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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체108(2019)년 8월 25일

평양시간


(제 48 회)


제 5 장 최전연에서


3


그 시각 권일학의 일행이 타고있는 구급차는 거의나 목적지를 가까이하고있었다. 이대로 가면 제때에 환자를 실을수 있을것이다. 가볍게 안도의 숨을 내쉬던 권일학은 위생복주머니에 삐죽이 나와있는 하얀 편지봉투를 손으로 더듬었다. 떠날 때 접수원처녀가 준 편지였다.

봉투에는 시원시원한 필체로 《평양산원 기술부원장선생님 앞》이라고 씌여져있었다.

편지를 펼쳐들었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평양산원에서 탄원해온 박현희동무가 복무하고있는 전연구분대의 중대장 안순남입니다.…》

박현희라구?… 언제인가 그 처녀에게서도 이런 편지가 왔었다. 그때 처녀는 권일학이 앞으로 첨단기술로 꾸려질 평양산원에 대하여 설명을 잘해주었기때문에 웅변모임을 실감있게 했다고, 그래서 전연구분대 병사들에게 자기들이 태여난 산원에 대하여 더 잘 알려주었다고 하면서 우리 병사들에게 평양산원에 대한 긍지를 더 깊이 심어준 기술부원장선생에 대하여서도 정말 잊지 않겠다고 했었다.

권일학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편지를 읽어내려갔다.

《…전연구분대병사들인 저희들은 박현희동무를 통하여 늘 평양산원을 보았으며 우리들이 태여난 그 산원을 우리 병사들의 마음의 집으로, 고향집으로 여기고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박현희동무가 군사임무수행중 뜻하지 않은 일로 그만…》

편지에는 애기간호원이였던 박현희가 그렇게도 가고싶어했던 평양산원에 대하여, 그러나 붕락사고때 동지들을 구원하고 심한 타박에 하반신마비가 온 그에 대해서 자상히 적혀있었다.

편지를 쥐고있는 권일학의 손이 가늘게 떨렸다. 하반신마비라니?! 그 처녀가?!…

편지를 다시 눈앞에 바투 가져다대였다.

《기술부원장선생님, 현희동무는 늘 기술부원장선생에 대하여 말해오군 했습니다. 기술도 높고 심장도 뜨거운 훌륭한분이라고.… 그리고 이런 의사들이 많은 평양산원은 이 세상 녀성들의 병을 못 고치는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기술부원장선생님, 현희동무의 소중한 꿈을 지켜주십시오. 그를 평양산원으로 업고오겠으니 대지를 활보하며 그처럼 소원하던 애기간호원으로 되게 해주십시오!…》

짧은 편지였다. 하지만 너무도 큰 충격에 권일학은 거기에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모두가 의아한 눈길로 자기를 지켜보고있는것도 알지 못했다.

제대되면 꼭 산원에 다시 오겠다고 약속했던 박현희, 유명한 애기간호원이 되겠다고 밝게 웃던 그 처녀, 그런 처녀가 이렇게 될줄이야?…

권일학은 박현희에 대하여 더 생각할수 없었다. 주동국이 큰소리로 그에게 알려주었던것이다.

《다 왔습니다.》

구급차는 벌써 옹진군인민병원에 들어서고있었다. 련락을 받은 군인민위원회 위원장과 군당책임비서가 의사들을 데리고 그들을 맞이했다.

《먼길을 오시기 수고했습니다.》 군당책임비서가 반갑게 인사하며 하는 말이였다. 《정말 제때에 왔습니다. 인젠 마음을 놓게 됐습니다, 평양산원에서 왔으니!…》

나이지숙한 군인민병원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나서 자책에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우린 처음 그저 쌍둥이로만 알았습니다. 초음파소견에도 별로 이상이 없었고… 그런데 이런 일이 생길줄이야!》

그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있던 권일학이 알만 하다는듯 머리를 끄덕이였다. 다태임신이란 흔한것이 아니여서 경험없는 의사들은 혹간 초음파상에서도 그에 대한 이상소견을 감득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므로 임신 두달이면 리인민병원에 등록하고 정기적으로 담당의사의 진찰과 검진을 받는 임신부들이라 할지라도 뒤늦게야 세쌍둥이로 의진되는 일이 적지 않으며 결국은 오늘처럼 평양산원에서 비상구급왕진을 떠나게 되는것이다.

