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56 회)


제 6 장 무엇이 사랑입니까


3


아무리 서둘렀어도 강학선은 한시간후에야 림숙정의 눈앞에 나타났다. 몇달새 거칠해지고 수척해진 그의 얼굴은 수염자리가 거밋했고 아직도 고뇌의 흔적이 력력한 두눈은 놀람과 의혹으로 굳어져있었다.

《비서동지가 어떻게?…》

림숙정은 한동안 아무말없이 그를 눈여겨보기만 하였다.

《고생많았지?》

《비서동지!》

강학선의 목에서 울대뼈가 오르내렸다. 험한 일에서 차츰 굽어진 어깨가 소리없이 떨리더니 림숙정에게 맡겼던 마디굵은 손바닥으로 얼굴을 가리였다.

《비서동지, 전…》

《자, 그만하게. 어서 차에 오르자구.》

림숙정은 승용차가 있는 곳으로 그의 등을 떠밀었다. 얼굴에서 손을 내리운 강학선이 놀란 눈길로 림숙정과 승용차를 번갈아보았다.

《그런데 이건?…》

《어서 타라는데.》

림숙정은 차문을 열어 강학선을 태운 다음 그 옆자리에 올라앉았다.

기다리고있던 운전사에게 웃으며 소리쳤다.

《자, 운전사동무, 마음껏 밟아보라구!》

《알았습니다.》

승용차는 처음부터 속도높이 내달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공장정문앞에서 그들을 바래주던 지배인과 청년의 모습은 곧 시야에서 사라지고말았다.

얼마나 달렸는지… 오래도록 말없이 차창을 바라보던 림숙정은 승용차가 기본도로에 들어서서야 강학선에게 눈길을 돌렸다.

《그동안 고생이 많았지?》

《…》

《공장당위원회에서 자네가 일을 잘하고있다고 우리 당위원회에 여러번 통보를 보내왔었네. 하긴 남에게 지는것은 강학선의 기질이 아니지.》

지나간 교훈을 다시 되새겨보는듯 강학선의 거밋한 얼굴에 쓰라린 회오가 그림자처럼 스쳐갔다. 로동현장이야말로 그에게 수술칼을 쥔 의사들에게 있어 교만과 소총명, 자신에 대한 과신이 그 누구를 막론하고 절대금물이라는것을 뼈저리게 깨우쳐준 하나의 학교였던것이다.

강학선은 지금 자기가 공장을 떠나 당비서의 차에 타고있다는것조차 믿어지지 않았다.

《비서동지, 우린 지금 어디로 가고있습니까?》

《그야 우리 평양산원이지.》

《예?》 강학선이 놀라는 눈길로 림숙정을 돌아보았다.

《그럼 산원에 무슨 일이라두?…》

림숙정은 머리를 가로저었다.

《무슨 일이라니?… 그런건 없어.》

림숙정은 여전히 강학선에게서 눈길을 떼지 않고있었다.

《내가 요즘 어떤 책을 봤는데 거기엔 이런 말이 있더구만. 아무리 작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그는 장편소설의 주인공이 될수 있다나?… 그걸 보면서 정말 생각이 많았네. 솔직히 말해서 임자 생각도 했네.》

《제 생각을요?》

《그래, 임자 생각을 했어. 그런데 임자에 대해서 생각하는 사람이 나뿐이 아니더구만.》

《그럼 누가 또 있습니까?》

림숙정은 강학선이 이마살을 찌프리며 생각하는것을 지켜보며 소리없이 웃었다.

《알아맞춰보게.》

강학선이 짧게 머리를 흔들었다.

《모르겠습니다, 누군지.…》

《기술부원장 권일학이야!》

《예?!》

《그가 임자때문에 마음을 많이 썼어.》

림숙정은 줄곧 웃음어린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자네들은 오래전부터 남달리 인연이 깊었지?》

갑자기 강학선의 입술이 꾹 다물렸다. 움푹 꺼져들어간 눈확에 질은 그늘이 지더니 갑자르는듯 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니, 우린… 별로 남다른 사이가 아닙니다.》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린가?》

강학선이 잘라매듯 말했다.

《우린 더는 친구가 아니라는겁니다. 그리고 그도 이젠 이 강학선을 인정하지 않구요.》

《뭐-라구?》

놀란듯 그를 바라보는 림숙정의 안경이 갑자기 뿌옇게 흐려지였다.

한순간에 그의 주름진 얼굴이 경련으로 하여 떨리기 시작했다.

