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1 회)


제 6 장 무엇이 사랑입니까


8


강학선이 아무리 서둘렀어도 몸을 깨끗이 씻고 면도까지 하는데 또 한시간이상이 걸렸다. 그는 곧장 3호수술장으로 향했다. 매일 수십번씩 오르내리며 드나들던 곳, 평양산원의 여러개 수술장중에서 제일 큰 여기 3호수술장에서 이제 곧 세쌍둥이임신부의 제왕절개수술이 진행되는것이다. 그는 집도자로서 오늘의 이 수술에 기술부원장 권일학이 제1조수로, 담당의사 하경옥이 제2조수로 참가한다는것을 알고있었다.

수술대기실에서 기다리고있던 임선해원장이 여러 사람들과 함께 그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과장선생, 기다렸습니다!》

《과장선생, 반갑습니다.》

《이렇게 오셨구만요.》

강학선은 입을 꾹 다물고 머리만 끄덕일뿐이였다. 진심으로 반갑게 맞아주는 낯익은 얼굴들을 둘러보며 눈굽이 젖어드는것을 느꼈다. 기술고문 지성하박사를 비롯하여 소생과, 수혈과, 약무부의 과장들과 여러 의사들 그리고 애기과의 간호원들… 맨 뒤쪽에서 소리없이 눈웃음 지으며 인사하는 사람은 마취의사 곽정현이였다. 종일 수술복을 벗지 못하고있는 그여서 마스크를 낀 얼굴까지도 푸르게 보일 지경이였다.

이번에는 세쌍둥이임신부의 담당의사이며 제2조수로 선정된 하경옥이와 마주섰다.

《과장선생님, 오시기 잘했어요.》

하경옥은 더이상 말을 잇지 못하고 입술을 깨물었다.

《하선생… 고맙소.》

그가 처음으로 한 말이였다. 어쩐지 목이 갈려 제대로 소리가 나가지 않았다.

그다음 하경옥의 뒤쪽에서 한걸음 내짚는 권일학을 보았다. 오늘따라 벙글써 웃고있는 그를 보니 전혀 낯모를 사람 같았다. 남달리 이마가 훤칠하고 잘생긴 얼굴임에도 불구하고 얼음장같이 찬 사람이라고 뒤소리를 듣던 권일학이 오늘은 두눈을 빛내이며 그를 쳐다보고있다.

침묵, 할말이 없었다. 애써 웃음을 지었으나 웬일인지 날카롭게 번뜩이는 눈빛으로 서로 마주보았다.

《!…》

《!…》

불신과 오해, 반감과 증오… 과연 그랬던가? 내가 이 사람을 증오하기까지 했단 말인가?…

《과장선생, 마음을 푹 놓고 시작하십시오. 저와 이 하선생이 잘 돕겠습니다.》

《?!…》

이번에도 강학선은 말을 못했다. 입술을 우물거리며 무어라고 했으나 누구도 그것을 알아듣지 못했다.

임선해원장이 밝게 웃으며 말했다.

《자, 인사는 그만하구 빨리 서둘러야 하지 않을가요?》

강학선이 처음으로 고개를 언듯 들어 사람들을 둘러보더니 큰소리로 말했다.

《시작합시다!》

모든 사람들이 일시에 하나같이 움직이였다. 강학선의 그 한마디 말은 구령과도 같은것이였다.

사실 생명을 다루는 수술장에서는 모두가 집도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절대적으로 복종하는것을 철칙으로 삼고있다. 여기서 그가 누구든 집도자의 지시를 걸써 대하거나 제멋대로 해석한다면 그것은 한 인간 아니, 단번에 두 생명이나 셋 혹은 네 생명에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초래하는것이다.

그들은 한마디 말도 없이 미끄러지듯 소독실로 들어갔다. 이제부터 전투이다. 하루에 여러차례 수술을 진행하는 사람들도 일단 수술장에 들어설 때면 생사를 판가리하는 전투장에 나갈 때처럼 온몸이 긴장되군 한다. 수술장이야말로 군대와도 같은 엄격한 규률과 질서가 요구되는 전투장이기때문이다.

