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35 회)


제 4 장 책임한계


1


강학선을 만나고 산원에 돌아온 권일학은 곧 복강경수술장으로 향했다. 밝고 정갈한 복도를 걸으면서도 그냥 눈앞에서는 강학선의 거칠어진 얼굴과 험해진 손이 사라지지 않았다. 여기저기 찢겨지고 갈라터진 커다란 손… 마디마디가 굵어지기 시작한 어느 한 손가락에는 덞어진 붕대가 매여있었고 긁히운 손등엔 딱지가 말라붙어있었다. 정교한 미세수술칼을 잡던 그 손이 굳은 쇠붙이를 절단하거나 망치를 두드리고있는것이다.

《주의하십시오! 기술부원장선생님…》

갑자기 새된 부르짖음에 걸음을 멈추었다. 갖가지 자재들과 소독물만을 전문취급하는 짐승강기앞이였다. 커다란 밀차에 층층이 쌓아올린 소독함들이 그의 코앞을 담벽처럼 막고있었다. 간호원이 아니였더라면 승강기에서 금방 내린 이 밀차와 맞부딪칠번 했었다.

《아, 미안하오.》

그것을 에돌아 다시 걸음을 옮겼다. 생각은 의연 강학선에게로 가있었다. 자기를 랭대하던 강학선, 예견했던바이지만 그렇듯 차겁게, 모질게 나오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었다. 빗장을 지르고 굳게 닫겨져있는 그의 마음에서는 끝까지 찬서리가 내불리고있었다.

권일학은 무거운 마음을 가시지 못하고 복강경수술장으로 들어섰다. 복강경수술장에는 서범천이 없었다. 동물실험실에 갔다는것이다. 또다시 걸음을 돌려 청사옆에 지은 자그마한 동물실험실로 향했다.

거기에도 서범천은 없었다. 대신 책상에 마주선 키 작은 의사와 키 큰 실습생이 가제를 서로 맞붙이며 수술련습을 하고있었다. 얼마나 열중했는지 권일학이 들어선것도 알지 못하고있었다.

키 작은 선배의사가 쩔쩔매고있는 키 큰 실습생을 다그어댔다.

《규정대로 잡아야 해. 겸자를… 살을 맬 때 왜 들어올리나? 밑으루, 밑으루 당겨야 조여지지. 옳지!》

실습생에게 하는 그의 훈시가 계속되였다.

《이렇게 몇번 해보는걸루 굼때려 하지 말라구. 우리 서범천선생은 실매듭 매는 법 하나만 배울 때도 의사실에 있는 책상빼람손잡이란 손잡이엔 모조리 실을 매놓았댔소. 백번, 천번이나!… 퇴근시간엔 돌아가면서 그것을 푸느라고 정신없었구. 그뿐인줄 아오! 수술칼의 손감각을 익히기 위해서 해면고무판대기를 얻어다 수만번이나 째는 련습을 했구. 의사가 되자면 이쯤한 정열은 있어야 한단 말이요.》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키 큰 실습생이 그에게 자기 팔목을 내보였다.

《자, 보라요, 나도 노력은 하고있단 말이예요.》

그가 차고있는 손목시계는 페복할 때 쓰는 명주실들이 작은 태엽과 시계줄에 가득 매여져있었다.

《그건 좋은 일이구만.》

이렇게 말한것은 권일학이였다. 그제서야 머리를 돌린 두사람이 그를 알아보고 황급히 인사했다.

《기술부원장선생님! 안녕하십니까?》

《음, 수술수기를 익히고있구만.》

키 큰 실습생이 저보다 키가 작은 의사를 힐끔 내려다보고나서 자신없이 중얼거렸다.

《저, 그런데… 잘 안됩니다.》

《노력해야지. 하루빨리 실력을 높여 첨단기술까지 소유해야겠다는 결심을 가지면 꼭 잘될거요. 그건 그렇구, 서범천선생은 어디 갔소?》

키 작은 의사가 대답했다.

《방금 앞정문으로 나갔습니다.》

《거긴 왜?》

《저, 금속공업성에서 연구사가 온다면서…》

《금속공업성 연구사?》

《예.》

서범천이 연구사와 알고있다는것이 그리 새삼스럽지 않았다. 진취성이 강한 그에게는 교제의 범위가 다른 사람보다는 넓을것이기때문이였다.