긴장한 눈빛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권일학과 하경옥이 임신부를 초진했다. 환자를 진찰하는 권일학의 얼굴이 점차 어두워졌다. 임신부에게 임신후반기 중독증이 온것 같았다.

그가 묻는듯 한 눈빛을 던지자 하경옥이 기다리고있었던듯 조용히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검사소견에는 혈장단백과 혈색소량이 심히 감소되고 전신부종이 심합니다.》

《그러니 임신성고혈압에 임신성빈혈까지?…》

《예.》

권일학은 저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갑자기 그의 얼굴은 해쓱해졌다. 임신성고혈압에 임신성빈혈까지 합병되였다면 적혈구수와 혈색소량이 감소되면서 전신순환부전과 호흡부전으로 태아와 어머니의 생명이 위태로와지기때문이다.

《기술부원장선생님, 서둘러야겠습니다.》

《옳소, 시간이 급하오.》하고 말한 권일학은 군일군들을 향해 물었다. 《평양으로 가는 더 가까운 길은 없습니까?》

《있습니다. 군경계를 벗어나 좀더 가면 달래강을 낀 낡은 도로가 있습니다. 그런데 국도가 아니여서 길은 나쁩니다.》

권일학이 이번에 주동국에게 물었다.

《주동무, 어떻소?》

《갑시다.》

그들은 즉시 환자를 구급차에 옮겨실었다. 책임비서옆에 서있던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이 권일학의 손을 부여잡았다.

《기술부원장선생, 부탁합니다! 우린 평양산원을 믿습니다.》

《걱정마십시오, 다 잘될겁니다.》

떠나는 그들에게 군안의 책임일군들과 군인민병원 의사들 그리고 입원실 환자들까지 떨쳐나 손을 저어주었다.

어느새 주동국이 발동을 걸었다. 금방 몇백리를 달려온 그였지만 또 그 먼길을 고속으로 달려가야만 했다.

비상신호등이 다시금 숨가쁘게 껌벅거렸다. 길가의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차가 멀리 사라질 때까지 눈길을 떼지 못했다.

달리는 차안에서는 하경옥이 최봉숙간호장과 같이 감시장치를 긴장하게 살피고있었다.

《혈압 90/60, 맥박 120, 호흡감소.》

권일학의 얼굴은 점점 더 굳어져갔다. 푸른색의 심전도그라프와 혈압관계를 표시하는 붉은색의 선들, 맥박수를 나타내는 형광수자들이 그의 눈길을 아프게 끌었다.

《스트로판린 0. 25그람 정맥주사!》

최봉숙간호장이 재빨리 환자의 팔에 고정시켜놓은 점적병에 약을 풀어넣었다. 하경옥이 임신부의 얼굴을 한쪽으로 돌리고 흡인기로 기도안의 분비물을 뽑아내였다.

권일학은 또 지시했다.

《10프로캄과 피하주사!》

어느새 주사기에 약을 재우는 최봉숙간호장. 감시기구들을 살피고있던 하경옥이 눈깜박할 새에 임신부의 혈압과 맥박을 정확히 기록해놓았다.

차가 들출 때마다 임신부가 괴롭게 신음했다. 권일학은 급히 손목시계를 들여다보았다. 그런데 웬일인지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하지만 환자의 상태만은 오씰로그라프처럼 눈앞에 선명하게 보고있었다. 이런 상태에서 갑자기 진통이 시작되면 어머니나 태아에게는 매우 위험하다. 물론 초보적인 의료시설이 갖추어진 구급차에서 긴급해산을 할수도 있겠지만 다태해산은 사정이 다른것이다. 임신부가 위급한 상태에서 자기 달을 다 채우지 못한 3태자를 해산한다는것은 곧 모든것이 끝장이라는것을 의미하는것이다.

