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3 회)


제 5 장 최전연에서


8


퍼그나 밤이 깊어서야 권일학은 집으로 향했다. 여전히 머리속에서는 방금 만나고 오는 주동국에 대한 생각과 세쌍둥이임신부에 대한 생각 그리고 안순남이라는 군관이 편지로 알려준 박현희의 일이 떠나지 않고있었다.

그가 어느 한 간이식당앞을 지날 때였다. 어떤 술취한 사람이 비칠거리며 식당에서 나오더니 뒤따라 달려오는 사람을 뿌리치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더럽다!… 너절한것들… 퉤!-》

《아, 자네 왜 그러나, 응? 이러지 말구 어서 들어가자구.…》

《비켜! 난 〈자네〉가 아니야! 너같은 인간과 한동아리인줄 알아?… 내가 속았지!》

술취한 사람은 자기를 잡아끄는 그를 한사코 뿌리치며 권일학의쪽으로 비칠비칠 다가왔다. 마구 헝클어진 머리, 게슴츠레한 두눈, 축 늘어진 두팔… 권일학이 그를 보고 놀라 걸음을 멈추었다.

《이게 위인섭선생이 아니요?》

비칠거리며 지나가려던 술취한 사람이 두다리를 쩍 벌리며 위태롭게 멎어섰다. 겨우 몸을 가누며 눈앞을 가리운 머리칼사이로 멍청히 쳐다보던 위인섭이 그제야 너털웃음을 터뜨리며 그에게 다가섰다. 제일 가까운 친구라도 만난듯 두팔을 벌리며 부둥켜안으려 했다.

《아, 기술부원장… 바- 반갑습니다.…》

권일학이 그의 어깨를 잡아흔들었다.

《인섭선생, 이게 어떻게 된 일이요? 왜 이 모양이 됐소?》

《선생이라구요? 그래 서-선생이지! 그 말 한번 더 부-불러주시오, 한번 더!…》

갑자기 그는 두손으로 머리칼을 거머쥐였다. 그리고는 그것을 마구 쥐여뜯으며 다시 부르짖었다.

《그래, 선생이였지. 의사선생, 위인섭선생!…》

권일학은 넘어지려는 그를 부축여 조용한 구석으로 끌고갔다.

《우리 산원에선 인재로 떠받들리우던 선생이 이런 술주정뱅이가 되다니?…》

《인재라구요?…》

위인섭이 눈을 흡뜨고 그를 쳐다보았다. 녀자들처럼 희맑던 얼굴, 총명을 으시대며 남을 깔보던 거만한 눈길, 어디에도 구애되지 않던 자유로운 몸가짐… 지금 서리맞은 풀잎처럼 후줄근해진 위인섭에게서는 그 모든 긍지와 자부심을 전혀 찾아볼수 없었다.

위인섭은 자기를 지켜보는 권일학의 눈길을 피했다.

《난 너절한 놈입니다. 자기만을 생각한 너절한 놈!… 사실 제딴엔 자기 손으로 꾸린 리상적인 실험실에서 새로운 줄기세포를 연구해보겠다고 산원에서 뛰쳐나왔지만… 그들은 나의 재능 같은건 인정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인간의 두뇌가 만들어낸 그 물건의 가치만을 따졌습니다. 아, 내가 이걸 바랐던가?… 나의 창조물, 그것은 나자신이며 나의 넋이였습니다. 그 넋이 한푼의 가치도 없이 흥정되고있으니…》

분노와 후회의 눈물이 그의 얼굴을 적시고있었다.

권일학은 련민의 정이 어린 눈길로 그를 지켜보기만 했다. 위인섭이 또 울음섞인 목소리로 계속했다.

《내가 어리석었습니다. 산원에서는 나의 재능과 가치만이 아니라 인간 위인섭을 인재라고 귀하게 여겨주며 아껴주었는데 난 그것을 뿌리치고 그냥 달아났으니… 기술부원장선생님! 난 도대체 어떤 인간이란 말입니까, 예? 동지들이, 집단이 가장 값높이 사준것이 바로 그 재능이였고 나의 넋이라는것을 인제야 깨달았으니…》

권일학은 그의 이야기를 통하여 자기가 위인섭을 만나러갔던 그날에 있은 면담이 위인섭의 고집으로 파탄되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그래서 위인섭은 자기도 거기서는 더 목적했던바를 실현할수 없음을 느끼게 되였다는것이였다.

이런 사정을 터놓으며 위인섭은 주먹으로 자기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다.

《응당한것이였지!… 난 자기의 쥐꼬리만 한 지식을 재세하면서 오직 자기를 위해 뛰여다닌… 너절한 인간이였습니다. 배워주고 키워준 은혜도 다 잊고 마치 그것이 자기가 벌어들인 지식이고 재부인것처럼…》

권일학은 이윽토록 그를 지켜보았다. 사실 누구보다 앞서나가는것을 자랑으로 여기고있는 위인섭이 세계적인 첨단기술인 줄기세포연구를 추구했다는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였다.

