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4 회)


제 6 장 무엇이 사랑입니까


1


군인가족 세쌍둥이임신부가 제일 처음으로 본것은 흰 천정과 대조되는 연분홍색벽체였다. 그다음 방울방울 떨어지는 점적병이며 폭신한 고급침대와 줄무늬가 있는 환자복…

하얀 위생복을 입은 간호원이 그에게 다가와 허리를 굽혔다.

유별나게 눈매가 고운 처녀였다.

《아주머니, 정신이 드세요?》

《여기가… 어디예요?》

간호원처녀가 생긋 웃었다.

《평양산원입니다.》

《평양산원?…》

《그래요. 위대한 장군님께서 세쌍둥이임신부인 아주머니와 우리 산원의료일군들을 구원하라고 인민군군인들과 직승기까지 보내주시였답니다.》

《예?…》

꿈을 꾸는것만 같았다. 사품치는 강물속에서 정신을 잃는 마지막순간 누군가가 임신부만은 꼭 살려야 한다고 소리치며 자기를 물우로 떠올리던것밖엔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나같은 산골녀자가 뭐라고 비행기까지 띄워주시다니!…

간호원처녀는 목메여 흐느껴우는 세쌍둥이임신부에게 정성껏 털모포를 여미여주며 말했다.

《아주머니, 진정하세요. 이제는 모든 대책을 다 세웠으니 아무 일도 없을거예요. 그러니 몸간수를 잘해서 튼튼한 세쌍둥이를 낳으세요, 온 나라가 기다리고있는데.…》

《그래, 그래요.》

눈물에 젖어 고개를 끄덕이던 임신부가 갑자기 신음소리를 내며 간호원처녀의 손을 힘껏 끌어잡았다.

《아!…》

어느새 처녀의 손목을 으스러지게 비틀며 쥐여짜는듯 한 비명을 지르는것이였다.

첫 진통이, 환희와 기쁨 그리고 극심한 아픔이 동반되는 힘겨운 해산의 첫 진통이 시작된것이다.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는 간호원처녀는 그가 집게처럼 자기의 손을 꽉 조여대는데도 애써 웃으려 했다. 그는 온몸을 짓이기는듯 한 아픔에 침대를 그러안으며 몸부림치고있었다. 이마와 코등에 진땀이 송골송골 내배였다.

간호원처녀가 그를 다그어안으며 속삭이였다.

《일없어요, 아주머니. 걱정마세요. 해산할 땐 누구나 이런 진통을 겪는답니다.》

그는 반갑게 머리를 끄덕이였으나 다시 입술을 악물며 신음소리를 내였다. 이번에도 간호원처녀가 그의 어깨를 꽉 안아주었다.

《일없어요. 일없어요. 아주머니…》

세상에서 제일 큰 아픔과 고통을 해산진통이라고 한다. 남자들은 전혀 리해할수도 없는 고통, 어머니가 되는 녀성들만이 느끼는 무서운 고통, 하지만 그것을 어찌 견디기 어려운 아픔과 고통이라고만 할수 있으랴. 그것이야말로 새 생명을 고이 품어온 어머니들만이 느끼는 성스러운 아픔,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어머니들만이 맛보는 환희의 아픔인것이다. 하기에 모든 녀성들은 아무리 엄청난 고통과 아픔이라 할지라도 못내 그것을 바라고 기다리는것이 아닌가.

그가 잠시 신음소리를 멈추자 간호원처녀는 속삭이였다.

《참을수 있지요? 그럼요. 이제부턴 주기적으로 진통이 오는데 점점 더 심해질수도 있어요. 하지만 우리 산원 의사선생들을 믿으세요. 이제 애기들만 낳으면 아주머닌 이 모든걸 까마득히 잊고말거예요.》

간호원처녀는 마치 자기가 그 모든것을 체험하기라도 한듯이 조용조용 그리고 자신있게 말하는것이였다. 처녀의 말에 귀를 기울이며 그는 알릴듯말듯 미소를 지었다.

이날 세쌍둥이임신부에게 첫 진통이 왔다는것을 보고받은 임선해원장은 곧 그의 해산방조를 위해 의사협의회를 열었다. 많은 사람들이 숨막힐듯 한 긴장감을 느끼며 담당의사 하경옥의 보고에 귀를 기울이였다.