《그게 진심으로 하는 소리인가?》

《…》

림숙정은 절레절레 머리를 저었다. 옛날부터 부모팔아 동무를 산다는 말이 있다. 우정과 의리가 부모의 정보다 더 귀하다는 소리일것이다. 그런데 사람이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림숙정이 그를 노려보았다.

《그가 인정하지 않는다?… 친구의 의리두 헌신짝처럼 다 내버렸다, 그 말인가?》

림숙정은 발끝만 내려다보고있는 강학선에게서 눈길을 돌렸다. 그의 눈귀에 잔주름이 깊어졌다.

《임자가 이런 못난이인줄은 몰랐네. 그래두 여기 내려와 뭔가 좀 배웠는가 했는데… 지금 산원에선 위급한 군인가족 세쌍둥이임신부를 놓고 여러번이나 긴급 협의회를 열고있네. 애기와 산모를 다 살리자구… 그 수술을 담당할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임자뿐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어.》

《그럼 그가?…》

《그래, 기술부원장 권일학이야.》

《?!…》

림숙정은 굳어져버리는 강학선을 스쳐보며 머리를 저었다.

정과 사랑… 지금 강학선은 그에 대해서 다는 모르고있다. 흔히 사랑에 대하여 말하면서도 그 깊은 뜻은 모르고있는것이다.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여서 그런가? 전쟁에서는 이런것이 명백했었다. 삶과 죽음, 그 계선도 명백했다. 그런데 지금은… 그래, 이들은 전쟁을 겪지 못한 세대다. 전쟁을 모르는 세대이다. 참된 사랑, 진정한 사랑이 어떻게 발현되는지, 그것이 얼마나 가혹한 아픔을 동반하는것인지 이들은 아직 다 모르고있다.…

림숙정은 숨이 찬듯 힘들게 말했다.

《임잔 사랑이라는게 뭔지 아나? 물론 안다고 하겠지. 아름답고 사심이 없고 정성을 기울이고… 그래서 오가는 뜨거운 정이라고 생각하겠지?… 그것도 옳아. 제일 준엄한 때,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투장에서 보니 그것만도 아니야. 그보다 더한것이 있어.》

그는 잠시 눈을 감고있다가 조용히 계속했다.

《내 한생 잊혀지지 않는 일이 있네. 전쟁때였어.…》

전쟁이 한창이던 어느 봄날이였다. 밤새껏 부상자들을 돌보고난 간호장 림숙정은 새벽에 들어온 중상자들을 처치하고있었다.

그때였다.

《적비행기다!》

누군가의 다급한 웨침소리에 이어 여러대의 적기들이 군의소병동으로 날아들었다.

《빨리 기차굴로!》

화염이 솟구치고 병동이 불탔다. 굴속에 환자를 내려놓은 간호원들은 간호장을 따라 다시 병동으로 달려가군 했다.

부상자들이 대피한 기차굴은 곧 신음소리로 가득찼다. 그들에게 놓아줄 마취제가 없었다. 간호원들은 위생가방에 늘 가지고다니던 마라초를 꺼내여 부상병들의 입에 한대씩 물려주군 했다. 마취제를 대신하는것이다. 이 마라초를 피우는 동안은 조용할것이다.

그때였다. 별안간 무서운 신음소리가 사람들의 가슴을 뒤흔들었다. 고통에 못이겨 이를 악물고 혀를 깨무는 그 부상자는 림숙정이 마지막으로 업어온 중상자였다.

《군의동지, 중환자입니다.》

녀군의가 다가왔다. 부상자들로 언제나 수술칼을 놓지 못하는 녀군의, 늘 잠을 못 자 피곤이 몰려있는 그는 걸어가면서도 손으로 수술하는 동작을 한다는 강마른 녀군의였다.

《환자가 언제 들어왔어요?》

《오늘 새벽입니다.》

상처를 헤쳐보고 맥박을 짚어보던 녀군의가 별안간 굳어지더니 충혈진 두눈을 흡뜨고 부상자를 내려다보았다. 고통에 신음하는 그 환자는 군관이였다. 후에 안 일이지만 그는 복부에 여러개의 파편이 박혀있었다. 불에 타고 화염에 그슬린 중환자, 가까스로 숨을 톺으며 안깐힘을 쓰고있는 그는 녀군의의 손을 기다리고있는 수많은 중상자들중의 한사람이였다.

녀군의가 짧게 소리쳤다.