깐깐히 소독을 했다. 손끝부터 팔굽에 이르기까지 소독수에 씻고 또 씻었다. 나중에는 간호원들이 받쳐주는 소독가제로 다시금 품들여 물기를 닦아내고 두손을 높이 쳐들며 수술장으로 들어갔다.

한순간 강학선은 눈부신 무영등과 번쩍이는 수술도구들, 눈만 내놓고있는 수술장 간호원들을 둘러보며 속에서 치밀어오르는 뜨거운것을 삼켰다.

언제나 대낮처럼 밝은 무영등아래서 수술칼을 잡고 땀투성이가 되던 여기, 꺼져가는 생명과 맞다들 때마다 가슴을 조이며 자기의 지혜를 깡그리 짜내려고 애쓰던 이 수술장.…

그는 자기가 여기서 풍기는 소독수냄새며 매일같이 가슴을 조이여야 하던 이 생사의 전투장에 얼마나 깊은 애착을 가지고있었는가를 비로소 깨달았다. 아니, 현장에 나가있는 전기간 몸에 배인 이 고달픈 일, 고도의 집중과 정력을 요구하는 이 일을 얼마나 마음속깊이 사랑했는가를 그리고 얼마나 사무치게 그리워했는가를 새삼스럽게 깨닫고있었다. 정녕 여기를 떠나서는 살수 없는 그였다.

그는 버릇처럼 두손을 높이 쳐든채 간호원들이 푸른 수술복을 입혀줄 때까지 조각상처럼 굳어진듯 서있었다. 그때 대기실에 있던 원장과 지성하박사 그리고 여러 과장들이 수술장으로 들어왔다. 모든 사람들이 강학선을 지켜보고있었다.

강학선은 푸른 방포를 씌운 수술대앞으로 천천히 다가섰다. 순간 수술칼을 잡을 때마다 느끼군 하던 그 감정, 강한 집중력과 온몸을 긴장시키는 수술전야의 야릇한 흥분이 다시금 그를 사로잡았다.

그는 눈을 번득이며 간호원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술칼!》

기계수간호원이 그의 손에 수술칼을 힘있게 놓아주었다. 수술칼을 받아쥔 강학선은 능숙하게 손을 놀려 피부를 절개했다.

《복막겸자!… 지혈!》

간호원이 복막겸자를 섬겨주자 제2조수 하경옥이 재빨리 소독가제로 배여나오는 피를 닦아낸 다음 겸자로 피줄을 잡아 전기응고기로 지혈시켰다.

《전도!》

제1조수인 권일학이 그의 지시에 따라 근구로 개복된 부위를 넓혀주자 강학선이 또 짤막하게 지시했다.

《장압자!》

하경옥이 재빨리 장압자를 누르며 농반을 받쳐들었다.…

많은 사람들의 긴장된 눈길이 초불처럼 떨리기 시작했다.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간호원이 강학선의 이마에 맺힌 땀방울을 연신 소독가제로 찍어냈다.

시간이 어떻게 갔는지 누구도 알지 못했다. 여전히 강렬한 무영등밑에서 수술도구들이 번쩍거리고 얇은 고무장갑을 낀 손들이 번들거리고있다.

《흡인기 사용!》

배에 차있던 양수가 흡인기에 빨려 아래에 놓인 유리병으로 떨어졌다. 당장 태아만출이 시작되였다. 제1조수 권일학이 집도자의 눈빛을 보고 즉시 습관된 동작으로 절개창을 확장시키자 강학선은 태아들을 만출시키기 시작했다. 제2조수 하경옥이 얼른 협부를 내리누르며 압박했다. 재빨리 태줄을 처치한 강학선이 첫번째 갓난애기를 대기하고있던 애기간호원들에게 넘겨주었다.

모든것이 원만하게 진행되고있었다. 고도로 긴장했던 사람들이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 그런데 누군가 불안하게 소리쳤다.