권일학은 무엇때문인지 이마를 찡그리고있는 주동국에게 소리쳤다.

《운전사동무! 차가 왜 이렇게 굽벵이같이 가는거요, 응?…》

《아닙니다. 지금 최대속도입니다.》

《뭐?》

주동국은 가속답판을 지그시 밟으며 차츰 커가는 동통을 참느라고 이를 사려물었다. 좀 더 속도높이!… 차바퀴밑에서 흙탕물이 휘뿌려지군 했다.

또다시 임신부가 신음했다. 감시기구에서 울려나오는 경고신호에 모두의 가슴이 조여들었다. 임신부의 생명지표들이 계속 떨어지고있는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주동국은 조향륜을 틀어쥐고있는 자기의 두손에 힘을 주었다. 빨리, 빨리!… 생명은 시간에 관계된다. 속도는 곧 생명과 이어진다.

이것은 그들 구급차운전사들이 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환자를 제때에, 늦지 않게 병원에 실어가야 생명이 구원될수 있다고 믿고있는것이 바로 구급차운전사들인것이다.

《헉!-》

갑자기 주동국은 조향륜을 틀어잡고 단숨을 몰아쉬였다. 그 바람에 차가 움씰 뛰여올랐다. 그는 저도 모르게 한손으로 배를 그러쥐였다. 떠날 때부터 별치않게 뜨끔거리던것이 끝내 말썽을 일으키기 시작한것이다.

《왜 그러오, 응?!》

권일학이 물었다.

《아,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동국은 여전히 가속답판을 밟아댔다. 참아야 했다. 지금 위급한것은 환자인것이다. 무섭게 입을 앙다물었다. 부릅뜬 눈으로 앞시창을 쏘아보며 자기의 아픔을 잊으려 했다.

그래도 동통은 온몸을 지져대며 쇠꼬쟁이처럼 파고든다. 이마에서 흘러내리는 식은땀이 눈을 쓰리게 했다. 손바닥으로 그것을 문지르며 그는 속으로 부르짖었다. 참아야 한다. 시간을 앞당겨 산원에 가야 한다. 그리고… 오늘 은경이와 한 약속도 있다. 오늘은 꼭 은경이의 습작에 묘사대상으로 서주겠다고 한 약속…

누이동생을 생각하니 저도 모르게 고통으로 이지러지던 입귀에 엷은 미소가 피여났다. 뿌루퉁해서 오빠에게 불만을 쏟아놓던 은경이였다.

《오빤 일요일두 없어요? 구급차운전사는 밤낮 들볶이며 살아야 하는가요?》

《아, 이거 안됐구나. 오늘도 산원에 나가 차정비를 하기로 했으니 묘사대상으로 나서는건 래일로 미루자꾸나. 래일은 꼭 시간을 내줄게, 응?…》

《아유, 오빤 늘 그저 산원, 구급차!… 그래 처녀와 만날 때에도 그렇게 말하겠어요? 그러다가는 단번에 퇴짜를 맞지 않나 두고봐요.》

어제 저녁에 있은 일이였다. 화판앞에 마주앉아있던 은경이가 집에 들어서는 그에게 한바탕 푸념을 늘어놓았던것이다.

《오빠, 그건 그렇구, 여기 와서 이걸 좀 보세요.》

그가 다가가니 은경이가 화판우에 압정으로 꽃은 종이장을 가리키는데 거기에는 《우리 시대의 청년》이라는 제목이 씌여져있었다.

《우리 시대의 청년이라… 이 그림의 주인공이 누군데?》

《오빠지요 뭐.》

《뭐?》

그러고보니 은경이가 그리는것은 분명 자기였다.