하경옥은 병력서를 번지며 말했다.

《…이상과 같이 집중치료를 받고있는 세쌍둥이임신부는 현재 모든 생명지표가 정상가까이로 되돌아왔고 안전한 상태를 유지하고있습니다. 그러나 류조산률이 높은 임신성고혈압환자들의 경우 해산시 어머니와 갓난아이, 두 생명이 위태롭다는것은 누구나 다 알고있는 사실입니다.

지금 현재 세쌍둥이임신부는 임신 35주가 지났고 빈혈이 심하므로 이런 상태에서는 태아가 가사에 빠질수 있는 비률이 높기때문에 하루내에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임선해원장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리고는 하경옥의 보고에 귀를 기울이고있는 기술부원장 권일학과 산과고문 지성하박사 그리고 예순이 넘었지만 처녀조산원때부터 오랜 세월 풍부한 경험과 공적을 쌓은것으로 하여 널리 알려진 최성심과장과 약품공급과장, 수술과장, 소생과장, 수혈과장 등을 차례로 여겨보고있었다. 그들이 지금 하경옥의 보고에 찬동하는가를 알아보는듯 했다.

하경옥이 계속했다.

《더 론의할 필요도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쌍둥이해산은 제왕절개술로 해야 한다는것을 우리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 아닙니까?》

그때 출입문이 빠금히 열리더니 누군가 뒤쪽의 비여있는 자리에 조용히 들어와앉았다. 하경옥이 머리를 돌려보니 림숙정당비서였다. 언제나 꼭 필요할 때마다 나타나군 하는 여기 평양산원의 보모와도 같은 할머니이다.

여러 사람이 머리를 돌리자 림숙정당비서는 소리없이 웃으며 그냥 토론을 계속하라고 손짓했다.

《여기에 무슨 다른 의견이 있습니까?》

임선해원장이 좌중을 둘러보며 하는 말이였다.

《다들 담당의사의 의견에 동의하는것 같은데… 이것만은 잊지 맙시다. 세쌍둥이임신부는 벌써 첫 진통이 왔고 후송도중 충격이 너무 심했다는겁니다. 물론 하루사이는 일없겠지만 그것을 넘기면 임신부와 애기들은 다같이 위험할수 있습니다. 때문에 우린 어디까지나 필요한 비상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자, 털어놓고 의견들을 말해보세요. 임신부와 애기들을 다 살리자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안에 무거운 침묵이 깃들었다. 누구도 입을 열지 못했다. 산과의사들치고 이런 일에 부닥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지만 번마다 그들은 괴로움에 모대기지 않을수 없다.

원장이 맨앞에 앉아있는 백발의 산과고문에게 물었다.

《지성하선생, 무슨 할말이 없습니까?》

산과분야에서는 제일 유능한 지성하박사가 허리를 천천히 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한다는건 물론 옳습니다. 그런데 문제로 되는것은 지금 우리가 맞다든 세쌍둥이임신부가 여러가지 합병증이 겹친 상태이니만큼 해산시 급작스러운 이상현상이 있을수 있다는것입니다.

위험한 수술에서는 의술도 의술이거니와 무엇보다 결단이 필요하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원장선생, 지금 당장 그 수술을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하는것을 결정해야 하지 않을가요? 능력도 있고 경험도 풍부한 그리고 어떤 정황에서도 당황하지 않고 대담하게, 능숙하게 처리할줄 아는 유능한 집도자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임선해원장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머리를 끄덕이였다. 그렇다면 누구를 선정하겠는가? 지성하박사는 지금 고령이므로 필요한 조언을 주는 역밖에 할수 없다.

여러 사람들을 둘러보던 임선해원장은 지성하에게 또 기대어린 눈길을 옮겼다.

《지선생, 그럼 누가 적합하겠는지 생각되는바가 있으면 서슴지 말고 말해주세요.》

《그건 저… 기술부원장에게 물어야 하지 않을가요?》

많은 사람들이 권일학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는 머리를 푹 수그리고있었다. 원장은 물론 좌중의 모든 사람들이 자기를 지켜보며 그의 대답을 기다리고있다는것을 알려고도 하지 않는듯 했다.

