면서 주근주근 하는거예요. 그래야 맥을 뽑지 않거던요.》

그는 제법 경험자처럼 훈시했다. 그러건말건 강학선은 입을 꾹 다물고 다음소재를 또 바꾸어 들이밀었다. 실상 그는 교대에 관계없이 작업장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많았다. 낮에는 프레스앞에서 단쇠를 두드리고 저녁에는 밤늦도록 미세봉합사기계를 붙안고 씨름하군 했다. 그러다보니 한땐 씨름경기에 나가면 대황소상은 문제없을거라고 하던 그가 이제는 볼이 꺼지고 수염까지 덥수룩하여 처음모습을 알아보기가 힘들 지경이였다.

동남이가 볼부은 소리를 했다.

《참, 아바이두, 왜 고집입니까? 쉬지도 않아, 집에두 안 가… 오늘두 그 미세봉합사인지 기계인지 하는걸 가지구 또 밤을 새겠지요?… 그러다 쓰러지면 어쩔려구 그래요?》

《괜찮네.》

사실 미세수술에 필요한 거미줄같이 가는 실을 뽑아내는 그 기계는 언제부터 강학선이 자체로 만들어보려고 시도해온것이였다. 그러나 시간이 없어 지금껏 미루어왔댔었다.

그것만 만들면 수입에 의존하던 미세봉합사를 자체로 보장할수 있으며 필요에 따라서는 여러가지 봉합사들을 호수별로 다양하게 뽑을수도 있었다. 강학선은 의료기구공장에 내려온 첫날부터 그 기계를 만드는데 달라붙었고 여기저기 공장안의 기술자들을 찾아다니고있었던것이다.

동남이가 속상한듯 주머니를 뒤져 담배를 꺼내들었다. 그리고는 한대 집어 강학선에게 내밀었다.

《자요.》

《난 안 피우네.》

《그런 취미도 없이야…》

강학선이 손을 내젓자 동남이는 괜히 그런다는듯 짧게 한숨을 내쉬며 저 혼자 담배를 붙여물었다. 유명한 의사라는 사람앞에서 감히 담배질을 하는것이 멋스러운지 그는 조심스레 한모금 빨더니 입을 오무리며 가만히 연기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그가 혀를 가지고 묘하게 요술을 부릴 때마다 가락지모양의 담배연기가 입에서 모락모락 새여나왔다.

강학선이 하던 일을 멈추고 그를 돌아보았다.

《또 피우나?》

《예?…》

동남이는 입에 물었던 담배를 줌안에 감추며 입속말로 두덜거렸다.

《이거야 원, 보는 사람마다 이래라저래라…》

강학선이 땀흐르는 얼굴을 팔소매로 문대며 뜨직뜨직 말했다.

《담배는 건강에 좋지 않아. 내 이미 말했지만 담배에 들어있는 니코틴은 알카로이드라고 하는 특수한 생리적특성을 가진 염기성식물성분인데 이 알카로이드는…》

《아, 됐어요! 아바이.》 동남이가 손을 홱 내저었다. 《이젠 아바이한테서 그 말을 백번은 더 들은것 같애요. 그저 건강, 식도, 페 그리고 위장염… 의사들은 그런 말밖엔 할줄 모르는가?》

동남이가 줌안에 감추었던 담배를 다시 입에 물려는데 누군가 이쪽으로 다가왔다.

《이녀석! 의사선생이 가르쳐주면 그대로 들을게지 제가 뭘 안다구 그래?…》

창문의 훤한 빛에 비쳐진 그는 이 공장이 세워질 때 기초파기건설에 참가했다는 최아바이였다.

동남이가 자리에서 엉치를 떼며 혀아래소리로 중얼거렸다.

《제길, 내가 뭐 동네 떡자루인가?…》

강학선도 일어나며 최아바이에게 한마디 했다.

《아바이군요. 그런데 다쳤던 눈은 좀 어떻습니까?》

《다 나았네. 임자에게서 치료받구 깨끗해졌어. 그런데 못된 녀석들이 한다는 소리가 뭐 강학선의사가 이 늙은 최아바이만 돌봐준다나?… 못된것들 같으니.》

《난 그런줄 몰랐군요.》

그때 동남이가 제꺽 한마디 비쳤다.

《마이동풍이란 말 알지요? 그따위 소리엔 귀도 기울이지 말아요.》

《네가 뭘 안다구 그래?》

최아바이가 퉁을 놓자 동남이는 입이 한발이나 나왔다.