《내가 주인공이야? 우리 시대의 청년?…》

《그래요. 오빤 그저 입만 벌리면 우리 산원의 훌륭한 의사들, 책임성높은 조산원들, 정성스러운 애기간호원들에 대하여 자랑하군 했지요? 하지만 난 그들보다도 구급차운전사인 오빠를 더 자랑하고싶단 말이예요.》

《그건 왜?》

《그건 바로 오빠가 하는 일이 생명과 관계되기때문이예요. 오빤 그 생명을 위해 밤과 낮이 따로없이 뛰고있지요. 그래서 늘 시간이자 곧 생명이라고 말해왔고.》

주동국은 소리내여 웃었다.

《내가 정말 그렇게 멋있는 말을 했어?》

그러자 은경이는 배를 그러쥐고 웃어댔다. 눈물이 찔끔 나오리만큼 기껏 웃고나서 말했다.

《아유, 덜퉁한 우리 오빠! 이런 오빠에게 어떤 처녀가 시집올가?》

그때 은경이는 오빠와 맞설 처녀는 자기가 맡겠다면서 이런 오빠의 초상을 멋지게 잘 그려보겠다고 했었다.

아마 지금쯤은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며 자기를 기다리고있을것이다.

그렇게 한동안 시간이 흘렀다. 멎었던 비가 다시 내리기 시작했다. 드디여 군경계를 벗어난 구급차는 곧 달래강을 낀 낡은 도로를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 파헤쳐진 물웅뎅이들을 뛰여넘으며 긴장하게 달리던 차가 어느 한 굽인돌이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주동국은 운전대에 머리를 틀어박으며 차를 급제동시켰다.

《아!-》

뒤이어 천둥소리가 울리며 비바람이 뽀얗게 앞을 가리웠다. 깜짝 놀란 하경옥과 최봉숙간호장이 서로 부둥켜안고 비명을 질렀다. 권일학이도 어딘가에 어깨를 세게 부딪치였다.

《무슨 일이요?》

권일학이 소리쳐 물었다. 한동안 조향륜을 그러쥐고있던 주동국이 무겁게 머리를 들었다.

《저앞에 사태가 진것 같습니다.》

《뭐요?》

모두가 굳어졌다. 사태?!… 떠날 때부터 가슴을 조이게 하던 불안이 현실로 되여 끝내 산사태에 맞다든것이다.

사태로 하여 그들이 가는 앞길은 묻혀버렸다. 저 먼 골안에서 무시무시한 굉음이 우뢰소리처럼 울려왔다. 이어 굵은 비줄기속에서 커다란 돌맹이들이 굴러내리며 길을 막았다.

《아!-》

누가 부르짖었는지.… 어느새 주동국이 다급하게 구급차를 뒤로 후진시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후 차는 무엇인가에 걸려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그 순간 사람들은 눈앞에까지 굴러온 커다란 바위를 보고 혀를 깨물며 아우성쳤다. 돌연 주동국이 힘겹게 소리질렀다.

《가만, 움직이지 마시오!》

다음순간 주동국은 《으-윽!-》하는 이상한 소리와 함께 차를 옆으로 곤두박질하듯이 내몰았다. 길섶을 벗어나 강기슭으로 자갈돌을 휘뿌리며 달려갔다.

환자가 또 신음했다. 그제서야 하경옥이 그를 꽉 그러안으며 울음소리처럼 말했다.

《참아요, 제발!…》

사실 그 처녀는 울고있었다. 얼마나 미련한 일인가, 의사가 환자더러 제발 참으라고 한다는것이… 하지만 이런 정황에서는 달리할수가 없다.

가까스로 차를 돌린 주동국이 권일학에게 물었다.

《어떻게 할가요? 앞으론 더 못 나갑니다.》

권일학은 그에게가 아니라 하경옥을 돌아보며 소리쳐 물었다.

《환자는 어떻소?》

《이- 일없습니다.》

위험은 시시각각으로 더 커졌다. 앞에서는 계속 커다란 바위돌이 사정없이 강기슭으로 굴러내리며 부러져나간 아름드리나무들을 마구 짓이겨버리고있었다. 어느새 강물은 흙탕물로 변하여 사품쳤다.

