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6 회)


제 5 장 최전연에서


1


권일학은 늘 바쁜 사람이다. 그날도 아침 첫 일과로 부인과에 대한 회진을 하고 소생과에 나가 중환자에 대한 치료사업을 지도한 다음 약무부문에서 새로 생산한 제제약에 대한 검정실험을 감독하였고 마지막에는 의사협의회를 진행하였다. 이어 한숨 돌릴 새도 없이 거의 두시간이나 걸린 어려운 수술을 또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그 수술이 끝났을 때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도 없었다. 그러나 아직도 해야 할 일은 많았다.

그는 이제 해야 할 사업들을 상기해보며 당비서방으로 향했다. 즉시 보고하고 의논할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었던것이다.

갑자기 눈앞이 흐릿해졌다. 저도 모르게 손을 뻗쳐 복도벽을 짚으며 비칠거렸다. 현기증이 오는것 같다. 너무 과로했는지도 모른다. 그만이 아닌 모든 부원장들이 이렇게 매일 눈코뜰새없이 바삐 돌아간다. 잠시 눈을 감고있다가 또 걸음을 옮겼다.

당비서방앞에 이르자 큰숨을 후- 하고 내쉬고 문을 두드렸다. 그가 방에 들어섰을 때 림숙정은 전화를 받고있었다.

《황해남도 옹진군인민병원?… 예, 세쌍둥이로 의진된 군인가족 임신부가 위급하다구요?…》

여느때없이 림숙정은 말을 더듬기까지 했다.

《그- 그래서요?… 비바람이 세서 비행기도 못 띄운다?… 예, 예. 알겠습니다. 우리가 대책을 세우겠습니다. 예, 그러문요. 할수 있… 아니, 해야지요.》

송수화기를 놓은 림숙정은 방에 들어선 권일학을 전혀 낯모르는 사람처럼 바라보았다.

《가만, 이자 뭐라구?》

《비서동지, 이번에 진행한 학위학직심의에서 우리 홍정순실장이 아주 높은 평가를 받았습니다.》

《가만, 가만…》

림숙정은 그의 말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고 급히 탁우의 전화기를 앞으로 끌어갔다. 다음순간 그것을 밀어던지더니 두번째 전화기를 끄당기며 누군가의 번호를 눌렀다.

《이건 뭐야?… 방이 비였나?》

그때 문두드리는 소리와 함께 임선해원장이 방에 들어섰다.

《아, 원장선생, 내 지금 전화로 찾던중이요.》

《비서동지, 저도 방금 보건성의 전화를 받고 오는 길입니다.》

《아, 그렇소? 그럼 빨리 대책을 세워야지.》

《예.》

임선해원장은 재빨리 생각을 굴리며 아직 문가에 서있는 권일학에게 눈길을 돌렸다.

《마침 기술부원장선생도 와있구만요. 옹진까지 구급차로 가면 몇시간 걸리던가요?》

《4시간정도 걸립니다.》

《4시간?!…》

원장과 당비서 두사람이 동시에 약속이나 한듯 벽에 걸린 조선지도를 돌아보았다. 권일학은 급히 지도앞으로 다가가 평양과 옹진사이의 거리를 손으로 짚어보였다.

《보십시오, 여깁니다. 세쌍둥이임신부가 위급하다는것 같은데… 빨리 떠나야 합니다.》

《그래요.》 임선해원장이 받았다. 《누굴 보내면 좋을가요?》

《제가 가겠습니다.》

《기술부원장선생이? 그럼 여기서 제기되는 일은 누가 어떻게 한다는거예요?》

림숙정당비서가 머리를 끄덕이였다.

《기술부원장이 직접 간다면 난 마음을 놓겠소.…》

임선해원장은 잠시 생각하더니 권일학에게 재빨리 물었다.

《그럼 누굴 데리고 가겠어요?》

《2산과의 하경옥 그리고 최봉숙간호장… 이들이면 될것 같습니다.》

《좋아요. 그럼 빨리 차비하세요.》

즉시 권일학은 원장과 같이 문을 차고 나갔다.