줄기세포란 한마디로 말하여 아직 발육이 성숙되지 못한 세포로서 인체를 이루고있는 각종 조직과 기관들의 분화세포로 재생할수 있는 잠재성을 가지고있다. 사람은 일정한 시기에 달하면 세포가 재생되지 못하고 세포의 로화와 죽음으로 인한 늙기과정으로 인체의 기능이 약화된다. 특히 여러가지 외적요인(병 혹은 사고 등)으로 심장혈관계통질병과 간경변증, 당뇨병, 파킨손병, 암과 악성혈액병, 자가면역질병들과 같은 난치성질병이 오기도 한다.

이러한 질병들을 치료하고 늙음을 막는 줄기세포치료방법을 최신의학인 재생의료라고 하고있으며 이 기술은 상업적인 특허로 되여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나라들에서는 기초기술은 물론 림상기술도 일체 공개하지 않고있다. 이런 줄기세포를 이 위인섭이 연구하려고 시도하고있었던것이다.

권일학은 고민으로 초췌해지고 해쓱해진 위인섭을 말없이 끄당겨 손을 꼭 잡아주었다. 본래 총명한 이 위인섭이 남에게 속히우고 가슴아픈 모욕을 받으면서도 그냥 상품거래를 하게 된다면 어느땐가는 적지 않은 실적을 낼수도 있을것이다. 그러나 남달리 의학적감수성이 예민한 그에게는 무슨 무역을 하는 회사가 아니라 자기의 그 지식을 마음껏 발휘할수 있는 산원연구실이 더 적합한것이다.

《인섭선생, 선생이 줄기세포연구를 개척하려고 애쓴줄은 정말 몰랐소. 고맙소, 인섭선생!… 하지만 시도만 있고 체외수정연구처럼 중도에서 줴버린다면 그것이 아무리 첨단이라 할지라도 무슨 필요가 있겠소. 언젠가 인섭선생은 음악가들과 군인들의 무기를 두고 의사들의 무기인 수술칼의 상징은 도대체 무엇인가고 물은적이 있었지.》

위인섭이 얼굴을 들었다. 그도 생각나는듯 했다. 수술장에서 늘 사용하는 정교하고 세밀한 작은 수술칼에 대하여 자기식의 주장을 펴던 일이…

권일학은 계속했다.

《그때 하던 애기를 계속하면… 그때 선생은 수술칼이란 의사들의 무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군인들이 열병식때 장검을 차고나오는것처럼 또 음악가들이 자기의 악기를 늘 가슴에 안고다니는것처럼 자랑스레 내세우진 않는다고, 왜냐면 수술칼이야말로 째고 잘라버리는 랭정한것의 상징이라고 했었지. 그러나 선생은 한가지만은 생각지 못했소. 사람들이 군인들의 장검에 존경을 표시하는것은 그것이 승리와 영광뿐아니라 조국을 지키는 성스러움을 상징하기때문인거요. 음악가들이 안고다니는 악기도 사랑과 정서, 희망을 상징하기때문에 박수를 보내는것이구. 하다면 수술칼의 상징은 무엇인가?…》

위인섭의 흩어진 머리칼이 바람에 날렸다. 밝아지기 시작한 가로등빛에 눈을 번쩍이며 권일학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있었다.

잠시 숨을 돌린 권일학이 힘주어 계속했다.

《그것은 생명이요. 존경을 받기 위한 무기도, 박수갈채를 받는 랑만과 정서의 상징도 아닌 신성한 생명의 상징이란 말이요! 생명을 지키고 구원하는 작은 도구인 수술칼을 우리 의사들은 보란듯이 허리에 차고다니지도 않으며 가슴에 안고다니지도 않는것이요. 인섭선생, 우리 의사들은 명예나 대가를 바라서 의사의 직업을 선택하는것이 아니요. 우린 가장 신성한 목적을 위해서, 사랑을 위해서 이 일에 한생을 바치고있는것이요.》

위인섭은 굳어진듯 움직이지 않았다. 손톱으로 수염도 밀지 않은 턱을 긁어대며 한곳만 뚫어지게 응시하고있었다. 외과의사라면 누구나 매일같이 손에서 놓지 않고있는 수술칼에 대하여 새삼스럽게 생각하는듯 했다.

생명의 상징인 수술칼! 그것은 먼 옛날부터 생명을 노린 크고작은 전쟁들에서, 육체를 괴롭히는 수많은 죽음의 질병들에서 인간의 생명을 지켜주고 구원해주었었다. 수많은 생명들이 그 수술칼로 하여 죽음의 계선에서 삶의 계선으로 소생하였었다. 때문에 오늘 그 차디찬 작은 수술칼은 존경과 정서의 상징처럼 더없이 신성하고 고상한것으로 되여야 하는것이다.

권일학은 그를 잡아끌었다.

《인섭선생, 이젠 우리 산원에 다시 가야지?》

《산원에요? 제가 이제 무슨 면목으로…》

《가자구. 산원엔 동무가 하던 일이 있지 않소. 체외수정!… 그것이 성공한 다음엔 또 줄기세포연구도 하고… 함께 일해봅시다.》

《…》

위인섭은 머리를 떨구었다. 산모와 태여날 애기들을 위해 이밤도 새우고있을 산원의 의사, 간호원들을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용서를 빌고있는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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