주동국이 물었다.

《어떻게 할가요?》

권일학은 오히려 그에게 반문했다.

《어떻게 하면 좋겠소?》

대답이 없었다. 한순간 차안엔 적막이 깃들었다, 비바람이 우-우- 소리를 내며 구급차의 시창을 때릴뿐.…

《아-아-》

의식이 혼미해있던 환자가 몸부림쳤다. 감시장치에서 세쌍둥이들의 상태를 알려주는 태아심박소리가 그에 질세라 으악- 으악- 하면서 증폭되여 울렸다. 흔히 애기를 낳는 산부들이 엄마- 엄마! 하는 소리로 듣는다는 그 소리, 그때에야 사람들은 자기들이 방금 그 무시무시한 산사태에 묻혀버릴번 했다는것, 한순간에 모든것이 끝나버릴번 했다는 끔찍한 생각에 몸서리치면서도 감시장치에서 울리는 태아들의 힘찬 심박소리에 두눈을 반짝이였다. 새삶이 세차게 호흡하고있는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무서운 위험이 가셔지지 않았다는것을 누가 알수 있었으랴.

주동국이 또 배를 그러안고 신음했다. 그에게로 눈길을 돌린 권일학이 다급히 물었다.

《왜 그러오? 주동무.》

《아무것도…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권일학은 직업적인 의사의 감각으로 주동국이 심상치 않은 동통을 참고있다는것을 직감했다.

《내 좀 보기요.》

그에게로 손을 뻗치던 권일학이 입을 벌린채 굳어져버렸다. 별안간 저앞에서 흙탕물이 구급차를 맞받아 밀려오고있었던것이다. 골짜기가 메워지면서 흐름이 막힌 강물이 기슭으로 넘쳐났다는것을 그때엔 누구도 알지 못했다.

또다시 터진 비명, 권일학이 신음하는 주동국에게 소리쳤다.

《저걸 보오. 위험하오!》

어느새 주동국은 머리를 번쩍 들고 밀려오는 흙탕물에서 벗어나려고 서둘렀다. 차가 요동쳤다. 바퀴밑에서 자갈돌들이 뿌려져나가기 시작했다. 권일학은 가쁜숨을 몰아쉬며 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했다. 장군님께서 보내주신 미더운 운전사, 어제날 장령차의 운전사였던 주동국, 인제는 모든 사람의 생명이 그에게 달려있다. 몸을 비틀며 괴로와하고있는 주동국, 하지만 벌어진 사태는 거기에 주의를 돌릴 여유를 주지 않았다.

가까스로 불어나는 강물에서 벗어났다. 그러나 길아닌 비탈면에서 또 멎어섰다. 임신부가 더이상 참을수 없는듯 몸을 비틀며 소리치기 시작하는것이다. 가슴이 철렁했다. 혹시?!… 하경옥이 감시기구를 살피며 속삭이듯이 말했다.

《호흡장애, 위험합니다!》

권일학은 문을 열고 뛰쳐나가 환자가 있는 뒤자리로 들어갔다.

그들은 임신부의 입에 산소를 련결시켰다. 이렇게 오랜 시간을 끌수는 없다. 권일학은 참지 못하고 앞에 있는 주동국에게 물었다.

《무슨 방도가 없겠소?》

《그러자면 강을 건너야 합니다.》

《뭐?》

그 길밖에 없었다. 사태가 난 저앞의 굽인돌이만 넘어섰더라면 계곡의 다리를 지나 지금 마주보이는 건너편 도로에 들어섰을것이다. 산사태로 골짜기가 메워진 조건에서 부득불 흙탕물이 넘쳐나는 강을 건느지 않을수 없다. 저쪽도로에 올라서야만 평양산원으로 곧추 달릴수 있는것이다.