이어 원장의 지시에 따라 많은 사람들이 불이 난것처럼 바삐 돌아쳤다. 치료예방과에서는 2산과, 녀성건강관리과, 운수대기실에 구급왕진지령을 주고 소생도구와 의약품들을 준비시켰다. 구급차운전사는 주동국이였다.

얼마후 권일학은 빈틈없는 왕진준비를 갖추고 하경옥, 최봉숙과 함께 차에 올랐다.

《기술부원장선생님, 이 편지를 가지고가십시오.》

《그건 뭐요?》

《아까 웬 군관이 기술부원장선생님을 찾아왔었는데 연구설비때문에 나가셨다는걸 알고 한시간이나 기다리다가 이렇게 편지를 써놓고 갔습니다.》

권일학은 접수원처녀에게서 받은 편지를 거침없이 위생복주머니에 쑤셔넣으며 손짓했다.

《자, 떠납시다!》

출발이다. 처음부터 최고속이다. 차우에서는 빽-빽- 하는 소리와 함께 비상신호등이 껌벅거리고 오고가던 차들이 서둘러 길을 내주었다. 길가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바람처럼 질주하는 구급소생차를 바라보았다.

흔히 사람들은 산원의 이 차가 달리는것을 볼 때마다 은연중 줄거운 마음으로 빽-빽- 하는 비상신호소리를 《또-딸 또-딸》 하는 소리라고 웃으며 말하군 했고 아이들은 《빼곡차다!》 하고 반기며 소리지르군 한다. 무엇이 빼곡찼다는것일가?… 그러나 지금 얼마나 위급한 일이 있어 이 《빼곡차》가 비상신호등을 껌벅거리며 달리고있는지는 누구도 알지 못할것이다.

권일학은 주먹을 꽉 부르쥐고 시종 긴장한 눈빛으로 앞을 내다보고있었다. 사실 우리 나라에서는 세쌍둥이라고만 의진되면 무조건 평양산원에 입원시키는것이 어길수 없는 하나의 법칙처럼 되고있다. 그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정해주신 사랑의 조치였다.

언제였던가.… 당중앙위원회에서 회의를 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평양산원에서 세쌍둥이가 태여났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우리 나라에서 세쌍둥이의 출생률이 높아지고있는것은 나라가 흥할 징조라고 하시면서 전국각지에서 태여나는 세쌍둥이들 모두가 특별한 의학적감시와 보호를 받도록 온갖 대책을 다 취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였었다.

그리고는 출생후에는 생년월일을 새긴 은장도와 금반지를 선물로 주시고 그들을 한가정에서 다 키우기 곤난하므로 네살까지 국가의 부담으로 키울데 대한 은정깊은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지금껏 어버이수령님의 이런 극진한 사랑과 보살핌속에 벌써 수백여쌍의 세쌍둥이들이 평양산원에서 태여났다. 그들모두가 아무런 곡절도 없이 순산한것은 아니다. 오늘처럼 뜻하지 않던 일로 임신부가 위급하여 구급차가 비상신호등을 껌벅거리며 달린 일도 적지 않다.

소생차는 어느덧 시내를 벗어나기 시작했다. 급작스레 마주 달려오던 길옆의 나무들과 도로표식판들이 차창으로 획-획- 바람처럼 지나갔다. 속도계바늘이 최대속도를 가리키며 파르르 떨고있었다.

별안간 긴장하여 앞좌석에 앉아있던 권일학이 시창밖으로 하늘을 내다보았다. 당장 소낙비를 퍼부을것 같은 시커먼 먹장구름이 세찬 바람을 이기지 못해 남쪽방향으로 황황히 밀려가고있었다.

이미 예고받은 그대로였다. 기상수문국에서는 일기예보를 문의해온 내각의 해당 부문 일군에게 오늘 아침부터 중부지방으로 들이닥친 강한 열대성저기압이 전례없는 태풍과 함께 무더기비를 몰아온다고 통보해주었었다. 날씨만 이렇지 않았더라면 세쌍둥이를 위해 벌써 직승기가 하늘을 날았을것이다.

권일학은 마음속 불안을 누르며 누구에게라없이 물었다.