임선해원장이 조용히 물었다.

《기술부원장선생, 자기 생각을 좀 말해보세요. 선생이야 최전연에까지 가서 환자를 직접 실어왔고 또 누구보다 임신부의 상태를 잘 알고있지 않습니까?》

권일학은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마지못해 무겁게 일어났지만 여전히 여러 사람들의 눈길과 마주치기를 바라지 않는듯 원장의 탁자 한쪽에 놓여있는 콤퓨터화면에만 눈길을 주고있었다. 마치도 그 화면에 나타나있는 갖가지 수자들과 도표들에서 대답을 찾고있는듯 했다.

권일학은 원장을 마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하경옥선생이 말한것처럼 세쌍둥이해산은 제왕절개술로 해야 합니다. 지금 론의되고있는것처럼 능력있고 결단성있는 집도자가 필요한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우리 산원에 그런 유능하고 경험많은 의사들이 어디 한둘입니까. 지금까지 수백쌍의 세쌍둥이해산을 원만하게 해왔는데 누구에게 맡겨도 어지간히 해낼것입니다.》

원장이 핀잔조로 말했다.

《기술부원장선생, 어지간히가 뭡니까? 우린 합병증이 온 제일 위험한 세쌍둥이임신부의 수술을 누구에게 맡기겠는가 하는것을 론의하고있지 않아요? 사소한 실수도 치명적인 후과를 가져올수 있기에 모여앉았단 말입니다.》

《알고있습니다. 그래서… 아무래도 좀더 깊이 생각해봐야 할것 같습니다.》

임선해원장이 그를 면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뭐 더 생각해볼것도 없지요. 이 수술은 기술부원장선생이 집도하는게 제일 합당하다고 보는데… 어떻습니까?》

《제가요?…》

《그래요. 기술부원장선생은 환자에 대한 파악도 깊고 기술적으로도 원만하지 않습니까.》

산과고문 지성하가 쉰 목소리로 말했다.

《옳습니다. 아까부터 나도 그렇게 말하고싶었습니다. 기술부원장선생, 선생이 집도하는게 옳습니다.》

대답이 없었다. 권일학은 다시금 콤퓨터화면에 눈길을 준채 까딱하지 않고있었다. 숨소리들이 높아갔다. 긴장하게 모아진 눈초리들이 무거운 침묵속에서 떨고있었다.

임선해원장이 참지 못하고 다시 물었다.

《기술부원장선생, 왜 말이 없습니까. 다들 선생의 의견을 듣고싶어하는데…》

권일학은 눈길을 내리깔았다.

《나보다 림상에 능한 의사들은 많습니다. 경험으로 보나 어려운 수술을 맡아한 회수로 보나 저보다 재능있는 의사들이 많다는거야 다 아는것이 아닙니까.》

《?!》

기대를 품고 쳐다보던 사람들의 눈빛들이 굳어져버렸다. 너무도 뜻밖의 일이여서 모두가 입을 벌리고있을뿐이였다.

원장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정말 뜻밖이군요. 우린 그래도 기술부원장선생을 크게 믿고있었는데 …》

그가 쥐고있는 원주필이 가늘게 떨리고있었다. 중요한 세쌍둥이임신부의 수술을 책임져야 할 기술부원장이 주저하고있으니… 임선해의 무거운 눈길이 장내를 둘러보았다.

《다 아는 일이지만 우리가 론의하고있는 환자는 당에서 관심하는 세쌍둥이임신부입니다. 우린 어떤 일이 있어도 이런 세쌍둥이와 임신부를 다 살려야 합니다. 더 지체할수 없습니다. 기술부원장선생이 못하겠다면… 누구에게 맡겨야 하겠는지 어서빨리 의견들을 말해보세요.》

누구도 머리를 들지 못했다. 방안을 짓누르는 무거운 침묵속에 호흡하는것도 힘들어했다.

이윽토록 아무도 입을 열지 못하는것을 보면서 임선해는 안타깝게 입술만 깨물고있었다.