《건늘수 있겠소?》

인제는 모든것이 주동국에게 달려있다. 그의 결단과 의지와 경험을 믿는 수밖에 없다.

주동국은 여전히 고통스럽게 이지러진 얼굴을 차창유리에 대고 지꿎게 앞을 쏘아보고있었다.

《주동무!》

마침내 주동국은 혀를 깨물며 대답했다.

《여울목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도 강물이 불어나서 위험하긴 하겠지만 그 길밖엔…》

《그게 어디요?》

《멀진 않습니다. 이 비탈길을 올라서면 작은 달구지길이 나지는데 조금만 더 가면 여울목이 있습니다.》

최봉숙간호장이 부르짖었다.

《그게 정말이예요?》

권일학이도 안도의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창밖을 바라보는 주동국의 눈빛은 신중했다. 여기는 그가 군사복무를 하던 곳이여서 여울목을 건느는것도 얼마나 위험한것인지 잘 알고있었다. 하지만 임신부의 생명은 시간을 다투고있다. 구급차운전사들에게 있어서 시간은 곧 생명이다!

그가 단호하게 말했다.

《갑시다!》

그는 또다시 험한 자갈밭으로 차를 내몰았다. 길아닌 길을 헤쳐가는 그의 얼굴은 온통 땀으로 번들거렸다. 숨도 쉬는것 같지 않았다. 비장한 눈길로 끄떡없이 앞만 쏘아보고있는 그는 오직 이 시각을 위해 이 세상에 태여난 사람같았다.

비에 젖은 풀대들과 진흙덩이들이 바퀴에 잔뜩 들어붙은 구급차는 다시 강냉이밭의 그루터기들을 짓뭉개며 옆으로 빠져 작은 소로길에 올라섰다. 겨우 달구지나 다니는 좁은 길이여서 속력을 낼수 없었다.

이렇게 얼마간 달려 구급차가 여울목에 이르렀을 때는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잠시 차를 멈추고 앞을 내다보았다.

《일없겠소?》

권일학의 물음에 주동국이 대답했다.

《우린 이미 결심하지 않았습니까.》

《좋소.》

이어 전조등을 환하게 켠 구급차가 강물에 들어섰다. 불어난 흙탕물, 가까스로 피했던 그 물속으로 다시금 들어선다. 흙탕물은 마치 기다렸던듯, 단숨에 구급차를 삼켜버릴듯 사납게 덮쳐들었다. 칼끝처럼 신경을 도사린 주동국은 차바퀴의 미세한 감각까지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며 차를 몰아갔다.

한순간 무엇이 차체에 쿵!- 하고 부딪치는 둔중한 소리가 났다. 빠른 물살에 떠내려오던 커다란 나무등걸이 차체를 들이받았던것이다.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주동국이 아무리 조향륜을 비틀었어도 구급차는 어쩔새없이 한쪽으로 기울며 물속으로 빠져들기 시작했다.

《어-마?!》

새되게 부르짖는 소리와 함께 주동국이 차문을 열고 물속에 뛰여내렸다. 사품치는 물속에 푹 빠지는 주동국을 보고 간호장 최봉숙이가 외마디소리를 내질렀다.

《앗!-》

주동국은 푸푸 물을 내뿜으며 물살에 떠밀리는 차에 어깨를 들이밀었다. 그를 뒤따라 권일학이, 다음 하경옥이도 차에서 뛰여내렸다. 세찬 물결에 몸의 균형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하경옥에게 권일학이 소리쳤다.

《조심하오!》

다음순간 열려진 문으로 머리를 쑥 내밀고있는 간호장에게 또 소리쳤다.

《동문 환자곁에 있어야 해.》

그들은 주동국을 도와 반나마 기울어지고있는 차를 힘껏 떠밀기 시작했다. 젖먹던 힘까지 다 짜내며 용을 썼다.

《영-싸, 영-싸!-》

그러나 그들의 힘만으로는 어림도 없었다. 사태로 급격히 불어난 흙탕물이 이번에는 차를 강복판으로 밀어갔다.