《오늘 태풍이 예견된다는 말을 들었소?》

뒤에 있는 최봉숙간호장이 대답했다.

《예, 센 바람이 불고 비도 많이 오겠다고 했습니다. 글쎄 가을철인데 무슨 큰비가 오겠다구.》

그때 긴장하게 앞을 내다보고있던 주동국이 끼여들었다.

《가을장마라는게 있지 않습니까. 우리 나라에 오는 태풍중에서도 제일 피해가 큰것을 보면 대체로 가을에 있었지요.》

《그래.》 권일학이 혼자소리처럼 중얼거렸다. 《그럴 때가 적지 않았소.》

《예, 옳아요. 나도 어릴 때 직접 수해를 겪었어요. 참, 하선생도 그때 평양에 있었어요?》

하경옥은 말없이 머리를 가로저었다. 그때 그는 이 세상에 태여나지도 않았던것이다. 벌어지는 대화에는 아무 흥미도 없는듯 했다. 구김살없는 산뜻한 위생복에 하얀 위생모를 꼭 눌러쓴 그는 입을 다물고 줄곧 차창밖을 내다볼뿐이였다.

어느새 시창유리에 굵은 비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권일학이 앞시창을 내다보며 말했다.

《하선생, 현지에 도착하자마자 즉시 구급방조를 할수 있게 미리 준비해주시오.》

《예.》

하경옥은 아무 감정없이 대답했다.

최봉숙간호장이 그의 무릎에 놓았던 구급함을 자기쪽으로 잡아끌며 입속말로 속삭였다.

《그걸 인주세요. 그런데 웬일이세요? 늘 밝고 친절하던 하선생이 오늘따라 별스레 흐려있으니… 아이참, 좀 웃으세요. 이 차안에도 비가 막 내릴것만 같애요.》

《…》

하경옥은 여전히 말이 없었다. 번거롭고 착잡한 마음, 어째서 이처럼 마음의 안정을 찾지 못하고있는지 알수 없었다.

문득 얼마전에 들은 서범천의 말이 생각났다.

《하선생, 하선생은 축구나 프로권투 같은 경기를 좋아하오?》

《그건 무슨 소리예요?》

《글쎄, 꼭 알고싶어서… 난 말이요, 녀성이란 무엇보다 가장 섬세하고 부드러운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런데요?》

《그런데 하선생은 늘 텔레비죤에서 축구나 권투 같은 체육경기가 나올 때마다 의사실에 혼자 앉아 보더구만. 그래서 난 생각해봤소, 용모나 마음씨로나 누구보다 부드러운 녀성이 어째서 남자들이 좋아하는 저런것을 좋아할가 하고 말이요.》

그때 하경옥은 따뜻한 눈빛으로 그를 마주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갑자기 녀성들의 심리학을 연구하고싶은 모양이지요?》

《아니, 난 그저 강한 사나이들에게 반해버리는 하선생이 왜 가까이에서 자기를 지켜보는 그런 사람은 못 보고있을가 하고 생각해봤을뿐이요.》

《강한 사나이…》 이렇게 나직이 중얼거리며 하경옥은 그의 두눈을 들여다보았다.

《그래, 말하자는게 뭐예요?》

《하선생, 언젠가는 내 꼭 선생에게 말하고싶었소. 하선생은 왜서 기술부원장이라면 그렇게 리해하려고 하지 않소? 매번 고깝게만 생각하면서…》

《그래서요?》

《실은 나도 한때 그를 오해했댔소. 그가 너무 원칙, 원칙 하면서 사람들을 랭정하게 대하고 못살게 군다고 말이요. 그러나 그 매정해보이는 원칙속에 실은 가장 뜨거운 정이 숨어있다는것을 알게 되였을 때 난 정말이지… 머리가 숙어졌소. 이번 복강경수술도 기술부원장이 적극 밀어주지 않았다면 성공하지 못했을거요. 그는 자신이 법적인 책임까지 질 각오를 가지고 이 복강경수술을 진심으로 밀어주었소. 그런데 하선생은…》