《난 그저 보고 듣는대로 말할뿐이예요. 의사선생이 누구든 봐주면 좋은거지 무슨 뒤소리가 그렇게 많아요?》

《뒤소리가 아니야.》 최아바이가 말했다. 《의사선생이 고생을 하면서두 우리 로동자들을 위해서 애써주니 고마워서 그러는거지. 누가 더 신세를 졌는가 하는걸 가지구 말할뿐이야. 네가 그걸 다 알면 어른이 됐게?…》

《쳇, 내가 뭐 모를줄 알아요?》

두사람은 소리내여 웃었다. 그들과 함께 웃으며 강학선은 불현듯 자기의 가슴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것이 솟구치는것을 느꼈다.

소박하고 진실한 사람들… 이들은 과오를 범하고 내려온 강학선을 여전히 의사선생이라고 깍듯이 불러주며 진심으로 아껴주고 위해준다. 사소한 아픔도 그를 믿고 때없이 찾아오며 자그마한 상처에 붕대 하나를 감아주어도 그지없이 고마와하군 한다. 강학선은 이러한 그들에게서 로동계급의 마음을, 겉으로는 거칠고 투박한것 같으나 속에는 뜨거운 불을 안고있는 그들의 진실한 사랑에 대하여 늘 새삼스럽게 깨닫는것이였다.

최아바이가 무드기 쌓아놓은 소재들을 만져보며 말했다.

《참, 밖에 누가 찾아왔다구 하더구만.》

《나를요?》

《그렇네. 아마 집에서 또 왔겠지.…》

강학선은 코허리가 시큰했다. 분명 안해가 왔을것이다. 며칠전에 왔다갔지만 아마 손에 익지 않은 로동생활에 꺼칠해진 남편을 위해 무엇인가를 또 마련해가지고 왔을것이다.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보, 미안하오!… 이 못난 남편때문에 자꾸 걸음을 시켜서…

최아바이가 손에 들고 눈여겨보던 쇠붙이를 무지에 던져넣으며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어서 나가보라구. 여기 일은 내가 봐줄테니…》

제쳐놓았던 목수건을 다시 두른 동남이도 싱긋 웃으며 재촉했다.

《어서요!…》

이윽고 작업장에서 나온 강학선은 더운물에 몸을 씻고 로동자합숙으로 향했다. 설비를 실은 자동차들과 포장한 지함을 실은 반짐차들이 연방 꼬리를 물고 지나갔다.

이윽고 합숙에 이른 강학선은 조급해지는 마음을 누르며 급히 방으로 다가갔다. 잠시 문앞에 서서 깨끗이 감은 젖은 머리를 손으로 빗어올린 다음에야 문을 열고 들어섰다.

《여보!…》하고 례사롭게 부르려 했다. 다음순간 그의 얼굴이 돌처럼 굳어졌다. 이건 누군가?!… 그를 기다리고있는 사람은 뜻밖에도 기술부원장 권일학이였다. 후두둑! 가슴이 경련으로 떨렸다. 이 사람이 어떻게 여기에 왔는가?…

권일학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로 다가왔다.

《그새 잘있었습니까?》

강학선은 애써 마음을 누르며 그를 마주보았다.

《안녕하시오, 기술부원장. 그런데… 어떻게 이런데까지 오셨소?…》

그렇게 말하려 한건 아니였다. 그러나 뜻밖에 찾아온 권일학을 보자 저도 모르게 마음 한구석에 못박혔던 고까움의 응어리가 뾰족한 고드름처럼 가슴을 찔렀던것이다.

권일학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듯 책상우에 놓여있는 미세봉합사기계와 그옆에 아무렇게나 뭉그러져있는 가는 실오리들을 눈여겨보며 말했다.

《이렇게 자기 일을 놓지 않고있는것을 보니 기쁩니다. 미세봉합사를 확대경도 없이 다루고있군요.…》

《…》

사실 미세수술에 쓰이는 봉합사는 거미줄같이 눈에 잘 보이지 않는 가는 실이여서 손으로 다루기가 매우 힘들다. 그래서 반드시 확대경을 사용해야 했다. 강학선이도 그전에는 확대경을 들여다보며 그 봉합사를 다루군 했었는데 그것과 매일 씨름하는 지금에는 저도 모르게 감각으로 다루는데 숙련되여가고있었다.

강학선이 마지못해 권일학에게 자리를 권했다.

《어서 앉으시오.》

그제서야 거북하게 자리에 앉은 권일학이 자그마한 통을 그에게 밀어놓았다.

《받으십시오, 그새 협심증이 도졌다기에… 약을 좀 준비해가지고왔습니다.》

강학선은 말없이 그가 내놓은것을 바라보았다. 자기가 늘 복용하던 눈에 익은 약들만이 아니라 처음 보는 새로운 약들도 끼여있는것을 보니 그가 성의를 다했다는것이 알렸다.

