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47 회)


제 5 장 최전연에서


2


그날 안순남은 이틀간 휴가를 받고 현희의 어머니를 만나고 부대로 돌아가던 길이였었다. 뜻밖에 다리목에서 만난 산원의 구급차… 그래서 반갑게 손저어준 안순남이였다.

평양산원! 현희가 그리도 사랑담아 부르던 산원… 그 현희가 지금은 병원침대에서 움직이지 못하고 고민하고있을것이다. 암담해진 자기 운명을 두고 괴롭게 생각을 이어가고있을것이다.

그는 울면서 말했었다.

《더는 오지 마세요. 부탁합니다!…》

안순남은 입술을 꾹 깨물며 머리를 흔들었다. 아니, 그런다고 물러설 내가 아니요. 믿어주오, 현희. 우리 군복입은 사나이들이 곁에 있는 한 동무같은 녀성은 절대 불행해지지 않는다는것을!…

하지만 현희의 어머니는 그가 갑자기 나타나 하는 말에 깜짝 놀란듯 했다.

《무슨 소릴 하나? 이렇게 끌끌한 자네가 우리 현희를 어떻게…》

《전 군인입니다. 한번 결심하면 그대로만 하는데 습관되여있습니다.》

《안되네, 안돼!… 우리 현희는 한생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아야 할 몸이야. 그런데 맏아들인 자네가 어떻게…》

안순남은 머리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니, 전 어머니한테 승인받으러 온것이 아니라 결심을 알려주러 왔습니다. 그렇게 알아주십시오.》

그대로 집을 나선 그는 곧바로 평양산원으로 향했다. 현희가 늘 말하던 기술부원장을 만나 현희의 치료문제를 토론하고싶었던것이다. 그러나 기술부원장은 어디엔가 나가고 없었다. 오래 걸린다고 한다. 한시간나마 기다렸으나 더는 지체할수 없었다. 그는 규률과 명령에 복종해야 하는 군인이였던것이다.

안순남은 선자리에서 급히 기술부원장에게 쓴 편지를 접수에 남기고 곧 기차를 타고 부대로 떠났다. 어느 한 역에 내려 비내리는 진창길을 걷기 시작했는데 다행히 지나가는 자동차를 얻어탈수 있었다.

얼마나 왔는지… 억수로 쏟아지는 비에 온몸이 젖어들었다. 그러나 속에서는 계속 해결되지 않는 일때문에 불이 일고있었다.

억수로 퍼붓던 비는 안순남이 부대에 도착해서야 좀 뜸해졌다. 젖은 군복을 말릴새도 없었다. 제대된 박현희를 병원으로 후송한다는것이였다. 그는 즉시 결심하고 려단지휘부로 걸음을 옮겼다.

어느 한 방앞에 이른 안순남은 군복앞자락을 힘껏 당겨 반듯하게 편 다음 담차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거수경례를 붙이며 힘차게 보고했다.

《려단정치위원동지, 상위 안순남 만날수 있습니까?》

키가 크고 주의깊은 눈길을 가진 려단정치위원이 탁우에 펴놓고있던 무슨 문건에서 머리를 들며 그를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요?》

《옛, 전 결심했습니다. 제가 안고가겠습니다. 그 동무를 저에게 맡겨주십시오!》

정치위원은 동닿지 않은 그의 말에 의아한 눈길을 던졌다.

《중대장, 지금 무슨 말을 하는거요?》

《예?…》

안순남은 당황해났다. 그렇듯 모든것이 단순하고 명백하던 말마디들이 이 한순간 어디로 다 달아나버렸는지 하나도 생각나지 않았다.

그는 갑자르며 떠듬거렸다.

《전 그를… 아니, 그 동무를… 사랑합니다. 영원히 동지로서 … 그리구 또…》

정치위원은 여전히 놀란 눈빛으로 안순남을 지켜보기만 했다. 무엇인가 리해되는듯 하면서도 아직 분명치 않은 그의 말을 되새기며 마치도 그의 마음속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듯 실눈을 짓고있었다.

《그래, 사랑한단 말이지? 누구를?…》

《예, 박현희동무입니다.》

《오, 군의소 간호장?》

《옛, 그렇습니다!》

정치위원은 그제야 소리내여 웃으며 손에 들고있던 색연필을 문건우에 던졌다.

《괜찮아, 아주 담차거던.》

《그렇습니다.》

정치위원은 다시한번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나 창문으로 다가갔다. 한동안 말없이 창문을 마주하고있던 그가 안순남에게로 돌아섰다.

《그게 진심이겠지?》

《그렇습니다.》

《음-》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 그는 무심히 탁우에 놓여있는 색연필을 집어들고 빙글빙글 돌리기 시작했다.

《너무 서둘러 결심한건 아니요? 즉흥적인 결심은 후회로 끝나는 법이야. 그리고 사랑은 의무가 아니지.》

잠시 고개를 숙이고있던 안순남이 머리를 번쩍 들었다.

《정치위원동지!…》 그의 눈빛은 침착하고 진지했다. 《전… 사랑이라는걸 다는 모릅니다, 또 해본적도 없구… 그러나 사랑이란 진정으로 바치는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사랑은 주는것이지 결코 받는것이 아니라고 말입니다.》

정치위원의 손에서 빙글빙글 돌고있던 색연필이 멎어섰다. 이어 그것이 탁우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한동안 주의깊은 눈길로 안순남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정치위원이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그의 단단한 어깨를 힘주어 잡았다.

《고맙소, 중대장!…》

이어 정치위원은 전화기를 끄당겨 송수화기를 들었다.

《군의소장을 찾소.》 잠시후 그는 조금 갈린듯 한 어조로 말했다.

《군의소장동무요?… 내 방으로 곧 오시오.》

그리고는 색연필을 들고 문건우에 머리를 수그렸다. 탁자 맞은편에 서있는 안순남에 대해서는 가뭇 잊고있는듯 했다.

얼마후 군의소장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

《대좌동지, 군의소장 홍영남 명령대로 왔습니다.》

정치위원은 천천히 머리를 들었다.

《군의소장동무, 내 한가지 부탁할게 있소. 이 동무 말이요, 포병중대 중대장인데 오늘 후송하는 박현희간호장 있지? 그와 함께 이 동무도 같이 보내오.》

《예?》

그가 놀라는것을 보며 정치위원은 소리없이 웃었다.

《알고보니 이들이 결혼을 약속했다누만. 지금 현희동무가 제일 힘든 때인만큼 그에게 이 동물 따라보내자는거요. 그러면 현희에게 힘이 되지 않을가?…》

《알았습니다, 정치위원동지!》

그가 힘차게 거수경례를 붙이자 정치위원은 웃는 낯으로 안순남을 돌아보았다.

《인젠 됐지?》

《고맙습니다, 정치위원동지!》

안순남은 허리를 쭉 펴며 군의소장이 그랬던것처럼 힘차게 거수경례를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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