《수술준비!》

림숙정은 선뜻 움직이지 못하고 그를 쳐다보았다. 지금 녀군의는 눈뜰 힘조차 없다. 부상자들의 수술로 손에 피가 마를새 없는 그는 어제 밤도 꼬박 밤을 밝혔었다. 더구나 방금 폭격속에서 간호원들과 함께 중환자들을 업어나른 뒤여서 제 몸 하나 가누기도 힘든 때였다. 이런 그가 수술까지 하고나면 더 견디지 못할것이다.

《뭘하고있어요, 간호장?》

녀군의의 눈길이 림숙정에게 홱 던져졌다. 날카로운 그 눈길이 이상한 빛으로 번쩍이고있었다.

《알았습니다, 군의동지!》

마취제도 없다. 부상자의 맨몸에 칼을 대야 하는것이다. 녀군의는 피발이 선 두눈을 비비며 수술을 시작했다.

《가위!》

피묻은 붕대를 잘라낸 가위가 오염소랭이에 던져졌다.

《수술칼, 겸자…》

련이어 오염소랭이에 던져지는 수술도구들… 여러개의 전지불들이 고통에 허덕이는 중환자와 녀군의의 땀흐르는 얼굴을 비쳐주었다. 수술도구들이 마주치는 랭랭한 소리만이 조용한 동굴안을 울리고있을뿐… 모든 환자들의 눈길이 한곳에 모여졌던것이다.

갑자기 녀군의의 손이 굳어졌다.

《윽!…》

환자가 몸을 뒤틀며 신음했다. 마취없는 수술은 미세한 자극에도 극심한 고통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칼놀림에도 무서운 아픔을 느끼며 허덕이는것이다. 림숙정은 환자를 수술대에 힘껏 눌러대였다.

《군관동지, 참으세요!》

환자의 군사칭호는 대위였다. 대대장, 아니면 련대참모?… 련대장일수도 있다. 그러나 모른다. 다만 이 수술대에 누워있는 사람은 상상조차 할수 없는 무서운 아픔과 고통을 오직 높은 정신력과 강한 의지의 힘으로 이겨내야 할 중환자중의 한사람일뿐이다.

녀군의가 다시 수술을 해나갔다. 눈을 흡뜬 환자의 억눌린 신음소리… 손을 멈춘 녀군의의 파리한 두볼이 창백해졌다. 앙다물고있는 엷은 입술이 파랗게 질리다못해 거멓게까지 보였다. 이마에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군의동지, 일없겠습니까?》

《괜… 찮아요.》

부상자의 몸에 박힌 파편쪼각을, 죽음의 악령처럼 들어박힌 그 검은 쇠쪼각을 노려보던 녀군의가 다시 수술칼을 움직이였다.

《아!…》

환자가 괴롭게 숨을 톺았다. 또다시 터져나오는 억눌린 신음소리, 그 소리에 수술을 지켜보고있는 모든 사람들의 가슴이 얼어드는듯 했다.

림숙정이 중환자의 어깨를 꽉 눌렀다.

《소리치지 말아요!》

부그극!… 수술대에 누운 군관이 신음소리를 씹어삼키며 이를 악물었다. 모질게 백포를 물어뜯었다. 수술대우에서 몸부림치면서도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고 신음소리를 내지 않으려고 두눈을 힘껏 흡떴다. 녀군의의 수술칼이 사정없이 파고들었다. 그럴수록 환자는 몸부림쳤다.

림숙정이 또 부르짖었다.

《소리치지 말아요! 조금만, 조금만 더 참아요!》

군관은 소리치는것이 아니였다. 혀를 깨물며 신음소리를 참고있었다. 그런데도 소리치지 말라고 강요했다. 림숙정은 녀군의를 곁눈질해보았다. 내가 잘못하는게 아닐가? 고통을 당하는 사람에게 너무 지나친건 아닐가?… 그럴수도 있다. 잘못하는지도 모른다.

마취제없는 강제적수술, 그것은 뼈를 깎는듯 한 육체적고통과 의지의 첨예한 대결인것이다. 이럴 때 부상자에게 힘을 줄수 있는것은 오직 소리치지 말라고, 무서운 고통에 지지 말라고 강요하는것밖에 없다. 수술이 끝날 때까지 소리치거나 신음소리조차 내지 못하도록, 하여 집도자의 손이 떨리지 않도록 무섭게 다궂고 위협하고 강압적으로 억누를수밖에 없는것이다.

녀군의는 부상자를 모질게 대하는 간호장을 못 본척 했다. 아니, 그런데 신경을 쓸 겨를이 없었다. 그에게 눈 한번 돌리지 않고 긴장하게 수술칼만 놀리였다. 그 수술칼이 죽음의 파편에로 육박해들어갈 때마다 환자는 새까맣게 타든 입술을 앙다물며 고통에 몸을 떨군 했다.