그때였다. 머리를 끄덕이며 돌아서려던 권일학은 불시에 두눈을 흡뜨며 놀라 소리를 질렀다.

《아니?》

《왜 그럽니까?》

그는 얼결에 손을 내밀어 구석쪽의 나무통을 가리켰다. 그곳에서는 커다란 쥐 한마리가 대가리를 내밀고 사람들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무엇에 놀랐는지 돌연 찍- 소리와 함께 살창을 허비며 버둥거렸던것이다.

그쪽을 바라보던 의사와 실습생이 터져나오려는 웃음을 참으며 서로 마주보았다.

《부원장선생님, 저건 실험용쥐입니다.》

모르는바가 아니였다. 그러나 거의 본능적인 공포심으로 하여 속이 메슥메슥해지고 몸이 떨려났던것이다. 어릴적부터 뱀이나 쥐와 같은것을 제일 꺼려하고 싫어하는 그였다. 지금도 오래전에 어머니가 갈구리로 들고나가던 창맞은 쥐를 생각하면 이마에 진땀이 솟군 하는 그였다. 그는 동물실험실의 두사람이 그날 어머니처럼 자기를 웃음가마리로 여기는것 같아 몸가짐이 거북해졌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서범천이 들어섰다. 그는 권일학이 들어와있는것도 모르고 뒤따르는 웬 처녀에게 큰소리로 말하였다.

《글쎄, 기술부원장선생두 다 찬성한다니까! 두고보오, 내 말이 틀리나.》

큰소리치던 그는 자기앞에 서있는 권일학을 보자 그만 입을 다물고 주춤거렸다. 뒤따라 들어오던 처녀도 멎어섰다.

권일학은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마침이구만. 서선생, 선생을 기다리고있었는데… 그래 어떻게 되고있소, 림상수술계획은?》

웬일인지 서범천은 뒤에 서있는 처녀를 힐끔 돌아보았다.

《예, 저… 잘되고있습니다.》

《잘되고있다?!… 지금단계에서 림상수술이 꽤 가능할것 같소? 지나친 욕망은 아닌지?》

서범천이 방금전과는 달리 눈길을 곧추 들어 그를 마주보았다. 마치 그렇게 하는것으로써 자기의 결심을 보여주려는듯 했다.

《전 이미 결심했습니다. 수술대상자도 선정했구요.》

《대상자를? 그게 누군데?》

서범천이 뒤에 서있는 처녀에게로 돌아섰다.

《이 동무입니다.》

《뭐?》

처녀는 별로 수집음도 타지 않고 권일학에게 인사했다.

《한송애입니다.》

《?!…》

권일학은 한동안 처녀를 바라볼뿐이였다. 밝고 억실억실한 눈매, 진지한 표정… 그는 이런 처녀가 누구도 해보지 못한 첫 복강경수술대상자로 나섰다는것이 놀라왔다.

처녀가 활달하게 웃으며 말했다.

《걱정마십시오, 기술부원장선생님. 서범천선생은 꼭 해냅니다. 전 그렇게 믿습니다.》

《고맙소, 처녀동무. 그런데 처녀동무가 어떻게 우리 서선생의 복강경수술을 그렇게 확신할수 있소? 처음 하는 일인데…》

서범천이 멋적게 웃었다.

《저, 이 동무가 바로 복강경전자설비들을 파악하도록 도와준 그 금속공업성 연구사입니다.》

《그렇소?!…》

그러고보니 억실억실한 그 눈을 언젠가 복강경수술장에서 본것 같기도 했다. 그 복잡한 전자설비들을 귀신같이 다루다니, 처녀가!… 한송애가 웬일인지 고개를 약간 떨구었다. 그리고 좀 어두워진 얼굴로 말했다.

《사실… 저의 외삼촌이 반대한다는걸 알고있지만… 국장이 반대한다고 해서 물러선다면 그게 무슨 우리 시대 청년이겠습니까? 전 복강경수술을 반대하고있는 외삼촌도 앞으로 꼭 리해할 때가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권일학이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

《외삼촌이 누구라구?》

처녀가 미처 대답하기 전에 서범천이 알려주었다.