바로 그때 지금까지 한자리에 굳어져있는 권일학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던 하경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당비서쪽에 머리를 돌리며 흥분에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비서동지, 좀 말씀해주십시오. 이럴 땐,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

그러자 지금까지 아무말없이 뒤쪽에 앉아있던 림숙정이 안경너머로 권일학을 노려보며 입을 열었다.

《기술부원장, 내가 알고있는 기술부원장은 그렇지 않았소! 수술칼처럼 서리찬것을 들어내면 그밑에 뜨거운 심장이 있다고 믿어왔었는데… 그래 이처럼 제일 급한 대목에 와선 못하겠다?!…》

《…》

여전히 대답없는 그를 쳐다보던 림숙정이 다시 입을 여는데 흥분으로 하여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있었다. 좌중의 사람들을 홱 둘러보며 갈린 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래서 하경옥선생은 이럴 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나한테 묻는다는거요?… 그래 내가 뭐 산과의사인가, 집도자인가?… 난 전쟁때 부상병을 업구 뛴것밖에 없어. 다들 당의 품에서 그만큼 공부했으면 지금처럼 어려울 때 한몫 해야지. 저마끔 제가 맡아하겠다고 한몸 내대야 할 사람들이 아닌가, 응?… 그런데 뭐 이 늙은 당비서에게 모조리 넘겨씌우자는건가?… 좋아, 내가 다 맡지. 그래 손이 떨려 바느실도 제대로 꿰지 못하는 이 늙은이가 집도하면 마음놓겠다는건가, 엉? 왜 말이 없어?》

통분해하는 그의 한마디한마디는 사람들의 가슴을 사정없이 후려쳤다. 권일학과 임선해원장은 물론 숨을 죽이고있던 많은 사람들이 가책에 잠겨 머리를 떨구고있었다.

아직까지 이렇듯 심각한 협의회는 있은것 같지 않다. 이 모임이 언제 시작되였던지, 그로부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흘러갔었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침묵 또 침묵… 숨이 막혔다. 끝내 림숙정당비서가 손을 홱 내저으며 자리에 앉는것을 보자 하경옥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고싶었다. 자기가 나서며 《그 일은 제가 맡겠습니다.》하고 말하지 못하는것때문에 목이 말라들었다.

그때 권일학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원장선생, 우리는 지금 경험도 많고 결단도 있는 유능한 집도자를 잊고있습니다.》

《그가 누군데?》

이렇게 물은것은 원장과 당비서 림숙정이였다.

권일학은 자기에게 집중된 긴장한 눈초리들을 느끼며 숨을 크게 내쉬였다.

《그는 바로… 강학선과장입니다.》

《뭐?…》

장내가 술렁거렸다. 여기저기에서 눈이 휘둥그래진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저희들끼리 재빨리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거의 잊고있던 강학선과장이 갑자기 초점에 오르는것이 너무도 놀라왔다.

권일학이 또 말했다.

《그에게 맡겨야 합니다. 제 보건대 강학선과장만이 이럴 때 단 하나의 작은 실수도 없이 합병증이 온 임신부의 수술을 성공적으로 해낼수 있다고 봅니다.》

안도의 숨소리가 장내에 물결쳐갔다. 한순간 하경옥은 꼭 깨물고있던 입술을 벌리며 권일학에게 놀란 눈길을 던졌다. 저 사람이, 권일학이?…

권일학이 주저없이 계속했다.

《지금 제왕절개수술을 해야 할 환자는 합병증이 있는 임신부이고 또 다태임신입니다. 때문에 수술도중 우발증으로 뜻하지 않은 적출술이 제기될수도 있으며 극단한 경우엔 환자가 다시 임신할수 있도록 유착박리수술과 미세수술까지도 예견해야 합니다. 이 수술은 오직 그 모든것에 대처할수 있는 강학선과장만이 실수없이 해낼수 있습니다.》

그는 단호한 눈길로 장내를 둘러보았다. 이제는 더 론의할것도 없다는 확신어린 눈빛이였다.

임선해원장은 뜻밖에도 남들이 전혀 생각지 못하는 문제를 제기하였다.