하나 또 하나, 쇄골깊이에서 핀세트로 집어내는 파편쪼각들…

쟁가당! 드디여 마지막파편쪼각이 유리그릇에 떨어졌다. 수술은 끝났다. 모진 고통도 강요도 끝났다.

《군의동지, 인젠… 인젠 됐습니다!》

림숙정이 속삭이듯 웨쳤다. 끝까지 참아낸 환자가 고마왔고 힘겨운 수술을 해낸 녀군의가 고마왔다. 수고했습니다! 군의동지, 정말 수고했어요!…

땀으로 흠뻑 젖은 녀군의가 마스크를 벗어들었다. 그는 혼신의 힘을 다 짜낸듯 했다. 마지막기력마저 죄다 타버린듯 멍한 눈으로 짓씹혀진 백포를 바라보더니 그만 피묻은 손으로 얼굴을 싸쥐였다.

림숙정이 놀란듯 그를 쳐다보았다. 피곤해서 그러는가? 아니면 지쳐서?… 녀군의는 어깨를 떨고있었다. 울고있는것이다. 너무도 힘들고 지쳐서 울고있는것이다.

《군의동지, 제가 너무했지요? 미안합니다. 제가 그만…》

녀군의는 담가에 환자를 옮기고있는 간호원들을 넋없이 바라보며 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 타든 입술로 중얼거렸다.

《아니, 간호장동무. 고마워요.… 정말 고마워요!》 그리고는 쓰러지듯 담가우의 부상병을 그러안으며 목놓아울었다.

《여보, 인젠… 인젠 소리쳐도 돼요. 마음껏 소리치세요. 여보!…》

그 부상병은 녀군의의 남편이였다. 생명을 구원하기 위해 가장 귀중한 사람에게 녀군의는 마취제도 없는 무서운 수술을 들이댔던것이다.

아! 그것도 모르고 나는?!… 림숙정은 허둥지둥 담가를 따라가는 녀군의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군의동지, 절 용서하세요! 이 미욱한 간호장을…》

어째선지 눈앞이 뿌예졌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 갑자기 목이 메여오르고 심장이 달아오르며 눈시울이 떨렸다.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인가! 얼마나 진실한 사람들인가!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들, 그들의 가슴속에서 고동치는 뜨거운 사랑… 이런 사랑이 있는 한 절대로 생은 꺼지지 않는다. 뜨거운 정과 사랑이 있는 한 인간에 대한 믿음도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

이윽고 회상에서 돌아온 림숙정이 곁에 앉은 강학선의 얼굴을 넌지시 쳐다보았다.

《사실 그때 무서운 아픔을 당하는 부상병에게서 소리치는것까지 빼앗아버린건 너무 가혹한것이였어. 하지만 그 가혹한 요구는 끝내 부상병의 생명을 구원했지.…》

강학선은 이윽토록 말이 없었다. 묵직한 빗장을 지르기라도 한듯 입을 꾹 다물고있었다. 림숙정은 그러는 그를 못 본척 하며 창밖으로 눈길을 옮겼다. 그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묻지 않았다.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의 마음속에서 끓고있는 복잡한 심리를 너무도 잘 알고있기때문이다. 차안에는 승용차의 고르로운 동음만이 조용히 울리고있었다.

한동안 입을 다물고있던 림숙정이 문득 생각난듯 밝은 어조로 그에게 말했다.

《참, 자네두 알고있나? 그 배꼽으로 수술한다는 복강경수술인가 하는거 말이네. 서범천 그 사람이 그 수술에서 성공했다네.》

《예. 알고있습니다.》

림숙정의 주름진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어렸다.

《그 녀석이 덤벙거리긴 해도 재간은 있어. 글쎄 배를 째지 않구 배꼽으로 수술하지 않았겠나? 원, 희한하기두 하지.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는데 기술부원장이 밀어주었네. 첫 수술땐 자기가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고 나섰구…》

《…》

강학선은 멍하니 림숙정을 바라보기만 했다. 서범천의 복강경수술을 그리 믿지 않았던 강학선이였다. 그래서 권일학이 기술부원장으로 왔을 때도 그에 대해 좋지 않게 말해주었고 과학평의회에서는 첫 림상수술을 은근히 반대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그 서범천을 믿고 권일학은 끝내 복강경수술을 성공시킨것이다. 그것도 모든 책임을 자기가 다 맡아안고… 권일학, 그가 정말 그런 사람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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