차안에서 최봉숙이가 뭐라고 소리쳤다.

《뭐라구?》

《환자가…》

주동국이 물속에서 허리를 펐다.

《부원장선생이랑 어서 환자를 돌보십시오.》

《하선생, 선생이 빨리 올라가보오.》

권일학은 비물이 줄줄 흐르는 얼굴을 손으로 문지르며 소리쳤다.

《주동무, 이것 보오. 강물이 점점 더 불어나는데 이러다 큰일나겠소. 사람들을 붙러와야 하지 않겠소?》

어둠에 잠긴 이 강바닥에서 어떻게 사람들을 불러온단 말인가. 사품치는 강물, 이제 조금만 더 지체하다가는 흙탕물에 사람과 차가 한꺼번에 잠겨버릴수 있다.

권일학이 또 소리쳤다.

《운전사동무, 여기 어디 주민부락이 없소?》

주동국은 여전히 밀려가는 차를 어깨로 막으며 머리를 세게 흔들었다.

《없습니다.…》

또다시 밤하늘을 사정없이 쫘악!- 찢으며 번개가 일고 천둥이 일었다. 소란스러운 비소리와 더불어 시시각각으로 불어나는 시커먼 물…

《가만!》 주동국이 웨쳤다. 《저-기 저쪽산기슭에 인민군통신중대가 하나 있습니다.》

《정말이요?》

《예.》

열려진 문으로 머리를 내밀고있던 최봉숙이가 무엇인가 결심한듯 뛰여내렸다.

《제가 갔다오겠습니다.》

권일학은 잠시 간호장을 지켜보았다. 최전연부대에서 간호장으로 복무했었고 언제나 간호장을 함선의 갑판장과 같은 위치라고 긍지높이 말하군 하던 최봉숙, 언제인가는 신입간호원들의 주사수기를 높여주기 위해 그들에게 자기 몸을 내대여 수백번이나 주사바늘로 찌르게 했던 간호장. 그라면 물과 불이라도 헤치며 임무를 수행할것이다.

《그래주오. 빨리 갔다오오.》

몸이 둥실한 최봉숙이가 군대복무시절처럼 어깨를 쭉 펴며 《알았습니다!》하고는 허리치는 물속을 헤여가는데 그의 뒤에 대고 주동국이 소리쳤다.

《저기요, 저기!… 알겠소?》

《예, 알아요.》

물소리가 소란스러웠다. 차가 또 밀리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덜컥! 하더니 멎어섰다. 알고보니 어느 한 바위짬에 바퀴가 단단히 박혔던것이다. 인제는 끌어낼수도 밀어갈수도 없었다.

그때 구급차안의 감시기구에서 다급한 경보신호가 울렸다. 모두가 급히 차안으로 기여올랐다. 차디찬 흙탕물이 임신부가 누워있는 침대밑에까지 들어찬 차안, 어느새 주동국이 실내등을 켰다.

하경옥이 불안한 목소리로 부르짖었다.

《혈압 60, 맥박 130…》

이럴 때엔 수혈만이 생명을 유지할수 있다. 두사람의 눈빛이 서로 마주쳤다.

《수혈합시다.》

권일학이 하경옥에게 팔을 내밀었다.

《아니?》

《하선생, 빨리!…》

주동국이 그들사이에 끼여들었다.

《내가 O형입니다!》

시간이 없다. 서둘러야 한다. 모든것이 시간, 또 시간… 임신부와 태아들의 생명도 그들모두의 운명도 시간에 달려있다.

주동국, 권일학, 하경옥… O형과 B형, 그들의 뜨거운 피가 정신을 잃고있는 임신부에게 흘러들기 시작했다.

사나운 물결소리, 밤하늘의 천둥소리… 불이 꺼졌다. 이제 또 무엇이 꺼질지… 위협적으로 차오르는 강물, 군인들에게 알리러간 최봉숙간호장은 어떻게 되였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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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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