《고맙네.…》

하지만 이 순간 강학선은 고맙다는 그 말과는 달리 어이하여 림상비판회의에서 자기를 무자비하게 조겨대던 그의 랭혹한 론거가 떠오르는지 알수 없었다.

그때 권일학은 말했었다. 의사란 환자의 눈물이나 호소에도 랭담해야 한다고, 환자가 눈물로 애원한다고 하여 함부로 수술칼을 드는건 무모한짓이라고… 강학선은 지금도 모든것을 랭혹하게만 보고 극단적으로 분석하는 그의 론거를 조리있게 부정하고싶었다. 얼음처럼 차고 수술칼처럼 날카로운 그의 주장을 의사의 인정세계로 단호히 반박하고싶었다. 하지만 그는 자기가 그렇게 할수 없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다.

무겁고도 어색한 침묵, 참기 어려운 답답한 침묵이 흘렀다.

마침내 강학선이 한숨을 후 내쉬며 권일학이 펼쳐놓은 꾸레미앞으로 다가와 앉았다. 맥주며 사이다, 꿀과 닭곰…

권일학이 그앞에 고뿌를 놓아주었다.

《자, 한고뿌 먼저 드십시오.》

그는 맥주를 부으며 스스럼없이 말하려고 애쓰고있었다.

강학선은 아무말없이 부그그 거품이 끓어오르는 맥주고뿌를 묵묵히 들여다보고있었다. 그는 고뿌에 차넘치는 거품처럼 뭐라고 딱히 찍어 말할수 없는 그 어떤 불만이 부걱부걱 가슴에 괴여오르는것을 느끼고있었다.

《난 그새 맥주맛을 잃었네.》

《그렇습니까?》

잠시 그를 바라보던 권일학이 부어놓은 고뿌를 밀어놓고 닭곰단지를 끄당겨 그의 앞에 놓았다.

《그동안 제가 잘못한게 많습니다. 과장선생을 잘 돕지두 못하구… 용서하십시오! 매정했던 저를…》

강학선은 굳어진 눈빛으로 그의 날카로운 코마루를 쳐다보았다.

《자네가 잘못한건 없지!… 난 잊지 않고있네, 자네에 대한 그 모든것을…》

그의 목소리는 엄숙하게 들렸다. 마치도 아름다왔던 옛시절의 추억을 그 어떤 미련도 없이 영영 밖으로 밀어던지는듯 했다.

눈을 내리깐 권일학의 한쪽볼이 가볍게 떨리였다. 꾹 다물고있는 그의 입귀에 깊은 주름이 패이며 그를 늙은이같은 모습으로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훤하던 그의 이마도 웬일인지 창백해졌다.

그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전 과장선생을 나삐 생각지 않습니다. 그러나 생명을 가지고 모험한것은… 어제도 오늘도 전 절대로 용납할수 없습니다. 그건 참된 의사의 본분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뭐라구?!…》

갑자기 눈시울이 떨려났다. 목이 마르고 가슴이 옥죄여졌다. 꽉 눌리운 목에서는 저도 모르게 맥빠진듯 한 쉰소리가 새여나왔다.

《됐네, 그에 대해선 더 말하지 말게. 나도 그 수술이 결코 잘된것이라구 우기진 않네. 이미 자네가 다 론증한것이지만…》

사실 강학선은 처음부터 의사협의회질서를 어긴 그 수술이 위험한 모험이였다는것을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행복을 주려면 모험도 동반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의료기구공장에 내려와 자기스스로 그 수술을 돌이켜보았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깨끗한 량심과 인정만이 깃들었다고 믿고있던 그 수술에 자기의 리기적인 타산과 목적이 슴배여있음을 비로소 발견하게 되였던것이였다. 환자의 호소, 의사의 무른 인정, 검열되지 않은 미세수술…

겉으로 보기에는 의사들에게서 흔히 나타날수 있는 의료사고였지만 그 모험적인 수술의 동기에는 자신에 대한 과신과 소총명 그리고 자기를 내세우려는 거만한 명예욕까지도 숨어있었다는것을 그는 인정하지 않을수가 없었다.

뒤늦게야 그것을 깨달은 강학선은 누구도 모르는 자기의 리기에 경악을 금할수 없었다. 바로 수술대에 누워있는 생명을 두고 그런 추악한 리기가 저질러진것이다!