《보건성 국장동지입니다.》

뭐라구? 그러니 이 처녀가 서범천을 제일 반대하고있는 보건성 국장의 조카딸이란 말인가?… 윤일국장이 그토록 반대하고 무시하는 서범천을 지금껏 사심없이 도와주었고 그의 첫 림상수술대상자가 될것을 결심한 이 처녀가 바로 그 보건성 국장의 조카딸이라는것이 참으로 놀라왔다.

처녀가 억실억실한 눈길을 들었다.

《기술부원장선생님, 서범천선생이 고심하고있는 복강경수술이야 사실 우리 녀성들을 위한것이 아닙니까. 범천선생은 늘 저에게 말하군 했습니다. 진정한 의사의 사랑은 높은 의학기술에 있다고, 첨단기술의 도입은 곧 우리 녀성들에 대한 사랑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저도…》

권일학은 후더운 마음으로 서범천과 한송애를 바라보았다. 물론 모든 새로운것은 모험을 동반하며 그 모험은 격렬한 반대를 전제로 하는 법이다. 아무리 면밀히 타산했어도 모험이 꼭 무난히 끝나리라고 장담할수는 없다. 마지막까지 따져보고 서로 믿음을 주지 않으면 안되는것이다.

《고맙소, 처녀동무!》

이들은 그 누가 반대한다고 해도 첫 복강경림상수술을 하고야말것이다. 그는 어쩐지 이들의 모습에 무겁던 마음이 개운해지고 저도 모르게 힘이 솟구치는것을 느끼였다.

facebook로 보내기
twitter로 보내기
cyworld
Google+로 보내기
evernote로 보내기
Reddit로 보내기
linkedin로 보내기
pinterest로 보내기
google로 보내기
naver로 보내기
mypeople로 보내기
band로 보내기
kakaostory 로 보내기
flipboard로 보내기

이전페지   다음페지

도서련재
사랑하시라 (제65회) 사랑하시라 (제64회) 사랑하시라 (제63회) 사랑하시라 (제62회) 사랑하시라 (제61회) 사랑하시라 (제60회) 사랑하시라 (제59회) 사랑하시라 (제58회) 사랑하시라 (제57회) 사랑하시라 (제56회) 사랑하시라 (제55회) 사랑하시라 (제54회) 사랑하시라 (제53회) 사랑하시라 (제52회) 사랑하시라 (제51회) 사랑하시라 (제50회) 사랑하시라 (제49회) 사랑하시라 (제48회) 사랑하시라 (제47회) 사랑하시라 (제46회) 사랑하시라 (제45회) 사랑하시라 (제44회) 사랑하시라 (제43회) 사랑하시라 (제42회) 사랑하시라 (제41회) 사랑하시라 (제40회) 사랑하시라 (제39회) 사랑하시라 (제38회) 사랑하시라 (제37회) 사랑하시라 (제36회) 사랑하시라 (제35회) 사랑하시라 (제34회) 사랑하시라 (제33회) 사랑하시라 (제32회) 사랑하시라 (제31회) 사랑하시라 (제30회) 사랑하시라 (제29회) 사랑하시라 (제28회) 사랑하시라 (제27회) 사랑하시라 (제26회) 사랑하시라 (제25회) 사랑하시라 (제24회) 사랑하시라 (제23회) 사랑하시라 (제22회) 사랑하시라 (제21회) 사랑하시라 (제20회) 사랑하시라 (제19회) 사랑하시라 (제18회) 사랑하시라 (제17회) 사랑하시라 (제16회) 사랑하시라 (제15회) 사랑하시라 (제14회) 사랑하시라 (제13회) 사랑하시라 (제12회) 사랑하시라 (제11회) 사랑하시라 (제10회) 사랑하시라 (제9회) 사랑하시라 (제8회) 사랑하시라 (제7회) 사랑하시라 (제6회) 사랑하시라 (제5회) 사랑하시라 (제4회) 사랑하시라 (제3회) 사랑하시라 (제2회) 사랑하시라 (제1회)
 감상글쓰기 
       

보안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