《갓난아이가 왜 울지 않소?》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숨길을 딱 멈추었다. 이 무슨 변이란 말인가. 어쩌면 이럴수가 있는가?…

갓난아이는 만출즉시에 첫 울음을 터뜨리는것이 정상이다. 그것은 지금까지 어머니의 숨결로만 산소를 공급받던 갓난아이가 밖으로 나오면서 반사적으로 생의 첫 호흡을 시작하기 위해 소리내여 울어야 하기때문이다.

애기간호원들이 서둘러 약천으로 갓난아이들의 얼굴과 코구멍, 입안을 닦아주고 계속 흡인기로 기도에 있는 양수와 점액들을 빨아내였다.

《빨리 가사소생기를 돌리오!》

지성하박사가 소리쳤다. 즉시 가사소생기가 돌아가고 간호원이 재빨리 갓난아이의 잔등을 비벼주며 피부자극을 주었으나 웬일인지 여전히 반사가 없었다.

이때 환자감시기구를 살피던 간호원이 다급히 웨쳤다.

《혈압! 0.》

온 수술장이 얼어붙었다. 집도자는 물론 원장이하 여러 과장들과 의사들의 얼굴이 컴컴해졌다. 그들은 그 한마디의 말에서 산부의 상태가 위험계선에 이르렀다는것을 너무도 잘 알고있었던것이다.

당황해진 강학선의 눈길이 환자의 얼굴에서 굳어졌다. 동공이 산대된 산부의 두눈, 각막반사는 거의 없다. 손가락들이 시퍼래지고 자람색을 띠는 산부의 입술… 이제 한순간만 놓치면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지겠는지 누구도 상상할수 없다.

하경옥이 저도 모르게 떨리는 소리로 부르짖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땀으로 흠뻑 젖은 강학선은 저도 모르게 권일학을 돌아보았다. 또다시 전류처럼 마주치는 두사람의 눈빛.…

《침착하시오, 강선생! 이런 때일수록 랭정하게 정황을 가려보아야 합니다.》

《옳소.》

눈빛으로 주고받은 말이였다.

강학선은 지체없이 출혈을 멈추기 위한 조작을 시작했다. 자기의 오랜 경험으로 임신성변화를 받아 피줄들이 몹시 비후되여있다는것을 가려보며 차츰 흥분되였던 마음을 가라앉혔다.

능숙한 솜씨로 피줄들을 결찰하고난 그는 절개창피줄들을 주위조직과 집속결찰하는 어려운 작업에 달라붙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미세수술전문가로 소문났던 그의 손이 뜻대로 움직여주지 않고있다. 빨리, 빨리!… 지금 당장은 출혈을 멈추어야 한다. 다시 해보자.

그러나 여전히 손가락은 말을 듣지 않는다. 진땀이 솟는다. 어찌된 일인가. 왜 손이 움직이지 않는가. 아!…

마스크를 낀 두사람의 눈길이 또다시 마주쳤다.

《이보우, 기술부원장. 어찌된 일인지 이 손이 말을 잘 듣지 않누만.》

《가만, 강선생. 우리 같이 해봅시다. 자, 그 지침기는 이리 주고…》

이번에도 그들은 눈빛으로만 주고받았다.

어느새 강학선에게서 지침기를 넘겨받은 권일학이 그가 하려고 애쓰던 피줄부위를 찾아내여 재빨리 결찰해놓았다. 강학선은 굳어져있었고 곁에서 지켜보던 하경옥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권일학을 향해 소리없이 미소를 지어보였다.

감동과 존경이 어린 눈빛, 한순간 강학선은 저도 모르게 입술을 깨물었다. 뜻대로 손이 놀지 않는 자신에 대한 모멸감이 가슴을 짓눌렀다. 그리고 치밀어오르는 야릇한 분노… 무엇에 대한, 누구에 대한 분노란 말인가? 웬일인지 권일학에게 보내는 하경옥의 따뜻한 미소조차 자기에 대한 조소처럼 느껴지는것이 괴로왔다.

