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3 회)


제 4 장 책임한계


9


까실까실 터갈라진 마른 입술을 혀로 감빨며 권일학은 당비서를 찾아갔다.

그가 당비서방에 들어섰을 때 림숙정은 서범천이와 무슨 이야기를 하고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문가에는 눈이 억실억실한 처녀가 서서 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권일학이 들어서는것을 보고 림숙정이 그에게 가까이 와앉으라는 의미의 손짓을 했다. 그리고는 문가에 서있는 인상깊은 처녀에게 물었다.

《그래, 이름이 뭐라구?》

《예, 한송애입니다.》

《음.》

림숙정은 권일학에게 의미깊게 눈길을 던졌다.

《기술부원장선생, 저 처녀가 누군지 아오? 글쎄 저렇게 꽃같은 처녀가 림상수술에 나서다니. 원, 서범천 이 사람 하는짓을 보면 영 엉터리라니까. 기술부원장, 수술대에 눕힐 사람이 그래 이런 꽃같은 처녀밖에 없단 말이요, 응?… 그런걸 하겠으면 나같이 다 늙은 할머니를 눕혀놔야지.》

서범천이 어처구니없어하며 벌씬 웃었다.

《참, 비서동지두비서동지의 그 년세엔 림상수술은 고사하구 마취주사만 놓아도 깨여나지 못할겁니다.》

《뭐라구? 이보 부원장, 이 사람 말하는거 좀 보라구. 그래 내가 전번에도 대홍단에 가서 눈에 빠진 차를 혼자서 끌어올렸다는거 몰라? 아직도 임자하군 바줄당기기나 팔씨름 그 뭐나 다 자신있단 말이야. 그래도 안돼?》

서범천은 몸을 잔뜩 뒤로 젖히며 소리내여 웃었다.

권일학은 그러는 그를 바라보며 그 어떤 따뜻한 정이 밀물처럼 흘러드는것을 느꼈다. 어머니와 아들, 할머니와 손자… 혈연적인 관계에 있는 사람들사이에서만 오가는 진실하고 사심없는 정이 느껴졌던것이다.

《왜 웃어?》

림숙정이 우정 두눈을 부릅뜨며 소리치자 서범천은 웃음을 거두고 정색하여 말했다.

《아니, 비서동진… 절대 안됩니다.》

《그럼 기어이 저 꽃같은 처녀를 수술대에 올려놓겠다는건가?… 아니 이 사람, 그래도 사내라면 사람도리야 지켜야지.》

서범천이 의미있는 눈길을 처녀에게 던졌다. 그러자 눈이 억실억실한것처럼 성격도 활달한 한송애가 웃으며 말했다.

《비서동지, 이 일은 제가 자청한것입니다. 서범천선생이 림상수술대상자가 없어 맥을 놓고있기에… 그리구 이 복강경수술이야 우리 녀성들을 위한것인데 저같은 처녀가 먼저 나서는건 응당하지 않습니까.》

《뭐?…》

서범천이 웃으며 말했다.

《비서동지, 이 동문… 사실 저와 일생을 약속한 동무입니다.》

권일학은 자기에게 던져지는 림숙정의 의문어린 눈빛에 싱긋 웃어보였다.

《그러니 기술부원장도 이미 알고있었다는건가?》

《예, 그렇습니다. 제가 지지해주었습니다.》

《흠, 늘 이런다니까. 저들끼리 일을 저질러놓군 나중에야 날 찾아와 어쩌구저쩌구… 제발 리해해달라, 용서해달라 하면서…》

림숙정은 이렇게 나무람하면서도 두눈은 웃고있었다.

《원장선생하군 토론했나?》

《예, 토론했습니다.》

두사람, 권일학이와 서범천이 동시에 대답했다.

《글쎄 그런줄 알았어. 그래 그 복강경수술인가 하는걸 오늘 한다는건가?》

《예.》

이번에도 두사람이 대답했다.

《음…》

림숙정은 반쯤 눈을 감고 까딱 움직이지 않았다.

그를 지켜보며 권일학은 생각했다. 가렬처절한 전화의 불길속을 헤쳐온 백발의 녀전사, 그 피어린 싸움터에 피와 땀을 뿌린 어제날의 간호장… 그는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있는것인가. 매번 새 세대 젊은이들에게 전쟁과 사랑을 두고, 피와 살, 뜨거운 심장을 두고 무엇이 사랑인가를 깨우쳐주군 하던 그였다. 혹시 그는 이렇게 생각하고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란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른것이 아니라고, 어제날 싸움터에서 피와 살을 아낌없이 바친 사람이나 오늘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첫 림상수술에 내맡긴 저 꽃같은 처녀나 가슴속에 안고있는 사랑은 꼭같이 크고 뜨거운것이라고.

권일학은 림숙정에게 조용히 말했다.

《비서동지, 이들은 꼭 해낼겁니다. 전 그렇게 믿습니다.》

《나도 믿네.》

림숙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범천 역시 벌떡 일어나며 말했다.

《고맙습니다. 비서동지 그리고 기술부원장선생님… 그럼 우린 수술준비를 하겠습니다.》

림숙정이 물었다.

《나도 갈가?》

《됐습니다. 몇번이나 말해야겠습니까. 다 잘될겁니다.》

《음.》

권일학은 금시 문을 차고 나갈듯 서두르는 서범천의 어깨를 손으로 툭 쳤다.

《서선생, 내 인차 뒤따라가겠소.》

《알겠습니다. 기다리겠습니다.》

권일학은 당비서와 나란히 서범천이 자기 애인인 처녀와 같이 문을 나서도록 그냥 한자리에 서있었다.

이윽고 림숙정이 그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래, 위인섭이에게 갔던 일은 어떻게 됐나?》

《…》

무거운 침묵, 아무말없이 눈길을 떨구는 그를 여겨보며 림숙정은 모든것을 짐작한듯 했다.

《알만 하네. 그녀석이 그냥 비뚤어지는것 같은데… 원장에겐 말했나?》

《이제 갈가 합니다.》

《음, 사실 원장선생이 언제부터 그 위인섭이 소릴 했다네. 아까운 인재인데 인젠 정신을 차리지 않았을가 하고 말일세. 한땐 엇나갔지만 이제라도 정신을 차렸다면 데려왔으면 하더구만. 그런데 기술부원장이 나서주니 고맙네. 그가 아직도 비뚤어진 소릴 한다고 너무 탓하지 말게. 이제 꼭 돌아온다니까.》

권일학은 눈길을 들어 그를 쳐다보았다.

《비서동지, 고맙습니다.》

《건 또 무슨 소리요?》

《비서동지의 말을 듣고보니 제가 너무 늦게 찾아간것 같습니다. 제 기어이 그의 목에 바줄을 매여서라도 끌어오겠습니다.》

《원, 무슨 반동놈이라구 그렇게 무서운 소릴 하나?》하면서 림숙정은 소리내여 웃었다.

권일학이 역시 마음속에 엉켜있던 위인섭에 대한 노염을 연기처럼 날리며 소리내여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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