《강학선과장은 몇달째 산원에서 유리되여있었는데 그 손으로 수술을 해낼수 있을가요?》

《아닙니다. 그는 현장에 내려간 첫날부터 미세봉합사기계를 창안하였고 자기의 기술도 익혀왔습니다. 지금은 확대경없이 손짐작으로도 기계를 다루는 정도입니다. 이런 그가 오늘까지 익혀온 수술감각만은 잃지 않고있다고 전 믿습니다. 예, 그는 꼭 해낼것입니다.》

사람들이 큰숨을 내쉬였다. 마침내 기다리던 대답이 나왔다고 기뻐하는 표정이였다. 역시 입가에 미소를 짓던 임선해원장이 의미깊은 눈길로 당비서 림숙정을 바라보았다. 아, 이제야 해결책이 나온것 같은데… 비서동지, 어떻습니까. 단련기일도 다 되였는데 강학선과장을 어떻게 데려올수 없을가요?…

림숙정의 얼굴은 밝았다. 천천히 몸을 일으키더니 원장에게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모든 사람들이 다 들을수 있게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원장선생, 그럼 내가 갔다오지. 당장 가서 그 강학선이라는 못난 이를 붙들어오겠단 말이요.》

임선해원장도 크게 소리내여 웃었다.

《비서동지, 제 마음을 알아주어 정말 고맙습니다.》

방안의 사람들모두가 웃고있었다. 유독 하경옥만이 느닷없이 치밀어오르는 격정을 이기지 못해 머리를 숙이고 소리없이 흐느끼고있었다.…


림숙정은 승용차가 최대속도로 달리고있었지만 계속 운전사에게 잔소리를 했다.

《오늘따라 왜 이리 굽떠?》

《비서동지, 지금 바늘이 어디에 가있나 좀 보십시오.》

《난 그런거 보이지 않아. 좀더 쳐몰라구.》

《좋습니다. 한번 날아봅시다.》

벌써 시속계의 바늘은 120을 넘고있었다. 바람처럼 달리고있는 승용차의 차창으로 붉게 물든 단풍나무들이 언듯언듯 지나갔다.

계절은 한없이 청신한 가을이다. 모든것이 열매를 맺는 풍요한 가을…

림숙정은 차창으로 흘러가는 그 광경을 내다보며 등받이에 몸을 기대였다. 기술부원장 권일학이 무슨 생각으로 강학선이 있어야만 한다고 했을가, 오래동안 수술에서 유리되였던 그를 데려와야 한다며 보다 더 능숙하게 수술할수 있다고 보증한것은 무엇때문일가?… 림숙정은 권일학의 사람됨에 대하여 다시금 생각해보았다. 림숙정의 눈으로 보건대 그는 아직도 한창나이 피가 뛰는 젊은이에 불과했다. 기술도 능하거니와 그 어떤 경우에도 에누리를 모르는 사람, 겉으로 보면 차고 메마른것 같지만 마음속에는 남다른 인정이 숨어있는 사람, 때로는 론리적으로 사고하는가 하면 때로는 무분별하게 나오기도 하는 사람, 평양산원의 기술부원장이라는 무거운 직책만 아니라면 산과, 부인과의 많은 의사들과 조금도 다름없는 한 젊은이였다. 그가 자기자신이 능히 할수도 있는 수술을 굳이 강학선에게 맡기게 한것이야말로 그의 마음속 뜨거운 진정을 내비친것이 아니고 무어란 말인가?…

이렇게 생각을 굴리면서도 림숙정은 자기가 어떻게 강학선을 데려오겠는지 하는것은 전혀 생각지 않았다. 그는 무엇이든 어렵게 생각하는 법이 없었다. 전쟁터에서 그랬던것처럼 그 어데건 뚫고 들어가고 그 누구건 설복하고 진심으로 감동시키면 무엇이든 다 해낼수 있다고 믿고있는것이다.

그렇게 강학선이 일하는 의료기구공장에까지 갔다.