《기술부원장선생님.》 하경옥의 눈길은 여전히 집도자인 강학선에게가 아니라 1조수인 권일학에게 가있었다. 《출혈은 지혈되였습니다.》

《다음은 잔류확인!》

이렇게 둘이서 눈빛으로 말을 주고받던 권일학이 이번에는 강학선에게 눈길을 옮겼다.

《위험은 지나갔습니다. 강선생, 계속 지시하시오.》

어쨌든 강학선은 집도자이다. 순간도 멈춤없이 수술을 계속해야 했다. 그는 약간 거쉰 목소리로 간호원에게 지시했다.

《산소주입! 염산에페드린 정맥주사!》

간호원들이 날렵하게, 소리없이 움직이였다. 어느새 환자에게 자동인공호흡기를 걸고 목밑에 있는 쇄골하정맥을 찾아 점적을 련결해놓았으며 다리에 있는 피줄들에 여러개의 혈관확보를 해놓았다.

마침내 출혈을 멈춘 강학선은 계속하여 수술을 해나갔다.

빨리, 빨리!… 시간, 시간이 중요하다. 시간은 곧 생명과 직접 련결된다. 이게 누구의 말이던가?… 그렇게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누구더라? 어떤 의사였던가, 아니, 구급차운전사들이였던가?…

샘솟듯 하는 땀방울이 그의 수술복을 적시고있었다. 그러나 멈추지 않는 두손… 생사기로에 처한 환자들은 자기의 애끊는 눈빛으로, 혹은 자기의 강렬한 심장의 박동으로 《선생님, 살려주세요!》라고 웨친다고 한다. 지금 이 환자가 그렇게 말없이 간절하게 호소하고있지 않는가!…

그 시각 꺼져가는 산부를 살리기 위해 강학선의 수술복이 땀으로 흠뻑 젖고있을 때 옆에서는 울지 못하는 갓난아이들을 소생시키기 위해 안깐힘을 쓰고있었다.

갓난아이에게 인공호흡을 시키던 애기과 의사가 다급히 소리쳤다.

《20프로 안나까 0. 3, 카르디아졸 0. 3미리그람 피하주사!》

그러나 갓난아이들은 여전히 반사가 없었다. 왜 울지 못하는가. 어째서 울지 못한단 말인가?…

안타까와하는 그들을 지켜보고있던 임선해원장이 참다못해 소리쳤다.

《사정보지 말구 때려요!》

그렇다, 때려야 한다. 갓난아이의 얇고 만문한 잔등을 비벼주고있던 애기간호원이 드디여 결단을 내렸다. 아직 울음소리를 내지 못하는 갓난아이를 한손에 쳐들고 사정없이 발바닥을 때리기 시작했다. 울어야 한다. 울지 않으면 안된다! 갓난아이의 첫 울음은 생을 맞이하는 고고성이다. 이 세상에 자기의 탄생을 알리는 힘찬 웨침인것이다.

《으-앙!》

드디여 고고성이 터졌다! 낮게 울리는 두번째 울음소리, 기를 쓰는 세번째 울음소리. 생명이 소리치고있다. 내가 이 세상에 태여났다! 한 인간이 탄생하였다!… 생명이 태여나는 소리, 이는 생명을 키우고 낳아준 어머니와 그것을 지켜주고 탄생시킨 고마운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웨침인지도 모른다.

의사들과 애기간호원들이 애기들이 들어있는 보육기를 통채로 부둥켜안으며 얼굴을 비벼대기 시작했다. 서로 울며 웃었다. 반갑구나. 애들아, 복받은 우리 세쌍둥이 귀염둥이들아, 너희들의 탄생을 축복한다.

《페복!》

강학선의 낮으나 확신성있는 목소리가 환희에 넘친 수술장에 울렸다.

마침내 죽음의 문어구에 들어섰던 환자의 생명지표가 정상상태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던것이다.

사람들은 네시간이나 걸린 수술이 언제 끝난지도 알지 못했다. 차츰 홍조가 피여오르기 시작한 산모가 언제 밀차에 실려나갔는지도 알지 못했고 애기간호원들이 이미 보육기에 들어간 세쌍둥이들을 언제 애기과로 올려갔는지도 알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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