서범천을 지켜보면서 하경옥은 눈시울이 바르르 떨리는것을 느꼈다. 그러니 그렇게 강하고 진실한 기술부원장을 나만이 잘못 보고있다는 말인가. 애기과에 있던 현희가 편지에 써보낸것처럼 새로 온 기술부원장이 웅심깊고 진실한 사람인데 나만이 그걸 보지 못하고있다는것인가?…

웬일인지 반발심같은것이 솟구치며 따끔한 경련이 목구멍으로 치밀어오르는것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하경옥은 어쩐지 그의 말을 부정하고싶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자꾸만 믿고싶어지는 자기를 깨닫고 속으로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지금도 그렇다. 누모르안에 의한 약물실험자료, 하경옥은 처음에 그것이 자기에게만 베푼 그 어떤 숨겨진 혜택이라고만 생각했었다. 그래서 자기의 성과를 남에게 넘겨주는 그를 위선자라고 단정했었다.

그러나 실험자료를 마주한 하경옥은 그 자료를 파고들면 파고들수록 자기의 경솔함에 대하여 다시금 돌이켜보군 하였다. 녀성들의 진통을 덜어주기 위해 혼자서 그 위험한 실험을 완강하게 진행해온 권일학, 이것이 그의 진심이 아닐가, 뜨겁고 웅심깊은 그런 진정이 아닐가?…

문득 눈물이 그렁한 두눈으로 자기를 쳐다보던 권일학의 어린 아들이 떠오른다. 어째선지 반갑게 맞던 그 어린것이 갑자기 무춤하고 뒤걸음치며 의혹과 원망어린 눈으로 바라보았었는지.… 또 언제였던가?… 수술이 끝나기를 기다려 문밖에 쪼그리고 앉아있던 어린 정철이, 그때도 정철이는 자기를 안고 의사실에 들어가는 하경옥을 말끄러미 쳐다보다가 갑자기 버둥거렸었다.

《아니야, 싫어!》

《너 왜 그러니?》

《아니야!》

《뭐가 아니라는거니, 응?》

《아니야, 우리 엄마 아니야!…》

그때 하경옥은 얼마나 놀랐던가. 그리고 얼마나 아팠던가. 그 애의 한마디 부르짖음이 애틋한 정을 쏟고싶어하던 그의 가슴을 날카롭게 허비는것만 같아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뒤걸음쳐가는 어린것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었다.

갑자기 차가 들추기 시작했다.

《주의하십시오. 이제부턴 길이 험합니다.》

운전사 주동국이 앞시창에서 눈길을 떼지 않고 하는 말이였다.

구급차는 무거운 침묵속에서 한동안 억수로 쏟아지는 비속을 뚫고 달렸다.

그들이 어느 한 다리목에 이르렀을 때였다. 오가던 차들이 비상신호등을 껌벅거리며 요란스럽게 빽-빽 소리를 지르는 구급차에게 길을 내주는것이 보였다.

《고맙소!-》

주동국이 비물이 줄줄 흐르는 시창에 이마를 바투 가져다대며 나직이 소리쳤다. 이어 군용차적재함우에서 한 군인이 그들을 향해 손을 힘껏 젓고있었다.

운전사 주동국은 물론 권일학이도 그에 대한 답례인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누구도 이상하게 생각지 않았다. 산원의 구급차가 지방왕진에 가고올 때마다 누구나 그렇듯 반갑게 그리고 친근한 감정으로 대해주군 했다.

하경옥은 고개를 돌리며 그 군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였다. 웬일인지 뽀얀 비발속에 점차 멀어져가는 그 군인을 무심히 볼수 없었다. 혹시 저 군인은 우리 평양산원과 남다른 어떤 인연을 가지고있는 사람은 아닐가?…

아마도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전류와 같이 가닿는 무언의 느낌이 있는것 같다. 하경옥은 무엇때문인지 자기의 느낌이 틀림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놀라운 일이지만 그때 산원의 구급차를 향해 손을 흔들며 반갑게 웃음짓던 그 군관은 바로 산원에서 탄원해간 박현희가 복무하는 부대의 안순남중대장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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