《…이것은 의학적으로나 도덕륜리상으로 절대 용서할수 없는 문제입니다.》

누구의 말이였던가?… 그제서야 꿈에서 깨여난 강학선은 서둘러 자신을 변명하려 했다. 협의회질서를 어기면서까지 진행한 그 수술은 어디까지나 인정에 못이겨 수술칼을 든 량심적인것이였다고, 한 녀인에게 행복을 주려고 힘겹게 시도한것이였다고 굳이 설명하려 애썼다. 한사코 자기의 리기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쳤고 그 어떤 정당성을 찾으려고 허덕이기도 했다.

당치 않은 변명은 굴러가는 눈덩이처럼 자꾸만 커져 끝내는 그 사실을 더 론박할수 없는것으로, 명백히 생명에 대한 모험이였다는것을 스스로도 자인하지 않을수 없게 하였다. 하지만 이 모든것을 대담하게 내놓고 인정하기에는 너무도 나약하고 용기가 부족한 강학선이였다. 이로 하여 그는 의사의 량심과 본분을 두고 아니, 자기자신에 대한 환멸과 불만으로 하여 남몰래 괴로와하고있는것이다.

마침내 권일학이 먼저 입을 열었다.

《참, 그새 산원에선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언제부터 새로 꾸리던 외래 유선종양과도 인젠 다 끝났고 서범천의 복강경수술도 일정에 올랐습니다.》

그는 강학선의 눈길과 마주치지 않으면서 례사롭게 말을 이으려고 무진 애를 썼다.

《그리구… 과장선생이 한해전에 미세수술을 한 대홍단의 한 제대군인 안해 말입니다. 생각나지요?… 그 녀성이 얼마전에 해산을 했답니다. 그것도 쌍둥이를!…》

괴로움에 잠겨있던 강학선의 얼굴에 한순간 새 소식에 반색하는 기쁨의 빛이 어렸다.

《쌍둥이를?…》

《그렇습니다. 대홍단치료대를 이끌고 나갔던 당비서동지가 과장선생에게 꼭 말해주라고 했습니다. 무척 반가와할거라면서…》

강학선은 알릴듯말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무엇인가를 상기하는듯 반나마 눈을 감고 야릇한 미소를 짓고있었다. 자기의 노력과 기술로 한 녀인의 꿈을 이루어주었다는 기쁨과 긍지가 어린 미소였다. 그러나 한순간이 지나자 그는 다시금 어두운 표정으로 되돌아왔다. 권일학이 계속하여 산원의 새 소식들을 말해주는것을 그저 묵묵히 듣기만 하고있었다.

얼마후 피로에 지친 강학선이 침울한 어조로 말했다.

《난 작업장에 다시 나가야 하네.》

권일학이도 손목시계를 들여다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에 부탁할건 없습니까?》

《없네.》

권일학은 잠시 우두커니 서있더니 두손을 마주 비비며 한숨을 내쉬였다. 그러는 그의 모습을 강학선은 온몸으로 보고있었다. 무엇인가 큰 기대를 안고 찾아왔던 사람, 그러나 랭담한 자기의 태도에 풀이 죽고말았다.

한순간 자기가 너무하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출현으로 하여 또다시 상기된 그 어떤 가책과 괴로움은 강학선의 마음을 끝까지 어둡게 하고있었다.

《그럼 몸조심하십시오. 그리구 제 인간적으로 아니, 의사로서 부탁합니다만 미세수술을 더 잘할수 있도록 기술을 부단히 련마하십시오.》

《…》

끝까지 그들은 옛정을 나누지 못했다.

권일학이 떠나간 다음에도 강학선은 한동안 그 자리에 꼼짝하지 않고있었다. 하나도 손대지 않은 음식들과 김빠진 맥주고뿌를 물끄러미 들여다보며 한숨을 내쉬고있었다. 인제는 고뿌에 넘쳐나던 맥주거품도 가라앉아버린지 오래다.

강학선은 무엇때문인지 바위돌에 가슴이 짓눌린듯 했다. 어수선하고 괴롭고 종잡을수 없는 마음… 또다시 마음속 깊은 곳에서 울리군 하던 내심의 그 목소리가 그의 뇌리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인정이라는 너울에 감쌌던 과신, 소총명, 명예!…

강학선은 저도 모르게 손바닥으로 자기의 얼굴을 힘껏 문질렀다. 아직도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는 부당한 자기변명을 죄다 씻어버리고 쓸어버리기라도 하듯…

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몰랐다. 벽시계가 뗑 뗑 뗑 석점을 치는 소리에 흠칫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창밖에는 권일학이 타고온 차가 없었다. 언제 그런 일이 있었던가싶게 인적이 없는 합숙식당앞에서는 어디서 굴러온 자그마한 고무공을 놓고 누렁개와 고양이가 서로 마주서서 다투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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