림숙정은 차에서 내리며 운전사에게 말했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도 돼. 인차 떠날수 있게 준비하라구.》

《알겠습니다.》

운전사는 벌써 공구함을 열며 대답했다. 그도 자기네 당비서가 여기에 무슨 일로 왔는지, 얼마나 시간이 촉박한지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림숙정은 차에서 내리자 몸을 기우뚱거리며 공장정문에로 걸음을 옮겼다. 아픈 다리때문에 급히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절룩거리는데 아무리 그것을 감추려 해도 어쩔수 없었다.

접수구에 다가가자 한 청년이 고개도 들지 않고 물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수고하네. 내 평양산원에서 왔네.》

접수대장에 무엇인가를 써넣고있던 청년이 평양산원이라는 말에 머리를 번쩍 들었다.

《예? 산원이라구요? 그러니 우리 고향집에서 왔구만요!》

《고향집?…》

《예, 그렇습니다. 나도 85년도에 평양산원에서 태여났거던요. 9산과 8호실에서…》

《오- 그래?》

벙글거리던 청년의 두눈이 휘둥그래졌다.

《아- 참, 평양산원 당비서동지이지요?》

《날 어떻게 아나?》

《야, 왜 모르겠습니까. 텔레비죤에서 많이 봤는데요 뭐!… 그리구 영웅간호장동지를 누가 모르겠습니까.》

《그래?… 그럼 내 부탁을 하나 좀 들어주게.》

《부탁? 예, 어서 말씀하십시오.》

청년은 당장 불붙는 집에라도 뛰여들어갈듯 한 표정이였다.

《빨리 당비서나 지배인을 찾아주게.》

《예, 당비서동진 회의가시구 지배인동진 지금 방에 있습니다.》

《그럼 지배인에게 급한 일이 있어서 내가 왔다구 말해주게.》

《예, 알겠습니다!》

경비원청년은 재빨리 송수화기를 집어들었다.

《여보시오!… 예, 정문입니다.》

한동안 그는 산원당비서동지가 여사여사한 일로 찾아왔다고 하면서 자기 생각까지 보태여 설명하였다. 그쪽에서 뭐라고 말했다. 청년은 기쁨에 넘쳐 림숙정에게 지배인동지가 나온다고 알려주었다.

림숙정은 머리를 끄덕이며 접수구에서 물러났다. 사람들과 차들이 분주하게 오가고있었다. 정문앞 한쪽엔 대형구호판이 세워져있었고 담장둘레에는 꽃나무들이 정히 심어져있었다. 그 뒤쪽에 서있는 어린 감나무들과 거기에 매달려 흔들거리는 명찰표들도 눈에 띄였다. 관리자 아무개라고 써붙인 명찰표, 어느 기업소에 가나 흔히 눈에 띄는것들이긴 하지만 오늘따라 림숙정에게는 이 모든것이 새로운 의미로 안겨오고있었다. 얼마나 좋은 곳인가, 이런데서 우리 강학선이 사상의지의 단련을 하고있구나. 이렇게 생활을 사랑하는 로동계급속에 있으니 그도 얼마나 몰라보게 달라졌을가.…

접수구의 청년이 지배인이 나온다고 낮게 소리쳤다. 돌아보니 키가 큰 공장지배인이 이쪽으로 걸어오고있었다. 지배인은 멀리서부터 림숙정에게 인사하며 마주 다가왔다. 인상이 좋은 사람이였다.

림숙정은 그에게 찾아온 사유를 설명하고나서 물었다.

《우리 강학선과장이 지금 어디 있습니까?》

《예. 제 당장 불러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비서동지, 그는 아직 자신을 더 단련시켜야 한다면서… 그가 말을 듣겠습니까?》

《지배인동무, 이 모든건 내가 책임지겠소. 지금 우리에겐 강학선과장의 손이 꼭 필요해서 그런단 말이요.》

지배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아, 역시 영웅간호장동진 다르구만요. 제 이제 간호장동지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그가 거수경례까지 붙이자 림숙정은 큰소리로 웃었다.

《지배인동무, 쉬엿하시오!》

그들은 아무런 격식없이, 마치 전선에서 싸우던 전우들이 만난것처럼 서로 손을 덥석 잡아흔들었다.

《비서동지, 이제 가서 일이 잘되길 바랍니다.》

《고맙소, 지배인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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